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횡단면을 수많은 동심원으로 장식하는 나이테. 저마다의 무늬와 형태에는 나무가 살아온 과거의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현재의 과학기술이 찾아낸 가장 정확한 과거연대 측정법은 나이테를 이용한 기술이다. 나이테의 너비와 패턴을 비교·연구해 과거의 비밀을 밝히는 연륜연대학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현대과학의 기틀이 잡혀가던 1901년 어느 날, 미국의 천문학자 듀글래스 박사는 연구에 지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북부 애리조나로 마차 여행을 떠났다. 원래 태양의 흑점을 연구하던 그는 흑점주기의 효과적인 계산방법을 찾지 못해 속을 썩이고 있던 터라 마주치는 사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우연히 제재소를 앞을 지나게 된 그는 마당에 층층이 쌓여있는 나무의 나이테를 보는 순간 머리속에 영감이 스쳐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동심원의 나이테에서 나이테의 너비가 좁아졌다 넓어졌다하는 점은 바로 그해의 기상조건 결과이며 태양의 흑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천문학자가 시작한 나이테 연구
연구실로 되돌아온 그는 바로 나이테 연구를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태양의 활동은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해마다 나이테의 너비가 일정하지 않은 이유는 그해의 온도와 강우량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히 매우 메마른 지역에서 간신히 살아가는 나무는 기상조건에 따라 나이테 너비의 변화가 더욱 크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1914년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1천년 자란 폰데로사 소나무를 이용해 ‘나이테 그래프’를 만들었다. 이 그래프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연구결과로서 기상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당시에는 기상현상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시작한지가 얼마되지 않아 과거의 기후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세월의 기상자료는 단순한 흥미차원이 아니라 과거를 토대로 인류에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자연재앙을 예측하는 중요한 수단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나무의 나이테로 과거의 기후를 알아낸다는 이 신비의 학문은 고고학자의 관심을 끌었다. 유물이나 오래된 목조문화재는 만든 시대가 불확실한 경우가 많으므로 정확한 연대를 예측하기 힘들다. 그래서 기상학자들이 시작한 나이테 연구는 연대추정의 수단으로 고고학자와 임학자에 의해 ‘연륜연대학’(dendrochronology)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발전했다.
나이테 최고 기록은 4천8백44개
나무를 가로로 잘라 단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운데 배꼽이 있고 동심원의 테가 안에서 밖으로 퍼져 나가듯이 여러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봄이 오면 나무껍질 바로 아래에 있는 부름켜에서 겨울 동안 쉬고 있던 세포가 분열을 시작해 밖으로 부피를 늘여간다. 봄의 끝자락인 5월까지 왕성하게 분열하며, 이 시기에 만들어진 세포는 크고 세포벽이 얇으므로 부드럽고 색도 연하다. 흔히 ‘춘재’(春材)라고 부르는 부분이다.
6월에 들어서서 잎이 완전히 피고 광합성이 활발해지면 세포분열 횟수는 느려진다. 이때 만들어진 세포는 크기가 작고 세포벽이 두꺼우며 단단하고 진한 색을 나타낸다. 세포분열은 7월을 고비로 급격히 둔화되며 8월말에서 늦어도 9월 중순에 이르면 모든 분열활동을 중단하고 이듬해 봄까지 긴 잠 속에 빠진다. 이렇게 ‘하재’(夏材)라는 부분이 생긴다.
춘재와 하재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바늘잎나무 무리에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춘재나 하재를 찾아 낼 수 있으나, 넓은잎나무는 서로의 경계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흔히 하재는 추재(秋材)라고 부르기도 하나 가을이면 자람이 멈추므로 맞지 않은 말이다. 1년 동안 자란 춘재와 하재를 합친 것이 나이테이며,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매년 하나씩 추가된다. 나이테는 1년 동안의 계절변화가 뚜렷한 온대나 한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만 생긴다. 여름이 계속되는 열대지방에서는 건기와 우기에 따라 희미한 테가 생기기도 하나 진정한 의미의 나이테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이테의 숫자는 바로 그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나타낸다. 사람은 백살을 넘기기 어렵고 장수의 대명사인 거북이도 길어야 2-3백년이 고작이다. 그러나 나무는 동물보다 열배는 더 오래 사는 지구의 최장수 생물체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화이트마운틴에는 브리슬 콘 소나무(Bristle cone pine)라 부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있다. 1964년 연구목적으로 이 나무를 베어 보았더니 확인된 나이테 숫자가 자그마치 4천8백44개였다. 안쪽이 썩어서 확인이 어려운 나이테까지 합치면 최소 5천년을 넘게 생명을 이어온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는 지금까지 경기도 용문사에 있는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은행나무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강원도 정선에서 발견된 주목이 1천4백년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최고의 자리를 내줬다. 이 주목은 삼국통일이라는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울 때 태어나서 20세기를 가뿐히 넘기고 멀리 30세기까지 바라보고 있다.
기원 전 기후 밝히는 단서
적당히 비가 오고 햇빛을 충분히 받아 좋은 날이 계속된 해에는 나이테가 넓고 반대의 경우는 좁아진다. 또 나무가 한창 자랄 시기에 극심한 가뭄이나 병충해, 늦서리 등 갑작스럽게 환경이 나빠졌을 때는 나이테처럼 보이는 ‘가짜 나이테’가 생기기거나, 심한 경우 한해 동안 나이테 만들기를 아예 쉬어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나무는 자기가 부닥친 자연계의 복잡한 환경조건을 가감 없이 나이테에 기록하면서 살아간다.
나이테가 갖고 있는 정보를 알아내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살아 있는 나무를 베어 해마다의 나이테 너비가 변화하는 모양을 그래프로 만든다. 물론 많은 수의 나이테가 들어 있는 고목일수록 좋다. 이때 ‘크로스 데이팅’(cross-dating)이라는 기법을 사용해 가능한 여러 나무를 서로 비교하고 가짜 나이테나 아예 나이테를 만들지 않은 해를 찾아내 그래프의 정확도를 높인다.
다음에 옛 건물의 기둥이나 출토된 나무유물의 나이테도 같은 방법으로 그래프를 만든다. 살아있는 나무의 그래프와 유물의 그래프를 견줘 보아, 나이테 너비의 변화 모양새가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낸다.
예를 들어 3백년짜리 살아있는 나무의 나이테 그래프와 옛 건물기둥을 조사해 4백개의 나이테 그래프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유물나무 그래프의 끝 부분과 살아있는 나무 처음 부분에 모양새가 같은 나이테가 50개가 있다면, 이 50년은 겹치는 부분이므로 두 나무가 적어도 50년 동안은 같은 연대를 살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부분을 제외하면 두 나무를 통해 6백50년 전까지의 표준 나이테 그래프를 만들 수 있다. 이같은 방법으로 연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작업을 계속하면 ‘표준 나이테 그래프’를 완성할 수 있다. 연대를 모르는 유물은 나이테를 조사해 표준 나이테 그래프와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내 정확한 연대를 밝힐 수 있다.
미국의 예를 보면 브리슬 콘 소나무를 조사해 8천2백년 전까지의 나이테 그래프를 만들었고, 이 그래프를 이용해 기원전부터 여러 번에 걸쳐 따뜻한 해와 추운 해가 반복됐음을 알 수 있었다. 또 미국은 신대륙 발견 이전의 역사 기록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미국 서부의 중요한 인디안 유적은 거의 모두가 나이테 그래프를 이용해 그 비밀을 밝힐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북부독일과 아일랜드, 스위스 등에서 나오는 출토 유물과 유럽 참나무를 이용해 약 1만년 전까지의 표준 그래프가 만들어져 있어, 오래된 건축물을 비롯한 나무유물의 연대를 알아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연륜연대학을 연구하고 있는 충북대 박원규 교수는 소나무와 주목, 그리고 잣나무를 사용해 6백년 전까지의 나이테 그래프를 만들었다. 그는 최근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소나무를 조사한 결과, 사용된 대부분의 나무가 1871년에 베어졌다는 획기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오차범위 가장 적은 연대추정법
물론 나이테로 연대를 찾아내는 방식이 모든 나무유물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마다 생장양식이 다르므로 우선 그래프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여러해 동안 살아야 하며, 주변에서 흔히 자라서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어야한다. 또한 땅이 좋고 수분이 충분한 곳에 자란 나무는 기상조건의 영향을 덜 받아서 나이테 너비의 변화가 적어 연대를 알아내기 어렵다. 나무 문화재는 이런 환경에 자란 좋은 나무를 쓰는 경우가 많아서 연구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기술로 과거의 연대를 알아내는 기술은 나이테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정확도가 높다. 나이테를 이용하면 ‘서기 321년에 벤 나무로 지어진 건물’과 같은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물의 연대를 알아내는 다른 방법으로는 ‘탄소연대 측정법’이 있다. 이는 대기 중에 미량으로 존재하는 탄소의 동위원소가 5천3백70년마다 그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성질을 이용한 방법이다. 그러나 탄소연대 측정법은 오차 범위가 50-1백년에나 이르러 정밀한 연대 추정이 어렵다. 나이테 방법을 쓸 수 없을 때 이용할 따름이다.
나무는 그가 부닥쳤던 자연환경 조건을 수백년에서 수천년 동안 나이테라는 하드디스크에 해마다 잊지 않고 기록하는 정보저장 매체다. 그 속에는 춥고 따뜻함, 비 내린 량, 병충해, 태풍 등의 과거 자료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앞으로 닥쳐올 재난을 미리 짐작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나이테 하드디스크’에 들어있는 정보의 용량은 짐작하지 못하며, 수많은 정보의 내용 중 알려진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기껏 나이테 너비를 통계 처리해, 옛 기후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유물의 연대를 알아내는 정도다. 언젠가 정보를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이뤄 질 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많은 부분이 나이테 연구에서 찾아질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