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헤일-밥 대혜성 이후 가장 밝은 혜성이 새로 발견됐다. 바로 이케야-장 혜성. 3월에는 고도가 낮아 일반인이 관측하기 힘들었지만 4월 중순 이후에는 새벽 하늘에서 혜성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쌍안경으로 혜성 꼬리의 신비로움에 빠져보자
밤하늘에는 항상 다채로운 이벤트가 펼쳐진다. 대부분은 예정돼 있던 현상이다. 이들 천문현상은 행성들의 운동법칙이나 기타 물리법칙을 이용하면 미리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식이나 월식 같은 현상이 좋은 예다. 하지만 항상 사전에 알려져 있던 현상만 일어난다면 밤하늘을 관측하는 즐거움은 반감될 것이다. 천체관측의 진정한 재미는 예고되지 않았던 천문현상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이런 현상을 직접 체험할 때 더욱 그 신비에 매료된다. 밤하늘에서 벌어지는 돌발 이벤트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새로운 혜성의 출현이다.
최근 이케야-장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혜성이 말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많은 천체망원경이 밤하늘을 샅샅이 누비는 요즘 새로운 혜성이란 그리 특별한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1년에도 수십개씩 새로운 혜성이 발견되며 이전에 발견돼 그 움직임이 알려진 혜성 또한 수십개나 밤하늘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쌍안경이나 소형 망원경으로 관측할만한 밝은 혜성은 그리 흔치 않다. 더구나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밝은 혜성은 무척 드물다.
3등급에도 맨눈 관측 힘들었던 이유
이케야-장 혜성은 지난 1997년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던 대혜성 헤일-밥 이후 가장 밝은 혜성이다. 국내외 언론에서 보도하던 3월 이 혜성은 맨눈에 보일 만큼 밝았지만 고도가 낮아 일반인이 관측하기 힘들었다. 4월 중순 이후에는 새벽 높은 하늘에서 이케야-장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우주의 방랑자 혜성이 뿜어내는 신비를 느껴보자.
새로운 혜성은 지난 2월 1일 일본의 이케야(Ikeya)와 중국의 장(Zhang)이 발견했다. 이 혜성을 발견한 이케야씨는 196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케야-세키 혜성(1965S1)을 발견했던 유명한 사람이다. 혜성의 이름에는 발견자의 이름이 붙여지기 때문에 새로운 혜성의 이름도 이케야-장 혜성(C/2002C1)이라고 명명됐다. 이 혜성은 발견 당시 약 9등급으로 초저녁 서쪽하늘 낮은 곳에 위치했다.
모든 혜성은 우주공간에서 타원, 포물선, 쌍곡선 중 하나의 궤도를 그리면서 태양에 접근했다가 다시 멀어져간다. 태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때(근일점 통과시기)가 혜성의 일생 중 가장 화려한 시기다. 대개 가장 밝을 뿐만 아니라 꼬리도 가장 길다.
이케야-장 혜성의 경우 근일점 통과일은 3월 19일이었다. 이때 혜성은 태양에서 약 0.5AU(1AU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만큼 떨어진 곳을 지나갔다. 따라서 지금은 이케야-장 혜성이 태양에 접근했다가 점차 멀어져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19일 무렵 이케야-장 혜성의 밝기는 약 3등급에 달했다. 3등급이라면 맨눈으로도 충분히 보일 정도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혜성이 태양에 근접한 탓에 초저녁 해가 진 직후 금새 지평선 아래로 져버렸기 때문이다. 불과 10여분 정도 혜성을 관측할 수 있었다. 혜성을 관측할 수 있는 때에도 고도가 10° 정도로 워낙 낮아서 지평선에 산이나 건물이 없고 하늘이 매우 어두운 곳이 아니면 확인하기 어려웠다. 당시 혜성의 위치는 해가 진 직후 서쪽하늘 낮은 곳으로 물고기자리 부근이었다. 천체망원경으로는 혜성의 가늘고 긴 꼬리와 함께 작고 밝은 혜성의 머리(코마)를 볼 수 있었다.
높은 고도에 달빛 없는 때 노려라
혜성 관측의 첫걸음은 혜성의 위치를 확인하는데서 시작된다. 혜성을 보려면 일단 밤하늘 어디쯤에 혜성이 있는지 알아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혜성이 우주공간에서 태양에 접근했다가 멀어지는 동안 지구에 있는 우리에게 혜성은 어떤 움직임을 보일까.
이케야-장 혜성은 근일점을 통과한 후 점차 북쪽으로 이동했다. 혜성이 북쪽에 머무르는 4월 6일 이후부터는 새벽녘 동쪽하늘에서 관측하기 더 편리해졌다. 4월 중순 이후에는 새벽 박명시 고도가 30°를 넘어서기 시작하므로 관측조건이 대단히 좋아진다. 비록 혜성은 근일점을 통과해 전성기를 지났지만, 지구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밝기 저하는 그리 크지 않다. 이 혜성이 가장 북쪽으로 올라가는 때는 4월 25일 경으로 용자리 부근에 다다른다. 이 정도 위치면 우리나라에서는 혜성을 밤시간 내내 볼 수 있다. 이때 혜성은 밝기가 5등급 정도로 예상된다. 아마 이 무렵에도 하늘 조건만 좋다면 맨눈으로 그 존재를 확인하려고 시도해봄직하다.
5월에 이르러서도 혜성의 관측조건은 여전히 좋다. 혜성 관측시간은 새벽이 가장 좋아서 이 시간대에 혜성은 거의 하늘 꼭대기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이때 혜성은 좀더 어두워져 밝기가 6등급대로 떨어진다.
혜성의 움직임을 성도에서 살펴보자. 4월 초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북상중이던 혜성은 4월 중순 세페우스자리로 넘어가 4월 말에는 용자리에 이른다. 5월 초에는 용머리를 뜻하는 용자리 사각형을 지나가며 5월 중순에는 헤르쿨레스자리를 지난다. 5월 하순에는 왕관자리로 이동한다.
혜성은 달이 없는 밤하늘에서 제대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5월 중 달빛이 없는 기간은 5월 중순경이다. 따라서 이때 헤르쿨레스자리 주변에 위치하는 혜성을 주요 타깃으로 삼을 만하다.
사진과 달리 작고 희미한 모습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혜성은 거의 10년에 한번 정도 나타난다. 그만큼 드물다. 이케야-장 혜성의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관측장소·시간 등 모든 조건이 최상이 아니라면 사실상 맨눈으로 볼 수 없다. 때문에 이 혜성을 관측하려면 쌍안경이나 소형 망원경 같은 장비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먼저 쌍안경을 준비해보자.
우선 별자리지도인 성도에서 혜성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냥 막연히 어느 별자리에 혜성이 있다는 정도만으로는 절대 혜성을 찾을 수 없다. 혜성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고 그 위치의 별자리가 몇시에 가장 잘 보이는지, 또 달은 없는지 등을 고려해야만 혜성을 관측할 수 있다.
5월 15일을 예로 들어보자. 5월 15일 혜성의 위치는 밤하늘에서 적경 16h 41m, 적위 +42° 이다. 성도에서 찾아보면 이 위치는 헤르쿨레스자리에 있으며 정확한 위치는 H자를 이루는 에타(η)별 바로 위다. 즉 쌍안경으로 에타별을 찾으면 혜성은 에타별 약간 북쪽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 날 헤르쿨레스자리는 새벽에 가장 잘 보인다. 따라서 혜성 또한 새벽 3시 무렵에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사전에 이런 계획을 세운 다음, 밤에 날씨가 맑으면 혜성 관측을 시도한다.
혜성은 쌍안경에서 어떻게 보일까. 대단히 작고 희미한 모습이다. 혜성의 머리 부분은 뿌옇고 작은 둥근 모습을 하며, 뒤쪽으로 가는 꼬리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다른 별과는 확실히 구분되지만 사진에서처럼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혜성을 본 것만으로도 대단한 경험이 아닐까.
이번 놓치면 4백년 후 기약
천체를 관측하는데 천체망원경이 쌍안경보다 더 좋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선명한 별과 달리 혜성처럼 희미하고 뿌연 모습을 가진 천체의 경우에는 대개 천체망원경보다 쌍안경이 유리하다. 천체망원경에서처럼 배율을 높이면 천체의 표면 밝기가 더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어두운 혜성 꼬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혜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소형 천체망원경보다 쌍안경이 혜성을 확인하기에 좋다.
물론 천체망원경에서는 쌍안경과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혜성 꼬리의 모습을 보려면 쌍안경이 훨씬 더 유리하지만, 소형 망원경에서는 혜성의 머리부분(코마)을 좀더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코마를 잘 보면 중앙으로 갈수록 좀더 밝아지고 코마의 한쪽 끝은 꼬리와 연결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혜성을 약 1시간 간격으로 관측하면 혜성이 망원경으로 보이는 별들 사이에서 조금 움직였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혜성이 금새 나타났다가 화살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혜성은 한번 나타나면 서너달 정도에 걸쳐 밤하늘을 천천히 가로지른다.
이케야-장 혜성은 매우 긴 주기를 가진 혜성이다. 현재 그 주기는 대략 4백년 정도로 예측된다. 지금 보는 이 혜성의 모습을 오래 전 우리 조상도 봤고, 먼 훗날 4백년쯤 뒤에 우리 후손 또한 볼 것 이라고 생각하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저 혜성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참으로 신비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