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사이언스는 한국영재학회, 청주교대 과학영재교육센터와 함께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진로탐색 캠프를 개최했다. 이번 캠프는 이공계에 진학한다면 어떤 분야로 가야 할지, 내가 지닌 능력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과연 적합한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과학과 수학도 좋아합니다. 최근 음악선생님께서 성악을 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는데, 이공계를 선뜻 포기할 수 없었어요. 이번 캠프를 통해 진로 방향을 정하고 돌아갑니다. MBTI나 적성검사는 예술 쪽이 나왔지만 취미를 살리는 선에서 발전시킬 생각입니다. KAIST탐방이나 생물탐사를 하면서 인간 유전자에 대해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다는 것이 이번 캠프의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아요.”(나호림, 광장중)
“저는 부모님의 권유로 참석했는데, 이공계 분야에 무척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태어나서 가장 생각을 많이 한 시간이었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놀이처럼 느껴졌고, 생각하는 기쁨 또한 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수학과 과학공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 같아요.”(유근혜 ,중원중)
진로를 결정할 시기가 다가오면 누구나 한번쯤 갈등에 빠져든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중 무엇을 택해야 할지 현명하게 결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 많은 경험과 자기성찰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학교교육과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힘들다.
특히 이공계를 지망할 경우라면 진로를 선택하기 전에 다양한 분야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미리 알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동아사이언스는 한국영재학회, 청주교대 과학영재교육센터와 함께 청소년의 진로선택에 대한 올바른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는 진로탐색 캠프를 열었다.
이번 진로탐색 캠프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24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멀리 제주도에서 온 학생, 자신이 모은 용돈으로 참가비를 내고 온 학생, 이 프로그램을 위해 다른 캠프나 일정을 기꺼이 포기하고 참여한 학생도 있었다. 또 자신이 예술가로서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과학자로서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이 있었는가 하면, 구체적 진로를 정해놓고 분야별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참여한 학생도 있었다.
다양한 경험과 자극으로 찾는다
이번 진로탐색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적성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과 자극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동아사이언스를 비롯해 한국영재학회, 서울대 교육학과팀, 청주교대 과학영재교육센터 등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특히 청주교대영재교육센터 소장인 정병훈 교수는 영재아의 영재성을 판별하기 위해 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과학활동프로그램을 이미 개발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적성을 판별할 수 있도록 생물, 지구과학, 컴퓨터 등 각 분야의 교수들과 활동평가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평가틀을 개발하는 부분에서는 심리학과 교육학 전문가들의 조언도 포함됐다.
진로탐색 캠프는 크게 ‘KAIST 실험실 탐방’ ‘MBTI 및 진로탐색 검사’ ‘이공계 적성판별 활동’으로 구성됐다. 학생들은 3박4일의 캠프기간 동안 자신의 방향성을 판단할 수 있으며, 다각적으로 수행한 평가 결과를 개인별 보고서 형태로 받았다.
기존의 진로적성 평가는 질문지에 답을 작성해 자신의 상대적인 적성과 성향을 점수화시킨 자료를 참고하는 것에 그치는 반면, 이 프로그램은 교사가 활동과정을 평가함과 동시에 학생 스스로 경험을 통한 자가진단을 하기 때문에 좀더 능동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의 활동하는 모습을 5명당 한명의 관찰교사가 세심히 관찰하며 평가한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학생들의 성향을 판단하는 가장 정확한 잣대는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교사들인데, 현재 우리의 교실 환경은 50명의 학생을 한명의 교사가 관찰하는 열악한 형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프로그램은 교육 현실이 놓치고 있는 부분까지 보완하고 있다.
● KAIST 첨단 실험실 탐방 ●
디지털 애완견과의 대화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모인 캠프여서 그런지 아이들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캠프참가자 중 과학고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은 KAIST가 미래 자신의 학교라며 들떠하기도 했다. 탐방이 예정된 연구소는 지식 기반 시스템 연구소, 인공지능 연구소, 그리고 뇌과학 연구소였다. 가장 먼저 방문한 지식 기반 시스템 연구소에서는 산업공학과의 박상찬 교수가 중학생을 대상으로 데이터마이닝 기법에 대해 강의했다. 수업의 내용은 나무막대기로 자동차를 만들어 여러가지 변인을 주고 속도를 체크하면서 가장 빠른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
학생들은 자신들이 마치 대학생이 된 듯한 기분으로 진지하게 이 수업에 참여했다. 한 학생은 “산업공학을 공부하려면 컴퓨터나 첨단 기기를 다룰 줄 아는 기술과 함께 과학적 사고력도 키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인간형로봇 ‘아미’를 개발한 인공지능 연구소. 이곳에서는 아미와 현재 개발중인 걸어다니는 인간형로봇의 시연이 있었다. 또한 디지털 애완견과 의사소통을 하는 기회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학생들은 마냥 신기해했다.
마지막으로 뇌과학 연구소를 방문했다. 이 연구소는 초파리 유전체를 이용해 인간질병을 분석하는 곳인데, 이번 캠프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학생들은 광학현미경으로 변형초파리들을 관찰하고 형광염료로 착색된 초파리의 DNA를 보면서 감동을 받은 듯했다.
● MBTI∙진로탐색 검사 ●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성격유형에 대한 선호지표로, 에너지의 방향, 인식기능, 판단기능, 생활양식의 네가지 선호지표에 따라 전체 16가지의 성격유형으로 구분하는 검사다. 그리고 진로탐색검사는 전체 2백71문항의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자신이 선호하거나 편안하게 생각하는 분야를 알아내는 검사다. 학교나 청소년상담소에서 많이 시행하는 평가이지만, 이번 캠프에서는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평가의 폭을 이공계로 제한한 점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광범위한 영역을 대상으로 평가하던 기존의 검사 방법과는 달리, 이공계라는 분야에 특화시켜 검사결과를 도출한 점이 다르다.
평가 결과는 개별적인 리포트로 작성되는데, 성격특성과 대인관계 스타일, 학습 스타일, 흥미를 느끼고 선호하는 분야, 장차 선택률이 놓은 직업군으로 유형화해 작성된다.
예를 들어 MBTI 결과가 ESTJ(외향형, 감각형, 사고형, 판단형)이고, 진로유형이 탐구형과 실제형으로 나온 경우 상담사들이 이를 분석해 관리직이나 경찰·교정직, 사회공공복지, 회계, 건설 등의 직업군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려준다.
그리고 MBTI 및 진로탐색 검사를 한 후 캠프 마지막날 밤에는 5명씩 모여 집단상담 시간을 갖는다. 집단상담을 하기 전에 학생들은 자리 게임을 하며 몸푸는 시간을 갖는데, 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긴장감을 풀 수 있다. 집단상담은 집단을 관리하는 교사들도 참관하는데, 참가한 학생의 드러나지 않는 성향을 파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이 상담에서 학생들은 평소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말하거나 자신의 성향을 상담교사에게 고백하기도 한다. 자신의 성향과 적성에 대한 갈등과 고민을 같은 처지의 친구 및 상담교사와 함께 해결하는 셈이다.
● 이공계 적성판별 활동 ●
내가 ‘잘하는’ 과목 찾는다
활동평가 프로그램은 수학, 과학, 공학, 컴퓨터 정보 등 4개 분야를 대표하는 활동과 과학의 밤, 사이언스 게임 등 전체 9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각 활동은 1백-1백80분 동안 강의, 실험, 실습, 탐사 등의 다채로운 형식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의 활동 결과는 토론, 보고서 작성, 결과물 제시, 시연 등에 의해 평가된다.
활동평가는 학생 5명당 교사 한명이 전체 수업의 진행과정을 보조하면서 학생들이 눈치채지 않게 태도와 성향을 관찰한다. 여기에서는 눈치채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학생들로 하여금 매시간 시험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9가지 프로그램은 적성평가를 위해 개발된 것이지만, 학생들이 흥미롭게 탐구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9개의 활동 가운데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수리적 사고를 평가하는 프로그램.
20개의 주사위를 이리저리 쌓아보면서 보이는 수의 합을 최대, 최소로 하는 경우를 찾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주사위 20개뿐 아니라 n개를 쌓아서 보이는 면 수의 합이 최소가 되는 법을 찾는, 추상적인 공식을 발견해내는 수업으로 이어진다.
이 수업은 장장 1백분 동안 이어졌지만, 이 시간 동안 공식이나 규칙을 찾아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과제를 해결하는데 집착했고, 심지어는 주사위를 숙소로 가지고 가 늦은 밤까지 과제에 몰두하는 풍경을 자아내기도 했다.
다음으로 호응이 컸던 수업은 지질탐사였다. 학생들은 클리노미터와 지질망치, 루뻬(확대경), 필드주머니 등 전문 지질학자들의 탐사장비를 갖고 지질학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탐사를 경험했다. 지질구조를 관찰하고 습곡과 정단층을 식별하면서 암석의 종류를 구별하는 활동을 했는가 하면, 지질망치로 바위를 깨며 화석을 채집해보기도 했다.
이번 캠프에서 또하나 눈에 띄는 것은 학생들의 조별 장기자랑 시간인 ‘과학의 밤’이라는 활동이었다. 이 활동은 과학적 능력 평가와는 무관해보이지만,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평소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집단활동을 하는데 소극적이고 리더십이 없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학습 능력보다는 일을 추진하고 기획하는 쪽에 더 적극성을 띠는 학생도 있는데, 과학의 밤은 이런 능력을 판별하는 또하나의 프로그램 역할을 했다.
이밖에도 물질의 특성, 정보, 과학적 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생태환경 탐사, 제작 및 공작 등 다양한 활동들이 시행됐다. 활동프로그램은 학생 스스로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해 자신의 성향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적성과 능력이 병행돼야
MBTI 및 진로탐색 검사가 검사자에 의한 지필 보고의 형식을 지니는데 반해, 활동 프로그램은 제3자에 의한 관찰평가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프로그램의 개발을 총괄한 정병훈 교수는 개인 평가를 보완하기 위해 참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인 배경과 참가 동기,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 등을 골자로 하는 개별 면담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적성을 MBTI, 진로탐색, 활동평가 등의 자료로 평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이공계의 특정 분야로 진로를 결정하려면 그 분야에서 요구하는 지식과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이 항상 병행하지는 않기 때문에 본인의 생각과 실제 능력을 모두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학생의 경우라면 능력 계발의 신축성이 크고, 원하는 분야에서 요구되는 능력과 태도를 갖출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기 때문에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적성 분야와 요구되는 사항을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정교수는 “학생 개인의 문제점과 적성에 대해 흐름만이라도 파악한다면 3박4일의 프로그램이 매우 소중한 경험일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이공계 분야의 전문가 및 교육전문가들과 프로그램을 좀더 발전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주관한 동아사이언스 역시 이번 캠프의 결과가 매우 긍정적이었음을 감안해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확대·발전시켜 이공계를 지망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참가자들의 분석유형 3가지
정병훈 교수는 진로탐색 프로그램에서 얻어진 결과에 따라 참가 학생들의 특성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유형은 검사 결과와 활동 결과가 서로 일치하는 경우다. ‘학생 A’는 MBTI에서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활동을 조직적으로 주도하는 지도자형으로, 진로탐색 결과에서 탐구적이면서도 실제적이라고 평가받았다.
관찰 평가에서도 9개 활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과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며, 수리적·논리적인 이론과 실험에 모두 재능이 있다고 관찰돼 검사에서 언급된 ‘탐구적이면서도 실제적’이라는 평가와 잘 일치한다.
이 학생의 경우 자신의 적성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뒷받침돼 있다. 특히 순수과학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공계 분야의 관리자로서도 충분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둘째 유형은 몰랐던 분야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거나 적성을 발견한 경우다. ‘학생 B’는 검사 결과나 면담 기록에서 지질 분야 및 탐사 분야에 대한 관심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 분야의 탐사에서 가장 우수한 능력을 보였다. 이 학생은 전반적으로 과학에 대한 태도가 좋은 편이며, MBTI와 진로탐색 검사에서는 집중력이 강하고 신중하며 철저하다는 평가와 함께 탐구적이면서도 실제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이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제작 및 공작의 분야뿐만 아니라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던 지구환경 탐사의 분야에서도 능력과 적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됐다. 따라서 이 학생은 본인이 희망하는 분야 이외에도 새롭게 자신의 능력과 흥미가 발견된 분야로의 진출도 가능하다.
셋째 유형은 검사 결과와 활동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다. ‘학생 C’는 자신이 작성한 검사 결과와 실제 보여준 행동 결과가 잘 일치하지 않는 대표적 사례다. 이 학생은 태도 검사에서 과학에 대해 전반적으로 매우 적극적인 관심과 흥미를 나타냈고 탐구적 태도도 매우 큰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성격 검사와 진로탐색 검사 결과에서도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탐구유형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이 학생은 9개 영역의 이공계 활동 프로그램 중 탐사와 관련된 활동, 특히 생태환경 프로그램 분야에서만 능력과 관심을 보일 뿐, 다른 분야에서는 기대 이하였다. 관찰 보고에 따르면 이 학생은 수리적·논리적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고, 이론형보다는 실험실습형에 더 가까웠다. 면담에서도 사고력을 많이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기피하는 경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따라서 학생 C는 과학에 대해 관심과 흥미가 많고 탐구적 태도도 훌륭한 편이지만, 사고력을 요구하는 이론적 탐구보다는 실험실습 활동이나 현장 중심의 탐사 활동이 더 적합하다. 현재의 상태로만 보자면 이 학생은 탐사나 조작 등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 중심의 이공계 활동에 적합하지만, 본인이 노력만 한다면 사고력을 요구하는 영역에도 도전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