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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원숭이 수컷은 왜 빨간 색을 보지 못할까



다람쥐원숭이 수컷은 왜 빨간 색을 보지 못할까


여러분은 오감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분들이 시각을 꼽을 겁니다. 실제로 인간의 뇌가 처리하는 정보의 약 80%가 시각이라고 합니다. 특히 색을 구분하는 ‘색각’은 현대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적록색약인 사람은 교통신호를 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하지만 인류가 처음부터 3원색을 구분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획득한 능력이지요. 포유류 중에서도 우리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만 3원색을 구분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보릿고개 넘기는 데 중요한 무화과의 어린잎이 붉어졌기 때문?


영장류는 왜 이런 색각이 필요했을까요? 과학저술가인 그랜트 알렌은 1879년, 자신의 저서에서 그럴듯한 가설을 소개했습니다. 색각이 발달하면 빨갛고 노랗게 잘 익은 과일을 찾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3원색을 구분하는 형질이 자연선택됐다는 겁니다. 하지만 3원색을 구분하는 데도 불구하고, 덜 익은 푸른 과일이나 초록색 나뭇잎만 먹는 ‘콜로비네원숭이’ 같은 무리가 존재합니다. 알렌의 가설대로라면 이들에겐 색 구분능력이 없어야 되겠지요.


또 다른 과학자는 영장류의 색각이 과일이 아닌, 옅은 붉은색을 띠는 어린잎을 찾기 위해 진화한 능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어린잎은 부드러워 소화가 잘되고 영양도 풍부하기 때문에 영장류의 중요한 식량이지요. 이는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에요. 실제로 열대우림의 수많은 나무들의 어린잎이 붉은색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시카고대 웬슝 리 교수는 무화과와 야자나무의 고고학적 분포를 연구해 흥미로운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필수중요자원’이라는 개념을 소개했어요. 이는 과일이 부족한 ‘보릿고개’ 시기에 초식동물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식물을 의미합니다. 리 교수에 따르면, 신생대 초기의 영장류들은 초록색만 띠는 필수중요자원(무화과와 야자나무)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에 원래는 3원색 구분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생대 에오세와 올리고세(약 4000~3000만 년 전)에 이르러 이들 필수중요자원의 어린잎이 붉은색으로 바뀌었고, 비슷한 시기(약 3500만 년 전)에 구세계원숭이 무리에서 색각 유전자가 생겼다는 겁니다. 결국 두 사건이 깊이 연관돼 있다는 주장이지요. 하지만 과일 또는 어린잎에 대한 가설 중 어느 한쪽이 맞다고 주장할 만한 완벽한 근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색각 능력과 옵신 유전자

엄마는 세 가지 색, 아들은 두 가지 색만 본다


본격적인 연구는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됐습니다. 과학자들은 영장류마다 색각 능력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1968년 11월 미국 인디아나대 러셀 발로이스와 텍사스 대 제랄드 야콥스 교수는 신세계원숭이인 ‘다람쥐원숭이’와 구세계원숭이인 ‘마카카’를 비교해, 이들의 색각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를 세계적인 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그 후로 인간을 비롯한 유인원과 구세계원숭이는 모두 3원색을 본다는 사실이 밝혔습니다. 신세계원숭이의 경우 같은 종 안에서도 개체별로 색각이 제각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지요. 가령 엄마는 3원색을 보는데 아들은 두 가지 색만 볼 줄 알았던 거예요. 물론 예외도 발견됐습니다. ‘짖는원숭이’는 개체별 차이 없이 모두 3원색을 구분할 수 있었고, ‘밤원숭이’는 모든 개체가 3원색을 볼 수 없었습니다(64쪽 인포그래픽 참고).


영장류 중 가장 오래된 원시원숭이는 대부분 두 색만 구분하거나 아예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예외가 발견됐습니다. 원시원숭이에 속하는 ‘시파카’ 한 종과 ‘여우원숭이’ 한 종이 3원색을 구분할 수 있었던 거예요. 단, 신세계원숭이처럼 색각이 개체마다 달라서 일부만 3원색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색각과 후각이 연관돼 있다?


원인은 X염색체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걸까요? 초기에는 영장류 색각 연구가 주로 행동과 생태 관찰로 이뤄졌기 때문에 더 자세히 밝히기는 어려웠습니다. 유전자나 DNA를 연구하는 기술이 부족했거든요. 그러던 1984년, 미국 스탠포드대 제레미 나싼스와 데이비드 호그네스 교수가 색각에 관여하는 ‘인간 옵신유전자’의 서열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습니다. 이로써 영장류의 색각에 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확장됐습니다.


그 결과,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구세계원숭이와 신세계원숭이의 색각은 유전자부터 근본적으로 달랐던 겁니다. 구세계원숭이는 세 종류의 옵신 유전자를 갖고 있었어요. 각각 서로 다른 파장의 빛에 반응했지요. 반면, 신세계원숭이는 X염색체 위에 한 종류의 옵신 유전자가 있었습니다. 이 유전자가 발현되면 2가지 색을 구분할 수 있었지요. 즉 신세계원숭이 수컷은 X염색체가 하나이기 때문에 무조건 두 색만 구분할 수 있는 반면, 암컷은 서로 다른 X염색체를 가진 경우 3원색을 구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64쪽 인포그래픽 참고). 앞서 소개했던 신세계원숭이 중 엄마와 아들의 색각이 달랐던 이유입니다. 원시원숭이 중 3원색을 구분하는 일부 종들도 신세계원숭이처럼 X염색체에 하나의 옵신 유전자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세계원숭이 중 모든 개체가 3원색을 볼 수 있었던 짖는원숭이는 어떻게 된 걸까요? 연구자들은 짖는원숭이의 유전자 서열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특이하게도 짖는원숭이는 신세계원숭이임에도 구세계원숭이처럼 3개의 서로 다른 옵신 유전자를 갖고 있었지요(64쪽 인포그래픽 참고).



구세계 원숭이는 X염색체 위에 두 종류의 옵신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모든 개체가 3원색을 본다.


3500만 년 전 어느 날, 색을 보게 되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다양한 유전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위해 옛날 원숭이 화석까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미국 뉴욕주립대 크리스토퍼 헤시와 칼럼 로스 교수팀이 원숭이 화석의 두개골을 분석해 눈의 구조를 재구성했습니다. 그 결과, 과거 영장류 조상이 야행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영장류 조상은 3원색을 볼 수 없었다는 간접적인 증거지요. 밤에는 주로 막대세포가 활동하기 때문에 색을 보는 데 쓰이는 원추세포가 활성화되지 않고, 따라서 원추세포가 진화 과정에서 선택되고 발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가장 오래된 무리인 원시원숭이가 대부분 3원색을 볼 수 없다는 사실과 이런 화석 연구 결과로부터 초기 영장류가 3원색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증명됐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진 색각 유전자, 즉 옵신 유전자는 초기 영장류가 탄생한 이후 오랜 진화 과정 도중에 획득했다는 얘기가 되지요.


 
짖는원숭이는 신세계원숭이 중 유일하게 모든 개체가 3원색을 본다. 구세계원숭이 조상에서 나타난 유전자중복현상이 짖는원숭이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색각이 생겼을까요? 그간 유전체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에 대한 해답도 나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500만 년 전 인간, 유인원, 구세계원숭이의 공동 조상에서 유전자중복현상이 생겼습니다. 초기 영장류 조상에게 가장 먼저 일어난 진화적 사건으로, 옵신 유전자가 여러 벌로 늘어난 것이지요. 그 뒤 독립적으로 신세계원숭이 옵신 유전자에서 염기서열이 변하는 다형성이 발생했고, 짖는원숭이의 조상에서도 독립적으로 유전자중복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유전적인 변화가 영장류마다 생겨나면서 지금의 각기 다른 형태로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장류 종별 색각] 신세계원숭이와 구세계원숭이는 X염색체에 위치하는 옵신유전자(녹색과 빨간색) 차이로 인해 색각이 다르다. 파란색 감지 유전자(7번 염색체에 위치)는 공통이다.


2색각(왼쪽)과 3색각을 가진 원숭이의 시야.


색각에 대한 논쟁은 현재 진행형



지금도 영장류의 색각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과학자들이 같은 종 안에서도 3원색 구분 능력을 가진 개체와 가지지 못한 개체가 구분되는 신세계원숭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세계원숭이에 대한 가설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3원색 구분 능력이 우월하다는 주장과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주장입니다. 전자는 붉은색 계통의 잘 익은 과일이나 어린잎을 찾는 능력, 교미상대를 찾는 능력 등을 고려했을 때 3원색 구분 능력이 우월한 형질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보호색으로 위장한 곤충 같은 먹이를 찾는 데에는 오히려 3원색 구분 능력이 방해가 된다고 반박하는 학자들도 있지요.


올해만 해도 결론이 서로 다른 논문 두 편이 나란히 발표됐습니다. 2014년 ‘미국영장류학회지’에는 3원색 구분 능력이 포식자를 피하는 데도 매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반면, 지난 1월 저널 ‘플로스원’에는 신세계원숭이를 26년 간 장기 관찰한 결과 3원색 구분 능력은 생존이나 번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논문이 게재됐습니다.


이런 논쟁만 봐도 알겠지만, 수천만 년 동안 진화한 역사를 현재의 단편적 증거들로부터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특히 원숭이처럼 다양한 종이 다양한 서식처에 살면서, 미스터리가 많은 경우는 더욱 어렵습니다. 과연 무엇이 색을 구분하지 못하던 우리 조상들을 현재의 모습으로 이끌었을까요. 이런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 해답을 제시하는 날이 올 겁니다. 많은 영장류학자들이 이 숙제를 풀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열대 우림을 누비고 있습니다.


 
3500만 년 전 구세계원숭이 조상에서 유전자중복현상이 발생한 결과, 침팬지와 인류를 비롯한 구세계원숭이는 모두 3원색을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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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우아영 | 글 허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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