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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학력 파괴 경향의 진실

노벨 유언에서 실험도구나 기법 강조

올해 노벨 화학상은 박사나 교수가 아닌 학사 출신에게 돌아갔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런 학력 파괴 경향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은 노벨의 유언에서 실험도구나 기법을 발명하거나 개량하는 업적을 강조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데….

올해에는 이웃나라 일본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으면서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는 노벨 평화상을 이미 받은 바 있지만, 현재 우리의 관심은 노벨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과학 분야 노벨상’(이하 노벨 과학상)에 집중되고 있다. 노벨 과학상에는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 또는 의학상이 있다.

이런 관심은 우리가 서양 과학기술을 받아들인지 꽤 됐고, 이를 바탕으로 상당한 경제 발전을 이룩했으며, 이제는 우리도 노벨 과학상을 받을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여기에는 과학 내부의 문제와는 별도로, 일본과의 오래된 민족 감정과 경쟁심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일본인 다나카 고이치에 대한 관심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가 단백질 연구와 관련한 실험 도구를 개발한 창의성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게 됐다는 수상 이유보다는 그가 박사나 교수가 아니라 학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 큰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사 출신이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일까. 겉보기에 노벨상에 나타나는 이런 학력 파괴 현상의 진실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이런 현상은 노벨 과학상 분야에서 실험 도구나 실험 기법을 개발한 업적이 강조돼 왔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실험 도구나 기법을 개발하는데 반드시 박사 학위나 교수 지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0년 노벨상 수상식이 열린 모습. 노벨 과학상은 과학자면 누구나 꿈꾸는 가장 권위있는 상이다.


발견과 발명, 개량의 의미

어떤 이유로 노벨 과학상 분야에서 실험 도구와 실험 기법이 강조돼 왔을까.

먼저 노벨상을 제정하는 근거가 된 노벨의 유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벨은 유언을 여러 차례 마련했으나 최종 유언을 1895년에 남겼고, 그 이듬해에 죽었다. 노벨은 이 마지막 유언에서 노벨상의 분야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노벨의 마지막 유언 가운데 “그(기금) 이자로 그 전 해에 인류에게 가장 커다란 이익을 주었다고 이야기될 수 있는 이들에게 매년 상의 형태로 분배돼야 한다”는 내용과 아울러 노벨 과학상에 대해서는 “일부는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한 사람에게, 일부는 가장 중요한 화학적 발견이나 개량을 한 사람에게, 일부는 생리학 또는 의학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에게” 부여돼야 한다고 적혀있다.

노벨의 유언에서는 과학상과 관련해서 ‘발견’ ‘발명’ ‘개량’이라는 말이 계속 강조되고 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비교적 명확하다. 발명과 개량은 실험 도구를 새로 만들어내거나 실험 도구나 기법을 개량해서 인류에 기여한 바와 확실히 관련된다. 발견의 경우에는 이론의 발견과 실험적 현상의 발견 모두가 해당되겠지만, 노벨상 수상의 역사는 주로 현상의 발견을 강조해 왔다. 때문에 실험 기법이나 실험 도구를 개발한 업적에 빈번히 노벨 과학상이 수여된 것은 노벨상 수상의 역사에서 전혀 새롭고 진기한 일이 아니다.

노벨상 수상의 첫해인 1901년 노벨 과학상 수상 내용을 보면 이 말이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물리학 분야에서 독일 과학자 뢴트겐은 X선의 발견이라는 업적으로 상을 받았다. 이는 실험적 발견이다.

화학상 분야에서는 네덜란드 과학자 반트호프가 화학적 동역학의 법칙과 용액 삼투압의 발견으로 상을 받았다. 이 경우는 이론의 발견과 현상의 발견 모두가 인정된 사례이다. 생리학 또는 의학상 분야에서는 독일 과학자 폰 베링이 특히 디프테리아를 치료하는데 쓰이는 혈청 요법을 밝혀낸 연구로, 그럼으로써 의학 분야에 새장을 열고 질병과 죽음에 맞서는 무기를 개발한 결과로 상을 받았다. 이 분야도 발명에 해당할 것이다. 이같은 첫해의 노벨상 수상 이후 수많은 연구는 대부분 실험 분야의 성과를 인정받아 노벨상 수상의 대상이 돼왔다.

이론이 수상하기 힘든 이유

올해의 노벨 과학상에서도 어김없이 실험에 대한 강조는 계속됐다. 예를 들어 화학 분야에서 펜과 다나카는 단백질과 같은 생물학적 거대 분자를 판명하고 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한 공로로 수상하게 됐다. 다나카는 바로 학사 출신 연구원이라는 이유로 화제가 된 그 인물이다. 또다른 공동 수상자인 뷔트리히도 용액 속에서 생물학적 거대 분자의 3차원 구조를 결정하는 핵자기공명 분석법을 개발한 업적으로 상을 받았던 것이다.

새로이 발전된 실험 도구와 기법의 상당 부분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산업이나 의료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노벨이 말한 것처럼 인류에게 이익이 된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를 X선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X선은 강력한 투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 능력 때문에 예를 들어 우리 몸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돼 의학적으로 큰 기여를 했던 것이다.

반면 새로운 이론은 자주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발견되더라도 일반적으로 곧바로 실생활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또한 이론의 발견 자체가 인류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진리와 효용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넓게 그리고 장기적으로 봐 진리를 아는 것 자체가 인류에게 큰 이익이 된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노벨상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래의 실험에 의해 ‘참’으로 판단될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노벨상위원회가 그런 이론을 예측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벨의 유언은 심오한 세계관의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이론의 발견이 갖는 가치를 배제하지 않았지만, 실험 분야에서의 발견이 인류에게 직접적으로 기여한 경우에 좀더 직접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실험을 통해 우연히 발견된 X선은 초기의 에디슨처럼 조 수의 손뼈를 구경삼아 보여주 는 잘못된 용도로 쓰이기도 했 지만 오늘날에는 우리 몸 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강 력한 의학적 도구가 됐다.


X선 발견은 실험이 앞선 예

전통적으로 과학철학은 이론에 강조점을 두었다. 관찰이나 실험은 이론이 ‘먼저’ 제기되면, 그 제기된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 비로소 행해지는 것으로 오랫동안 여겨져 왔다. 시험할 이론이 없으면 관찰이나 실험은 행해지기 어려우며, 행할 목표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학사적 사실과 현행 과학에 배치된다.

X선이 발견된 경우를 보자. X선은 어떤 이론과도 관련 없이 현상 자체가 독립적으로 발견된 경우이다. 즉 X선의 발견은 미리 제기된 특정한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서 행한 실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X선은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우연히 발견됐지만, 그것이 갖는 강력한 투과성과 같은 독특한 성질 때문에 현상 자체로 과학자들의 관심거리가 됐다.

실험과학자는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서도 실험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험 자체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한다. X선이 처음 발견된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이 X선이 과연 ‘안정된’ 현상인지, 아니면 실험 도구가 만들어낸 인공물이나 잡음 효과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도구를 개량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여러가지 실험을 했다. 이론은 전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여러 실험과정을 거쳐 X선이 안정된 현상임이 알려지자 X선을 여러가지 물질에 쬐어 보는 일이 이어졌다.

이같은 연구가 한참 진행된 후에야 비로소 X선이 과연 어떻게 생겨나며 왜 그같이 특별한 효과를 지니는가에 대한 ‘이론적’ 해명작업이 따라오게 됐다. 이처럼 실험은 이론에 항상 뒤서는 것이 아니다. 실험은 이론에 앞설 수 있다. 그러나 실험이 항상 이론에 앞설 수 있고 앞서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에 과학철학은 그 경향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변화의 중요한 일부분은 실험의 본성과 역할에 대한 강조이다. 이같은 연구 분야를 ‘실험철학’이라고 한다. 1980년대 이전의 과학철학에서는 이론이 독점적으로 강조됐다. 관찰과 실험은 이론의 시험을 위해 수행되며 그 결과는 쉽사리 얻어지는 것으로 주로 치부됐다.

그러나 관찰과 실험은 이론적 목적만을 위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며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험 결과가 쉽게 얻어져 누구라도 간단히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실험 분야에 굳이 노벨상을 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험철학의 강조점은 실험은 이론과 독립적으로 고유한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은 이론과 실험의 관계에 대한 균형있는 인식을 목표로 한다. 과학은 이론을 제기하는 사변(실천이나 경험을 강조하기보다는, 주로 순수한 사고·이성만으로 사물의 진상에 도달하려고 하는 일)적 작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구를 사용해 자연을 조작하고 바꾸는 실천적 작업이기도 하다.

이 두 측면이 적절히 조화되면서 과학 발전은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실험철학의 이같은 강조는 사변으로서 과학에 대한 상을 실천으로서 과학의 상으로 서서히 바꾸어놓고 있다.

우리는 도구를 사용해 자연의 본성을 밝히고 이를 생활의 실용적인 면에 부분적으로 응용하고 있다. 실험철학의 성과는 노벨상 수상의 역사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실험은 손과 옷에‘기름’을 묻히는 작업이다. 이제 우리도 최 근 노벨상에서 실험결과뿐만 아니라 실험장치를 중시하는 경 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학사 연구원 vs 조선의 선비

서양 과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지금까지 주로 사변적인 측면에 강조점을 두었다. 인간의 이성은 위대하며 이성을 통해서 세계와 우주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서구에도 이성에 강조점을 두는 전통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상황에서 이런 강조는 좀더 두드러져 보인다.

이성과 사변적인 작업을 통해서 이론을 만들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론의 수용과 거부를 결정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관찰과 실험이다. 새로운 이론의 예측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실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목적의 여러가지 물질적 수단, 즉 도구를 발명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사변이 아니라, 오히려 실천이며 행위에 가깝다. 마치 장인과 기술자처럼, 그리고 중세의 연금술사처럼 실험과학자는 끊임없이 물질의 작동 및 성질과 씨름해야 한다. 물질의 모든 작동과 성질에 대해 기존의 이론이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실험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과학을 사변적 이성으로 주로 이해하는 태도는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아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과학은 특출한 인식적 재능을 갖춘 박사나 교수가 하는 일쯤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위대한 사변을 구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아주 제한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근대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지적인 작업에 종사하던 사람, 예를 들어 조선 선비의 이미지와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실험은 손과 옷에 기름을 묻히는 작업이다. 이런 실험의 이미지가 선비의 이미지와 연결되기는 어렵다.

과학이 독창적인 사변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구를 만드는 일 역시 다른 의미에서 독창적인 작업을 요구한다. 그런데 독창적인 실험 도구를 개발하는데 반드시 박사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실험 도구는 높은 수준의 이론의 도움없이도 개발될 수 있고, 심지어 우연히 발견될 수 있다.

올해 화학상 수상자 다나카의 장치도그가 박사나 교수였기 때문에 만들어낸 것이아니다. 오히려 실무에 오래 종사하면서 이론보다는 물질의 성질에 정통했기에 그같은 도구를 만들어 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0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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