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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과학이 만든 인간과 자연 공동체

바다를 메우고 강과 하천을 덮고 만든 땅과 도로가 개발과 번영의 상징이던 시대가 끝나고 있다. 도시화·산업화가 지상과제여서 난개발 속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첨단도시 속에서도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역이 대접받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이 제1공약이 된 것도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다.

그러나 자연의 희생 위에 이룩된 현대문명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제 막 고민이 시작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한 시원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여기서는 생태환경공동체를 일궈온 사람들의 직접 체험담을 통해 대안을 찾아보기로 한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삶을 실현 한 콜롬비아의 가비오따쓰.


자연에서 탄생한 기술, 가비오따쓰

가비오따쓰는 콜롬비아에 있는 세계적인 환경공동체다. 1971년 콜롬비아의 초원지대에 건설된 이 마을은 반세기가 넘게 계속돼온 콜롬비아 내전의 와중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잡고,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함께 공생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위대한 실험’을 계속해오고 있다.

가비오따쓰는 보고타 국립대를 졸업한 후 제3세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아시아와 남미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던 파올로 루가리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그는 개발을 명목으로 자연을 훼손함으로써 결국 인간이 살아갈 터전을 끊임없이 파괴하는 서구식 근대화에 실망했다. 그래서 가장 척박하고 황량한 초원지대에서도 자연을 해치지 않고 인간의 ‘순수한’ 노력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결심하고 가비오따쓰를 건설했다.

‘가비오따쓰’는 바로 이 가비오따쓰 공동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자, 그들이 이룩한 인류 대안 공동체 가비오따쓰의 실제 모습을 그려낸 책이다. 책에는 파올로 루가리가 과학자와 기술자, 교육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일궈내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광활한 열대 미개척지에 놓인 사람들이 생활 주변의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하나의 기술로 정착시켜가는 과정을 통해, 과학적 발견과 발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도구와 기계의 원리에 대해 다른 어떤 책보다 실질적인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준다. 그것은 가비오따쓰인들이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연구하고 만들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가비오따쓰에는 다른 곳에 없는 그들만의 도구와 기계가 많다. 가비오따쓰형 풍력 발전기, 슬리브 펌프, 태양열 냉장고, 태양열 주방 등이 그 예다.

1970년대 당시만 해도 태양열을 이용하는 기술은 선진국에서조차 걸음마단계에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고립무원의 오지에서 가비오따쓰인들은 스스로 태양열과 풍력을 이용한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한 것이다. 잡풀만이 우거진 불모지에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수경재배법을 생각해내고, 석유 대신 소나무의 송진을 이용해서 물감과 화장품, 향수의 원료로 사용하는 등 그들의 발명품은 모두 자연 속에서 탄생됐다.

우리는 책을 통해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한 기술이 전체 시스템과 어떻게 조화되고 있는지, 전체 산업 시스템은 어떻게 자립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어나가는지, 또한 이런 생태공동체에서 농업기술과 여러 산업기술은 어떤 관계를 맺는지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파올로 루가리는 “가비오따쓰는 완전한 자연현상”이라고 했다. 최소한의 자연을 이용해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숨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또한 이런 일들 모두가 자연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가비오따쓰를 유토피아라고 부르지만, 가비오따쓰 사람들은 그냥 ‘토피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가비오따쓰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비오따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낸 사람들의 진취적 의지와 열정,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대안도시의 모델, 꾸리찌바

가비오따쓰가 황무지에 계획적으로 개척한 환경생태공동체라면 꾸리찌바는 기존의 도시를 환경친화적인 모습으로 바꾼 성공 사례에 해당한다. 꾸리찌바는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약 4백km 떨어진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빠라나주의 수도다. 브라질의 주도 가운데 유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던 이 도시는 1950년대에 이미 급속한 인구증가와 도시환경 문제로 고통받고 있었다. 또한 브라질리아를 제외하고는 1인당 가장 높은 자동차 보유율과, 자동차 보유대수를 갖고 있는 도시였다.

그런데 오늘날 꾸리찌바는 미래의 대안도시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꾸리찌바가 어떻게 꿈의 도시, 희망의 도시로 불리게 됐는지,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꾸리찌바는 다른 생태도시와는 달리 이미 있었던 도시를 정책적 노력과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재창조한 경우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 역시 꾸리찌바가 형성돼온 과정, 도시 계획과 운영에 관한 노력 등이 중심을 이룬다.

타임지가 선정한 ‘지구에서 가장 환경적으로 올바르게 사는 도시’, ‘세계 12개 모범 도시 중의 하나’인 꾸리찌바. 꾸리찌바에는 지하철이 없지만 지하철보다 더욱 정확한 버스 시스템이 움직이고 있고, 자원재활용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돼 있어 쓰레기나 각종 폐기물을 생필품과 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 꾸리찌바에서 계획되고 실천된 환경정책들은 다른 많은 나라에도 전파됐다. 버스전용차선, 보행자 가로, 지상통합교통망 등은 꾸리찌바를 모델로 해서 발전해나간 정책들이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오늘날 환경기술과 정책의 가장 중요한 지향점 중 하나로서, 미래에 인류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개발을 의미한다. 지속가능한 개발에서는 자연환경의 가치를 경제적 자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환경의 질로서 평가한다.

과학기술 또한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삶에 과학기술이 얼마나 기여했는가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꾸리찌바’는 지속가능한 개발, 또 이를 위한 과학기술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존의 도시 시스템을 환경친화 적으로 바꾸는데 성공한 대표적 사례인 브라질의 꾸리찌바.


자연과 호흡하는 핀드혼 사람들

환경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비오따쓰처럼 기존 사회의 외부 지역에 계획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꾸리찌바처럼 기존의 사회 구조를 생태주의에 기반한 공동체 구조로 점차 바꿔나가는 것이다.

환경공동체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영국의 핀드혼 공동체다. 핀드혼 공동체는 가비오따쓰 공동체에 가까운 구조를 갖고 있지만, ‘가비오따쓰’가 공동체의 건설 과정과 공동체를 실현시킨 생활기술 등을 비중있게 다룬 반면, ‘핀드혼 농장 이야기’는 자연과의 교감에 중심을 두고 있다.

핀드혼 공동체는 1962년 스코틀랜드 북동쪽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전인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공동체의 모범으로 성장한 가장 커다란 국제공동체다. 또한 1980년대 이후에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목표로 하는 에코빌리지 프로젝트(생태마을)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핀드혼 공동체의 가장 뛰어난 가치는 생명 간의 상호연관성을 중시하는 자세에 있다. 핀드혼 공동체 사람들은 이 세상이 인간계, 데바계(식물에 존재하는 자연의 정령), 그리고 엘리멘탈계(세계를 구성하는 4가지 물질인 흙, 공기, 물, 불 안에 살고 있는 존재)로 이뤄져있다고 믿는다. 데바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농사를 짓고 생활하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세상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핀드혼 이야기는 과학의 합리성을 벗어난 신비주의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외에도 식물학이나 신비주의 같은 미개척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하다.

핀드혼 사람들의 역할은 모래땅에 농사를 가능하게 하는 퇴비와 유기농법을 개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화하는 정신적인 농사꾼이 되는데 있다. 그래서 핀드혼 공동체의 모습은 과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핀드혼 공동체야말로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생활에 흡수돼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가장 적절한 예일지도 모른다. ‘핀드혼 농장 이야기’를 통해 자연과의 협력, 그리고 공동의 창조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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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일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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