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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보다 더 무서운 대인지뢰

DMZ는 세계유일의 지뢰매설 허가지역

중부지방의 집중호우로 지뢰가 유실돼 비상이 걸렸다. '땅 속의 사신(死神)', 대인지뢰는 지난 20년간 전세계적으로 1백만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1억개가 넘는 지뢰가 묻혀있다. 세계는 이 지뢰를 없애기 위해 사용금지조약을 맺고, 새로운 지뢰찾기 방법을 연구 중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대인지뢰 사용이 공식화 된 곳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다.

지난 5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는 53개국이 모여 뇌관이 제거되지 않는 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벙어리지뢰’ 를 사용하지 말자는 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알아서 폭발성이 없어지는 똑똑한 지뢰, 즉 ‘스마트 지뢰’ 만을 사용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강제성이 없다. 그저 지뢰를 사고 파는 나라의 ‘양심’ 에 맡기자는 내용이었다. 특히지뢰 재고가 많은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나라를 위해 9년 간의 유예기간까지 두고 있다. 현재 땅속에 묻혀있는 지뢰말고도 1억개의 지뢰가 비밀창고에 고히 모셔져 있고, 또 매년 5백만-1천만개의 지뢰가 생산된다. 그런데 이 지뢰금지 조약에서마저 유일하게 제외된 곳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다.

왜 우리나라만 이 조약에서 제외됐을까.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은 “북한군의 대규모 기습공격을 저지하고, 주한미군의 생명을 지키는데 필수적” 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5월 15일자 동아일보). 이에 대해 한미연합 야전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홀링워스 예비역 중장은 “대인지뢰가 실제로 북한군 공격 때 오히려 아군의 자유스러운 기동을 방해할 것” 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매일 70명씩 희생


대부분의 지뢰는 사람 손으로 일일이 파내 제거한다.


막강하고도 다양한 최첨단의 장거리, 단거리 무기들에 비해 대인지뢰는 구식인데다 수동적인 무기일 뿐인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지뢰에 무방비 상태다. 온 세계가 지뢰를 제거하자는 시점에서 유독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7월말 경기 북부와 강원도 북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비무장지대에 묻혀있거나 군부대에 보관돼 있던 대인지뢰가 유실돼 민간인 지역에 까지 떠내려 온 것만 보아도 우리나라가 ‘지뢰 무방비 상태’ 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1945년 히로시마에 솟아올랐던 버섯구름을 보면서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잘못 사용하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 당시 원자폭탄으로 인한 사상자가 20만명이 넘었고,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은 평생동안 알 수 없는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또 그들의 2세는 기형아로 태어나는 등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원자폭탄의 위용’ 은 우리 주위를 떠나지 않고 있다.

방사선 노출 같은 후유증이 없고, 한방에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아서 그럴까? 2차세계대전 이전부터 사용됐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대인지뢰는 히로시마 희생자 수보다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관심밖에 있다.

지난 20년간 대인지뢰 때문에 죽거나 불구가 된 사람은 1백만명이 넘는다. 현재도 매년 2만 6천명이 희생되고 있다. 매일 70명, 20분당 한명씩 죽거나 다치고 있는 것이다. 이 중 30만명이 넘는 수가 어린이다. 사실 정확한 수는 이보다 더 높을 것이다. 많은 사고가 의료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외진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뢰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목숨은 건졌으나 불구가 된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다.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가족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또 지뢰사고가 나고 있는 지역이 후진국에 편중돼 있다보니 사회 전체가 지뢰로 멍들고 있는 상태다.

현재 대인지뢰(antipersonnel mine)는 선진국 일부를 제외하고 전세계에 골고루 1억1천만개 이상이 묻혀있다. 내란이 심했던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앙골라, 보스니아는 그 정도가 심하고, 우리나라에도 터지지 않은 지뢰가 고스란히 땅속에 있다(그림1).

1차세계대전 당시 탱크같이 덩치 큰 물건을 날려버리기 위해 대전차지뢰(antitank mine)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지뢰는 덩치가 커서 쉽게 발견하고 제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전차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접근하는 적군을 막기 위해 대인지뢰가 만들어졌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대인지뢰다. 대인지뢰는 대전차지뢰처럼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대인지뢰의 지름은 보통 10cm 이하로 작은 편이라 발견하기 힘들다. 어떤 경우에는 색깔이나 모양까지 눈에 띄지 않도록 위장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대인지뢰는 살아남아 누군가가 와서 밟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과학의 서자가 땅밑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전세계 지뢰 현황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는 속담이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뢰는 보통 2천원에서 8천원 정도에 팔리는, 가장 저렴한 무기다. 싼맛에, 또 여러 가지 목적으로 묻었던 지뢰를 전쟁이 끝나 더 이상 필요없어 제거할 때는 20만원에서 8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또 그런 제거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의 팔과 다리가 지뢰 해체의 대가로 지불되고 있다.

민간인들이 전쟁 때 희생되는 비율은 자꾸만 높아졌다. 1차세계대전 때는 15%였던 것이 2차세계대전 때는 65%, 그리고 요즘은 90% 이상이다. 이렇게 민간인의 희생이 늘어나는 이유는 대인지뢰 같은 전쟁상황과는 무관한 비인간적인 무기들이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지뢰는 병사의 발목과 놀고 있는 아이들의 발목을 구분할 줄 모를 뿐더러, 전쟁이 끝났는지 평화협정을 맺었는지도 모른다. 지뢰는 항상 ‘전쟁 중’ 인 것이다. 그리고 일단 묻히기만 하면, 제거되거나 터지면서 누구의 다리를 짜르기 전에는 계속 위험물질이다. 그래서 지뢰는 ‘느린 동작으로 대량 학살을 하는 무기’ 로 일컬어진다.

이미 지뢰는 적군을 어떤 땅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든가, 적군의 이동을 제한하고, 보호막으로서 사용되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지역주민이 물, 나무, 연료, 오솔길, 심지어는 무덤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위해 지뢰를 묻는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헬리콥터나 포병대 같은 것을 이용해 마을이나 경작지에 일부러 지뢰를 무작위로 뿌리고 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캄보디아는 전체 면적의 35%가 지뢰 때문에 쓸모없는 땅이 돼버렸다.

지난 5월 한국적십자사에서는 심각한 지뢰피해지역 중의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에 몇명의 의료진과 실무진을 파견했다. 당시 의료진에 참여했던 윤석웅과장(한국적십자병원 정형외과)은 “대부분의 지뢰피해자가 민간인이었고, 또 어린이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 지뢰가 제거되지 않는 지역이라고 표시된 곳에서 어린이들이 그냥 놀고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어린이 노리는 ‘장난감 지뢰’
 

나비지뢰를 가지고 놀다가 다친 어린이.


대인지뢰는 희생자가 지뢰 자체에 직접 압력을 가하거나 아니면 감지선(trip wire)에 장력을 가할 경우, 즉 발화장치를 건드릴 때 작동한다. 발화장치를 건드리면 뇌관과 보조탄약(소량이지만 고순도의 폭발물)에 불이 붙는다. 보조탄약이 폭발하면서 연속적으로 주탄약이 터지게 된다(그림2). 최근들어 지뢰기술은 크게 발전했다. 플라스틱 지뢰의 개발은 이 무기를 더 값싸고, 더 찾아내기 어렵고, 오랫동안 분해되지 않게 만들었다.

대인지뢰는 크게 폭발지뢰와 파편지뢰, 두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폭발지뢰는 보통 압력에 반응한다. 한 예로 감각판에 발이 닿는 경우다. 폭발지뢰로 인한 몸의 상처는 그 자체가 폭발한 결과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한편 파편지뢰는 감지선에 의해 반응한다. 파편지뢰가 폭발하게 되면 상당량의 철조각들이 매우 먼 거리까지 날아간다. 이런 조각들은 지뢰 내부에 담겨있거나 지뢰겉이 찢어지면서 생긴다.

지뢰피해자의 상처 부위는 다양하다. 크게 네가지 정도로 분류가 가능한데, 첫번째는 지름이 10cm 이하인 소형 폭발지뢰로 받는 상처다. 이는 전형적인 대인지뢰로 발이나 다리를 절단한다. 대부분 무릎 아래에서, 그리고 한쪽다리에만 일어난다.

두번째는 좀 더 큰 지뢰 때문에 입는 상해. 큰 지뢰를 밟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절단 수술을 해야 한다. 종종 다리의 아래쪽을 날려 버리는데 상처는 허벅지, 외음부, 엉덩이까지 남는다. 많은 환자들이 지뢰로 직접 잘린 다리가 아닌쪽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어 결과적으로 양쪽다리를 모두 절단하게 된다.

세번째는 지뢰가 날개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나비지뢰’ 라는 이름이 붙은 지뢰 때문에 받는 상처다. 보통 손에서 터지기 때문에 양쪽 손을 절단한다. 아주 경미한 경우는 손가락 두세개만이 잘려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슴이나 얼굴에 상처를 입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님이 되기 쉽다. 이 지뢰는 가지고 놀기 좋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장남감 지뢰’ 라고 하는데, 특히 어린이들이 피해를 많이 입는다.

마지막으로 파편지뢰는 온몸에 상처를 입힌다. 상처의 크기는 파편이 얼마만큼 몸속으로 파고 들어갔느냐로 결정된다. 만약 피해자가 폭발지역에서 수m 떨어져 있었다면 파편은 배, 가슴, 머리 등에 박힌다. 가까운 지역에 있었다면, 상처는 큰 대인지뢰에 의해 입는 상처와 비슷하다. 파편지뢰로 입은 상처는 의사의 치료조차 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지뢰를 직접 밟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지뢰 금지조약을 위한 회의가 진행되는 2주간에도 1천명 이상의 사람이 지뢰에 의해 죽거나 불구가 됐다. 더욱이 안타까운 현실은 이런 통계가 앞으로 줄어들 가망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묻혀있는 1억개 이상의 지뢰 이외에도, 지뢰는 매년 2백50만개씩 새로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뢰를 완전히 제거하는 일은 무리다. 1993년 UN대원들은 8만개의 지뢰를 제거했다. 그러나 이런 속도로는 지금 묻혀있는 지뢰만을 완전히 제거하는데 1천년 이상 걸린다.

우리나라 DMZ, 지뢰 천국?

본의 아니게 대인지뢰 때문에 다치거나 죽는 사람은 내란으로 시끌벅적한 외국의 얘기만은 아니다. 1992년 4월에는 비무장지대에서 일어난 산불 때문에 2백여개의 지뢰가 폭발하는 바람에 진화를 하지 못한 적이 있다. 결국 때마침 내린 소나기로 겨우 불길을 잡았다.

또 지뢰로 다치거나 죽는 일은 6·25전쟁이 끝난 후부터 지금까지 매년 되풀이 되고 있다. 민간인 통제 지역에서 나물을 뜯다 죽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홍수로 인해 지뢰가 떠내려와 사람들이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에 어떤 종류의, 얼마나 많은 지뢰가 묻혀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없다. 대략 1백만개 정도 묻혀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거기다 비무장지대는 앞으로도 벙어리지뢰를 계속 묻을 수 있는 곳이니, 앞으로 얼마만큼의 지뢰가 더 묻힐지는 더욱 모를 일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터지지 않는 지뢰를 머리맡에 두고 우리가 매일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폭탄의 피해를 직접 간접으로 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원자폭탄의 위력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무고한 민간인을 매일 희생시키고 있는 대인지뢰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도 잘 모를 뿐더러, 무관심하다.

일단 땅속에 묻힌 지뢰의 수명은 1백년 이상이다. 언젠가는 없애야만 한다. 더 이상 새로운 지뢰가 매설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묻혀있는 것만으로도 지뢰는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비극이 될 것이다.
 

대인지뢰 해부도
 

199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곽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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