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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 운동선수를 지배하는가

근육 타고나지만 능력은 후천적

현대에는 유전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다. 최근 장거리 달리기 선수와 단거리 달리기 선수를 구별할 수 있는 유전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운동선수도 유전자가 지배할까.


흔히 운동선수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과는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게놈지도도 만들어낸 현대과학은 운동선수와 유전이 어떤 관계를 이룬다고 이해할까.


운동신경이 좋다는 말의 의미

스포츠에서 유전을 말할 때는 우선 근육을 이야기한다. 근육은 몸을 움직이는 원동력일 뿐 아니라, 사람을 구성하는 조직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부의 자극에 대한 적응력이 신기할 정도로 우수해 그 크기를 상당한 수준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근육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두배에서 세배까지 커질 수 있고, 반대로 우주와 같은 무중력상태에서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2주 내에 전체 근육무게의 20%까지 잃어버리기도 한다.

근육은 어떻게 생겼을까. 근육 속을 들여다보자. 우리 눈에 보이는 고깃덩어리, 즉 근육은 작은 ‘근섬유’들이 나란히 붙어있는 집합체다. 삶은 닭고기가 세로로 길게 찢어지는 것을 연상하면 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가장 얇게 찢어지는 최소단위를 근섬유라 부른다. 근섬유는 여러개가 모여 ‘근다발’이라는 하나의 다발을 형성한다. 근다발에는 척추에서 뻗어나온 ‘운동신경섬유’가 연결된다. 이때 근다발과 여기에 꽂힌 운동신경섬유를 함께 ‘운동단위’라고 한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중추신경(척추)에서 얇은 전선(운동신경섬유)이 뻗어나와 근육(근다발)에 꽂혀있는 모양새다.

이번엔 운동단위를 보자. 운동단위란 하나의 신경세포와 근다발이 연결된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하나의 신경이 가지치기로 여러 근육에 연결된다. 기능적으로 보면 신경 하나의 자극에 이와 연결된 많은 근섬유들이 동시에 같은 속도로 수축한다. 그러나 하나의 근다발은 하나의 신경에 의해서만 조절된다. 즉 근육 하나에는 하나의 신경만 연결된다.

그래서 하나의 신경세포가 여러 근다발을 거느릴수록 근육의 움직임은 섬세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다리 근육은 한 신경세포가 수백에서 수천의 근섬유를 거느리는데 반해, 손가락, 눈알, 목구멍과 같이 미세한 움직임이 필요한 신체부위는 하나의 신경섬유에 하나 또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적은 수의 근다발만이 연결된다.

우리는 보통 운동신경이 좋다는 말을 쓴다. 그렇다면 이 말이 신경섬유의 분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일단 과학자들은 ‘관련 있다’고 말한다. 근육을 많이 움직일수록 신경섬유의 분포가 더욱 거미줄처럼 발달한다. 즉 근육 하나 하나를 더욱 정교하게 조절할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잔뿌리’ 신경분포의 능력이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결정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근육 성격 바꾸기 어렵다

과학자들은 보통 근육을 크게 지근, 피로저항성 속근, 그리고 속근, 이렇게 세가지로 구분한다. 지근은 지구력이 좋지만 수축속도가 느린 반면, 속근은 아주 빠르게 수축하지만 지구력이 부족하다. 피로저항성 속근은 지근과 속근의 중간성격으로 빠르게 수축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지구력을 갖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근육의 성격을 원천적으로 신경섬유가 결정한다는 점이다. 바로 어느 신경섬유가 근다발에 꽂혀있는가에 따라 지근과 속근의 여부가 결정된다. 신경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지근과 속근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학자들은 이 신경세포의 분포가 유전에 의한다고 설명한다.

보통 사람의 몸에는 지근 신경세포와 속근 신경세포가 약 절반씩 분포한다. 그러나 대퇴근(넓적다리근육)의 경우 지근이 19%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95%에 이르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란 말이다. 아마도 속근이 많은 사람은 단거리 선수, 지근이 많은 사람은 마라톤 선수의 기질이 다분할 것이다.

그럼 지근과 속근에 연결되는 신경섬유세포를 바꾸면, 즉 지근에 속근신경세포를, 그리고 속근에 지근신경세포를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 연구결과에 따르면 속근신경세포가 연결된 지근은 속근으로, 지근신경세포가 연결된 속근은 지근으로 각각 변한다. 물론 실험적인 경우라 현실적이지 않지만, 요점은 신경분포가 근육의 성질을 결정한다는 점과 근육도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신경을 바꾸지 않고 운동으로만 근육 성격이 변할 수 있을까. 답은 ‘아주 약간은’이다. 아주 강하고 힘든 운동을 한달 이상 한다면, 속근이 피로저항성 속근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운동을 중지하면(워낙 힘들어 계속할 수 없을 테지만)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온다. 헛수고다. 지근 또한 피로저항성 속근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아주 오랜 기간이 필요하며 그 정도도 미미하다. 결과적으로 근육의 변환은 웬만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타고난다는 말이다.

또한 유전형질이 좋다 하더라도 운동에 대한 적합성을 따져야 한다. 다시 말해 훈련이 잘 듣는가 하는 말이다. 캐나다 라발대의 클로드 부샤드 박사는 유전이 운동선수로의 자질을 결정짓는다고 설명하면서 운동에 우수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일란성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5개월 간의 훈련을 실시해봤다. 실험 결과 운동향상 정도가 한 쌍둥이 내에서 비슷했지만 쌍둥이 간에는 차이가 났다. 즉 어떤 쌍둥이는 지구력이 두배 향상된 반면에, 다른 쌍둥이는 그 향상이 저조했다. 그리고 이런 운동에 대한 향상력은 집안의 내력이었다.
 

장거리 선수의 근육에는 지구력이 좋은 속근이 많고, 안지오텐신 변환효소 가 있다.



새로운 도핑의 가능성

그렇다면 유전적인 요인을 파악함으로써 선수선발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 유전인자를 이용해 선수를 선발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학계의 관심을 끄는 유전인자가 등장했다. 바로 ‘안지오텐신 변환효소’(ACE)의 유전자를 밝혀낸 것이다. 이 효소(단백질)는 혈압과 인체의 대사기능을 조절하고, 인체가 산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하는가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연구에 따르면 높은 산을 오르는 산악인이나 장거리 달리기 선수와 같은 지구력 선수들은 이 효소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단거리 선수들은 이와 다른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몇몇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 하나가 단거리 선수와 장거리 선수를 구분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선수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은 어떨까. 유전자 조작을 통해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근육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운동을 통해 근육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앞으로 유전기술을 이용해 근육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의 게놈에 존재하지만 평소에는 그 성격을 나타내지 않는 근육단백질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잠재적인 단백질을 되살리면 된다. 우리 조상들이 먼 옛날 무시무시한 동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사용하던 아주 빠르게 수축하는 근조직을 되찾는 일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잊었던 근육을 되찾는 것이다. 아직 상상 단계지만, 미래에는 백신과 같은 주사로 인위적인 유전인자를 근세포에 투입함으로써 근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지 한방에 끝나는 작업이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은 새로운 도핑의 가능성을 가진다. 그 진위여부를 가려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선수들의 근육 도핑을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 궁금하다.
 

부모와 자식 간에 근력과 근지구 력의 유사성은 그리 크지 않다. 힘 센 부모가 10명의 자식을 둔다면 이 중 2-4명 정도가 부모를 닮는 다.



힘센 부모 닮은 자식 20-40%

선수가 원천적으로 어떤 유전형질을 갖는가를 파악하는 일은 스포츠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유전자로 인해 선수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믿는 학자들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후천적인 환경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마다 지방의 함유량이 다르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방의 분포는 어떨까. 선수들은 지방이 어디에 분포하는가가 중요하다. 각 종목마다 특징적인 체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방의 분포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을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리 감탄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유전적인 영향은 5-30%에 그친다. 오히려 문화적인 영향이 약 30% 정도에 이른다.

그러면 근육의 기능은 어떨까. 연구에 따르면 부모와 자식 간에 근력과 근지구력의 유사성은 약 20-40% 정도에 머문다. 쉽게 설명하자면 힘센 부모가 10명의 자식을 두었다면 이 중에 부모만큼 힘쓸 자식은 약 2-4명 정도 된다는 말이다. 물론 부모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자식도 있다.

장거리 지구력의 경우 근육 기능에 비해 유사성이 더 낮다. 장거리 지구력에 필요한 최대유산소능력은 25%의 유사성을 보이는 반면, 약한 강도인 운동에서의 유산소능력은 부모와 자식 간의 유사성이 오히려 더 낮아 겨우 1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산소능력과 관련된 심장과 허파 그리고 순환계의 기능은 거의 후천적인 것이다.

아직 유전에 대한 연구 성과가 국제급 선수와‘몸치’를 구별하고, 초등학생이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될 것인지에 대해 예견할 수 있을 만큼 쌓여있지는 않다. 어쩌면 우리세대에서는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전학이 기대하는 문제는 사람이 생리적으로 운동에 어떻게 반응할것인가를 알아보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운동에 참여하는데 더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림) 근육의 구조^근육은 작은 근섬유들이 나란히 붙어있는 집합체다. 근육의 최소단위인 근섬유가 여러개 모이면 근다발이라는 하나의 다발을 형성한다. 근다발 에는 중추신경(척추)에서 뻗어나온 운동신경섬유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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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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