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조상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어려움이 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누워서 떡 먹기’, ‘식은 죽 먹기’처럼 소화 작용을 이용해 속담을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숨 쉬는 것만큼 소화 작용에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 특히, 음식물이 입에서 항문까지 이동하는 과정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내부 소화근육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통해 이뤄진다. 그 사이에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소화효소라는 부지런한 일꾼에 의해 작은 단위로 분해된다. 종속영양생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주는 중요한 과정인 소화 작용에 대해 알아보자 .
소화! 음식물의 긴 여정!
소화 작용이란 사전적 의미로 ‘섭취한 음식물의 영양분을 분해해 흡수하기 쉬운 물질로 변화시키는 작용. 소화 기관의 소화액에 의해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생물이 음식물을 흡수 가능한 상태로 분해하는 과정으로써 기계적, 화학적으로 소형화하고 분해하는 작용이다. 이렇게 흡수된 영양소들은 우리 몸 곳곳의 세포들로 전달돼 세포가 그 기능을 유지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작용이다.
소화 작용의 시작은 입에서부터 일어난다. 입에서는 치아로 음식물을 잘게 부수고 침 속에 들어있는 아밀레이스가 녹말을 분해한다. 침 속의 아밀레이스가 녹말만 분해한다고 해서 침이 녹말을 먹을 때만 분비되는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침은 녹말을 분해해 포도당으로 만들긴 하지만 입 속에서 음식물이 머무는 시간은 매우 짧다. 음식물을 입에서 잘 섞어서 걸죽한 상태로 만들어 내부 소화기관들로 쉽게 이동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입을 통과한 음식물은 중력의 도움도 받지만 그것보다는 식도의 연동운동(리듬이 있는 소화관운동의 하나로 소화관 일부의 환상근육이 수축하고, 그 수축으로 인한 반동이 입 쪽에서 항문 쪽으로 향해 이동하는 운동. 식도, 위, 소장, 대장 등 대부분의 소화기관에서 이뤄짐)에 의해 리듬감 있게 다음 소화기관으로 이동한다. 거의 무중력상태인 우주에서도 음식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연동운동 결과다.
위는 식도 아래에 있는 주머니 형태의 소화기관이다. 용량은 보통 1500cc(1.5l)라고 알려져 있다. 탄력 있는 근육으로 이뤄진 기관이기 때문에 먹는 음식물의 양이 많으면 더 늘어나기도 한다. 또한 입구와 출구는 괄약근이 있어서 음식물이 역류하거나 한꺼번에 많은 양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해준다. 위 안쪽은 주름진 형태로 돼있어 표면적이 넓다. 또한 이곳에서 위액이 분비된다. 위액은 염산, 펩시노젠, 점액(뮤
신) 등으로 구성된다. 염산은 산성도(pH)가 2정도인 매우 강한 산이다. 염산 분비는 위의 소화 작용에 매우 중요하다. 우선 염산은 펩시노젠을 펩신으로 활성화해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한다.
또한 위 안쪽 환경을 강한 산성으로 유지해서 음식물과 함께 들어온 대부분의 미생물을 죽인다. 헬리코박터균은 강한 산성 환경에 대항할 수 있는 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에서 생존할 수 있다.

이제 음식물은 다음 소화기관으로 이동한다. 바로 십이지장이다. 이름처럼 손가락 열두 마디 정도 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좀 더 길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의 십이지장이 길어진 것인지, 과거의 측정방법이 정확하지 않아서인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한다. 다른 소화기관에 비해 짧은 이 부분은 모든 영양소를 분해할 수 있는 분비샘의 총체라고 할 만큼 중요한 곳이다. 십이지장의 내부에도 주름이 많이 있다. 안쪽 벽 3분의 1 지점에서 소화액을 분비한다. 이자에서 만들어진 중탄산염과 트립신, 라이페이스, 아밀레이스와 같은 소화효소들이다.
포유동물은 십이지장에서 철 흡수가 주로 이뤄진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자에서 분비된 중탄산염이 위를 거치면서 강한 산성을 띤 음식물을 중화시킨다. 십이지장에서는 음식물이 주는 물리적 자극도 중요하지만 호르몬의 작용도 매우 중요하다. 산성 음식물이 십이지장을 자극하면 표면에 있는 내분비세포가 산성과 지방성 음식물에 반응해 세크레틴과 콜레사이스토키닌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세크레틴은 이자를 자극해 소화액을 분비하게 한다. 콜레사이스토키닌은 담낭(쓸개)을 자극해 지방분해를 돕도록 한다. 십이지장에서 일어난 집약적이고 화학적인 소화액 분비는 긴 관인 소장을 거치면서 음식물을 소화시킨다. 소장은 음식물이 가장 작은 영양소 단위로 흡수되는 기관이다. 소장에서 음식물의 흡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영양소와 지방에 잘 녹는 지용성 영양소는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해 흡수된다. 포도당, 아미노산, 수용성 비타민(비타민 B, C)과 같은 수용성 비타민은 융털 모세혈관을 통해 흡수된다. 모세혈관을 통해 흡수된 영양소는 간 문맥을 거쳐 심장으로 가서 우리 몸을 돌며 필요한 세포들에게 전달된다. 지용성 영양소에는 지방산, 글리세롤, 지용성 비타민(비타민 A, D 등)이 있다. 이들은 융털의 암죽관으로 흡수된다. 암죽관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지용성 영양소들도 정맥으로 합류되고 심장으로 전달돼 수용성 영양소와 함께 우리 몸의 세포들로 전달된다.
대장에서는 수분을 흡수한다. 음식물 찌꺼기 중 일부는 대장균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남은 찌꺼기는 대변으로 배출된다.



혈액과 대변의 관계는?
달팽이로 소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을 할 수 있다. 달팽이에게 보라색 양배추를 먹이면 보라색 배설물을, 주황색 당근을 먹이면 주황색 배설물을 배출한다. 하지만 사람은 먹은 음식의 색깔에 관계없이 갈색 대변이 나온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흥미롭게도 대변 색깔의 차이는 혈액과 관련 있다. 혈관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붉은 색소를 가진다. 적혈구는 핵이 없기 때문에 수명이 보통 3개월 정도로 짧다. 수명을 다한 적혈구는 파괴돼 밖으로 배출되고 골수에서 생성된 싱싱한 적혈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수명을 다한 적혈구는 간에서 파괴된다. 이때 헤모글로빈 색소는 빌리루빈이라는 황갈색 색소로 변해 음식물 찌꺼기와 함께 밖으로 배출된다. 만약, 달팽이가 사람처럼 헤모글로빈 색소를 가진 적혈구를 갖고 있다면 지금과는 배설물 색깔이 달랐을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소화계
다른 생물의 소화기관은 어떤 구조일까. 소화기관이 있는 동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소화기관은 영양소를 반드시 외부로부터 섭취해야 하는 종속영양생물, 동물계에만 발달 된 구조다. 장의 발달은 동물의 분류단계 구분에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는 복잡한 분류학상의 설명은 생략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물들을 중심으로 소화기관의 발달정도를 알아보자. 장이 없는 동물은 동물 중 가장 하등한 산호, 해면 등이다. 이들은 움직임이 없는 동물로 자칫 식물로 착각하기 쉽다. 그만큼 몸의 구조가 단순하며 기관의 분화가 거의 이뤄져 있지 않다. 움직임이 없으니 섭취할 수 있는 먹이에도 제한이 있다. 보통 물의 흐름에 따라 들어온 미생물들이 영양염류 등을 섭취한다. 이보다 좀 더 진화한 해파리, 히드라와 같은 유즐동물, 자포동물은 소화관과 순환계가 하나로 돼 있다. 약간의 분화를 보이지만 역시 몸의 분화가 거의 이뤄져 있지 않은 단순한 구조다.
지렁이와 같은 환형동물은 몸이 여러 개 마디로 이뤄져 있지만 입부터 항문까지 하나의 소화관으로 연결된다. 지렁이는 흙을 먹고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흙 속 유기물을 먹고 분해해 배설하기 때문에 토양의 질을 비옥하게 하는 중요한 분해자의 역할을 한다. 동물 중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절지동물(곤충류, 거미류, 갑각류)의 소화계는 좀 더 분화된 기관을 보이지만 마찬가지로 곧게 연결돼 있다.
입, 인두, 위, 장, 항문으로 이뤄져 있으나 간혹 항문이 없는 것도 있다. 소화관의 발달을 보면 동물의 식성이 매우 다양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지동물도 한 종류의 먹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먹이를 먹어서 양분을 섭취하는 풍부한 식성을 보인다. 사람을 포함한 가장 고등한 동물문인 척추동물문은 완벽한 소화계를 갖고 있다. 관 형태의 소화관에서 벗어나 위, 소장, 대장 등 소화기관으로 분화됐다. 간, 쓸개, 이자 등 소화액을 분비하고 영양소의 분해, 저장을 돕는 기관도 함께 발달했다.
지금,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러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준 우리 소화계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