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늘리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다. 기존의 도로를 좀 더 과학적으로 운영하는 일도 시급한 것이다.
도로의 역사는 인류문화의 생성과 함께 시작되었다. B.C.300년경 로마제국의 도로는 아피안(Apian)가로 (총연장 1백98km, 폭4.3m)를 비롯해 모두 10만km에 달했다. 그밖에도 부강했던 고대도시국가들의 도로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발달돼 있었다.
지금도 국민소득이 높고 부강한 나라들은 대부분 고도로 발달된 도로망체계를 갖고 있다. 특히 2차세계대전 전에 건설된 독일의 고속도로망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계에서 가장 잘 짜여진 도로망체계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이와 같이 도로는 한 나라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 여건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달해 왔다. 그래서 한때는 도로가 권력과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두 다리로 걸어다니던 시대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시대로, 다시 자동차를 이용하는 시대로 변해 왔다. 따라서 옛날의 골목길이나 오솔길이 이제는 고속도로 등 빠르고 안전한 길로 바뀌었다.
과거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적 통치형태가 지속됨에 따라 도로도 왕도(王都) 중심의 방사형 체계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일제시대에는 일본이 대륙침략과 한반도의 물자약탈을 위해 필요한 도로들을 적극 건설했다.
조선시대까지도 우리 선조들은 도로를 매우 폐쇄적인 시각으로 바라 봤다. 예컨대 도로를 잘 닦아 놓으면 외적이 쉽게 침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로를 절대 넓고 편하게 내지 못하게 했다. 또 그 당시의 상공업 천시풍조도 도로의 발달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6·25동란을 거치면서 도로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됐다. 이때부터 중요한 도로들이 속속 포장되었다. 특히 1962년 이후 여러 차례의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국내의 도로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도로가 산업발달 수출촉진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짐에 따라 1968년부터는 서울-인천간, 서울-부산간 고속도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건설된 고속도로들이 우리나라 산업동맥으로 현재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 등 대도시의 도로망도 이와 비슷한 단계를 거쳐 발달돼 왔다. 실제로 서울에는이제 8차선 고속도로까지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도로를 떼어 놓고는 아무 활동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미치는 도로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커진 것이다.
시속 15㎞의 느림보 도로
우리나라에는 1988년 말 현재 모두 5만5천7백78㎞의 도로가 있다. 그중 1천5백50㎞가 고속도로다. 이 도로는 크게 지역간 도로와 도시내 도로로 구분할 수 있다.
고속도로 일반국도 지방도 등이 중추인 지역간 도로는 2만4천3백82㎞로 전체의 43.7%를 차지한다. 한편 도시내 도로는 특별시 도시군도를 합쳐 전체도로의 56.3%인 3만1천3백96㎞다.
이와 같은 도로현황은 외국의 여러 나라와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장차 크게 증가할 국내 자동차보유수준을 고려할때 앞으로 도로개발이 더욱 활발히 추진돼야 함은 물론이다.
더욱이 국내의 도로는 외국과는 달리 대부분 폭이 좁은 2차선 도로다 (전체의 92%). 또 포장이 안된 도로가 많아 교통사고 등 위험이 도로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국내의 도로중에서 교통혼잡이 극심, 당장 도로의 폭을 넓혀야 할 구간도 많다. 예컨대 고속도로는 전체의 14.2%에 달하는 2백20㎞에서 교통혼잡이 매우 심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일반국도도 8백20㎞(전체 일반국도의 6.7%)가 시급히 확장돼야 할 구간으로 파악되고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서울 등 대도시와 그 주변의 도로들은 거의가 심각한 교통체증현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88년 5월의 서울시내 주요도로의 통행속도는 도심지역이 15~20㎞/시에 불과하다. 예컨대 한남대교 등 한강을 통과하는 교량의 교통혼잡은 유명하다. 특히 출퇴근시간대에는 교통지옥이라 할만큼 심각한 실정이다.
1989년 9월 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약 2백50만대다. 이는 20년전인 1970년의 13만대에 비하면 약19배에 달하는 숫자다. 10년전인 1980년에 비해서도 자동차는 약 4.7배나 증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동차의 급격한 증가추세는 소득수준의 증가와 더불어 앞으로도 지속될 형편이다. 따라서 이를 수용해야 할 도로의 용량을 생각하면 아마도 200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모든 도로가 교통혼잡에 몸살을 앓을 게 분명하다. 도로교통혼잡에 대처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이 하루빨리 모색되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서울의 도로율 18%의 의미
현재 서울의 도로율은 18%도 채 못되는 수준이다. 외국의 여러 도시에 비해 절대적인 도로부족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서울 이외의 다른 도시들도 도로사정이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도로 1㎞를 건설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수천억원에 이르고, 또 돈이 있다 하더라도 도로로 이용할 만한 여분의 땅이 없다는 게 문제를 더욱 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역간 도로는 또 어떤가? 도로 곳곳에서 교통정체현상을 보이고, 특히 주말 명절 때의 고속도로는 말 그대로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다. 그래도 지역간 도로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1992년까지 일반국도와 지방도를 모두 포장하고 군도의 포장률도 80%까지 올리게 되면 우리나라도 곧 모든 도로가 포장되는 시대를 맞게 된다. 고속도로의 건설도 상당히 활발해질 것이다. 특히 중부내륙간(여주-구미), 대전-진주간, 대구-구포간 고속도로 등이 서해안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등과 함께 2000년대 초까지는 모두 건설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도 외국과 비교해 크게 손색없는 상당히 효율적인 간선도로망체계를 갖추게 된다.
71%를 11%가 떠맡아
도로는 자동차교통을 위한 기본수단이다. 동시에 사람이 거주하고 시간을 보내는 생활공간이며 문화공간이다. 따라서 도로의 개발은 새로운 산업활동을 자극, 경제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중공업시대(주로 철도와 해운수송)에서 경공업시대로 산업사회가 변화되면서 도로를 이용한 수송이 크게 증가했다. 예를 들어 사람의 통행의 경우, 1962년에는 전체 통행량의 48%를 도로가 분담했다. 그러나 1988년에는 74%로 분담률이 높아졌다. 특히 화물수송은 9%에서 48%로 도로분담률이 급격히 올라갔다. 앞으로도 이같은 도로분담률 증가추세는 더욱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도로의 합리적인 운영과, 관리는 국가의 매우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도로를 필요한대로 무분별하게 많이 건설하기만 하면 사람과 화물을 원활히 수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과학적인 설계와 건설 수리 운영이 뒤따라야 한다. 또 도로는 구간구간이 계층구조에 맞게 계획되고 설계돼야 한다. 특히 간선도로인 경우, 간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는 것이다.
도로는 수행하는 기능에 따라 간선도로와 보조도로로 구분된다. 간선도로는 대량 장거리통행을 담당하고, 보조도로는 출발지에서 간선도로까지의 통행을 담당한다. 미국의 경우 지역간 통행의 71%를 11%의 간선도로(연장기준)가 떠맡고 있다. 도시내 통행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체 도로 연장의 18% 수준인 간선도로가 전체 통행의 59%를 떠맡고 있는 것이다.
교통량에 따라 자동제어하는 장치도
도로의 설계도 차량통행의 원활화와 교통사고의 감소 등을 위해 좀 더 과학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설계과정이 현지 지형을 지나치게 고려했기 때문에 도로 곳곳이 불합리하게 설계되고 건설된 사례가 허다하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GIS(Geographical Information System)와 최신 설계기술을 이용한 과학적인 도로설계가 도입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도로의 포장강도 측정을 정확하게 해내는 기계도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도로를 파괴하지 않은 상태에서 포장도로의 결함을 발견하는 기계들도 개발돼 활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도로의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 도로를 체계적으로 관리·운영하기도 한다.
체계적인 도로정보체계(Network Information System)는 미국 영국 등 선진 외국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이 체계가 완성되면 도로의 모든 정보를 현지에 가보지 않고서도 컴퓨터를 통해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도로계획 및 설계의 과학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컴퓨터를 이용할 경우, 도로의 설계 뿐만 아니라 운영도 상당히 과학화할 수 있다. 출발지와 도착지 간의 여러 도로중에서 가장 빠른 도로를 안내해 줄 수도 있고, 또 통행하고 있는 도로의 전방정보를 사전에 제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간선도로의 인터체인지 출입을 교통량에 따라 컴퓨터로 자동제어할 수도 있고, 시간대에 따라 도시 내 모든 도로의 통행방법을 컴퓨터로 지시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 도로운영을 과학화하게 되면 교통혼잡의 상당한 부분은 도로를 더 건설하지 않고도 개선할 수 있다. 도로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도로의 추가건설을 고려하기 전에 기존도로의 운영을 좀 더 과학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도로설계를 컴퓨터로
과거의 도로설계는 주로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했기 때문에 방대하거나 복잡한 자료는 거의 분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민소득의 향상으로 인한 인건비의 상승,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급속한 발전 등으로 도로설계 분야에는 컴퓨터를 많이 이용하는 추세에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도로설계는 초기에는 주로 구조물의 응력을 산출하거나 평선과 종단선형을 계산, 토적표를 출력하는 단순계산에 치중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플로터(plotter)를 이용, 도면화(drafting)하는 작업까지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최근에 활발히 수용되고 있는 CAD/CAM 시스템은 현장조사를 통해 수집된 설계기준 자료와 측량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평면과 종단선형계산, 횡단선의암선(岩線)추정에 의한 경사도(slope), 토공량계산, 운반계산, 투시도 교량계산 등 설계의 전과정을 체계화하여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도로설계에 컴퓨터를 이용함으로써 설계의 정확도와 신뢰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설계과정의 전산화로 설계업무 자체를 표준화할 수 있고 따라서 설계결과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수집된 자료를 자료은행(data bank)형태로 효과적으로 보관·관리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도로이외의 설계분야와도 연계작업이 가능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도로설계단계에서 컴퓨터에 입력된 평면좌표와 종횡단자료를 이용, 현지형을 입체해석 설계방법인 조감도(3-dimension perspective view)로 검토함으로써 도로의 안전성, 주변경관과의 조화여부, 주행의 쾌적성 그리고 환경영향 등을 살필 수 있다. 또 컴퓨터 주행시험(simulation)을 통한 평가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