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하나 값 비싸고 기름 많이 들고 고장이 잦은 차」로 알려져 있는 AT차와 「발에 큰 부담을 주고 초보자를 땀흘리게 하는 차」로 인식된 MT차의 대결
알다시피 자동차의 변속기에는 수동식(MT, manual transmission)과 자동식(AT, automatic transmission) 두 종류가 있다. 수동은 발로 클러치를 밟은 뒤 기어를 넣어주어야 하지만 자동은 클러치 조작없이 기어만 넣어주면 된다. 그래서 흔히 자동이 수동보다 운전하기에 편한 변속기로 인정되고 있다.
변속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자동차의 동력전달과정을 알아야 한다. 이 과정은 엔진→클러치→변속기→추진축→종감속장치 및 차등기어장치→차축→구동바퀴 순으로 간단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중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있는 클러치는 동력을 끊어주거나 (기어를 바꿀 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AT와 MT의 차이는 이 클러치에서부터 시작한다. MT차는 마찰식 클러치를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AT차는 유체 클러치나 전자클러치(노클러치)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마찰클러치 대 유체클러치
자동차가 출발할 때나 언덕을 오를 때는 큰 힘이 필요하므로 회전수는 적더라도 힘(토크, torque)이 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얼마쯤 속도가 붙은 뒤에는 토크가 적더라도 회전수가 커져야 차는 '쌩쌩' 달리게 된다. 이처럼 달리는 조건에 따라 엔진의 회전력과 회전속도를 조정해 바퀴로 전해주는 것이 바로 변속기(變速器, transmission)다. '기어박스'라는 별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변속기는 각기 다른 변속비(比)를 가진 기어들의 집합이다. 보통 수동식의 경우 3~5단, 자동식은 2~4단의 기어가 장착돼 있다.
MT차의 1단 기어는 최대의 회전력과 최소의 회전속도를 갖는다. 물론 단수가 올라갈수록 회전력은 점차 떨어지고 회전속도는 증가한다. MT의 변속기레버에는 각 단수를 나타내는 1~5의 숫자와 R(후진) 표시가 돼 있다. 반면 AT차의 레버에는 P(주차) R(후진) N(중립) D(드라이브) 2(2단) 1(또는 L, 1단)등이 표기돼 있다.
MT차의 운전자는 자신의 손으로 변속기 레버를 전후좌우로 당겨 원하는 단수를 맞춘다. 이때 엔진에서 전달되는 출력을 일시 끊기 위해 클러치 페달을 밟는 덧이다. 따라서 차를 운전할 때 수시로 변속동작을 반복하게 되므로 운전자는 쉬 지치고 운전이 귀찮아지게 된다. 특히 체증이 심한 곳을 운전할 때는 클러치를 밟는 일이 다리에 큰 부담을 줄 정도다.
그러나 AT차는 클러치 조작을 할 필요가 없다. 변속기 레버를 원하는 위치에 놓고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자동으로 변속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AT차에는 클러치가 아예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클러치 페달이 없을 뿐이지 실제로는 MT차보다 더 복잡한 클러치가 변속기내에 장치돼 있다. AT차의 경우 자동으로 클러치를 끊어주고, 기어를 바꾸고, 다시 클러치를 연결하는데 0.5초 정도 걸린다. 이에 비해 MT차의 능숙한 운전자는 0.3~0.5초, 자동차경주선수는 0.2초 만에 이 일을 해낸다. 평범한 운전솜씨를 가진 사람이라면 AT차, MT차를 불문하고 변속시간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미숙한 운전자가 MT식 기어를 잘못 넣는 경우에는 1초이상 걸리므로 차에 무리가 온다.
AT에는 MT가 갖고 있지 않은 토크 컨버터(torque converter)라는 부품이 장착돼 있다. 사실 이 장치는 AT의 핵심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도너츠형 용기속에 날개 두개를 마주보게 넣고 그속에 점성(粘性)이 작은 오일을 채운 뒤 밀폐한 장치다. 엔진에서 전해진 힘으로 토크 컨버터의 한쪽 날개가 돌아가게 되면, 맞은 편 날개도 그 힘을 받아 회전하게 된다. 이때 오일이 두 날개의 '다리' 역할을 한다. 이것이 아무런 기계적 연결이 없는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서 동력이 전달되는 원리다. 쉽게 말해 선풍기 두대를 마주 보게 놓은 뒤 한쪽 선풍기에 스위치를 넣고 돌리면 맞은 편 선풍기도 따라 도는 것과 같은 이치다. MT차에서는 클러치가 토크 컨버터의 기능을 한다.
그러나 토크 컨버터만으로는 힘의 완전한 전달이 어렵기 때문에 자동으로 변속되는 2~3단의 플라네터리기어(보조 변속기)의 도움을 받는다. 이 보조기어의 결합으로 비로소 3단이나 4단변속이 가능해지는 것.
AT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50년대 초였다. 자동차의 왕국 미국이 이 분야에서도 선두주자였다. 당시의 AT는 요즘과는 여로모로 달랐지만 MT차의 '상징'인 마찰클러치만은 뗀 상태였다. 마찰클러치 대신 용기안에 한쌍의 날개차(車)를 넣고, 그 속에 오일을 가득 채운 다음, 그 오일을 매개로 해서 엔진의 힘을 전달했다. 이른바 액체 클러치를(하이드로 커플링이라고도 한다)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클러치는 전달과정에서 손실되는 힘이 워낙 커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후 한쌍의 날개차 사이에 고정 날개차(스테이터)를 두고 오일의 흐름을 조절해 주면 회전력이 2배쯤 늘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곧 이 방식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 널리 쓰이고 있는 액체식 토크 컨버터다.
이 토크 컨버터에도 한가지 골칫거리가 남아 있었다. 액체를 통해 힘을 전달하게 되므로, 아무래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MT보다 힘의 손실이 많았던 것. 쉽게 말해 기름이 더 들었다.
그래서 자동차공학자들은 이 숙제를 풀어내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 산고로 태어난 것이 로크업이다. 토크컨버터 안에 로크업 클러치를 두어 톱 기어를 넣은 상태에서는 오일이 흐르지 않게 한 것이다. 그 대신 엔진과 변속기어를 기계적으로 직접 연결시켰다.
이 기계식 로크업클러치는 톱기어에서의 연료의 소모가 줄어들고 1단과 2단의 기어비가 크기 때문에 액체식 토크 컨버터에 비해 연비가 8%정도 절약된다. 또 톱기어에서 발생하는 엔진의 강한 회전음(音)을 낮추고 매끄러운 가속성을 얻을 수 있다.
이 AT는 노면과 하중에 따라 자동적으로 차의 속도를 변속시켜 준다. 그러나 차 중심으로 설계돼 때로는 운전자를 당혹케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변속기의 레버위치를 적극적으로 선택해주는 AT도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활용해 엔진상태와 주행상태를 계산, 가장 알맞은 변속시기를 스스로 선택하는 전자식 AT도 나오고 있다.
카레이서는 MT를 선호
현재 AT차의 국내수요는 점전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 80년 '현대'의 '포니1'에 국내 최초로 AT를 장착했으나 초기에는 별로 각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그 편리성을 인정받기 시작, AT차는 각 사(社)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나 대체로 총 판매대수의 8~17%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점유율을 따라 가려면 아직 멀었다. 일본의 경우 중형차의 50%, 대형차의 70%가 AT차이며, 미국은 AT차의 비율이 80%가 넘는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김응서교수도 "소득이 늘어나면 자연히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므로, AT차도 덩달아 수요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AT가 획기적인 수요증대를 이루려면 가로놓인 몇개의 걸림돌을 치워야 한다. 그 첫째는 차값이 비싸다는 점이다. 국산 AT차와 MT차의 값차이는 메이커에 따라 차종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대략 60만~1백50만원 사이다. 게다가 한 5년쯤 쓴 중고차일 경우에는 오히려 AT차의 가격이 MT차보다 더 낮게 책정돼 있다. 일반인들이 AT의 수명을 5년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역전현상을 보인다는게 한 중고차판매상의 얘기다.
둘째는 연료소모가 많다는 점이다. 이것은 AT의 '선천적인' 약점이기도 한데, 연료비용이 10~20% 더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숙련된 운전자가 자신의 레버전환 솜씨를 뽑낼 수 있는 MT대신 '고지식한' AT를 운전할 경우에.
"그런 까닭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차에는 MT가 장치된 경우가 많다. 또 유명한 자동차경주자들은 MT를 선호한다"고 자동차전문가 채영석씨(모터매거진 차장)는 말한다.
셋째는 고장이 잦고 일단 고장나면 고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용윤정밀 대표 배용섭씨의 생각은 다르다.
"AT의 생명인 미션오일의 양만 철저히 점검하면 거의 반영구적으로 고장없이 쓸 수 있다. 그런데 맑은 적색을 띤 오일이 나오지 않고 검붉고 꺼칠한 찌꺼기가 묻어 나오면 틀림없이 이상이 생겼다는 증거다."
MT는 자동차의 역사와 더불어 오랫동안 개선돼 왔지만 AT는 아직 그럴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도 눈부시게 발전한 전자·기계공업 덕분에 이제 거의 완벽한 상태가 되었다. 이 AT를 생산하려면 고도의 정밀기계기술을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엄청난 시설도 요구된다. 현재 국내에는 울산의 현대자동차에 유일하게 AT공장이 있는데, 연간 생산대수는 약 30만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