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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5 나노머신 찍어내는 프린터

대량 생산 위한 인프라 역할

생산 설비 없이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나노기술이 각종 첨단 제품으로 현실화되려면 인프라인 각종 나노장비가 필수적이다. 나노장비는 나노세계로 가는 문의 빗장을 여는 역할을 한다.


뛰어난 손재주를 지닌 장인이라도 아무런 장비 없이 뭔가를 만들어내라고 한다면 어떨까. 아예 못만들거나 제대로 된 제품을 완성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어떤 기술이든 실제 제품을 제작하려면 이에 알맞은 기본 장비가 필수적이다.

나노기술도 마찬가지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센서, 슈퍼컴퓨터 성능을 갖는 손바닥 크기의 컴퓨터,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감지하고 제거할 수 있는 바이오센서나 나노필터를 만들어내려면 나노장비가 필요하다. 나노장비는 나노기술이 실질적인 제품으로 실현되기 위해 요구되는 부품, 센서, 필터, 그리고 각종 나노장치를 제작하는데 사용된다. 인프라인 셈이다.

때문에 나노장비는 산업화가 상당히 진척돼 있는 편이다. 사실 나노기술의 시작도 나노장비의 개발로부터 비롯됐다. 제3세대 현미경으로 불리는 주사터널링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cope, STM)과 원자력현미경(Atomic Force Microscope, AFM)이 각각 1982년과 1987년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이들 장비를 주사탐침현미경(Scanning Probe Microscope, SPM)이라고 하는데, SPM은 과학자들에게 나노세계를 관측하고 조작할 수 있는 도구가 됐다. SPM은 끝이 수nm인 초미세 탐침을 갖고 있다. 이 탐침이 고작 원자 한두개 간격인 약 0.5nm 거리로 시료 표면을 훑고 지나가면서 시료 위의 원자 하나하나를 3차원으로 볼 수 있는 표면 영상을 제공한다. 또한 마찰력, 경도, 탄성과 점성, 자기력과 전기력 등 시료표면의 다양한 특성까지도 측정할 수 있다. 때문에 반도체 표면 조사에 현재 널리 쓰이고 있다.


원자 들어올리는 현미경

그러나 무엇보다 SPM의 놀라운 기능은 시료 위의 원자를 들어올리거나 원하는 위치로 옮겨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화학구조를 변경시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SPM은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 제작시 탄소나노튜브를 원하는 위치에 배치시키는데 동원되기도 한다.

SPM이 최초로 개발된지 20여년이 지난 현재, 세계 여러 회사가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미국의 비코 인스트루먼트사로, 자사는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 기업으로는 PSIA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SPM 개발사들은 나노센서, 나노필터, DNA 필터 등 다양한 나노기술에서 쓰일 수 있는 모델들을 개발중이다.

SPM의 개발과 생산이 이미 산업적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최근에는 SPM을 보다 쉽게 조작하는 기술이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

SPM이 널리 보급되는데 있어 걸림돌은 조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내 대학 중에는 SPM을 구입하고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채 놀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래픽 기술, 가상현실, 각종 첨단 센서 기술이 동원돼 가상공간에서 SPM을 3차원으로 보면서 손가락의 간단한 움직임만으로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중이다. 즉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SPM의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것이다. 한 예로 미국 노스캘로라이나대 컴퓨터공학과는 SPM 조작환경을 개발해 서드테크라는 벤처기업을 2000년에 설립했다. 올 봄에 이 회사는 매출액 1백만달러(약 13억원)를 달성했다.
 

SPM은 표면 영상뿐 아니라 다양한 표면 특성을 측 정할 수 있다. 때문에 현재 반도체 표면 특성 조사에 쓰이고 있다.



도장 찍듯 대량생산

기술의 상업화에서 중요한 관건으로 꼽히는 요소 중 하나가 대량생산이다. 그래야 제품을 값싸고 빠르게 생산할 수 있어 상업적 경쟁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하는 나노형상을 대량으로 연속적으로 제작하는 나노 패터닝장비가 필요하다.

현재 나노 패턴을 형성하는 기술은 대표적으로 2가지를 꼽을 수 있다. 나노임프린트 리소그래피(nanoimprint lithography)와 나노잉크(nanoink) 리소그래피 기술이 그것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나노구조물을 경제적이고 신속하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간단히 말해 종이 위에 도장을 찍는 방법과 유사하다.

나노임프린트 공정기술은 1990년대부터 체계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나노구조물 제작기술이다. 우선 형틀 역할을 하는 단단한 물질 표면에 나노구조물을 새기고, 이를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물질의 표면에 눌러 반복적으로 원하는 나노구조물을 제작한다. 압축시켜서 원하는 형체를 찍어내는 고전적인 공정기술과 기본원리는 비슷하다. 때문에 그리 복잡하지 않은 공정기술로 보인다.

그럼에도 나노임프린트 공정기술은 이제 막 시장에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각만큼 이 공정기술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나노크기의 구조물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거시 영역에서 무시됐던 모세관 현상이나 전자기력, 원자간 인력과 같은 미세 물리현상이 철저히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세 물리현상을 고려한 재료기술과 형틀기술이 개발돼야 하며, 또 제작된 구조물 자체가 나노미터 단위이기 때문에 작업환경에서 미세먼지를 철저히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해온 반도체 사진공정기술이 1백nm 선폭의 구조물을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 현재 나노임프린트 공정장비로는 10nm까지 가능하다. 이 장비는 차세대 반도체, 고밀도 자기저장장치, 고밀도 CD, 광검출기 등 가까운 미래에 우리에게 다가올 전기전자, 광통신 분야의 첨단 제품의 상산에 적용될 전망이다. 나노임프린트 공정장비는 2000년부터 스웨덴의 오브더캣사가 제품으로 출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 장비를 개발중이며, 아직 상업화된 사례는 없다.

나노잉크 리소그래피 기술은 일종의 인쇄기술로, 평판 위에 잉크를 묻혀 나노구조물을 제작하는 기술이다. 인쇄기술은 종이, 나침반, 화약과 함께 인류의 4대 발명품 중 하나다. 이 인쇄기술이 나노세계에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1993년 미국의 화학자 쿠메르와 화이트사이즈에 의해서다. 두 연구자는 알카네시올(alkanethiol)이라는 성분의 잉크를 금으로 코팅된 표면에 묻혔을 때 단분자층을 형성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나노잉크 공정을 살펴보면, 나노 임프린트 공정과 마찬가지로 우선 형틀 역할을 하는 단단한 물질에 원하는 나노구조물의 패턴을 형성시킨다. 그런 후 이 구조물의 표면에 나노잉크를 묻힌다. 이 형틀을 금, 은, 구리와 같은 금속 표면에 접촉시키면 형틀의 튀어나온 부분과 닿는 금속 표면에만 나노잉크 단분자층이 형성된다. 최종적으로 단분자층이 형성되지 않은 금속 표면을 깊게 파면 나노패턴이 제작된다. 이를 통해 35nm의 나노구조물 제작이 가능하다.
 

가상현실과 첨단센서 기술을 동원해 SPM을 쉽게 조작 할 수 있는 기술이 나노장비 개발사의 새로운 관심사다.



3차원 나노머신 제조

언뜻 보면 나노잉크가 나노임프란트보다 떨어지는 기술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노잉크 공정은 DNA나 단백질과 같은 생물 분자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물질을 금속 표면에 옮겨 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차세대 반도체공정에는 물론 바이오칩과 같은 생명기술 분야에 이를 적용하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나노잉크 공정에 대한 다양한 응용 연구는 IBM의 프로젝트 중 하나다. 그러나 아직 나노잉크 공정장비가 상업화되지는 않았다.

한편 나노머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3차원 나노입체형상을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수nm의 깊이만을 파낼 수 있어서 2차원 평면에 가까운 단순한 모양밖에 만들 수 없다. 최근에는 높이가 다르거나 폭이 서로 다른 3차원 나노입체를 가공하는 방법으로 펨토초(${10}^{-15}$초) 레이저를 사용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펨토초 레이저는 지속시간단위가 ${10}^{-15}$초로 매우 짧은 고에너지 초단파를 발생시킨다. 이를 이용해서 나노구조물의 깊이를 1백nm까지 파는 기술이 실현됐다.

또 재료의 표면특성을 측정하는데 쓰이는 SPM의 탐침을 다이아몬드와 같은 강도가 큰 물질로 만들어 나노가공에 응용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실험실 수준에 머물러 있는 3차원 나노가공 기술이 상용화될 때 비로소 나노산업이 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록 기술개발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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