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카이스트’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로봇 축구. 하지만 로봇축구는 로보틱스를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2002년 월드컵만큼이나 유명하다. 그 누구라도 가로, 세로, 높이가 2.5cm인 정육면체 로봇이 공을 이리저리 패스하며 골인을 성공시키는 장면을 본다면 필드의 호나우두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물론 경기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장난감들이 하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육면체에 집약된 기술을 본다면 성급한 결론이었음을 부끄러워 할 것이다.
로봇이 축구를 한다? 어떻게 로봇에게 축구를 시킬 생각을 했을까. 로봇축구의 탄생배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김종환교수(43)의 도전 정신과 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김교수는 로봇축구의 아버지로 불린다. 지능형 로봇 시스템에 관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며 인정을 받던 김교수는 어느 날 문득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연구논문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사실이나 일반인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기에는 너무나도 먼 결과라는 점이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이때가 95년. 당시 김교수는 마이크로 로봇을 이용한 미로 찾기 경기에 참가해 지능형 로봇연구결과를 학생들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미로찾기 대회는 너무 싱겁고 단순했다.
무밭 축구가 로봇축구로
김교수는 뭔가 좀 오밀조밀하게 잘 짜여져서, 하는 사람도 재미있고 보는 사람도 신나는 로봇 경기가 없을까하고 고민했다. 일반인에게는 오락성을 제공하고 개발자에게는 끊임없이 첨단기술을 연구하게 만드는 경기가 필요했다. 때마침 그는 다개체시스템을 연구중이었다. 로봇들이 어떻게 소프트웨어적으로 협동심을 발휘해 한가지 임무를 공동으로 완수할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고 싶었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다가 스포츠로 범위를 좁혔다. 그러다 한 그라운드에서 여러 대의 로봇이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경기를 찾아야 했다. 바로 축구였다. 사실 축구로 결론이 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교수는 어려서부터 무 뽑은 밭에서, 해 저문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지낸 축구광이었다. 축구에 관한 한 규칙에서부터 모르는 것이 없었다.
축구를 좋아한 것도 중요했지만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로봇축구라는 과학이벤트를 만들어내기까지는 뭔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바로 조직력이다. 조직력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중학교 1학년때 CP(Clean Play)클럽을 조직해 축구장을 누빈 것을 비롯해 공부하는 클럽을 만든 것,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의 밤을 열었던 것 등 수도 없이 많다. 이 모든 것이 로봇축구를 탄생시키기 위한 연습이란 것을 그 누가 알았을까.
최선을 다하면 기회는 온다
축구로 결론이 나자 해결해야 할 일은 화산이 폭발하듯 쏟아졌다. 시스템 개발, 경기규칙 만들기, 경기장과 공의 재질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때 김교수의 머리카락도 이 수모를 당했다.
문제는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 있었다. 로봇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장 위에 카메라를 설치해 위치정보를 알려줬다. 그러면서 3차원 문제를 2차원으로 만들어 다이내믹하게 경기를 진행시켰다. 산너머 산이라고 했던가. 경기와 관련된 일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 즈음 주변의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도와주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로봇축구에 대한 부정적인 말 한마디가 김교수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됐을지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다.
하지만 김교수는 다개체 협동 로봇이 산업계의 과제가 될 것이고, 그 시발점을 로봇 축구가 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여기서 김교수의 추진력이 진가를 발휘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로봇축구를 장난감 경기라고 말하지 못한다. 로보틱스 공학도들은 로봇축구대회를 최고의 지적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김교수는 “요령을 피우지 않고 매사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기회는 오고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로봇축구대회를 만들면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가 제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바로 “다져진 길을 떠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다른 길을 찾아낼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을 가져보라는 뜻이다. 만약 이 두가지를 갖추고 성실히 노력한다면 전문가의 길로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전자공학을 전공으로 택하게 된 까닭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혜안이 오늘날의 로봇축구를 탄생시켰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