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처럼 '특수한 경우'를 예외로 한다면, 자동차는 열 덩어리다. 또 열을 받아야만 씽씽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온도가 높아진다면 이 또한 위험천만. 자동차는 적절한 열을 유지하기 위해 곳곳에 조절장치를 묻어놓았다.
유난히 폭염이 쏟아진 지난 여름에는 자동차 실내 온도가 높아져 발생한 사고가 많았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주차시킨 자동차 안에 어린이를 두고 내려 질식해 숨지는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차안에 넣어둔 일회용 가스 라이터가 폭발해 자동차에 불이 난 사건도 발생했다. 저 멀리 중동에서는 차안에 넣어둔 휴대전화용 배터리가 폭발해 중상을 입었다는 외신보도까지 있었다.
광범위한 온도 스펙트럼
뜨거운 여름철 한낮이나 추운 겨울에 자동차를 타면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다. 차 안 기온이 바깥보다 더 덥거나 춥다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동차에는 승차자가 쾌적함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온도조절 장치가 있다. 하지만 에어컨이나 히터는 시동을 켠 뒤 한참 뒤에야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에 처음 몇분간은 그야말로 '마루타'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불편함을 피해보고자 미리 시동을 걸어놓는 원격시동장치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여름철 한낮 자동차 실내온도는 얼마나 올라갈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바깥 온도가 33℃ 정도일 때 뙤약볕에 2시간 정도 주차시켜놓으면 거의 60℃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사람이 활동하기에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나게 높은 온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정도는 자동차 입장에서 보면‘별볼 일 없는’ 온도다. 자동차는 부분별로 제각각의 적정온도를 유지해야만 별다른 말썽없이 움직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베리아벌판의 기온보다 낮은 영하 40℃에서 용광로 속과 같은 2천℃까지의 폭넓은 온도가 한대의 차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높은 온도를 지닌 곳은 엔진 속의 실린더 내부. 자동차가 움직이는 원리는 연료를 연소시켜 얻은 열에너지를 기계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열을 내뿜을 수밖에 없다.
승용차에 사용되는 휘발유 엔진을 살펴보자. 실린더 내에 공기와 휘발유의 혼합기를 흡입하고 피스톤으로 압축한 다음 점화해 연소시키면 고온 고압의 가스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이 실린더 속에 있는 피스톤을 상하 왕복운동시키고, 커넥팅 로드와 크랭크축에 의해 바퀴를 굴러가게 한다.
흡입된 혼합기는 혼합 당시의 약 7분의 1로 압축되는데, 이때의 온도는 3백℃ 이상. 이어 점화플러그에서 불꽃이 튀기면 압축가스가 폭발하며, 최고 2천℃(평균 1천℃)의 연소가스가 발생한다.
휘발유는 인화점(화기를 가져다대면 불이 붙는 온도)이 42℃이며, 일부러 외부에서 점화를 하지 않아도 연소가 일어나는 자연발화점은 3백-5백℃ 사이다. 혼합기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점화장치가 작동하기도 전에 연료가 이상 폭발, 퉁퉁거리는 소리가 나고 출력이 떨어지는 ‘노킹현상’이 발생한다.
엔진을 구성하는 재질은 무엇보다도 높은 내열, 내구성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엔진의 몸체에 해당하는 실린더블록은 주로 주철을 사용하고, 열을 직접받는 실린더는 열전도율이 높은 니켈이나 크롬을 첨가한 주철합금, 또는 알루미늄합금을 사용한다.
피스톤의 경우는 더욱 가혹한 조건이 요구된다. 최고 2천℃ 이상의 연소가스에 노출되고 40kg중/cm³이상의 압력으로 충격을 받으며 실린더 내를 평균 12-13m/초의 고속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피스톤의 재질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알루미늄 합금.
알루미늄합금은 이처럼 내열성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차체 경량화로 연비개선 등에도 좋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유명 메이커들이 제조법을 숨기고 있는 첨단 기술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알루미늄합금을 이용한 엔진개발에 성공했다고 한다.
윤활유도 냉각작용
이처럼 높은 온도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단열장치를 잘했다 하더라도 사람이 자동차에 탈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자동차에는 엔진에서 나오는 엄청나게 높은 온도를 내려 적정온도로 유지시켜주는 작용을 하는 냉각장치가 붙어 있다.
엔진을 식혀주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 자동차가 달릴 때 바람으로 식혀주는 공냉식과, 엔진에 물이 지나가는 통로를 만들어놓고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수냉식이 있다. 공냉식을 사용한 대표적 경우는‘딱정벌레’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독일 폭스바겐이다. 엔진에 물고기 지느러미와 같은 냉각핀을 둠으로써 주행할 때 공기와의 접촉면적을 높였다.
하지만 수냉식보다 냉각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근에 공냉식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토바이의 경우에는 엔진이 외부에 노출돼 있고, 상대적으로 엔진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아직도 공냉식 방식이 애용되고 있다.
수냉식은 말 그대로 엔진에 냉각수를 넣어 순환시켜 엔진을 식혀주는 방식이다. 실린더 블록에 군데군데 물이 지나는 통로를 만들어 놓고, 엔진의 힘을 이용한 물펌프로 계속 순환시킨다. 엔진을 돌아다니며 데워진 물은 주로 엔진룸의 맨 앞부분에 위치한 라디에이터로 옮겨진다.
열전도율이 좋은 구리나 황동, 알루미늄으로 만든 라디에이터는 물이 흐르도록 얇은 파이프 사이에 수많은 핀들을 장치해 놓은 것이다. 핀을 장치한 이유는 공냉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기와의 접촉면적을 최대한 많게 하기 위해서다.
냉각수의 온도는 정상적일 경우가 80℃에서 95℃ 사이. 라디에이터와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물펌프만으로는 이 온도를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다. 계속 달린다면 바람으로 이 온도가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교통체증이 심한 도시의 꽉막힌 도로에선 어림도 없는 얘기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서 부가적으로 장착한 것이 냉각팬. 라디에이터 앞에 선풍기를 장착, 강제로 바람을 돌린다.
한편 지나치게 냉각수 온도가 낮으면 엔진 자체의 온도도 낮아져 혼합기가 제대로 기화하지 못해 정상적인 연소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를 대비해 냉각수의 온도를 감지해 온도가 지나치게 낮을 때는 냉각수 통로 일부를 일시적으로 막아 엔진온도를 높여주거나 반대로 냉각팬을 돌려주도록 하는 수온조절 장치를 가지고 있다. 부동액은 냉각수와 다른 것이 아니고 기온이 지나치게 낮아 냉각수가 얼어 엔진이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넣는 냉각수의 일종이다.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은 냉각수가 식혀준다고 하지만, 변속기 등 그밖의 부분에서 발생하는 열은 어떻게 해결할까. 윤활유가 냉각수 역할을 하고 있다. 윤활유는 기본적으로 마찰을 방지하는 것이 주임무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이 바로 냉각작용이다. 마찰이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윤활유는 순환하면서 마찰로 발생하는 열을 흡수한다. 자동변속기처럼 오일의 성능유지가 중요한 경우에는 일종의 라디에이터인 오일쿨러를 설치해 오일을 냉각시킨다. 일반승용차에서는 보통 단독으로 설치하지 않고 냉각수 라디에이터 아래 끝부분에 설치해 사용한다. 오일의 적정온도는 70-80℃ 사이.
5백-7백도에 이르는 브레이크 온도
자동차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곳은 앞서 말한 대로 엔진의 실린더 내부다. 그렇다면 온도가 제일 낮은 곳은 어디일까. 바로 에어컨이다. 자동차 에어컨은 가정에서 쓰이는 에어컨이나 냉장고와 원리는 같다. 냉매를 고압 고온의 기체로 압축한 뒤 응축기에서 대기로 열을 내뿜어 버리고, 다시 팽창과정을 거치면서 열을 흡수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 때 흡수되는 기화열이 차가운 공기를 만드는 것이다.
일반 가정에서 쓰이는 에어컨과 다른점은 동력. 가정용 에어컨은 전기로 모터를 돌려 냉매를 압축시키지만 자동차에는 엔진의 구동력을 밸트로 연결해 사용한다. 따라서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는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다. 자동차 실내에서 흡수한 열을 외부로 방출시키는 응축기는 보통 라디에이터 앞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을 때에는 라디에이터의 성능이 떨어진다. 에어컨의 성능은 냉각장치와 마찬가지로 주행할 때가 정차해 있을 때보다 월등하게 좋다. 또한 압축기가 엔진의 구동력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엔진의 회전수가 높은 주행 중에 성능이 좋다.
또다른 온도조절장치인 히터는 어떻게 작동되는 것일까. 공냉식의 경우에는 배기가스의 열을 이용해 차의 난방을 해결한다. 폭발할 때 2천℃까지 올라가는 연소가스는 냉각장치 등의 영향으로 곧바로 9백℃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이것도 엄청나게 높은 온도. 배기가스가 나가는 파이프옆에 또다른 파이프를 붙여 배기열을 빼앗아 이를 실내로 송풍시키는 방식이다.
수냉식의 경우에는 냉각수를 이용한다. 엔진을 통과하는 동안에 뜨거워진 냉각수를 라디에이터로 보내기 전에 차의 실내에 장착된 또 하나의 라디에이터로 보내고 여기에 팬을 돌려 실내 난방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동을 건 바로 직후에는 차의 난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엔진이 뜨거워져 냉각수가 데워지는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엔진 실린더부분을 제외하고 온도가 높은 부분은 어디일까. 답은 5백-7백℃까지 올라가는 브레이크 부분. 브레이크는 쇠로 만들어진 원판인 디스크나 원통형인 드럼에 수지나 석면 등으로 만든 패드나 슈를 밀착시켜 작동한다. 결국 고체인 쇠와 수지의 마찰력으로 자동차를 감속시키거나 정지시키는 것이다.
마찰에는 필연적으로 열이 발생한다. 엔진을 비롯해 마찰이 일어나는 부분들은 윤활유가 냉각기능을 담당했다. 하지만 브레이크에 윤활유를 사용하면 브레이크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결국 자연적인 통풍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드럼에 공냉식 엔진처럼 냉각핀을 만드는 정도가 고작이다. 최근에 비교적 발열성능이 좋은 디스크형이 많이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언덕길에서 브레이크 조작을 너무 자주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브레이크를 너무 자주 사용하면 과열돼. 그 열이 브레이크액에도 전달된다. 브레이크액이 열을 받아 기화되면 작동이 잘 안되고 스펀지처럼 푹 들어가버리는 이른바 '베이퍼 록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