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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석을 연구할까

지구의 역사 온몸으로 기록한 메신저

화석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학문이 고생물학이다. 고생물학자는 화석에서 지구의 역사와 진화의 증거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고생물학자는 화석에 매료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화석’이라는 용어 자체의 뜻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화석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명확하게 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자연사 박물관이 없어서 화석을 직접 접해볼 기회가 적고, 또한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제도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일까. 어떤 사람은 화석을 아주 오래된 희귀한 골동품의 한 부류로 생각해 화석을 수집해 재산증식을 꾀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 생활과는 상관이 없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일로 치부 해버리는 듯하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쥬라기 공원’이나‘잃어버린 세계’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공룡들의 복원이 바로 화석연구에 의해 가능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석유나 천연가스가 실은 옛날에 살았던 동·식물 플랑크톤들이 액체나 기체 상태로 보존된 일종의 화석이다. 이처럼 화석은 희귀한 물건이 아니며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매우 흥미로운 대상인 셈이다.


원시인 유적지에서도 출토

사람은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주변의 신기한 것 그리고 숨겨진 것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아마도 화석에 대한 최초의 연구도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하지않았을까.

우리 인류가 화석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기록에 따르면, 약 8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프랑스의 한 동굴에서 조개 껍질과 산호를 포함한 화석 무더기가 발견됐다. 그리고 그 후대인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에서도 화석이 심심찮게 출토됐다. 이 원시시대의 인류는 왜 화석을 모았을까. 기묘한 돌덩어리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쁜 모양이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어떤 주술적 의미를 지닌것은 아닐까.

기원전5, 6세기의학자중에는육지의 암석에 바다의 조개 화석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그 지역이 한때 바다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후 약 2천년 동안 사람들이 화석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거나 학문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기록은 별로 없다.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자연을 새로운 시각에서바라보게 됐다. 당시 대표적인 학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는 화석을 옛날에 살았던 생물의 유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높은 산에서 조개 화석을 발견하는 것에대해 대륙이 오르고 내리고 했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화석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은 화석을 노아의 홍수 때 죽은 불쌍한 생물의 유해라고만 해석했다.

화석에 대한 인식이 바르게 잡힌 것은 자연과학에 현대적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19세기 초 이후의 일이다. 현재 화석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의 한 분야를 고생물학(paleontology)이라고한다. 따라서 학문으로서 고생물학의 역사는 2백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고생물학자들은 왜 화석을 연구할까.


지구 역사책의 페이지 기능

보통 암석의 나이를 측정할 때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속도를 이용한다. 암석을 이루고 있는 광물이 마그마로부터 생성된 후 광물 속에 들어있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속도를 이용해 암석의 생성시기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암석의 연령 측정은 자연히 화강암이나 변성암에 국한되며, 보통 퇴적암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퇴적암에 들어있는 광물의 방사성 연령을 측정하면 퇴적암이 쌓인 시기가 아니라 광물이 생성된 시기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지표면에 노출돼 있는 암석의 약75%는퇴적암이다. 따라서지구의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이 퇴적암의 나이, 즉 퇴적암이 쌓인 시기를 꼭 알아내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화석 연구의 의미가 숨어 있다. 화석을통해 퇴적암의 나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화석 연구에 의해 퇴적암의 나이를 알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낸 학자는 영국의 윌리암 스미스(1769-1839)다. 스미스의 원래 직업은 측량기사였다. 당시 영국은 한창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석탄이나 기타 생필품의 운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영국의 여러 지역에 운하 건설을 위한 측량과 지표조사가 활발히 이뤄지고있었다.

스미스는 자연스럽게 토목공사의 현장에서 드러난 화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화석을 채집하면서 화석이 산출되는 지역과 암석에 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스미스는 특정한 암석에는 항상 특정한 화석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중에는 화석만 보고도 그 화석이 어느 지역 어떤 암석에서 나온다는 것을 정확하게 맞춰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바꿔 말하면 스미스는 암석의 시기가 다르면 그 암석에 들어있는 화석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현재이 원리는‘동물군 천이의 법칙’(law offaunal succession)이라고 불리며 현대 지질학이 태동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지구의 역사를 편찬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바로 이 정보를 화석이 갖고 있는 것이다. 화석은 암석에 기록된 방대한 지구의 역사책 에서 페이지 기능을 담당하는 셈이다.

현재 지구의 역사를 구분할 때 여러 지질시대의 이름이 사용된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그리고 캄브리아기, 석탄기, 쥐라기 등이 그것이다. 사실 이러한 지질시대의 이름은 일찍이 19세기 중반, 화석 연구에 의해 그 골격이 갖춰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강원도 태백과 영월지방에 분포하는 암석의 지질시대가 캄브리아기라는 사실은 그 지역의 암석에서 삼엽충이 나오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경상도 지방의 암석이 중생대에 쌓였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그곳에서 공룡의 화석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지역에서 화석을 발견하면 곧바로 그 지방에 분포하는 암석의 나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지질시대의 구분이 교과서에 소개돼 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고생대는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그리고페름기로 나뉘는데, 아직도 각 시대를 구분하는 경계에 대한 정확한 시기가 결정되지 않았다.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의 경계는 지난해에 결정됐을 정도다. 지금도 더욱 정확한 지질시대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전세계의 고생물학자들이 연구를 계속 수행중이며, 각 시대마다 전문가로 구성된 층서위원회에서 주요 연구지역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투표해 가장 적합한 지역을 지질시대 경계의 표준지역으로 결정하고 있다.
 

경상남도 남해 해안에 남아있는 1억년 전 공룡발자국 화석. 이 를 통해 이 지역 암석이 중생대에 쌓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화의 직접적 증거

필자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삼엽충을 연구하면서 국제 캄브리아기 층서위원회의 선거위원으로 캄브리아기의 시대구분 결정에참여하고 있다. 매년 개최되는 이 회의는 각국의 캄브리아기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장이다. 올해는 프랑스에서 개최되며 2003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화석은 진화 연구에서도 유용한 대상이다.

찰스다윈(1809-1882)이 진화론을 발표한 것은 1859의 일이다. 생물의 진화가 매우 긴기간 동안 일어난다는 특성을 이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진화론이 발표된 이후 약 1백년 동안 화석의 연구 내용을 진화론과 연결해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다. 현생생물학에서는 박테리아, 초파리, 그리고 실험실의 쥐 연구를 통해 진화와 관련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몇세대에 해당하는 짧은 기간에 일어나는 변화에서 진화이론을 객관화시키는 데는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뿐만 아니라 진화와 관련된 연구는일반적으로 새로운 생물이 형성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35억년 전 처음으로 지구에 나타난 단세포 원핵 생물에서 출발해 현재와 같이 다양하고 복잡한 생물계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쉽지 않다. 분명 생물계의 진화는 단순히 새로운 생물의 출현에 의해서만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생물들이 사라져가는 과정도 중요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화석 연구는 새로운 생물의 출현뿐 아니라 생물의 멸종과정에 대한 직접적 증거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일찍이 찰스 다윈이 진화론과 관련해 가장 설명하기 어려워했던 부분 중 하나가 조상종과 후손종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간단계의 생물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화석 기록이 원래 불완전하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가 진전된다고 해도 중간단계의 화석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1972년 하바드대 고생물학자인 굴드와 엘드리지는 화석기록과 관련된 생물진화의 이론으로‘단속평형설’(punctuatedequilibrium)을 제창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즉 어떤 생물에서 새로운 종류의 생물로 진화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수천년 또는 수만년이 걸리는데 반해 일단 새롭게 태어난 종은 오랜 동안(보통 수백만년) 거의 형태적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층의 퇴적기록에서 보면 수천년 또는 수만년의 기간에 쌓인 지층의 두께는 수cm에 불과하다.

따라서 야외 조사에서 기록되는 화석의 산출 양상은 마치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순식간에 변하는 것처럼 표현된 셈이다. 물론 이 이론이 모든 생물의 진화 양상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화석의 산출 양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 중요한 이론이며현재 이 이론을 더욱 다듬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5억년 전 한반도 적도 부근에 위치

이제까지의 진화이론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종의 출현에 주목해 왔다. 그런데 1980년 시카고대 셉코스키는 캄브리아기 이후 생물의 종다양성 연구를 바탕으로 생물의 진화에서 멸종의 중요성을 강조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과거 5억여년 동안의 지구 역사를 통해 5번의 커다란 멸종시기가 있었으며, 이 멸종시기가 끝날 때마다 지구 생물계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음을 보여줬다. 이 연구 발표 이후, 멸종의 과정과 원인 그리고 그 영향에 관한 연구는 고생물학 분야의 중요한 주제가 됐다.

생물 멸종의 연구과정에서 밝혀진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가 이제까지 있었던 어떤 멸종시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많은 생물들이 멸종하고 있는 6번째의 대량멸종시대라는 점이다(과학동아 2001년 10월호 참조). 20세기 후반에 고생물학에서 제안된 단속평형설과 대량멸종에 관한 이론은 진화생물학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좀더 구체적이고 분석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이 이론에 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 지구에는 다양한 생물이 다양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적도의 열대 우림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물이 살고 있으며, 북극과 남극의 얼음 속, 태평양 깊은 바다, 그리고 1백℃를 넘는 뜨거운 온천물 속에도 생물은 존재한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서식 장소에 따라 살고 있는 생물의 내용은 크게 다르다. 대륙마다 서식하는 생물의 종류도 다르다.

또한 같은 대륙에서도 지역과 수심에 따라서 서식 종류가 다르다. 마찬가지로 옛날에도 대륙에 따라 그리고 수심에 따라 사는 생물들의 모습이 달랐을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생물 분포의 특성을 잘 분석하면, 수백만년 전 또는 수억년 전의 지구환경을 복원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지금 우리 한반도는 아시아 동쪽 끝자락의 중위도 지방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삼엽충 화석의 연구에 따르면, 5억년 전 캄브리아기에는 적도 부근에 위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반도의 모습도 지금처럼 호랑이가 웅크린 모습이 아니라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 대부분은 북중국과 연결돼 있었고, 현재의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일부는 남중국과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진화의 직접적 증거



화석 안내로 과거 여행하는 고생물학자

물론 당시 지구의 대륙 분포도 지금과 사뭇 달랐다. 현재의 강원도 태백-영월 일대는염도가 높고 얕은 바다로 넓은 조간대를 이루고 있어 마치 현재의 페르샤만과 비슷한 환경 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옛날 대륙의 윤곽과 환경을 재현하는데 화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옛 지구의 모습을 복원하는 일이 화석 자료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지질학의 여러 분야에서 제공되는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가능하다.

물론 학술적으로 화석 연구가 지구의 역사와 진화론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고생물학자가 이 길을 선택한 배경에는 단순히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만은 아니다. 사실은 화석을 사랑하고 화석 그 자체에 대해 매료됐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강원도 깊은 산 속의 암석에서 5억년전의 삼엽충, 조개껍질, 그리고 정체도 알 수 없는 기묘한 생물을 만났을 때(특히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생물인 경우) 느끼는 희열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캄브리아기의 삼엽충을 찾아 캐나다의 록키산맥, 미국의 서부 사막지대, 그리고 중국의 양자강 유역을 탐사하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5억년 전의 지구를 여행한다는 착각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화석이라는 안내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실험실에서 화석의 정체를 하나하나 벗겨가면서 수억년 전 생물을 살려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학문적 성취감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2002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최덕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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