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LG, 삼성, 소니, 샤프, 필립스, 파이오니어 등 9사는 지난 이른봄 ‘블루레이’(Blu-Ray)라는 대용량 광디스크 저장 매체를 발표했다. 이 9개사는 공교롭게도 모두 DVD 포럼의 회원사. 그동안 의장 노릇을 도맡았던 DVD 규격의 산파 도시바는 이 명단에서 빠져 있다. 일종의 쿠데타였다. 이 쿠데타의 계기는 DVD-R, DVD-RW, DVD+RW 등 리더십 부재로 인한 규격 난립. 이 덕에 저장매체로서의 DVD가 답보에 빠지고 말았다는 인식이 들 수 있으나, 작전명 블루레이가 암시하듯 이들을 움직인 것은 ‘청색 혁명’이었다. DVD 업계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는 회군의 배후는 파랑이라는 색깔이었던 것이다.
● ● 10년 전의 밤거리를 회상해보자. 어둠을 수놓던 불빛은 주로 적색과 녹색이었다. 도심의 빌딩에 대형 전광 모니터가 걸리기 시작한 시절, 이들은 역시 적색과 녹색 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색은 색이로되 어눌하기만 한 2원색의 표현력은 시각적 한계를 강요한다. 청색만 있다면 빛의 3원색이 갖춰짐으로써 총천연색의 표현이 가능할텐데….
● ● 푸르름을 간절히 원했지만 어째 쉬운 기술이 아니었다. 청색 발광의 꿈은 20세기 중에는 무리라는 것이 지론이었다. 교차로에서 지하도에서 푸르름의 결핍에 시달리던 20세기의 밤은 청색에 대한 집단적 그리움 속에 빨강과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 ● 1993년 일본의 지방 소재 일개 공업사의 연구원 나까무라 슈지(中村修二)는 세계 최초로 청색 발광 다이오드를 상용화한다. 대기업도 답보를 거듭하던 과제였기에 전세계는 경악하고, 그는 탄력을 받아 후일 청색 반도체 레이저를 완성하는 쾌거를 일으켜 청색이라는 색을 어두움 속으로부터 해방시킨다.
● ● 무한한 색상의 자유로움이 전자업계에 도래함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이 기쁨에 대한 반동에서일까. 유난히 청색 불빛은 쿨하게 여겨지기 시작했고, 푸른 네온 즉 아르곤 레이저, 냉음극형광램프는 PC와 자동차를 꾸미는 멋쟁이 튜닝 아이템으로 덩달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으로 PC 케이스를 휘감고, 트렁크를 열면 청색 라인이 고급 앰프를 감싸며, 핸드폰의 파란불 착신 액세서리를 자랑하는 풍경은 마니아의 특별한 사치가 됐다. 청색은 멋있음을 규정한 21세기식 선물인 것이었다.
● ● 그러나 청색의 발견은 우리에게 단지 시각적인 풍요로움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단순한 과학 상식을 기억한다면 IT업계의 판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직감할 것이다. 그렇다. 청색은 적색에 비해 파장이 짧다. 파장이 짧기에 이 빛이 훑을 수 있는 밀도가 높아진다.
즉 청색 레이저는 컴팩트 디스크와 레이저 프린터에 사용되는 적색에 비해 적게는 두배에서 많게는 네배까지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검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한다. 동등한 가격에 몇배의 해상도를 과시하는 레이저 프린터가 탄생하며, CD, DVD와 동일한 크기에 저장능력을 향상시킨 매체가 등장하게 된다. 블루레이는 이러한 기술을 등에 업은 청팀의 구체적인 반격이었던 것이다.
● ● DVD의 5배에 달하는 27GB의 용량, 디지털 하이비전의 녹화 수요를 예측해 ROM보다 RAM 방식 저장매체를 선행 발표하는 등 규격과 사양은 멋들어진 블루레이지만, 상용화에 대해서는 각사 모두 우물쭈물하고 있다.
● ● 그 이유는 다시 청색. 아직 여명기이기에 현 기술 단계로는 수명이 겨우 수백시간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팽배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까무라씨의 바로 그 회사가 특허를 소유하고 있기에, 본격 보급에 앞서 한 회사의 제조만으로 수급이 가능할까라는 염려가 무겁다.
마쯔시타는 적색 레이저의 파장을 반으로 줄여 실현한 청자색 레이저로 블루레이의 파장 규격에 맞춰보려 하고, 소니는 아니꼬와서일까 독자적 청색 레이저 개발을 이미 시작했다. 이렇듯 청색빛은 업계의 탐나는 보석인 것이다.
● ● 그러면 청색 혁명의 선봉에 섰던 나까무라씨는 어떻게 됐을까. 그가 청색을 뿜어내기 위해 취득한 특허는 1백건을 넘지만 이에 대한 특별 보수는 건당 20만원선. 이에 반해 그의 회사는 청색 다이오드만으로 누계 1조7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얻었다.
● ● ‘슬레이브(slave) 나까무라’라 놀림 받던 그는 프로야구 선수처럼 프리 에이전트를 선언, 미국 UC산타바바라대 교수로 취임하며 미국 경쟁사의 연구원직을 수락한다. 급기야 20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고소하고 또 고소 당하는 전사로 변신하게 된다. ‘이루어낸 일에 대해 대우받는 기술자’로 남기 위한 혁명을 홀로 다시 시작한 것이다.
● ● 세상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길 조금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것이 테크놀로지 혁명의 지향점이겠지만, 혁명이란 모름지기 한 개인의 집념에서 시작, 욕망에 의해 성장하는 것이고, 청색 혁명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