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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크 마개 퇴출은 생태계 적신호?

재배지서 다른 작물 키우면 사막화·희귀동물 멸종 우려돼


코르크 숲이 사라지면 멸종위기에 처할 스페인 스라고니.
 

술자리가 많은 연말연시입니다. 요즘 술자리에서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이 사랑받고 있다고 합니다. 광고처럼 인형이라도 안고 들어가기 위해서인지 독주를 마시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최근엔 이런 흐름에 포도주가 가세하고 있습니다.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보졸레 지방에서 생산되는 적포도주로 그 해 8, 9월에 수확한 포도로 2-3개월의 짧은 숙성기간을 거쳐 제조됩니다. 그래서 그윽한 느낌의 정통 포도주라기보다는 과일향이 강한 칵테일에 불과하지만 그 인기는 갈수록 높아져 지난해 우리나라는 특별기 4대를 동원해 2백톤(20만병)을 실어 날랐다고 합니다.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늘어난 양입니다. 1985년부터 보졸레 누보의 출시일을 공히 11월 셋째주 목요일로 잡아 전세계 포도주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부추긴 것이 성공한 것입니다. 발렌타인데이의 초콜릿에 이어 다시 한번 기업의 마케팅에 속아넘어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해가 무사히 지나갔음을 그해 빚은 술로 축하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적포도주는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말입니다. 포도 껍질에 포함된 폴리페놀이 인체에 해로운 자유라디칼을 없애주는 항산화작용을 합니다. 똑같이 기름진 음식을 먹는데 유독 프랑스 사람들이 동맥경화나 심장병과 같은 혈관계 질환에 걸리는 비율이 다른 유럽인에 비해 낮은 이른바 ‘프랑스 패러독스’의 비밀이 바로 포도주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포도주가 인기를 끌자 곳곳에서 포도주 즐기는 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포도주는 코르크 마개를 따자마자 바로 마시기보다는 일정 시간 동안 숨을 쉬게 해준 뒤 마시는 것이 맛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딴지를 걸고 나선 과학자가 있습니다.

미국 보훈병원 호흡기연구소의 니말 크란 박사는 친구가 만찬 전에 미리 코르크 마개를 따두라고 충고하자 도저히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코르크 마개에 바늘같이 가는 관을 삽입한 다음, 병 안의 산소 및 이산화탄소 분압을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코르크 마개를 뽑아낸지 2, 4, 6, 24시간 지난 포도주에 대한 측정치와 비교했습니다. 술에는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는 효모가 들어있어 산소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예상대로 코르크 마개를 뽑지 않은 포도주의 산소 분압이 바깥 공기보다 5배나 적었습니다. 그런데 마개를 뽑은 상태로 둔 포도주 역시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상식이 허구였던 것입니다.

크란 박사는 대신 포도주를 잔에 따르고 마시기 전 몇번 흔들어주면 산소분압이 일반 대기와 같아짐을 밝혀냈습니다. 병원 직원 10명을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모두 이렇게 잔을 흔든 뒤 포도주 맛이 더 좋아졌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금방 마개를 딴 포도주도 잔을 흔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포도주 하면 생각나는 코르크는 세포가 치밀하고 탄력성이 좋은데다 잘 썩지 않는 특성이 있어 중세 이후 포도주 병마개로 애용됐습니다. 코르크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의 수피에서 채취하는데 한번 채취하고 나서 8-10년이 지나면 다시 채취할 수 있고, 여러번 새로 자라난 수피일수록 코르크의 질이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코르크가 때아닌 환경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코르크재배가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것일까요. 사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미국에서 고급 포도주의 질이 나빠지는 주된 원인인 코르크 마개를 나사마개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이 코르크재배가 중단되면 생산지인 지중해 연안의 많은 지역이 환경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WWF에 따르면 코르크재배는 100% 환경친화적이며 숲에 서식하는 생물에 어떤 해도 미치지 않습니다. 코르크가 퇴출되면 코르크보다 토양의 영양분을 훨씬 많이 흡수하는 다른 작물을 키울 것이 뻔한데, 이렇게 되면 지력이 약해지면서 이 지역이 점점 사막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코르크 숲은 개체수가 1백50마리로 급감한 스페인 스라소니의 서식처이기도 합니다. 코르크 숲이 사라지고 농경지로 변하면 그나마 남은 스라소니들이 멸종할 위기마저 있다고 합니다.

과연 포도주의 질과 스라소니의 행복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포도주 한잔 마시며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잔도 흔들어가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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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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