“국가의 발전을 위해 무얼 해야 할까?”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유향숙 박사(53)가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고민했던 내용이다. 유 박사와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봉사 정신이 투철했다고 한다. 유 박사는 나름대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와중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갔다. 어느날 학교에 초청됐던 한 강사가 “국가 발전을 위해 과학을 해야 한다”라고 했던 말이 그녀의 마음 속 깊이 파고들었다. 이때 주저없이 과학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전까지 유 박사가 간직했던 꿈은 훌륭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 특히 성악을 좋아했던 유 박사는 기독교합창단에 응모해 합격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초빙강사의 말에 선뜻 음악가의 꿈을 접을 수 있었을까. 그녀가 훌륭한 생명공학자가 될 수 있었던 진정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유 박사는 청소년들에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충고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간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과학 분야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좌우명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사람은 남녀에 상관없이 저마다 자신만이 잘하는 것을 꼭 하나는 간직하고 있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유 박사는 덧붙인다.
만일 자신의 관심이 물리나 생물 같은 과학 분야에 있다면 과학적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유 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과학을 시작했던 이유가 단지 국가에 대한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특히 생물 분야에 대해서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과학적인 호기심이 왕성했다. 그녀에게 생물학은 알고 싶은 것을 해결하는 수단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여름방학 숙제를 할 때 용어 하나하나를 백과사전에서 일일이 확인했고, 아버지의 권유로 약대에 진학했을 때는 실험실에서 선배들의 실험을 도와주면서 자신의 호기심을 채워갔던 것이다.
대학원에 가서는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쥐를 갖고 항암제 실험을 직접 했다. 암에 걸린 쥐에 유기합성한 약을 투여하자 경과가 좋아졌다. 하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해 답답했다고 한다. 좀더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유 박사는 풀브라이트 장학금(1964년 미국 정치가 풀브라이트가 만든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당시 미국에서는 분자생물학이 뜨고 있을 때였는데, 분자생물학은 유전자 차원에서 유 박사의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됐다. 유 박사는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연구한 주제는 효모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것이었다.
연구사업단장으로 응모한 계기
여장부의 모습이 연상되는 첫인상을 가진 유향숙 박사. 현재 유 박사는 1년에 1백억원씩의 연구비를 10년 동안 자신의 계획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의 단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이런 대형 국책프로젝트의 단장에 응모한 계기도 첫인상처럼 당차다. 자신이 소속된 생명공학연구원이 대학 교수들로부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소리에 자극 받아 연구원도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은 21세기에 국제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과학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과학기술부에서 추진중인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의 하나다. 특히 1999년 12월에 발족된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에서는 한국인이 잘 걸리는 질병, 특히 간암이나 위암 같은 난치병을 유전자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사업단이 목표로 하는 한국형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잘 추진해 국내 생명공학 분야가 산업화되는데 씨앗이 되겠다”고 유 박사는 거침없이 얘기한다. 요즘 생물학을 전공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반면, 최근 새롭게 등장한 생물정보학, 나노바이오 등 첨단 생명공학 분야에는 전문가가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언젠가 생명공학기술이 본궤도에 오르면 지금의 정보기술혁명처럼 엄청난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때를 위해 정부가 새로운 첨단 생명공학 분야의 과학자를 길러내고 기초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유 박사는 지적한다. 아울러 자신이 단장을 맡은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논어, 삼국지, 그리고 경외감
유 박사는 “사업단 내의 35개팀을 조직화하고 인화 단결시키는데 대학교 2학년 때 읽었던 논어 주석서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남을 아끼고 부모를 공경하며 여유를 가지고 중용을 지키라는 내용을 읽으면서 조직을 이끄는 포용력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감명 깊게 읽었던 책으로 주저함 없이 논어를 꼽는다.
또한 유 박사는 현재 충남대 중국문학과 교수인 남편으로부터 삼국지의 대인관계를 배우고 있다. 그녀는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도 직접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직설적인 화법이 부족해 대인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유 박사가 욕먹고 논쟁에 휘말릴 때마다 정확한 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유 박사는 대인관계에서 필요한 화법을 터득하고 사업단의 프로젝트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다. 대인관계는 사업단을 조직화하는데도 필수적이다.
유 박사의 이런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자신의 연구분야에까지 이어진다. 서양은 도전적으로 뭐든지 끝까지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반면, 동양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을 중시한다. 생명공학이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생명을 조작하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어찌 보면 이것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다. 생명 조작을 악용하는 일을 막는데는 생명의 경외감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이 중요하다고 유 박사는 강조한다. 물론 생명 조작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사회적인 약속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보다 끈기가 중요
생명공학에서 필요한 덕목에 대해 유 박사는 아이디어보다 끈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명공학 실험은 24시간 끊임없이 관찰하며 연속선상에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험을 관찰할 때도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잘 살펴야 하므로 섬세함도 필요하다.
유 박사가 미국에서 유학생활만 10년을 넘게 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생명공학 실험이 많은 시간을 요하는 특성 때문이다. 그녀는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유 박사의 노력 덕분이었는지 그녀의 박사 논문은 생명공학 분야의 권위지인 ‘분자·세포생물학’(Molecular & Cellular Biology)에 게재됐다.
물론 최근에는 끈기뿐 아니라 자신만의 독창력도 중요한 요건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강조한다. 생명공학 분야에 물리·화학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단백질 구조를 밝히고 다수의 유전자를 한꺼번에 다루다보니, 생명공학에 통계학, 컴퓨터공학, 로봇공학, 기계공학 등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데, 이 경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미국 유학시절에는 다행히 그녀에게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벗이 돼준 존재가 있었다. 바로 음악이었다. 어려운 실험을 간신히 마치고 새벽에 숙소로 돌아갔을 때는 베토벤의 음악으로 자신의 어려움과 피로를 달랬다. 기분이 좋을 때는 모차르트 음악,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는 바하 음악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녀가 유학시절 모은 LP판만 해도 2백장이 넘는다. 유 박사는 나중에 이것들을 갖고 자신만의 음악실을 꾸미는게 꿈이라고 밝힌다.
난치병 치료할 신약을 향해
유 박사는 1987년 귀국한 이후 줄곧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인연을 맺고 있으며, 1999년에는 과학기술부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의 단장으로 선정됐다. 같은 해 국내학자로는 드물게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에서 매년 개최되는 세포주기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됐다. 2001년에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훈장을 받기도 했다.
현재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에서는 한국인의 난치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인의 위암·간암 세포로부터 3만여종의 유전자를 선택해 이 가운데 1천여종의 유전자가 위암·간암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위암·간암 관련 유전자를 모아 DNA진단칩을 만들면 번거로운 조직 검사 없이 정확하게 암을 진단할 수 있다. 곧 이와 관련된 1세대 진단칩을 만들 계획이다. 나아가 이 사업이 끝나는 시점에는 한국인 위암·간암의 진단과 치료에 의한 생존율을 현재 20%에서 60%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전망이다.
사업단을 운영하던 초기에 1만여개의 유전자를 구입, 사업단에서 DNA칩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국내연구자에게 보급한 일이 최근 좋은 결과를 낳고 있는 것처럼 10년 후 사업단의 연구는 또다른 결실을 맺을 것이다. 즉 한국인의 난치병을 치료하는 신약의 밑바탕을 제공하고, 생명공학자를 꿈꾸는 청소년에게 손에 잡히는 비전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