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토네이도 용오름. 올여름 불과 한달여 만에 무려 5번 발생했다. 이는 지난 40년 동안 발생한 총횟수의 38%에 달한다. 왜 이렇게 잦아 진 것일까. 올여름 한반도를 휩쓸었던 용오름을 집중 분석해보자.
한반도의 기후가 변한 것은 아닐까.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토네이도가 올 여름 우리나라에서 5차례나 출몰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경기도 파주의 한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회오리바람은 승합차를 뒤집어엎을 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높이 5백m 공포의 회오리
토네이도.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다 해 우리나라에서는 ‘용오름’이라 불린다. 토네이도는 우리나라에서 지난 40년 동안 모두 13회 발생한 것으로 기상청에 보고돼 있다. 그런데 13회 가운데 5회가 올 여름 불과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바다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8월 12일 강원도 양양군 앞바다에서 처음 발생한 용오름은 25일 울릉도 부근 앞바다, 26일 강원도 고성군 봉포리항 앞바다, 9월 2일 강릉시 경포대 앞바다, 6일 강릉시 남항진 앞바다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해서 나타났다.
용오름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8월 1일 경기 북부의 파주시 광탄면 영장2리 산간 분지 마을에 출현한 회오리바람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이 회오리바람은 지속시간 1-2분, 진행거리 80-1백m, 폭은 40-50m 정도여서 토네이도가 아닌 강한 회오리바람으로 분류됐다. 그런데도 이 회오리바람은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날 회오리바람으로 이 마을 50여가구 중 20여가구가 큰 피해를 입었다. 현지 조사를 갔던 기상청 직원은 “바람이 훑고 지나간 마을은 마치 무허가 건물 철거현장 같았다”고 말했다. 지붕의 슬레이트와 기와가 날아갔고, 비닐하우스는 모두 파괴됐다. 또 나무가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히기도 했다. 12인승 승합차는 3번 회전한 뒤 뒤집혀버렸다. 그런데 어떤 집은 바로 몇m 옆에 있었는데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가구공장을 운영하는 주민 정민규씨 “몇초 동안 엄청난 바람이 불어 집에 숨어있다가, 바깥으로 나와보니 공장이 절반쯤 파괴돼 있었고, 공장의 문짝이 20m 이상 날아와 집을 때렸다”고 말했다. 만일 이것이 토네이도였다는 피해는 훨씬 컸을 것이다.
8월 25일 울릉도의 부속섬인 죽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용오름은 독도와 울릉도의 생태계를 취재하고 돌아오던 대구방송 보도진의 카메라에 잡혀 방송에 크게 보도됐다. 이 용오름은 토네이도의 전형적 특징인 깔대기 구름의 지름이 20m, 높이가 5백m에 이르렀으며 30분 동안 지속되다가 소멸됐다.
원인은 불안정한 대기
올여름 유난히 토네이도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여름 태풍이 우리나라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보통 여름부터 초가을에 걸쳐 우리나라에는 5``-6개의 태풍이 몰려온다. 하지만 올해에는 이상하게도 태풍이 한반도 근처에 얼씬도 못하고 있다. 또한 울릉도에서 용오름이 관측됐던 1988년에도 우리나라에는 태풍이 지나가지 않았다.지표의 열을 제거하는 ‘청소부’인 태풍이 파업을 하니까 대신 토네이도가 그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기상청 유명렬 분석과장은 “태풍은 아주 큰 스케일의 기후현상이고, 용오름은 그보다 훨씬 규모가 작아 태풍이 없었던 것이 용오름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직접 원인은 올여름 대기가 불안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여름 우리나라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서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남하하면서 대기가 매우 불안정해졌기 때문에 토네이도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올해 많은 용오름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에도 기상청에 보고되지 않은 용오름이 꽤 발생했을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적란운이 회전할 때 발생
토네이도는 대기의 하층이 고온습윤하고 상층이 한랭건조해 하층의 따스한 공기가 부력에 의해 상승해 토네이도의 모체가 되는 적란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적란운은 대기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데다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흔히 번개와 소나기를 동반한다. 보통 토네이도를 발생시키는 적란운은 너비가 수십㎞에 달한다. 또 거대한 적란운 내부의 공기는 북반구에서는 지구의 자전에 의해 항상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을 한다.
적란운은 대기의 하층부터 대류권 끝까지 아주 높고 깊게 발달하는데 그 안에서는 상승기류가 생긴다. 이는 마치 주전자의 물을 끓이는 것과 같다. 끓는 주전자 뚜껑을 열면 흰 김이 올라간다. 김은 수증기가 물방울로 변한 것이다. 수증기는 많은 양의 숨은 열(잠열, 潛熱)을 지니고 있다. 25℃ 수증기 1g이 같은 온도의 물이 될 때에는 5백83㎈의 숨은 열을 내놓는다. 끓는 물 위의 수증기에 손을 대면 화상을 입는데, 이는 수증기의 숨은 열 때문이다.
숨은 열의 방출로 인해 적란운 안에서 공기가 상승하면 주변의 공기는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드는 것처럼 적란운 안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이때 상층의 바람이 하층의 바람보다 강할 경우 상층의 모멘텀이 밑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대기의 하층에 회전이 생긴다. 또한 상층에서 서풍이 불고, 하층에서 동풍이 불어도 회전이 생긴다. 이처럼 상층과 하층의 바람의 세기나 방향의 차이 때문에 윈드쉬어(wind shear)가 발생해야 적란운 밑에 강력한 공기의 회전현상이 일어나면서 깔때기 구름, 즉 토네이도가 생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토네이도는 적란운과 지표 사이에 생기는 깔때기 모양의 구름기둥이다. 흔히 사람들은 바다에서 발생하는 토네이도를 물기둥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물기둥이 아니라 구름기둥이다.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박선기 교수는 “깔때기 구름은 처음에는 지면이나 해수면과 평행하게 길게 누워있다가 공기의 상승에 의해 점점 수직으로 서게 된다”고 말한다. 박교수는 미국 오클라호마대에서 직접 토네이도를 연구하다가 최근 귀국했다.
바다의 용오름이 물기둥 아닌 까닭
왜 구름기둥이 만들어질까. 수증기를 머금은 주변의 공기는 초속 수십m의 빠른 속도로 적란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상승할수록 해발고도가 높아져 온도는 내려간다. 또한 기압이 낮아지면서 팽창하기 때문에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은 줄어든다. 따라서 빨려올라가는 공기는 빠른 속도로 물방울로 변하면서 구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깔때기 모양처럼 보이는 구름이다.
이 깔때기 모양의 구름은 적란운에서 조금씩 아래로 내려와 마침내 바다표면이나 땅에 닿게 된다. 이를 ‘터치다운’이라고 한다. 터치다운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흙이나 먼지, 또는 바다의 물방울이 휘감겨 올라간다. 8월 26일 강원도 고성군 봉포리 앞바다에서 일어난 용오름은 터치다운이 일어나지 못한 채 20분만에 사라졌다. 신경섭 강릉지방기상청장은 “구름이 상승기류를 타고 빠른 속도로 수직 상승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닷물이 물기둥을 이루며 구름으로 빨려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강한 용오름의 경우에도 빨려올라가는 바닷물의 양은 아주 적다”고 말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서울 근교, 1985년 강원도 횡성 등 태백산맥 서쪽 지방, 1989년 충남 홍성, 1993년 전북 김제평야, 1994년 지리산 만복대 정상 등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났다. 바다에서는 1988년 울릉도, 1989년 제주, 1997년 전남 여천 앞바다에서 용오름 현상이 목격됐었다. 이들 토네이도는 7월부터 10월 사이에, 그리고 대부분 오후에 발생했다.
신경섭 청장은 “토네이도가 만들어지려면 너비 수십㎞에 달하는 적란운이 산이나 산맥의 방해를 받지 않은 채 계속 회전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주변에 산이 없어야 하므로 토네이도는 주로 큰 평야나 바다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진행과 직각방향으로 달아나야
토네이도의 80%는 미국에서 발생한다. 미국의 대평원에서는 토네이도가 연간 9백개나 발생한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토네이도는 지름이 약 2백50m, 풍속은 초속 1백-2백m에 달한다. 훑고 지나가는 경로의 평균길이가 보통은 5-10㎞이지만, 3백㎞를 넘을 때도 있다. 미국에서는 육지에서 발생되는 용오름을 토네이도, 해상에서 발생하는 용오름을 ‘워터스파우트’로 부른다.
미국 중부대평원에서 자주 발생하는 토네이도는 미국의 멕시코만의 고온다습한 기류, 캐나다의 한랭한 기류, 그리고 로키산맥을 넘는 건조한 기류가 상호작용해 일어난다. 워터스파우트는 미국의 경우 서남해안이나 플로리다주 해안에서 종종 목격되는데, 경우에 따라서 조그만 보트를 전복시킬 수 있고 배에 큰 타격을 가할 수도 있지만, 통상 대평원의 토네이도에 비해 규모나 세력이 약하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1931년 발생한 토네이도는 1백17명을 실은 83t의 기차를 감아 올릴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다. 미국의 토네이도는 5월에 가장 많고 1월에 가장 적다.
토네이도가 발생했을 때는 토네이도의 진행방향과 직각방향으로 달아나야 한다. 시간이 없을 때는 가까운 도랑이나 좁은 계곡에 몸을 숨긴다. 빌딩 내부에서는 가장 아래층에 숨는 것이 좋다.
토네이도는 미국에서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중국, 일본, 동남아, 인도,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도 피해가 보고되고 있다. 한국이라고 토네이도 피해의 예외지역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