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얼마나 얇은 막을 만들 수 있을까. 아주 얇은 막을 만들다보면 결국 원자 한층으로 된 막을 만들수 있지 않을까. 과학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다. 그런데 이 호기심을 푸는 일은 단순히 개인적인 만족을 얻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원자막은 획기적인 반도체나 DNA칩 개발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자막은 최근 첨단과학의 신데렐라로 떠오른‘나노과학’의 핵심분야 중 하나다.
관심사도 많고 주제도 다양
KAIST 화학과 곽주현 교수가 이끄는 전기화학연구실은 이와 같은 과학적인 호기심을 푸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응용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새로운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테크놀로지 발달의 기본을 제공하는 자연과학의 본업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연구실에서 관심을 갖는 분야는 얇은 막(박막)과 관련된 다양한 전기화학 현상이다. 여기서전기화학(elctrochemistry)은 전자의 흐름과 이에 따르는 화학 변화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화학의 한분야다. 곽교수는“사실 전자가 움직이지 않는 화학은 없다”면서“그래서 관심사가 많고 연구주제도 다양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전기화학연구실에서 거둔 다양한 연구 성과를 대변하는 말이다.
연구실이 거둔 최근 성과 중 눈에 띄는 것은 미래의 핵심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연료전지와 관련된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와 산소가 발생하는데, 거꾸로 수소(${H}_{2}$)를 산화시키고 산소(${O}_{2}$)를 환원시키면 전류가 발생한다. 수소와 산소가 갖고 있는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킨다는 꿈의 발전장치인 연료전지의 원리다. 그런데 현재 연료전지는 제작비용이 만만치 않아 실용화가 늦어지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산소 환원반응을 위해 전극으로 사용되는 백금이 고가이기 때문이다.
연구실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 표면에 비스무스(Bi), 탈륨(Tl), 납(Pb)의 원자막을 한층으로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덮었을 때 보이는 백금과 같은 촉매효과의 반응 메커니즘을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전기 화학적 주사터널링현미경(EC-STM)으로 원자수준에서 전극 표면 구조의 변화를 관찰해 얻은 결과였다.
특히 완전히 덮지 않고, 2개 이상의 금속이 공존하는 원자막을 형성할 경우, 즉 원자수준에서 만든 합금을 이용하면 전극 역할이 더 효율적 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연구실에서 제공한 실마리를 바탕으로 공학자들은 백금을 대체할 전극을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10억분의 1g의 변화 측정하는 저울 개발
반도체는 실리콘으로 된 얇은 판(웨이퍼)을 이용해만든다. 이때 얇고 가지런히 만들어진 판을 사용해야반도체를 많이 만들 수 있다. 최근 연구실에서는 기판에 금속원자를 가지런히 성장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금속 원자막 도금에 관한 이 연구는 나노박막 제조의 핵심 기술이어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근 DNA칩 제조와 관련된 연구성과도 눈에 띈다. 화학결합에 의해 자동으로 형성되는 분자막을‘자기조립분자막’이라 한다. 연구실에서는 자기조립 분자막에 황(S)을 매개로 DNA를 붙이면서, 분자막 형성을 조절할 수 있는 전기화학적 방법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DNA칩, 단백질칩등나노바이오칩에활용될수있다.
한편 수정은 고유 진동수 때문에 정밀한 시계 제작에 사용되는 물질이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한 미세 수정 저울은 수정판 위에 붙어있는 약 1㎛(${10}^{-6}$m) 정도 박막의 미세한 무게변화를 측정할 수 있다. 약 1ng(10억분의 1g) 정밀도로 무게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수준 이다. 미세 수정 저울은 이온의 이동에 의해 일어나는 고분자 박막의 무게 변화까지 측정할 수 있다. 즉 이온들의 고분자로 이동하는 상황을 측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실에서는 교류를 사용하는 미세 수정 저울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고분자 박막에서의 복잡한 이온 이동 메커니즘을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수 ng의 변화를 측정하는 나노과학의 기본 도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외에도 전기화학연구실에서 거둔 연구성과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곽주현 교수를 중심으로 자연과학의 입장에서 새로운 문제 풀기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전기화학연구실에는 현재 박사과정생 5명, 석사과정생 4명이 참여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