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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구조로 생명현상 규명

구조생물학

인간의 게놈지도가 완성된 뒤, 생명과학계의 관심은 단백질로 쏠리고 있다. 생명현상의 바탕이 되는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 신약 개발을 앞당기고 있는 구조생물학을 만나보자.


2001년 2월 12일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연구 성과가 국제 컨소시엄과 셀레라사에 의해 동시에 발표됐다. 인간이란 생명체가 갖고 있는 유전정보의 전모를 밝힌 게놈프로젝트는 과학적으로 커다란 진보였으며, 동시에 생명과학을 대중의 관심을 받는 화려한 무대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생명과학자들은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게놈 연구의 뒤를 잇는 또다른 미지의 세계로 항해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곧바로 게놈의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 목표가 공개됐는데, 바로‘단백질’이었다. 이 단백질을 이해하 는 첨단 무기가‘구조생물학’이다.

구조생물학을 이해하는 일은 단백질을 이해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리스어로‘중요한 것’을 가리키는 proteios에서 유래한 단백질(protein)은 말 그대로 우리 몸속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이다. 예를 들어 단백질은 효소가 돼 몸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화학반응의 촉매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고, 항체가 돼 질병과 싸우는 면역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생명현상이라 불리는 작용 중 단백질이 관여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
 

단백질 구조를 알려주는 구조생 물학을 통해 인체에서 효율적으 로 작용하는 신약 개발이 가능 하다.



포스트게놈 시대의 주인공 단백질

인간게놈프로젝트에서 밝혀낸 연구 성과 자체도 단백질과 관련된다. 발표된 게놈지도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4개의 염기들이 나열된 순서다. DNA가 갖고 있는 이 염기서열 정보는 RNA를 거쳐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유전자의 발현이라 불리는 과정이다. 어쩌면 인간게놈프로젝트는 단백질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본설계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생명과학자들은 이와 같이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단백질의 중요성을 게놈 연구 오래 전에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체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단백질의 기능을 밝히기 위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됐다. 어떤 단백질의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순수하게 분리해야 하며, 그 뒤로도 복잡한 생화학실험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단백질을 이런 방식으로 기능을 밝히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게놈 연구가 단백질 기능 연구에 도움을 준다. 정체불명의 단백질 기능을 밝히기 위해서 우선 그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찾는다. 유전자의염기서열 정보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이 어떤 순서로 배열돼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아미노산 서열을 이미 기능이 알려진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과 비교한다. 비슷한 부분을 찾아서 비슷한 기능을 할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아미노산 서열 비교를 통한 예측 방법으로 여러 단백질의 기능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현재 아미노산의 복잡한 서열 비교 분석을 위해서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한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이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아미노산 사슬의 서열이 비슷하지 않는 단백질의 경우에는 전혀 소용이 없다. 또 아미노산 사슬 서열이 부분적으로 같다고 하더라도 기능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아미노산 서열 비교를 통해 기능을 밝힐 수 없는 단백질이 상당수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단백질 기능을 밝히는 첨단 학문인 구조생물학은 이런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예를 들어 미오글로빈(myoglobin)과 헤모글로빈(hemoglobin) 이란 단백질을 생각해보자. 생체에서 각각 근육과 혈액속에 존재하는 이 두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서열이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산소를 수송하는 똑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오글로빈과 헤모글로빈 단백질은 서로 비슷한 모양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단백질의 모양이 실제 일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구조생물학은 이처럼 단백질의 3차원 구조가 기능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시작됐다. 사실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자가 단백질의 모양, 즉 구조라는 점은 이미 오래 전에 밝혀졌다. 30년 전에 최초의 단백질 구조가 밝혀진 이래 많은 과학자들이 다양한 단백질의 3차 구조를 알아내기 위한 구조 연구에 몰두했다. 이들은 주로 생화학 연구로 기능이 밝혀져 있는 단백질이 어떤 입체 구조를 갖는지 밝혀냈다. 그런 후 구조를 가지고 단백질이 활동하는 메커니즘을 다시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빛으로 단백질 구조 밝혀내

이에 비해 최근의 구조생물학 연구는 기능을 전혀 모르는 단백질의 기능을 밝히는 일에 집중되고 있다. 정체불명의 단백질 구조를 밝혀낸 후, 기능을 추리해보는 것이다. 이때 이미 기능이 알려진 단백질의 구조에 관한 정보가 도움이 된다. 유추된 단백질의 기능은 생물·생화학적 검증 실험을 통해 확인한다.

그렇다면 구조생물학자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어떻게 알아내는 것일까. 단백질은 아미노산이 펩티드 결합이라는 화학결합으로 연결돼 있다. 이 아미노산 사슬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독특한 3차원 모양을 갖는다.

단백질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아미노산의 배열정보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의 염기서열로부터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아미노산이 어떤 순서로 연결돼 있는지만 보여주는 2차원적인 정보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현재 아미노산의 배열정보에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아미노산이 연결될 때 어떤 각도로 꺾여서 단백질의 폴딩(아미노산 사슬의 꺾임)이 일어나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리학 화학의 도움으로 단백질의 구조를 바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됐다. 전자현미경과NMR(Nuclear Magnetic Resonance. 핵자기공명장치), 방사광가속기 등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 장치는 단백질의 모양을 마치 사진처럼 찍어주는데, 이 사진을 판독해 단백질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

국내에서는 포항공대의 방사광가속기가 구조생물학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하전입자를 가속시켜 방사광을 발생시키는데, 지금까지 만들지 못했던 파장의 빛도 만들 수 있는 장치다. 자신의 원하는 빛을 입맛에 맞게 골라 만들 수 있는 셈이다.

현재 방사광가속기에서 전자파를 발생시키는 여러 빔라인 중 6B1은‘고분자결정학’이란 표지판을 달고 있다. 이 빔라인은 생체 단백질의 결정구조 해석에 전용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가속기에서 만들어진 X선은 단백질을 뚫고 지나면서 회절현상을 일으켜 이미지 스크린에 회절무늬의 상을 만든다. 이 결과를 분석하면 해당 단백질의 전자밀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정보를 다시 처리하면 단백질의 3차원적 결정구조를 알 수 있다. 가속기에서 만든X선이 단백질을 지나면서 그 안에 담겨있는 정보를 모두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단백질의 구조를 정확히 밝혀도 그 기능을 유추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경우에도 최소한 단백질이 어떻게 구부러져 3차 구조를형성하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정보는 아미노산 서열과 단백질의 폴딩과의 상호관계를 규명하는데 기본 자료로 쓰인다. 많은 자료가 축적되면 아미노산 서열에서 바로 단백질 3차 구조를 알려주는 컴퓨터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해 손쉽게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사광가속기는 빛을 만들 수 있는 첨단장치다. 사진은 국내 에서 유일하게 포항공대에 설치된 방사광가속기의 빔라인 모습.



천문학적 규모 시장 노린다

구조생물학은 빠르고 정확하게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으로 특히 각광받고 있다. 질병이라는 것 자체가 단백질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활동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신약은 이렇게 질병으로 손상된 단백질과 결합해 기능을 조절하는 물질이다.

예를 들어 20세기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생각해보자. AIDS는 인간의 면역기능을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그런데 면역단백질을 공격하는 HIV 바이러스의 프로테아제(protease,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물질을 찾으면 바로 치료약이 된다.

지금까지 신약개발은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구조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종류의 화학물질을 질병 단백질과 반응시켜보면서 원하는 물질이 나타나는 행운을 바랬다고나 할까. 그러나 구조생물학을 통해 질병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하는 3차원 구조를 정확히 알게 되면, 이 단백질과 반응하는 화학물질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구조생물학이 신약 발굴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이다.

한 예로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오병하 교수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갖고 있는 효소인 우레아제의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구조생물학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지‘네이처 스트럭처럴바이올로지’2001년 6월호에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은 위암의 원인균으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흔하다.

그동안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pH 0.78 정도의 위산이 쏟아지는 위속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오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은 우레아제 12개가 합쳐져 된 공모양의 효소집단을 갖고 있다. 우레아제는 위산을 중화시키는 염기인 암모니아를 만드는 효소인데, 위산과 접하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 공모양으로 함께 모여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우레아제들의 구조를 뒤틀어 재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면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은 위산에 녹을수밖에 없다. 위암의 원인균을 무찌를 획기적인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또 같은 학과의 조윤제 교수는 암을 억제하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혀 기능을 추적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연간 3천6백억달러(약 4백조원) 정도나 된다. 그래서 구조생물학이 창출할 부가가치의 규모는 천문학적인 수치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분 비하는 효소 우레아제는 단독 으로 존재하지 않고, 12개씩 결합해 공모양을 이뤄 내산성 를 갖는다.



넓은 시야 갖는 공부가 중요

구조생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포항공대 연구팀의 예를 살펴보자. 구조생물학 연구는 생명과학부의 오병하, 조윤제 교수가 물리학을 전공한 방사광가속기 센터의 이흥수 박사의 도움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 데이터의 결과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는 전산학자가 관여한다. 구조생물학 연구의 중심축은 생물학이지만 다른 전공자도 활발히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이흥수 박사는“물리학의 시각으로 생명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장점이 된다”고 말했다. 생물학 이외의 전공자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구조생물학 연구에 도움을 줄수 있다는 얘기다. 이박사는 또 최근 과학계의 핵심기술로 떠오른 나노기술과 생명과학기술은 결국 합쳐져야 한다면서, 앞으로는 이런 학제간 연구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결국 구조생물학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도 이와 같은 통합의 경향을 인식하고, 여러 분야에 대해 넓은 시야를 갖는 공부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종결되면서 본격적으로 그 결과를 활용하는 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단백질 구조를 밝히는 구조생물학은 포스트게놈 시대를 이끌 학문으로 암, 치매와 같은 불치병 정복에 가장 유용한 도구다. 구조생물학자들의 땀방울에 의해 모든 질병이 정복되는 인류의 미래를 기대해보자.

200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홍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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