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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비슷한 한옥지붕의 천태만상 표정

조상 모신 사당에 소박한 맞배지붕

똑같은 기와와‘八’자 모양의 비슷한 한옥지붕. 언뜻 보면 별반 다를 것 없는 한옥지붕은 그 나름의 위계와 의미를 갖고 있다. 기둥과 공포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지붕의 형태와 의장에 숨어있는 조상의 섬세한 손길을 느껴보자.


익숙하지 않으면
다 같아 보인다. 공룡의 이름이 헷갈린다든지 외국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흑인처럼 강렬한 피부색에 주의를 빼앗기면 얼굴 생김새는 더욱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백인과 흑인처럼 콘크리트로 지은 집과 유리로 지은 집 정도는 쉽게 구분이 가지만, 똑같은 기와지붕에 목조로 지어진 한옥은 코끼리를 서로 구분하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비슷하다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가운데 발견되는 작은 차이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이고 있 는 팔작지붕은 예로부터 궁궐이나 사찰의 중심건물에 사 용됐다. 새가 날개를 펼친 듯 날 렵하게 뻗은 추녀의 모습이 화려하기 때문이다.



바닥따라 달라지는 지붕형태

한옥의 외형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지붕이다. 지붕은 하늘과 맞닿아 건물의 외곽을 결정하는 선이기 때문에 한눈에 전체의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과 ‘우진각지붕’, 그리고 ‘맞배지붕’의 세가지가 기본이다. 이외에 팔각정처럼 끝이 뾰족한 ‘모지붕’이 정자에 많이 사용됐고, 가끔은 원뿔형이나 부채꼴의 특수한 형태가 이용되기도 했다.

지붕은 바닥의 형태에 영향을 받는다. 지붕의 주역할은 빗물을 건물바깥으로 흘려보내는 일이므로 경사를 가져야 한다. 바닥이 원형이거나 정사각형일 경우에는 각 변에 경사판을 설치해 자연스럽게 한가운데서 그 끝을 모아 모지붕을 만든다. 하지만 바닥이 길쭉한 사각형일 경우에는 한점에서 만나지 않고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진다.

맞배지붕은 직사각형의 긴 변에만 앞뒤로 경사판을 설치해, 옆에서 보면 ‘ㅅ’자로 두판이 만나는 형식이다. 따라서 정면에서는 지붕이 단순한 사각형으로 보이고, 측면에서는 지붕면은 보이지 않고 벽면만 보인다. 측면의 방수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측면에도 경사지붕을 설치한 것이 우진각지붕이다. 우진각지붕은 정면에서 보면 사다리꼴로 보이고 측면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보인다.

한편 팔작지붕은 역사상 가장 늦게 등장한 지붕 형식으로, 이 두가지 지붕을 조합한 형태다. 지붕을 상하 양단으로 나눠 하단은 우진각지붕처럼 사면에서 다같이 경사지붕판이 올라가고, 상단에는 맞배지붕 같이 앞·뒤면으로만 경사지붕을 놓고 측면에는 작은 삼각형 벽면을 만든다. 측면에 생긴 이 작은 삼각형 부분은 ‘합각’이라 불리는데, 합각은 예쁜 벽돌로 치장하기도 하고 구멍을 뚫어 다락방의 환기공으로 사용한 지혜로운 시설이다. 팔작지붕은 정면에서 보면 마치 한자의 팔(八)자 같이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맞배지붕이 사용된 서울 종 묘의 전경. 조선시대 유교건 축에 주로 사용된 맞배지붕 은 성리학의 기본 가르침인 검소함을 표상하기 위해 사 용됐다.



단순한 지붕이 주는 위력

궁궐과 사찰의 중심건물은 대개 화려한 팔작지붕을 사용한다. 팔작지붕은 일찍부터 새가 날개를 펼쳐 둥지를 감싸안은 모습으로 묘사됐다. 네 모서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날렵하게 뻗쳐 올라가는 추녀의 경쾌함은 커다란 지붕의 위압감을 누그러뜨리고 한순간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착각을 느끼게 한다. 팔작지붕은 그 당당함으로 인해 ‘군주’의 집에 사용됐다. 집 주인이 속세의 군주이건 종교의 신이건, 또는 가정이라는 소우주의 주인이건 두루 사용됐다.

이에 반해 유교건축에는 대개 소박한 맞배지붕을 사용했다. 공자의 신위를 모신 향교의 대성전이나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은 거의 예외 없이 맞배지붕을 사용해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심지어 봉건국가인 조선을 대표하는 시설이며 한양으로 천도할 때 궁궐보다 먼저 건설했던 종묘의 지붕 역시 맞배로 처리했다. 성리학의 기본 가르침인 검소함의 표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스스로를 낮추고 사물의 본질로 나아가 깨달음에 이른다는 경전의 내용을 건축에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한편 불교건축에서는 선가의 ‘색즉공 공즉색’이라는 가르침대로 형식의 구애됨으로부터 벗어나 ‘해탈’의 경지를 추구했다. 하지만 구도자 자신을 위한 배려 못지 않게 대중을 교화하려는 목적에서 화려한 의장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우진각지붕은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용례를 드물게 볼 수 있는 지붕으로, 대개는 창고와 같은 부속시설의 지붕으로 사용됐다. 외견상 팔작지붕에 비해 위계가 떨어지고 맞배지붕의 엄숙미도 볼 수 없다. 하지만 국문(國門)의 성격을 띠는 남대문의 예에서 보듯, 그것이 과장돼 큰 규모로 사용됐을 때는 그 단순미가 엄청난 위력을 가진다. 중국 북경의 자금성에 있는 태화전도 마찬가지다. 태화전은 우리의 경복궁 같은 중심건물인데, 이 태화전의 지붕 역시 담담한 우진각지붕으로 돼 있다. 우진각지붕은 측면벽을 일체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측벽이 긴, 대규모 건축물에 적합한 지붕형태다.

전통건축의 지붕은 조선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한옥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 무거운 지붕을 2천년 동안이나 계속 떠받들고 있었던 것은 전통 건축의 숙명이다.

2002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전봉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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