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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사이언스

공중제비와 인간탑의 비밀

 

공중돌기를 멋지게 해내려면,, 몸의 수직축을 중심으로 하는 회전돌기와 수평축을 중심으로 도는 공중제비를 절묘하게 섞는 제주가 필요하다.


서커스를 구경하면서 복잡한 수이론이나 신경과학을 연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커스를 하기 위해 쳐놓은 높은 천막 지붕 아래에는 광대나 불을 먹은 재주군을 위한 자리뿐 아니라 과학을 위한 자리도 있다. 곡예사들은 물리와 생물의 법칙이 그들의 움직임에 적용되고 있다는 사시을 알까. 놀랍게도 많은 과학자들이 열렬한 서커스광을 자처하고 있고, 그들 중 일부는 직접 곡예를 펼치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서커스에 매료되는 이유는 아마도 과학이 서커스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1. 공중제비가 회전돌기보다 쉽다

곡예사가 공중제비(flip)를 하면서 몸을 뒤틀면(twist, 회전돌기) 관중들은 언제나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러나 순수한 물리이론 측면에서 따진다면 공중제비는 쉬운 일이다. 모든 물체는 그것을 돌리려는 힘에 저항하게 마련. 이것을 ‘회전관성’이라고 하는데, 물체의 질량이 회전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증가한다. 짧은 막대가 회전할 때보다 긴 막대가 회전할 때 더 큰 원을 그리는 것도 회전관성 때문이다. 물론 더 큰 원을 그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곡예사는 자기의 엉덩이를 가로로 지나는 수평축이나 머리에서 발끝에 이르는 수직축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 수 있다. 수평축을 중심으로 돌면 공중제비가 되고 수직축을 중심으로 돌면 회전돌기가 된다.
엉덩이를 지나는 축에서 볼 때, 1백80cm의 키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몸은 90cm 가량이나 뻗어 있기 때문에 회전관성이 크다. 그러나 수직축을 중심으로 보면 그의 신체는 몇십cm 밖에 안되므로 회전관성이 작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곡예사에게는 공중제비보다 회전돌기가 하기 쉽다.

공중에 책을 던져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게 될 것이다. 보통 크기의 책을 던졌을 때 회전돌기를 하지 않고 공중제비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회전돌기는 하기 쉽지만 곡예사가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착지가 엉망이 되고 만다.

2. 공중제비를 잘 하려면

곡예사를 훈련시키는 코치들은 곡예사가 긴 장대 위에서 공중제비를 할 때 뉴턴의 운동법칙이 적용되는지 안되는지를 따질 겨를이 없다. 하지만 따분해 보이는 이 물리학의 법칙은 곡예사가 더 멋진 묘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어떤 코치들은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 뒤로 공중제비를 할 경우, 코치는 곡예사들에게 똑바로 뛰어오르면서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해서는 뒤공중제비를 할 수 없다. 만약 정말 일직선으로 뛰어오른다면 곡예사는 각속도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공중제비는 고사하고 똑바로 다시 내려올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곡예사들은 뛰어오르면서 뒤로 약간 기대는 것을 무의식 중에 배운다. 그 결과 그들의 무게중심은 중심선에서 약간 벗어나고, 뛰어오르는 힘은 곡예사를 단순히 위로 밀어 올리기보다 회전시키게 된다. 그후 곡예사가 다리를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는 동작은 몸을 구부려 회전관성을 줄이라는 것이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태양서커스단 수석 코치인 보리스 베르코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계속 회전하려는 몸에 비해 어깨는 가만히 있고(어깨가 회전축의 중심), 공중제비하는 쪽으로 다리에만 가속이 붙기 때문에 공중제비가 가능하죠. 일단 곡예사들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젖혀 회전력을 얻었기 때문에 코치의 말은 이 이후의 회전관성을 가능한 한 줄이라는 얘기로 해석해야 되겠지요.”

베르코프스키는 곡예사들에게 공중제비를 할 때 뒤로 편안하게 젖히라고 가르친다. 그는 곡예사들에게 방향과 힘의 방향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말로만 가르쳐서는 소용이 없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습관처럼 요령이 몸에 붙는 것입니다.”

3. 인간탑이 무너지는 이유

1970년대 초반, 운동과학자인 미하일 차이틴은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는 한 곡예사를 다른 곡예사 어깨 위에 올라서게 한 후 불을 껐다. 그들은 암흑 속에서도 그 자세를 유지했다. 차이틴은 불을 켠 후 곡예사 한 명을 더 데리고 와 인간탑을 쌓게했다. 이번에는 그가 불을 끄자마자 인간탑이 무너지고 말았다.

신경과학자들에게 차이틴의 실험은 그리 놀라운 것이 못된다. 무너진 인간탑은 사람의 균형감각을 한계까지 몰고 간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탑이 일반적인 운동감각으로 인한 균형보다는 신체 각부분에서 보내는 최소한 세 가지 감각기의 합작품이라는데 있다.
첫번째 감각기는 귀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전정계다. 이것은 머리 위치에서 빠르고 작은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린다.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머리를 휘휘 돌리면, 귀속에 있는 작고 예민한 털이 슬쩍 쏠리면서 전정핵이라 불리는 뇌간(腦幹)부분을 자극한다. 전정핵은 이 신호를 전환해 공중에서 머리의 움직임을 표시한다. 그래서 우리의 신체는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몸이 움직여도 사물을 제대로 좇아갈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감각기는 몸 전체에 퍼져있는 압력과 긴장(stretching)에 민감한 신경이다. 보통 터치(touch) 신경이라고 부른다. 이 신경은 갑자기 발목 관절이 움직이거나 자동차 좌석등받이에 기댔을 때 등이 눌리거나 하는 것을 기록한다. 마지막 감각기는 눈의 망막으로 이것 역시 전정핵에 정보를 전달한다.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이 감각시스템 중 하나만 작동해도 동작을 감지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예: 정지해 있는 기차를 타고 있는데, 옆 기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마치 내가 탄 기차가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그런데 각 시스템은 나름대로 최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속도 영역이 있다. 전정계가 안구 조절에 필요한 빠르고 사소한 변화를 감지하는데 반해, 터치 신경은 우리가 서 있는 동안 이 발에서 저 발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 같은 느린 조절을 포착한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솔로몬은 “신경들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며 “하나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면 다른 것이 강화된다”라고 설명한다.(각 시스템마다 고유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해 보려면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일단 잡지를 글씨가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눈앞에서 움직인다. 이 때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잡지는 가만히 두고 같은 속도로 당신의 머리를 앞뒤로 흔들어 본다. 이번에는 잡지의 글씨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머리가 움직일 때는 전정계가 빠른 속도로 그 움직임을 추적하기 때문이다.)

인간탑을 쌓는 사람들은 탑을 유지하면서 약간씩 흔들린다. 만약 흔들림으로 인해 그들의 무게중심 중 하나라도 바닥에서 너무 멀어지게 되면 탑은 무너진다. 이 흔들림은 전정계가 감지하기에는 너무나 느리다. 이럴 때는 발목에 있는 긴장에 민감한 신경이 반응하지만 불리하긴 마찬가지다. 밑에 있는 곡예사가 움직이면 위에 있는 사람도 같이 흔들리지만 발목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즉 아래 사람에게 문제가 있어도 위의 곡예사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차이틴의 실험은 2인 인간탑의 경우, 불이 꺼져도 탑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세 사람이 탑을 쌓을 때는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개입되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주변이 서서히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봐야하는 것이다. 그것도 흔들림이 너무 빨라지기 전에 말이다.

4. 인간의 유연성은 어디까지

12살 난 몽골 출신 곡예사. 체벤도리와 치메드(사진)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어져지지 않는다. 그러나 생리적으로 그들과 우리는 모두 같은 범주에 속한다. 우리의 골격은 무너져 내리지 않을정도로 단단하게 연결돼야 하지만, 너무 단단해서 걸음을 옮길 수 없을정도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이 해결책은 우리의 근육 속에 숨어 있다.

근육은 섬유 다발로 이뤄져 있는데 섬유는 안에 들어 있는 필라멘트 서로 겹쳐지는 정도에 따라 수축·확장하게 된다. 그런데 신경은 이 섬유들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보고 있다가 어떤 한계치에 도달하면 뇌가 근육에게 수축하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육 자체나 관절이 다칠만큼 근육이 늘어나지는 않는다.이런 반사행동은 재교육할 수 있다. 근육을 한껏 늘여 그 상태대로 유지하고 있으면 신경이 점차 늘어난 근육에 익숙해지게 된다. 이것이 스트레칭 운동으로 유연성이 길러지는 원리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수년 동안 스트레칭 운동을 해도 곡예사가 될 수 없다. 바로 콜라겐이라는 단백질 때문이다. 콜라겐은 뼈와 뼈를 연결하 는 인대와 뼈와 근육을 연결하는 힘줄의 주요 구성성분이다. 이런 결합조직(인대와 힘줄)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세포들은 3가닥의 단백질을 꼬아 긴 섬유를 구성함으로써 콜라겐을 만든다. 근육이 이완될 때 이 섬유들은 아코디언 모양으로 약한 주름살이 얽혀지면서 서로 연결돼 있다가, 우리가 무릎을 굽히든지 해서 섬유를 잡아당기면 펴지고 늘어난다. 그러나 얽혀진 섬유들은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힘을 받아도 늘어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당기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신체 내에 존재하는 콜라겐은 여러가지다. 어떤 세포들은 다소 뻣뻣한 콜라겐 섬유를 생산하고, 어떤 것은 신장력이 좋은 콜라겐을 만들어낸다. 신체 각부분의 필요대로 여러 종류 콜라겐의 비율을 조절함으로써 인대와 힘줄은 우리 신체를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탄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콜라겐을 만드는 세포에게 어떤 종류의 콜라겐을 만들 것인지를 지시하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 그런데 우리들 중 일부는 비정상적인 유전자 순서로 인해 특별히 탄력이 좋은 콜라겐을 만들어내는 세포를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동작을 연출할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대단히 탄력적인 콜라겐을 생산해내는데 바로 이들이 곡예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어렸을 때부터 근육을 늘이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유연성이 지나쳐서 고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엘러스-단로스 증후군. 5천명중에 1명 정도가 이병에 걸린다. 엘러스-단로스 증후군 유전자가 생산해내는 콜라겐은 너무나 느슨하기 때문에 관절이 저절로 탈구(脫臼)되기도 한다. 아주 심한 경우, 힘줄과 인대는 문제 축에 들지도 못한다. 혈관, 방광, 피부, 창자 등도 탄력성을 유지하기 위해 콜라겐을 필요한데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의 경우 이들 장기가 위험할 정도로 근육이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런 문제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존스 홉킨스 정형외과 의사인 리 앤 컬은 "엘러스-단로스 증후를 갖고 있으면서도 전혀 기능에 이상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라면서"그런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고 덧붙였다.
 

12살 난 몽골 출신 곡예사, 체벤도리와 치메드
 

199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브루스 커티스
  • 칼 짐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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