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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적 안목 가진 지도자가 세계 이끈다

2000년 부시와 고어의 과학정책 대결

과학기술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선거에서 크게 이슈화되지 못한 주제였다. 하지만 점점 과학기술에 대한 후보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고어와 부시가 과학기술에 대해 심도있는 정책 대결을 벌였다.

사이언스 인간 게놈에 대한 첫번째 완전 해독 내용이 곧 공개된다. 유전공학, DNA 특허권, 건강보험과 같은 분야에서 이 정보가 사용되는데 어떤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고어 처리되지 않은 기본적인 게놈 서열 데이터는 특허로 인정될 수 없다. 이 데이터는 의학적 진단, 시술, 치료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전세계의 과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보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은 질병을 줄이고 세계의 건강을 증진시키며 모든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발견을 촉진시킬 것이다. 또한 유전자에 기반한 발견에 대한 지적 재산의 보호가 새로운 건강치료법의 발전을 자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개별 인간에 대한 유전자 정보는 차별을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철저히 차단돼야 한다. 1998년 나는 국립과학아카데미에 유전적 차별에 대한 이슈를 제기했다. 미국 국민은 자신의 유전정보가 건강보험이나 직업을 유지하거나 갖는데 방해하도록 쓰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그러한 보장을 강력히 지지할 것이다.

DNA와 유전자에 대한 특허에 대해서는 특허교역국(the Patent and Trade Office)이 특허에 대한 표준을 정함으로써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믿는다. 헌법에 ‘과학과 실용적인 기술의 진보를 촉진시킨다’고 명시돼 있으므로 특허법은 우리에게 유리한 입장에 서있다.

사이언스 유전자변형 작물이 잠재적인 이득보다 위험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부시 나는 안전한 음식에 대한 장애물을 반대한다. 그리고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법규가 건전한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믿는다. 1999년 미국에서 생산된 콩의 50%, 면의 40%, 그리고 옥수수의 1/3이 유전자변형 작물이다. 그렇지만 유럽연합은 새로운 생명공학 작물의 수입에 대해 사용 금지 결정을 내렸다. 게다가 건전한 과학에 기반을 둔 세계무역기구의 법규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성장 호르몬을 맞은 미국 쇠고기의 수입을 계속 금지하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외국의 정부에게 다음과 같이 간단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우리는 당신의 국가 산업에 대한 편애와 불공정한 자세를 참을 수 없다고. 나는 미국의 제품이 유럽연합의 문을 통과할 수 있으며, 법규를 실현시키기 위해 과학적인 원리가 적용되도록 싸울 것이다. 미국의 농부들에게는 경쟁자가 없다. 미래 미국 농업의 호황은 세계 시장의 확대에 크게 달려있다.
 

사이언스는 2000년 미국 대 선후보인 고어(왼쪽)와 부시(오른 쪽)에게 20가지 질문을 던졌 다. 여기에는 인간게놈과 유전자 변형 작물과 같은 핫이슈도 포함 돼 있다.


8페이지에 걸쳐 소개된 후보의 과학기술정책

이것은 지난 2000년 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대표적인 두 후보인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고어가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미국의 ‘사이언스’에서 던진 질문에 서면으로 답변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여기에서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얼마나 과학기술에 대한 깊이있는 안목과 이해를 갖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고어의 경우 과학자 수준의 답변을 할 정도다.

대선 3개월 전 사이언스는 두 후보에게 과학기술과 관련된 20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서 과학기술의 핵심적인 우선 사항이 무엇인지, 과학교육과 수학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여성과 소수인종이 과학기술계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지지할 것인지와 같은 과학기술 전반에 대한 정책을 물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게놈, 유전자변형 작물과 같은 현재 진행중인 핫이슈들도 포함하고 있다. 사이언스는 두 후보가 답변한 내용을 2000년 10월 13일자에 8페이지에 걸쳐 소개했다. 이것을 보면 앞으로 미국에서 4년간 과학기술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과학기술은 어느 나라에서나 대통령 선거에서 찬밥신세였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세계의 다른 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대통령 후보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물리학회 1976년부터 과학기술 현안 질문

1992년 10월 대통령 선거전에서 클린턴은 고어를 부통령으로 선택한 중요한 까닭이 고어가 오랫동안 과학기술 정책에 관여했으며,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전문적인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대통령으로 집권하면 고어에게 그를 대신해서 과학기술정책 문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고어도 마찬가지 얘기를 했다. 고어는 그의 파트너로서 리버만을 선택한 까닭이 바로 리버만이 오랫동안 과학기술에 대한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라고 얘기한 것이다. 2000년에는 과학기술에 깊이 관심있는 한쌍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는 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과학기술이 대통령 선거에서 강조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 하버드대 전 행정대학원장 돈 프라이스에 따르면 미국인은 민주주의와 과학의 결합을 통해 인간이 진정한 진보를 이를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대통령 후보는 자신이 얼마나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과거에 어떤 과학정책에 관여했는지를 강조한다. 그래서 지난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전보다 발전된 형태로 부시와 고어가 과학정책에 대해 대결을 벌였다. 둘의 대결은 과학기술정책이 쟁점화된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이렇게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데는 과학기술계의 활발한 움직임도 한몫을 한다. 사이언스의 경우 1988년부터 주요 대선 주자들을 상대로 과학기술에 대한 견해를 물어왔다. 지난 1996년 민주당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 돌 후보에게는 10개의 질문을 던졌고, 2000년에는 질문을 20가지로 늘렸다. 미국 물리학회도 1976년부터 대통령 후보에게 과학기술계 현안 10가지를 질문해 왔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를 비롯한 각종 과학기술단체는 각당 후보가 과학기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는지를 이들의 대변인을 초빙해 얘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해 왔다.
 

최근 유럽의 과학기술자 모임은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과학 기술정책을 물어 그들의 관심을 불 러일으키려고 했다.


최근 동향과 함께 질문 던진다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 유럽에서도 포착되고 있다. 1997년 조직된 유럽과학기술자들의 모임인 유로사이언스는 올해 총선이 있었던 프랑스와 독일의 후보에게 질문을 던져 과학기술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다.

유로사이언스는 과학기술 관련 정책 결정에 유럽과학기술계의 목소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과학기술자들을 위한 공개 포럼을 개최한다. 이와 함께 유럽 과학자들 간의 의사소통과 공동연구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는데 설립 목적이 있다. 또한 유럽 각국의 과학기술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의 결정권자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유로사이언스는 이번 프랑스 총선과 독일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을까.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에서는 연구와 혁신의 속도가 주목할 만큼 줄었음이 지적돼 왔다. 그러나 이번 프랑스 선거에서는 이것이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유로사이언스는 4월 총선에 출마한 16명의 대통령 후보에게 이 문제를 포함한 과학기술에 대한 최근의 동향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정책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 8가지를 던졌다.

예를 들어 연구개발비에 대한 프랑스의 현재 수준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프랑스는 1995년 이후에 다른 나라에 비해 연구개발비의 증가가 매년 0.62%에 그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초반에 GNP 대비 2.4%에 달했지만, 지금은 2.17%를 차지하고 있다. 이 수치는 유럽 전체의 평균보다 약간 높지만, 스웨덴이나 핀란드와 같이 최근 높은 국제 경쟁력을 갖는 북부 유럽의 나라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편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3%가 넘고, 독일의 경우 2.46%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연구개발비가 각각 2.7%, 2.9%를 차지한다. 현재 프랑스의 연구개발비가 이 정도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가? 다음 5년의 재임기간 동안 연구개발비를 얼마나 증액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나라에 적합한 우선 연구과제는 무엇인가?”
 

올해에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총선 이 있었다. 후보자들의 일부는 과 학기술 이슈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보였다. 사진은 독일 슈뢰 더 총리


독일 총선에서 이공계 기피가 이슈

이같은 질문에 대해 후보 중 4명이 구체적인 답변을 보내왔고, 다른 4명은 질문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연구개발의 우선사항을 얘기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예 어떤 답도 보내지 않았다. 일단 2/3의 관심을 끌어내는데 성공한 셈이다. 특히 당선자인 공화국연합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물론, 막판에 3파전으로 압축됐던 상황에서 주요 후보였던 사민당의 리오넬 조스팽,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도 구체적인 답변을 보냈다.

올 9월 22일에 총선을 치른 독일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독일의 과학정책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프랑스와 비슷하다.

독일은 인구 50만명이 산업과 공공 연구에 종사하고 있지만 과학 정책은 여전히 각 정당의 선거운동에서 미미한 부분을 차지한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유로사이언스는 내각제인 독일의 각 정당에게 6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는 최근 독일에서 과학기술계로 사람들의 진출이 줄어들고 있는 문제가 포함돼 있다. 독일의 경우 유로사이언스에서 던진 질문에 대해 모든 당이 8-9페이지 분량으로 구체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아직은 만족스런 수준이 안되지만 유로사이언스는 선거기간에 벌이는 이같은 노력을 통해 각국의 지도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점점 관심을 높일 것으로 전망한다.

과학기술계에서 벌이는 활동을 통해 후보자나 정당의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을 들음으로써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어떤 후보를 선택할지가 분명해지기도 한다. 미국의 지난 선거에서는 사이언스가 주최한 과학정책 대결 후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기술에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갖고 있는 고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지지로 승리

2000년 3월에 치러진 대만의 총통선거에서는 한 과학자의 지지가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선거는 대만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다. 50년을 집권한 국민당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야당의 천수이벤이 당선된 것이었다.

당시에 선거 막판까지 집권당인 국민당의 롄잔, 야당인 민진당 천수이볜, 그리고 무소속 쑹추위의 3파전은 치열했다. 이들 후보의 지지율이 1-2% 차이로 앞치락 뒷치락을 거듭했다. 그런데 선거가 있기 일주일 전 대만의 과학자인 리위안저 박사가 민진당의 천수이볜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자 많은 과학자들과 젊은이들이 리위안저 박사의 지지에 동의를 표시하면서 대세는 천수이볜 후보 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졌다.

리위안저 박사는 과연 어떤 과학자이기에 그의 지지가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그는 198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중국인으로서는 4번째, 대만에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다. 그가 대만국민에게서 영웅으로 인정받는데는 노벨상 수상자라는 명패가 한몫을 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과학부분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된다면 한 과학자의 말이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과학기술계의 노력을 통해 각국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다. 또한 인간복제, 환경문제와 같이 과학기술 관련 이슈가 점점 부각되면서 지도자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안목과 과학기술에 대한 과거의 경력이 앞으로 더욱 중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멕시코 선거에서는 과학기술의 지지자로 명성을 쌓은 비센테 폭스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폭스 대통령은 1995-1999년까지 과나주아토주지사로 재직하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에 노력을 기울이면서국민의 지지를 높여왔다. 그는 또한 대만과 마찬가지로 70년만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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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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