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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디어 로봇 르네상스 열었다

“뚜벅 뚜벅 뚜벅···”.

스위치가 켜지자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 한 발을 내디디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 로봇의 이름은 ‘휴보’(HUBO).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팀이 개발해 2004년 12월말 언론에 공개한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이다(오 교수는 지난해 과학동아 10월호에 휴보의 전신인 ‘KHR-2’를 공개한 바 있다).

새해 들어 또다른 휴머노이드가 등장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로봇연구센터 유범재 박사팀이 개발한 인간형 로봇 ‘NBH-1’이다. 휴보보다 키가 좀더 큰 이 로봇은 두 발로 걷는 것은 물론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말을 알아듣는 ‘똑똑한’ 로봇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HUBO^KAIST 오준호 교수개발(2004. 12). 125cm, 55kg. 걷는 속도 시속 1.2km. 뒤로 걷기, 제자리 걸음, 게걸음 등 걷는 능력 뛰어남. 손가락 움직여 악수와 가위바위보 함.


한국 휴머노이드 세계 정상 도전

한국에서 ‘로봇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다.

외국 로봇과 견줘 손색이 없는 인간형 로봇 휴보와 NBH-1은 많은 화제를 낳으며 한국 휴머노이드 기술 수준을 단숨에 세계 정상권으로 끌어올렸다. 로이터 통신, 유럽연합통신(EPA) 등 세계적인 언론통신사들도 한국의 로봇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최근 오준호 교수는 미국 텍사스의 과학자들과 인터넷으로 휴보를 조종하는 국제 실험을 하기도 했다.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는 ‘로봇의 꽃’으로 불린다. 인간과 닮아 신기한데다 두 발로 걸으면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걷는 동작 하나하나를 미세하게 제어해야 해 만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만한 크기의 두 발로 걷는 로봇을 잘 만드는 연구소는 세계 최고의 로봇 연구소로 대접받는다. 이 대열에 한국 과학자들이 올라선 것이다.

휴머노이드 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산업 로봇 즉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의 보유 대수가 세계 5위권 안에 드는 산업 로봇 강국이다. 청소로봇 등 ‘생활 로봇’도 올들어 본격적으로 성장세를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능형 로봇’을 선정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는 등 학계와 기업의 로봇 연구도 빨라질 전망이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첫 인공지능 로봇은 KAIST 양현승 교수가 개발한 ‘아미’가 손꼽힌다. 2001년 5월 선보인 아미는 사람과 악수를 하고 상대방의 말을 인식해 인사를 하거나 대꾸를 할 수 있다. 시각 인식과 감정 인식의 기능까지 갖췄다. 바퀴로 움직이는 아미는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성화를 봉송하는 등 여러 곳에서 화제를 일으켰다. 아미는 현재 200명의 얼굴을 인식하고 얼굴 표정에 나타난 감정까지 읽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일부 로봇을 제외하면 인간형 로봇 연구는 그동안 일본이 이끌었다. 특히 2000년 일본 혼다사가 개발한 ‘아시모’는 휴머노이드의 절정이었다. 부드러운 걸음걸이와 함께 계단을 자유롭게 오르고 골프를 칠 정도로 균형 감각이 뛰어나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일본은 아시모를 통해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력을 뽐낼 뿐 아니라 정상회담에 데리고 나가 상대방 정상의 기를 죽이곤 했다. 아시모는 최근에 달리는 자세까지 흉내내 걷는 로봇에서 달리는 로봇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잇따라 선보인 한국의 휴머노이드 휴보와 NBH-1은 일본과의 격차를 크게 좁혔다.

휴보의 키는 125cm로 아시모(130cm)와 비슷하다. NBH-1은 아시모보다 20cm 더 크다. 세상에는 다양한 크기의 휴머노이드가 있는데 이들처럼 어린이만한 휴머노이드가 가장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휴머노이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걷기를 비교하면 아직도 아시모가 앞선다. 아시모의 걷는 속도는 시속 3km로 휴머노이드 중 가장 빠르다. 휴보는 시속 1.2km, NBH-1은 0.9km로 더 느리다. 안정성 면에서도 휴보나 NBH-1보다 아시모가 뛰어나다. 계단을 오르거나 뛰는 흉내를 내는 로봇은 아시모가 유일하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아시모가 15년 동안 3000억원을 들여 수백명의 연구원이 개발한 것이고, 휴보는 3년 동안 오 교수와 학생 몇몇이 불과 10억원을 들여 개발한 것이다. 오준호 교수는 휴보의 전신인 KHR-2를 개발했을 때 “걷는 능력을 따졌을 때 아시모가 90점이라면 우리 로봇은 70점 이상”이라고 자신했다. 휴보는 이보다 더 발전했다. 앞으로도 투자가 이어진다면 발전 속도는 더 빠를 것이다.

특히 걷는 동작에서 휴보는 아시모를 제외한다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연구팀은 휴보를 자연스럽게 걷게 하기 위해 사람이 걷는 모든 동작을 저속 카메라로 찍은 뒤 ‘모션 캡처’(motion capture)라는 기능으로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를 뽑아내 로봇에 입력했다.

KIST 유범재 박사팀이 개발한 NBH-1은 다리보다는 머리에서 승부를 건다. 이 로봇은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이 시키는 행동을 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인이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하트 모양을 만들면 로봇도 두 팔을 들어 똑같이 흉내낸다.

아시모나 휴보 등 대부분의 휴머노이드는 두뇌가 로봇 안에 들어 있다. 몸집의 한계 때문에 로봇의 두뇌 즉 컴퓨터는 비교적 작은 편이다. 그러나 NBH-1은 두뇌가 몸 밖에 있다. 로봇이 외부 컴퓨터와 무선으로 연결된 것이다. 유 박사는 이 로봇을 ‘네트워크 기반의 휴머노이드’라고 부른다.
 

일본은 국가정상회담에 아시모를 데리고 가서 과학기술력을 뽐낸다.


2~3년 뒤 아시모 따라잡겠다

NBH-1은 로봇 안에 집어넣을 수 없는 큰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어 훨씬 더 다양한 기능을 갖출 수 있다. 유 박사는 “NBH-1은 실험실에 있는 25명의 연구원 얼굴을 인식하고 필통, 책 등 20여 가지 물체를 알아본다”고 말했다. 한국의 풍부한 네트워크 환경을 로봇에 접목하면 로봇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정보를 받아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다.

로봇 르네상스를 연 두 휴머노이드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 과연 아시모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오 교수는 “올해 계단 오르내리기, 뛰기, 무거운 짐을 들고 걷기, 우아하게 걷기 등 4가지 기능 개발에 도전할 계획”이라며 “휴보가 1년 안에 적어도 한두 가지는 가능할 정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충분한 투자만 따라준다면 2~3년 안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또 오 교수는 “휴보의 노하우를 대부분 공개했기 때문에 1억원 정도의 자본과 열의만 있으면 과학자 혼자서도 휴머노이드를 만들 수 있다”며 “휴보를 계기로 앞으로 한국의 휴머노이드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NBH-1은 앞으로 2~3년 동안 행사 도우미나 과학관 도우미 등 엔터테인먼트 로봇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장기적으로 가정에서 심부름이나 청소, 경비, 간호를 맡는 로봇 가정부로 개발된다. 또 연구팀은 이 로봇의 인공지능을 크게 높여 온갖 전자제품과도 통신하는 유비쿼터스 로봇으로 만들 계획이다.

청소는 로봇에게 맡긴다

휴머노이드는 보기에는 좋아도 아직 실생활에 쓰이려면 한참 멀었다. 아쉬워하기는 이르다. 두 다리는 없어도 갖가지 모양의 생활 로봇들이 인간의 친구가 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 시장에서 저가형 청소로봇이 큰 인기를 모으며 ‘생활 로봇의 원년’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그동안 LG전자, 일렉트로룩스(스웨덴) 등이 선보인 청소로봇은 200만원이 넘는 비싼 가격 때문에 대중화되기는 어려웠다. 미국 아이로봇사가 2년전 200달러(20만원) 수준의 저가형 청소로봇 ‘룸바’를 내놓아 미국에서만 100만대 이상 판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도 수십 만원 대의 저가형 청소로봇이 나오고 있다.

유진로보틱스는 1월 중순 코엑스에서 국산 청소로봇 ‘아이클레보’(iClebo)를 선보였다. 서울 신세계 백화점과 인터넷에서 팔리고 있는 이 제품의 가격은 39만9000원이다.

이 회사는 아이클레보를 지난달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에 출품해 인기를 모았다. ‘똑똑한 청소로봇’이라는 뜻의 이 로봇은 적외선과 범퍼센서로 장애물을 피하고 바닥에도 감지센서가 달려 있어 현관이나 계단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한화종합화학과 마이크로로보트도 지난해 12월 스스로 위치를 인식할 수 있는 청소로봇 ‘라르고’를 선보였다. 원반 모양의 이 로봇은 투명 바코드가 달린 바닥재(장판)를 돌아다니는데 주인의 명령에 따라 거실이나 안방 등 지정된 부분을 찾아가 청소를 할 수 있다. 올 상반기부터 시판될 이 로봇의 가격은 70만~80만원 수준으로 기존 제품에 비하면 가격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미국 아이로봇사의 룸바도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룸바 프로엘리트’라는 이름으로 50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용산전자상가에서도 이 로봇을 쉽게 볼 수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 등 대기업도 저가형 청소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올들어 잇따라 나오고 있는 저가형 청소 로봇은 싼 가격으로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국내에 마련됐고 청소로봇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어느 정도 생겼음을 뜻하다. 앞으로 로봇 가격이 더욱 떨어져 10만원이 넘는 진공청소기와 경쟁하는 수준이 되면 한국에서도 생활 로봇 시대가 활짝 열릴 전망이다.

청소 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올 상반기에 우체국에서 안내도우미 로봇을 선보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우미 로봇은 고객에게 등기우편을 보내는 법, 지역 우편번호 등을 안내한다. 바퀴가 달려 있어 고객이 요청하면 고객의 자리로 굴러온다. 생활로봇은 아니지만 KIST 강성철 박사팀이 개발한 위험작업로봇 ‘롭해즈’는 지난해 8월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 파견돼 지뢰 등을 제거하는 위험 작업에 투입됐다.

외국에는 간호로봇 등 더욱 다양한 생활 로봇들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 유럽에는 개 만한 것부터 사람 만한 크기의 경비 로봇이 많이 나와 있다. 일본에는 현금수송로봇까지 등장했다. ‘로보캅’이라는 이름의 이 로봇은 탱크처럼 무한궤도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고, 현금 강탈범을 잡는 고압전류 발생장치와 그물 발사 장치까지 달려 있다.

그럴듯한 휴머노이드가 2개 나왔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과연 지능형 로봇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한국의 강점을 로봇과 결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KAIST 로봇연구센터 변증남 센터장은 “미국은 인공지능, 일본은 기계와 전자기술이 앞서 있다면 한국은 무선통신 기술이 장점”이라며 “온갖 전자제품과 연결된 유비쿼터스 로봇 등 한국형 로봇을 만들면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진흥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서비스로봇 보급대수가 2002년 63만대에서 2006년 약 300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청소로봇, 경비로봇을 중심으로 한 가정용 로봇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일본 미쯔비시 연구소의 전망은 더욱 흥미롭다. 일본에서 2020년까지 1가구 1로봇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은 어떨까. KIST 오상록 박사는 “첨단제품을 즐겨 찾는 한국인의 특성상 비슷한 시기에 한국도 1가구 1로봇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봇과 친구가 되는 세상이 멀지 않았다.
 

미국에서 100만대나 팔린 저가형 청소로봇 '룸바'.

 

200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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