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전자컴퓨터 속 반도체 칩은 전자의 흐름을 통제함으로써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한다. 만약 전자 대신 빛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보는 엄청난 광속으로 달릴 것이다. 차세대 광컴퓨터가 꿈꾸는 그림이다. 이를 위한 학문이‘광전자학’이다.
지난해 가을 인텔은 펜티엄4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당시 처리속도가 1.4GHz(기가헤르츠=${10}^{9}$헤르츠), 1.5GHz인 두모델을 선보였다. 그 후 연이어 1.6GHz에서 2.2GHz까지 더 빠른 속도를 뽐내는 펜티엄4 프로세서의 모델이 출시됐다. 얼마 전 소식에는 3GHz의 모델이 등장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제는 MHz(메가헤르츠=${10}^{6}$헤르츠) 시대를 벗어나 GHz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어느 정도의 처리속도를 가졌을까. 1971년 인텔이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세상에 처음 등장시켰을 때, 당시 모델인 인텔 4004의 처리속도는 고작 1백8KHz(킬로헤르츠=${10}^{3}$헤르츠)이었다. 그러니까 30여년의 역사 동안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처리속도가 무려 수만배로 증가한 셈이다.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우리가 갖는 컴퓨터의 성능을 크게 좌우한다. 또한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 이후 태어난 집적회로의 발전을 보여주는 반도체 기술의 대표적인 주역이기도 하다. 엄지손톱 만한 크기의 실리콘 칩 위에 더 많은 요소를 집어넣으려는 그동안의 소형화와 집적화의 결과가 집결돼 있다. 인텔 4004에 그려 넣은 선폭이 10μm(마이크로미터=${10}^{-6}$m)이었으나 인텔 펜티엄4의 경우는 0.13μm, 즉 1백30nm(나노미터=${10}^{-9}$m) 수준이다.
차세대 광컴퓨터 실현시킨다
그 결과, 컴퓨터로 같은 일을 처리하는데 점점 더 짧은 시간을 투자해도 된다. 또는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반도체 칩을 통한 정보처리는 실제로 전자의 흐름을 조절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래서 반도체공학은 전자공학의 큰 분야에 속한다.
그런데 전자공학에서는 현재 전자가 아닌 빛으로 전자소자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이를 통해 차세대 컴퓨터의 하나인 광컴퓨터를 만든다는 웅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전자의 흐름을 빛으로 대신하려는 까닭은 간단하다.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집적화만으로는 불가능한 극한의 속도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빛보다 빠른 것은 없지 않는가. 예를 들어 정보를 전송할 때, 전선을 지나가는 전자의 이동속도는 전압에 비례하지만, 대략 빛 속도의 7백-8백분의 1이다.
하지만 전자가 하던 일을 빛으로 대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완전히 빛만으로 이뤄지는 일은 아직도 머나먼 일이다. 때문에 실제로는 빛과 전자가 함께 동원돼 여러가지 기능을 갖는 소자를 개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분야를‘광전자학’(optoelectronics)이라고 부른다. 빛을다루는 광학과 전자를 다루는 전자공학이 만난 퓨전학문인 셈이다.
광전자학이라는 말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분야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광전자학의 발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전세계의 정보를 컴퓨터 앞에서 볼 수 있게 해준 인터넷 혁명이 대표적인 예다. 인터넷으로 수분만에 해외 사이트로부터 상당한 용량의 동영상을 다운받을 수 있다. 이같은 고용량 초고속 통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광전송기술이 쓰인다. 전기적인 디지털 정보를 광신호로 전환해서 광섬유를 통해 전송하는 기술을 말함이다. 만약 오늘날 광전송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이 향상된다 하더라도, 정보혁명을 가져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광섬유 지나갈수록 약해지는 광신호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광전송기술’하면 광섬유만 떠올린다. 광신호를 광섬유 속에 넣어주기만 하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광섬유는 단지 광신호가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다.
광통신이 이뤄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광전송이 이뤄지기 위한 1단계는 광변환기로 전기신호를 광신호로 바꿔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광신호를 광섬유의 속으로 넣어서 멀리 전송한다. 그런데 광신호가 광섬유를 지나가면서 점차 약해진다. 때문에 중간에 신호를 증폭해주기 위해 중계기를 거쳐야 한다. 여기에서 광신호가 전기신호로 변환돼야 한다. 그리고 증폭 후 전기신호를 다시 광신호로 변환시켜 광섬유를 통과시킨다. 이 때문에 전송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광섬유라도 최소 50km마다 한번씩 신호가 증폭돼야 한다. 만약 우리나라 서울에서 일본의 도쿄까지(직진 거리가 약 8백km) 광섬유로 월드컵 경기 정보를 전송하려면, 최초 16개의 중계기를 거쳐야 하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도착지 수신단말기에 정보가 다다르면, 최종적으로 광신호는 전기신호로 변환된다. 이처럼 광통신기술은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런데 광전자학의 발전 덕으로 중계기의 증폭방식이 전기적 방식에서 곧바로 광 방식으로 바뀔 수 있게 됐다. 그 주인공은 EDFA(Erbium Doped Fiber Amplifier)라는 장치로, 어븀이라는 원소를 광섬유에 첨가시키고, 여기에 빛을 쪼여주면 원자의 에너지 준위가 높아지고 곧이어 다시 낮아지면서 빛을 방출한다. 이 방법으로 광신호를 전기신호로 변환시키지 않고 곧바로 증폭시킬 수 있다.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한해욱 교수는“EDFA는 전기적 변환과정을 생략하고 광신호를 바로 증폭시킨 혁신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EDFA처럼 광전자학은 기존의 전기적 방식 대신 광 방식으로 바꾸는 연구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한교수는“광전자학의 주요 관심 대상은 초집적도를 자랑하는 반도체 집적회로처럼 광집적회로를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집적회로는 말 그대로 광소자들을 이용해 만든 집적회로다. 30여년 간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집적화시켜 속도를 수만배로 향상시킨 꿈같은 일을 전자 대신 빛으로 이뤄보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로 전체 광시스템을 한개의 기판 위에 제작하고자 한다. 광집적회로는 1960년대 후반 미국 벨연구소에서 시작된 집적광학 연구로 부터 시작됐다.
더 작게, 더 빠르게, 더 효율 높게
광집적회로가 만들어지려면, 광원이 무척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자가 하던 일을 빛이 하려면 일차적으로 빛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광전자 분야에서 광원의 중요성은 그 역사의 시작을 결정할 정도다. 광전자 관련 잡지인 ‘레이저 포커스 월드’는 광전자 역사의 시작을 반도체 레이저가 탄생한 1962년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레이저는 반도체에 전류를 흘림으로써 레이저 빛을 발생하는 레이저의 한 종류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런 궁금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이미 고체나 기체와 같은 다른 종류의 레이저가 있음에도 광전자 분야에서는 왜 반도체 레이저에만 집착하느냐고말이다.
한개의 칩 위에 광원이 포함되려면 광원은 작고 효율이 좋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광신호를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 바로 반도체 레이저가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때문에 광전자에서 중요한 광원이 된다. 반도체 레이저는 소형이고 비교적 값이 싸며, 응답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제어하기도 쉽다.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권오대 교수는 1997년에 수μA(마이크로암페어=${10}^{6}$A)라는 극미세 전류로 빛을 발생시키는 반도체 레이저를 개발하는데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비슷한 크기로 종전의 반도체 레이저는 빛을 발생시키는데 수mA(밀리암페어)의 전류가 요구됐다. 권교수는 종전의 반도체 레이저보다 요구 전류량을 1천분의 1로 획기적으로 줄인 셈이다.
이 연구의 의미는 단지 전류량을 1천분의 1로 줄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전류를 많이 먹는 종전의 반도체 레이저를 칩 위에서 작동시키면 칩이 과열돼 타버리므로 광집적회로에 쓰이기가 부적합하다. 권교수의 양자테라는 신형 반도체 레이저 개발은 미세한 레이저들이 D램 소자들과 문자그대로 나란히 박힌 광집적회로가 처음 태어난 것을 의미한다. 현재 과학기술부 국가지정연구실로 선정돼 더욱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중이다.
권교수는“이 연구결과에 대해 해외 연구진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국제 저널에서도 신중하게 검토한 뒤 게재했을 정도다”고 말했다. 그는“생애 최고의 연구를 발표하던 날,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선언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나노는 반도체 레이저에서 비롯
광전자학에서는 지금도 더 빠르고, 더 작으며, 효율 좋은 레이저를 개발하는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는 복잡한 양자물리와 나노기술이 동원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교수는 나노기술의 시작을 바로 반도체 레이저로 보고 있다. 반도체 레이저가 가능하려면 10nm보다 얇은 막을 만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광원 연구 외 다른 광전자 분야에서도 나노기술이 포함돼 있다. 한 예로 광신호가 지나가는 길을 만드는 연구를 살펴보자.
전자는 전선의 모양이 어떠하든 그 길을 따라 지나다닌다. 그래서 전선을 여러번 꼬거나, 수직으로 꺾어도 전자는 길을 잃는 일이 거의 없다. 따라서 전선을 칩 위에 다양한 모양으로 구성할 수 있어 칩을 쉽게 집적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빛은 길의 모양이 많이 꺾여 있으면 길 밖으로 새어나가고 만다. 광섬유를 심하게 구부리면 전반사가 일어나는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에 상당량의 빛은 밖으로 빠져나간다. 빛이 지나가는 길을 구부리거나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기 어렵다. 때문에 광집적화에 실질적인 어려움을 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원리로 빛이 지나가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 원리로 지금의 광섬유와 다른 구조를 갖는 물질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같은 물질을‘광결정’(photonic crystal)이라고 한다. 이 물질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나노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이처럼 차세대의 광전자학은 광학과 전자공학 기반 위에 첨단 분야인 양자물리나 나노기술과 같은 관련 지식이 요구되기도 하는, 아직은 변화를 거듭하는 학문이다. 그러기에 광전자는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야다. 특히 우리나라는 출발이 늦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광전자 분야는 전세계적으로 걸음마 단계다.“우리가 늦긴 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기에 지금이라도 부단히 좇아가면 그들을 앞설 수 있다”고 권교수는 말한다.
광전자를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은 우선 기초적인 지식을 탄탄히 쌓는 것이 좋다. 실제로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생 중에는 물리학을 학부로 전공한 경우가 종종 있다. 광전자의 경우, 아직 개발 단계이기 때문에 상당한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를 변화시키려는 꿈을 가진 미래 과학도라면 이 분야에 도전해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