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제과점에서 빵을 만들듯이 한두번의 공정으로 찍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값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이에 가까운 노력이 바로 일체화 성형기술이다. 일체화 성형기술이 완성되면 가볍고 연료가 적게 드는 자동차가 탄생한다.
이제 자동차는 우리 생활에서 물이나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됐다. 지금과 같은 자동차의 기본 형태는 약 1백여년 전인 1901년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 사에서 탄생됐다. 그 후 자동차는 성능과 디자인에서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이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5년 국산차가 처음으로 소개됐으나, 본격적인 국산자동차는 1975년 12월에 등장한 현대자동차 포니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1천3백만대 이상의 자동차가 우리의 국토를 누비기에 이르렀으며, 95% 이상의 자동차들이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매연으로 인해 공기가 오염돼 환경문제가 발생하고, 연료로 석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원이 고갈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 자동차회사들이 여러 방면으로 노력중이다. 실례로 완전 무공해 자동차인 전기자동차나 연료전지 자동차를 개발하는 연구가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들 자동차와 기존 자동차의 중간 형태인,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들이 판매되고 있다.
볼트와 너트 필요없다
한편에서는 매연을 덜 발생시키고 연료를 적게 사용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가볍게 만드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자동차 경량화에는 무거운 재료를 가벼운 재료로 대체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자동차의 제조에는 철강, 알루미늄, 유리, 플라스틱 등의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된다. 그 중에서도 철강재료가 자동차 전체 무게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철강재료는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 재료보다 2-3배 무겁기 때문에 경량화에 치명적인 재료로 인식되기 쉽다. 실제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철강재료 부품을 가벼운 재료로 대체하기 위한 연구는 지난 20여년 전부터 진행돼 왔다.
하지만 어떤 용도의 재료도 마찬가지이듯이 자동차에 사용되는 재료도 알맞은 강도를 지니면서 다루기가 쉬운, 즉 가공하기 쉬운 특성을 지녀야 하고 값이 싸야만 한다. 이런 조건들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재료가 바로 철강재료다. 철강회사들은 철강재료 자체의 강도를 향상시킴으로써 두께를 얇게 해 철강재료의 경량화를 시도해 왔다. 알루미늄과 같은 가벼운 재료로의 대체보다는 오히려 철강재료의 고강도화가 더욱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데는 재질과 성질이 서로 다른 2만여개의 부품이 필요하고, 이들은 또 로봇이나 사람의 손을 통해 조립돼 완제품이 된다. 자동차의 이런 조립과정은 텔레비전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자동차를 제과점에서 빵을 만들듯이 한두번의 공정으로 찍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값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이에 가깝게 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일체화 성형기술이다.
일체화 성형기술이란 복잡한 형상이나 다수의 부품으로 구성된 제품을 1회 또는 극소수의 가공에 의해 최종 형상으로 생산하는 기술이다. 여러 조각으로 만들어 제작하던 것을 한번 또는 극소수의 가공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공정 단축, 재료비 절감, 부품 생산시 소비되는 에너지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개의 부품을 조립하는 과정에서 용접을 하거나 볼트와 너트를 사용하는데, 이런 부분들은 항상 파손을 일으키는 주원인이 된다. 일체화 성형을 하면 이런 결합 부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부품의 강도가 강해져 성능의 개선도 함께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일체화 성형기술은 자동차의 경량화, 가격 경쟁력 향상, 그리고 성능 향상까지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엔진을 얹어 놓을 수 있는 엔진 크레이들이란 부품을 보자. 지금까지는 6개 이상의 부품을 따로 만든 후 용접해 한개의 부품으로 만들었으나 일체화 성형을 하면 원재료 튜브 한개로 간단히 제작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무게는 10% 이상 가벼워질 뿐 아니라 용접하지 않고 제작하기 때문에 제품의 강도와 신뢰성이 훨씬 높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자동차에서 일체화 성형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부품은 수없이 많다. 엔진 크레이들을 비롯해 캠축(피스톤의 왕복운동을 바퀴의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장치), 방열기 프레임, 배기가스 시스템, 차축 튜브, 좌석 프레임 등이 그것들이다.
일체화 성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기술로는 성형성이 아주 좋은 재료의 개발, 개발된 재료로 튜브를 제조하기 위한 레이저 용접기술, 그리고 튜브를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액압성형(hydroforming) 기술을 들 수 있다.
얇으면서도 강도 높은 재료 필수
우선 재료를 살펴보자. 단 한개의 튜브로 아주 복잡한 형상의 부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높은 강도를 지니면서도 원하는 대로 성형이 잘 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재료가 필요하다. 성형성이 우수한 재료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재료의 연성이 좋아야 한다. 대개 원래 길이보다 30% 이상 더 늘였을 때까지도 끊어지지 않을 정도의 연성을 가진 재료라면 현재의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일체화 성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연성이 적어도 35%를 넘어야 한다. 재료의 강도가 4백MPa(대개 쇠못을 구부리는데 드는 힘이 2백MPa 정도이고 쇠못을 끊는데 필요한 힘이 4백MPa 정도임) 이하인 경우에는 이 정도의 연성을 얻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보다 고강도의 재료에서 35% 이상의 연성을 얻는 것은 아주 어려운 기술이다. 현재 한국기계연구원과 포스코에서는 일체화 성형에 알맞은 자동차용 철강재료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다음으로는 판재를 알맞은 길이로 절단하고 이를 말아 길이 방향으로 용접해 튜브를 만들어야 한다. 자동차 부품에 사용되는 튜브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도관과 같이 두껍지 않고 대개 두께 2.0mm 이하로 얇다. 이 튜브는 상당한 가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주 정교한 제조기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튜브를 제조할 때 전기저항을 이용했다. 하지만 전기저항을 이용하는 경우 용접에 필요한 열을 얻기 위해서는 2.0mm 이상의 두께가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두께가 2.0mm 이하인 튜브에는 이 방법을 적용할 수 없다. 그래서 자동차 부품에 사용되는 튜브에는 레이저 용접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레이저 용접기술을 고강도의 얇은 튜브를 제조하는데 적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즉 용접하는 부분을 아주 곧은 직선으로 유지해 주기 위해 용접선을 추적하는 센서장치를 개발해야 하고, 두께가 서로 다른 재료를 용접하거나 복잡한 형상을 지닌 튜브를 자유자재로 용접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액압성형기술은 튜브를 원하는 모양으로 바꿔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원하는 모양의 금형을 만들고 일차로 구부린 튜브를 금형 속에 넣은 후 튜브 내에 유압을 주입함으로써 그 압력으로 성형이 이뤄지게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로 자동차부품과 같이 정밀한 부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교한 금형을 만들 수 있는 설계와 제조기술도 필요하다.
액압성형기술의 원리는 간단하고 알려진지도 오래됐지만, 산업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2004년까지 자동차 섀시 부품의 50% 이상을 이 기술로 만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에도 이 기술은 많이 적용되고 있다. 액압성형기술은 자동차뿐 아니라 항공기, 정밀기계 등의 부품을 만드는데도 적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3-5년 안에 일체화 성형부품을 국내 자동차에 장착시킨다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경제적인 효과를 살펴보면 자동차 부품뿐 아니라 강판소재, 그리고 튜브 원재료와 관련된 국내시장 규모만도 연간 9백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소재제조에 따른 기대이익은 연간 60억원, 원재료 튜브의 수입대체 효과는 연간 2백50억원, 그리고 제조공정의 단순화와 부품의 경량화로 에너지 사용량 절감액이 또한 연간 56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자동차의 경량화로 얻을 수 있는 연료 사용 절감액을 합한다면 경제적 효과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금속분말로 빵 굽듯 찍어내
자동차 부품의 일체화 성형기술이 비단 판재를 이용한 액압성형기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판재뿐만 아니라 분말을 이용해 복잡한 모양인 부품을 하나로 만드는 기술도 일체화 성형기술에 포함된다. 자동차에는 금속분말을 일정한 형상으로 성형해서 만든 작고 정밀한 부품들이 1백50여종 이상 사용되고 있다.
금속분말을 이용해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정에는 제과점에서 밀가루를 이용해 빵을 만드는 방법과 유사한 기술이 적용된다. 먼저 크기가 1백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이하인 철이나 구리 등의 금속분말을 원하는 비율로 혼합한 후, 일정한 틀에 채워서 성형하면 부품 형태의 성형체가 제조된다. 제조된 성형체를 다시 일정온도 이상으로 가열해 구우면(소결), 온도효과 덕분에 분말입자끼리 서로 결합해 가공이 필요없는 정밀하고 튼튼한 자동차 부품이 제조된다. 이렇게 하면 대량으로 값싼 부품을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에 사용되는 기어류와 같은 동일한 소형부품을 수십만 내지 수백만개를 제조할 때 매우 유리하다. 하나하나 기계가공해 만드는 방법보다 생산속도가 훨씬 빠르고, 자동화가 쉬우며, 복잡한 형상의 부품을 접합하지 않고 제조할 수 있어 생산공정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품질이 균일하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까지 자동차에서는 주로 철분말을 이용해 소형기어, 베어링 등의 금속분말 부품이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고성능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연료 절감, 주행 편리성과 안정성, 제조비 절감 등의 이유로 소형 부품에 대한 일체화 필요성은 점점 증가되고 있다. 따라서 분말 자동차부품 제조에도 지금까지와 같이 단순한 프레스에 의한 성형공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제기됐다.
최근에는 금속분말을 연달아 밀어내면서 부품을 찍어내는 분말사출성형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이 기술은 한번에 하나의 제품을 찍어내던 기존 분말성형기술에 비해 한번의 성형공정으로 수십개의 부품을 동시에 제조할 수 있다. 때문에 기존 분말성형기술보다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고 소형이면서 복잡한 형상의 부품을 좀더 쉽게 제조할 수 있다. 현재 국내외에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중이다.
한편 최근 국내에서는 성형과 소결공정 중에 부품의 접합이 동시에 일어나도록 하는 일체화 성형기술을 통해 3차원의 복잡한 형상을 가진 자동차 변속기가 개발됐다. 자동차의 자동변속기 같이 차량 자동화에 관련된 부품들은 각각의 소형부품을 제조한 후 조립과 접합 등의 다단계공정을 거쳐 생산됐다. 일체화 성형기술로 개발된 자동차 변속기는 특성이 기존의 부품과 동일했지만, 제조와 가공공정은 대폭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기존에 비해 35% 이상 값싼 가격에 제조가 가능하다. 자동차의 연간 생산량을 3백50만대로 가정하면 연간 약 1백75억원의 생산비 절감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자동차 1대 당 약 16.4kg의 분말부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부품수로도 1백60종에 이르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자동차 1대 당 약 6.5kg의 분말부품이 사용되고 있으며, 부품수도 약 90종으로 그 활용도가 미국의 4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앞으로 국산 자동차의 분말부품 적용률을 2.5배 이상 증가시키기 위한 연구가 과학기술부 산하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데 적용할 수 있는 일체화 성형기술이 완성되고 환경친화적인 엔진이 개발돼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무게가 반 이상 줄어들고 휘발유를 한번만 채워 부산에서 평양까지도 다녀올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