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두웠을까. 와룡산에 갔던 개구리소년들이 와룡산에서 유골로 돌아왔다. 1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앙상한 유골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개구리소년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법의학의 첨단수사기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국민적 관심사였던 개구리소년들이 끝내 앙상한 유골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9월 26일 오전 11시 30분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 5백m 떨어진 와룡산 중턱에서 5명의 소년들로 추정되는 유골이 30cm 두께의 흙더미에 뒤엉킨 채 무더기로 발견됐다. 1991년 3월 26일 마을 뒷산(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간 대구 성서초등학교의 개구리소년들이 11년 6개월만에 유골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유골이 발견된 현장은 평소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지만, 개구리소년들의 집으로부터 3.5km 가량 떨어진 와룡산 동남쪽이다. 지난 11년 간 경찰이 매년 32만명의 수색인원을 지휘하며 개구리소년들을 찾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데 비하면, 아이들의 유골은 ‘어두운 등잔 밑’에서 발견된 셈이다. 당시 실종 사건 초기에 경찰은 와룡산 동남쪽을 제대로 수색할 기회를 놓쳤고, 소년들에게 현상금이 걸리면서 서울의 깡패는 물론 나환자, 북한공작원, 심지어 외계인에게 납치됐다는 허위 제보에 휘둘리며 사건을 전국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이제 국민들의 관심은 개구리소년들이 죽은 원인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11년이 지난 지금 앙상한 유골만 남은 상태에서 어떻게 이들의 사인(死因)을 알아낼 수 있을까. 현재 개구리소년들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의학과 과학으로 무장한 첨단수사기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실제로 개구리소년들의 유골과 유품에 대한 해석에 경북대 법의학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다. 법의학과 법과학으로 개구리소년들의 미스터리를 어떻게 파헤칠 수 있을까.
유전자 아니라도 신원 확인 가능
와룡산 동남쪽에서 발견된 유골이 개구리소년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먼저 유골과 유품을 눈으로 확인해 이를 판정할 수 있다. 두개골과 옷가지가 실종된 개구리소년과 비슷한 연령대를 말해주고, 유골은 모두 맞춰보면 5구로 추정되며, 5명의 어린이 신발이 발견됐다. 특히 개구리소년들 가운데 조호연 군이 했던 치아 보철 흔적이 확인됐으며, 김영규 군이 입었던 것으로 보이는 체육복이 발견됐다. 정황 증거로 볼 때 발견된 유골이 개구리소년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들이 개구리소년이라는 과학적 근거는 무엇일까. 법의학적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에는 혈액형이 쓰이기도 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최근 신뢰도가 높은 유전자 감식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1985년 영국의 제프리즈 박사가 사람의 미오글로빈 유전자를 연구하면서 특정 염기쌍이 여러번 반복되는 구조인 ‘소위성 DNA’(mini- satellite DNA)를 발견했는데, 이 부위가 손가락의 지문처럼 개인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유전자 감식이란 소위성 DNA라는 ‘DNA 지문’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친자나 혈연관계 확인에도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10월 1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사건 이후 실종된 한국인 자매의 신원을 파악하는데도 DNA 지문이 동원됐다. 인도네시아 법의학지원팀이 한국인 자매 가운데 언니의 모발과 아버지의 타액,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에서 검출된 DNA를 비교·분석한 결과, 6가지 검사항목이 모두 일치해 이를 바탕으로 발견된 시신이 실종된 자매의 언니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개구리소년에 대한 신원 감식에도 이 방법이 적용되고 있다. 유골에서도 DNA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뼈는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연한 조직인 골수와 이를 둘러싸 단단한 뼈대를 이루는 뼈기질로 구성된다. 골수는 사람이 죽은 후 2-3일만 지나도 부패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DNA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단단한 뼈에 박혀있는 골세포가 필요하다. 오래된 유골의 골세포에서는 핵 DNA보다 미토콘드리아 DNA가 상대적으로 외부환경에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DNA를 뽑아낼 수 있다면 미토콘드리아 DNA가 유리하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혈통에 따라 유전된다. 따라서 개구리소년의 유골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뽑아낸다면 어머니나 형제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비교하면 된다. 물론 개구리소년의 유골이 11년이나 토양에 노출돼 있었으므로, 유전자 감식에 필요한 뼈속 DNA가 크게 변형돼 유전자 감식 방법으로 신원을 밝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두개골의 형체를 복원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영상이나 물체를 이중으로 겹치게 하는 사진기술인 슈퍼임포즈법(superimpose method)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유골로 남은 두개골과 사망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당시 얼굴 사진을 슈퍼임포즈 장비로 촬영해 필름을 현상한다. 각각의 필름을 중첩시키고 각도와 크기를 조정한 후 두개골과 얼굴 사진의 특징을 비교·검토해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국내에서는 10여년 동안 토양에 묻혀 있던 여자 두개골의 신원을 슈퍼임포즈법으로 알아낸 사례도 있다. 개구리소년의 경우에도 슈퍼임포즈법은 신원을 확인하는데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죽으면서 스스로 옷벗는 이유
그렇다면 개구리소년들이 죽은 원인은 무엇일까. 경찰이 초기에 주장한 바대로 저체온사와 같은 사고사일까. 아니면 유족들이 제기하듯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일까.
대구기상대의 기록에 따르면, 개구리소년 실종 당일 최저기온이 영상 3.3℃이며, 오후 6시 20분부터 자정까지 약하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다소 많이 분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개구리소년들이 비와 바람을 맞고 산 중턱에서 밤을 지냈다면 이들이 느낀 체감온도는 영하로 내려갔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라면 저체온사가 가능한 조건이라고 말한다.
저체온사는 몸에서 만들어진 열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열을 외부로 빼앗겨 죽음에 이르는 현상이다. 생리학자들에 따르면 체온이 32℃ 이하면 저체온증으로 숨질 수 있다. 따라서 저체온사가 반드시 영하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며 보통 영상 5℃ 이하면 발생할 수 있다. 외적으로는 기온, 풍속, 습기, 내적으로는 피로, 공복, 수면부족, 외상 등의 원인에 따라 영하 5℃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도 숨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사 초기에는 온종일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개구리소년들이 비가 내리는 추운 날씨에 허기와 탈진으로 지쳐 저체온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김영규 군의 옷이 벗겨진 점도 저체온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상탈의 현상으로 해석됐다. 저체온사의 경우 신경계 이상으로 인해 더위를 느끼며 스스로 옷을 벗는 이상탈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경찰의 ‘과학수사교본’에는 “스스로 옷을 벗으며 때로는 나체가 된 여자 저체온사 사체는 강간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고 적혀있을 정도다.
하지만 벗겨진 옷에서 발견된 매듭은 의심스런 점이다. 웃옷에서 소매끼리 묶인 일자형 매듭과 바지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매듭은 단순히 저체온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상탈의 현상으로 해석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매듭전문가들에 따르면 일자형 매듭은 흔히 매는 십자형에 비해 보통 어린이들이 매기 힘든 매듭이다.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옷을 묶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한편에서는 태권도를 배웠던 개구리소년들이 도복을 묶으며 배운 매듭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두개골 구멍, 총상과 달라
개구리소년들의 유골과 유품에는 의문점이 많다. 이들 의문점을 해결하는 일이 법의학팀의 당면과제다. 먼저 발굴된 유골 중 1구의 두개골에서 지름 2-3cm인 구멍 2개와 길이 4cm 가량인 함몰 부위가 논란거리였다. 유골 발굴 장소와 근처 반경 1백50m 이내에서 모두 1백46개의 탄두가 발견되기도 해 초기에는 소년들이 총에 맞아 숨졌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1·2차 방사선 촬영 결과, 두개골을 포함한 유골에서 타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외력에 의한 손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경북대 법의학팀은 “일부 두개골에서 나타난 구멍과 함몰 흔적, 그리고 두개골 봉합부위의 이탈 흔적은 총알이 뚫고 지나간 흔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두개골은 자세히 보면 두겹으로 돼 있는데, 총알이 두개골에 들어가면서 만든 구멍과 나오면서 만든 구멍은 다르다. 즉 총알이 뚫고 들어가며 만든 구멍이라면 두개골 안쪽면에 깨지거나 갈라져 터진 파열 흔적이 남는 반면, 총알이 뚫고 나오며 만든 구멍이라면 두개골 바깥쪽면에 파열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개구리소년의 두개골 구멍에서는 이런 특징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함몰 부위도 오랜 시간이 흘러 자연히 파손된 것으로 추정됐다.
유해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탄두와 탄피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에 따르면 탄두와 탄피에서 혈액의 흔적인 혈흔이 검출되지 않았고 탄환이 변형돼 인체를 관통했는지 여부도 확인하기 불가능했다. 이와 함께 현장에서 발견된 빵 봉지에서도 혈흔이 검출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유골에서는 인위적으로 파손된 흔적과 사인규명에 단서가 될 만한 금속성 이물질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유골 1구의 갈비뼈, 다른 1구의 팔뼈 등에서 부러진 흔적이 발견됐지만, 이들 골절이 소년들이 살아있을 때 발생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사인 규명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치아가 드러내는 비밀
개구리소년들의 유골 5구에서 상당수의 치아와 머리카락, 손발톱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문점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치아와 머리카락은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발견될 만큼 오랫동안 보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치아는 가장 단단하고, 부패나 기타 물리화학적 변화에 대한 저항성이 강하며, 사람이 죽은 후에도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는 인체조직이다. 하지만 법의학팀은 “매장된 상태라면 치아나 머리카락이 보존되겠지만 시신 위에 흙이 20-30cm 덮인 상태에서는 큰비에 떠내려갔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상당수의 치아나 머리카락이 사라진 사실은 타살 의혹을 넘어 법의학적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치아는 생전의 사진이나 기록이 있을 때 신원을 확인하는데 지문보다 더 요긴하게 쓰이고, 머리카락은 독극물 검사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아의 경우 법치학이라는 분야가 있을 정도로 치아를 통해 신원뿐만 아니라 인종, 사회경제 상태, 성별, 연령, 습관, 혈액형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용사들은 머리핀을 입에 무는 습관 때문에 위아래 앞니의 절단부가 마모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고, 치아의 상아질이나 치석 등에서 혈액형을 검출할 수 있다. 물론 개구리소년의 경우에도 치아의 보철이 발견돼 신원확인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또 머리카락의 경우 1821년에 위암으로 숨졌다고 알려진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에서 프랑스 법의학자들이 비소에 중독됐다는 증거를 찾아내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지형에 익숙한 개구리소년들이 와룡산 중턱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타살 의혹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수사본부에서는 지난 1990년 12월과 지난해 11월에 각각 촬영한 대구시 달서구 와룡산 일대의 항공사진을 비교·검토했다. 검토 결과 소년들의 유해가 발견된 지점에서 2백50여m 떨어진 곳에 민가 3-4채, 6백여m 떨어진 곳에 구마고속도로가 각각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민가와 유골 발굴 지점 사이에 있다가 개발로 사라진 ‘안산’의 높이가 유해 발굴 지점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개구리소년들은 고속도로나 민가의 불빛을 충분히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따라서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설사 소년들이 유골 발굴 지점까지 왔다 하더라도 이미 저체온증에 노출됐다면, 불빛이나 사물을 구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저체온증에 노출되면 신진대사가 느려지며 외부에 의한 자극에 점차 반응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곤충과 유골 이동의 함수관계
한때 개구리소년 두개골 하나의 정수리 부근에서 이끼류와 곰팡이가 발견됐다고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법의학팀은 두개골에 있는 이끼류와 곰팡이는 두개골이 노출돼 있었다는 의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끼는 최근 비 오기 전부터 두개골의 일부가 대기에 노출돼 있었고 그 아래에는 습기가 많았다는 의미이며, 두개골 내부에 붙어서 자라던 곰팡이도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종류로 보인다.
가장 관심이 가는 과학적 수사기법은 바로 곤충을 이용한 법곤충학 분야다. 개구리소년들의 유골과 옷가지에서 곤충 흔적을 조사한 결과 곤충의 애벌레, 번데기, 각질 등 50여개체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법의학팀에 참여중인 고신대 법·보전생물학연구실에서는 이들 잔해를 면밀히 조사, 곤충의 종류를 파악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개구리소년 사건에서는 발굴된 유골들이 처음부터 현재의 위치에 있었는지, 유골이 다른 곳에서 숨진 뒤 옮겨졌는지를 파악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유골이나 유품에 묻어있는 곤충 흔적이 인근 토양에 있는 곤충과 동일한지를 가리는 일인 셈이다. 유골이 3-4년 전 현재의 위치에 옮겨졌다거나 와룡산에 없는 특정 나무나 곤충의 군락이 있는 곳에서 옮겨졌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도시나 바닷가 등 다른 지역에 서식하는 곤충 잔해가 유골이나 유품에서 발견될 경우 와룡산 현장에서 숨진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법곤충학은 시체 부패와 관련된 곤충들을 이용해 다양한 범죄를 추적하는 학문이다. 특히 의학적으로 추정하기 힘든 사체의 사망시간을 추정하는데 요긴하다. 예를 들어 시체를 먹거나 알을 낳기 위해 날아오는 파리의 경우 종류에 따라 시체에 다가오는 순서가 다르다. 청파리는 신선한 상태를 좋아해서 숨진지 5분 이내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 이어 부패 정도에 따라 금파리(검정파리), 쉬파리, 침파리 순서로 시체에 접근한다. 특히 금파리와 쉬파리는 부패가 시작되고 2주가 되기 전까지 대개 정확한 사망경과 시간을 알려준다. 일례로 금파리는 3령의 애벌레 단계를 가지는데, 1령은 1.8일 후에 5mm, 2령은 2.5일 후 10mm, 3령은 4-5일 후 17mm 정도까지 자라기 때문에 애벌레의 몸길이로 사망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시체에서 쉬파리의 잔해나 알의 흔적이 발견되지만, 청파리나 금파리의 흔적이 없다면, 이는 사람이 숨진 뒤 일정 기간 동안 파리들이 시신에 접근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즉 시신을 옮기거나 조작하는 작업이 이뤄졌는지도 모른다.
물론 11년이 지나는 동안 곤충 흔적이 심각하게 훼손이 됐다면 현미경을 이용한 정밀검사에도 곤충의 정체를 밝히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사계절이 뚜렷해 다양한 곤충류가 서식하는데, 아직까지 국내에 법곤충학이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 다양한 곤충을 이용해 개구리소년의 사인을 규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발굴현장의 흙도 정밀 분석
시신이 옮겨졌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토양학 검사도 병행되고 있다. 유골 주변의 흙이나 유골 위에 있는 돌이 유골 발굴 현장인 와룡산의 특성과 다를 경우 시신이 옮겨진 것으로 추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87년 실종된지 9개월만에 경남 창원 불모산에서 나무에 목매단 채 시신으로 발견된 대우중공업 노동자 정모씨의 경우에도 지난 8월 16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자살이 아니라고 밝힌 근거는 토양검사를 통한 증거였다. 만일 정씨가 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다면 9개월 동안 사체가 부패할 때 발생하는 다량의 유기물질이 시체가 발견된 토양을 오염시켰을 텐데, 현장 토양에는 이런 흔적이 없었다. 또 목을 맨 끈에서는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 증거를 바탕으로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시체가 9개월 간 동일 장소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수사팀에 전달했다. 하지만 수사팀에서는 이같은 타살 가능성을 묵살한 채 정황증거만으로 무리하게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아울러 개구리소년의 유골이 발견된 현장 일대의 토양에 대해서는 지질학자가 나서서 퇴적과 침식을 조사해 시신이 자연적으로 묻혔는지, 누군가에 의해 매장됐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중이다. 현장의 지질 조사에 나선 전문가는 유골 발굴 지점 일대가 계단식 지형의 계곡이기 때문에 국부적으로 퇴적이 가능한 곳으로 보고, 발굴 지점, 계곡의 위쪽과 아래쪽, 그리고 계곡의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토사를 채취해 입자크기나 성분을 정밀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골 발굴 지점 10여m 위쪽 지형을 육안으로 확인하면 흐르는 물에 의해 운반된 특징이 보이는데, 만일 유골 발굴 지점에 있던 토양도 이와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면, 유골이 자연적으로 덮였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할까
‘사람은 죽어서도 말을 한다.’ 법의학 수사서적의 첫장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이 죽을 때 자신이 죽게 된 사연을 시신의 어딘가에 그 흔적을 남겨둔다는 의미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법의학팀은 개구리소년들의 죽음이 타살인지 사고사인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유골 하나하나에 대한 검사와 소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발굴된 유골이 숨진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검사를 위한 시료가 양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인 규명이 쉽지 않다. 법의학팀에서조차 “11년이 지난 유골만으로 사인 규명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번 법의학적 조사에 대해서는 “다만 유골과 유품에서 인위적인 손상, 즉 자연적인 풍화작용에 의한 손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일어난 손상을 찾는 작업”이라고 밝히고 있다.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은 자신들이 죽은 이유에 대해 지금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녕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것인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법의학팀의 수사결과를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