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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그 많던 플라스틱은 누가 다 먹었을까

플라스틱은 생산량에 비해 매우 소량만 바다에서 발견된다.
에릭슨 박사는 탐험대를 꾸려 플라스틱 바다쓰레기를 찾아 나섰다.
마이크로 플라스틱은 그물로 건져 올린 다음 체에 쳐서 개수를 센다.

작년 9월, 재치 넘치는 대학생 두 명이 과자봉지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질소로 가득 찬 과자봉지는 장정 두 명이 올라타도 부력이 차고 넘쳤다.

바다쓰레기를 감시하는 환경운동가인 마르쿠스 에릭슨 박사도 물을 건넜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5대 환류대 연구소’ 공동설립자인 그는 과자봉지 대신 사람들이 먹고 버린 플라스틱 병을 골랐다. 나무로 얼기설기 배의 틀을 갖춘 다음 안쪽에 플라스틱 병 1만5000개를 가득 채워 넣었다. 갑판에는 약간의 식량과 편안한 의자 하나, 돛을 설치했다. 이 엉성한 배를 타고 에릭슨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하와이까지 태평양을 3200km나 항해했다. 88일 동안.

일본 만화 ‘원피스’에나 나올법한 이런 대모험을 에릭슨이 감행한 이유는 간단했다. ‘플라스틱 병은 물에 뜬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플라스틱은 물에 뜰 뿐만 아니라 강을 건너고 바다도 건널 수 있다. 세계적으로 매년 2억8000만t의 플라스틱이 생산된다. 이중 1억t은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병처럼 ‘아주 잠시’ 쓰이고 버려진다. 바다로 흘러들어온 플라스틱은 긴 여행 끝에 환류대(106쪽 그림 참고)에 도착한다. 5대양에는 팔이 안으로 굽듯 해류가 방향을 바꾸는 ‘환류’가 하나씩 있는데, 팔 안쪽에 때가 끼듯 환류 안쪽에는 가벼운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모여 거대한 대륙을 이루고 있다.


숨겨진 플라스틱 찾아 떠난 모험

그런데 에릭슨 박사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양에 비해 바다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 양이 너무 적었다. 이는 바다쓰레기를 연구하는 해양생태학자들을 지난 10년 동안 괴롭혔던 문제다. 최근 연구들을 봐도 바다 위에 떠 있는 플라스틱의 추정치는 2만1290t(지름 5mm 이하, 태평양)*, 7000~3만5000t(지름 5mm 이하, 전체 바다)**에 불과하다. 홍수가 날 때마다 육지에 쌓아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휩쓸려가는 것만 생각해도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다. 그 많은 플라스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에릭슨 박사는 다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세계 최초로 모든 바다(!)를 조사하기로. 여기에 더해 모든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조사하겠다는 목표도 세운다. 루피(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뺨치는 이 대모험은 2007년부터 장장 6년 동안 이어졌다. 길이 22m의 작은 배에 탐험대원 14명이 타고 5만6000km를 항해했다. 5대 환류대와 호주 해안, 벵골만, 지중해 등 24개 지역에서 무려 1571회에 걸쳐 플라스틱 쓰레기를 그물로 건져 올리고, 눈으로 관찰했다. 전체 바다의 플라스틱 양을 정확히 추산하기 위해서였다. 에릭슨은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고래와 상어, 무지개 덕분에 항해가 즐거웠지만, 탐험대원들이 망망대해에서 아플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마르쿠스 에릭슨 박사(왼쪽).

왜 이것밖에 안 나오지?

“우린 100배는 많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가 보내온 메일에는 실망이 묻어있었다. 2600만t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는 말이다. 특히 4.75mm 미만의 마이크로플라스틱이 3만5540t으로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은 태양의 자외선을 받아 시간이 지날수록 작게 분해된다. 덩치가 큰 플라스틱보다 작은 플라스틱이 다량 발견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아니었다.

에릭슨 박사는 톰슨 교수의 가설을 다시 검토했다. 영국 플리머스대 해양생물학과 리처드 톰슨 교수는 실종된 플라스틱이 어디로 갔을지 여러 가설을 세운 사람이다. 그가 세운 가설은 다음 다섯가지다.

1. 플라스틱이 채집그물을 통과할 정도로 아주 작게 쪼개졌다
2. 해안으로 떠밀려왔다
3. 해양 동물에게 먹혀 조직이나 대변에 들어갔다
4. (가능성은 낮지만) 바다에 사는 세균이 분해시켰다
5. 유기물이 붙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들이 추산한 전 세계 표류 플 라스틱 양은 26만8940t(플라스틱 조각 5조2500억 개)*으로 기존 추정치의 10배에 가까웠다. 그물로는 건질 수 없는 큰 쓰레기까지 모두 계산에 넣었기에 기 존보다 크게 증가했다. 그런데 에릭슨 박사는 갸웃했다.

* 작년 12월 10일 미국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에 발표한 논문.


에릭슨은 “5가지 가설이 모두 가능하다”면서도 “특히 다섯 번째 가설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식과 달리 환류대 표층이 플라스틱 쓰레기의 최종 도착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밑이 진짜일 수 있습니다.”

에릭슨의 말은 최근 시작된 심해저 플라스틱 조사 결과와 일치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와 영국 자연사박물관이 지중해와 대서양, 인도양에 걸쳐 1000~3500m 심해저 16곳을 조사한 결과 경사면과 분지, 해산, 협곡 가릴 것 없이 마이크로플라스틱이 발견됐다. 바다 깊은 곳에 플라스틱이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힌 연구였다**.

** 작년 12월 20일 ‘영국 왕립학회’에 발표한 논문.

프랑스 국립해양개발연구소의 프랑수아 갈가니 소장은 플라스틱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과정을 좀더 자세히 설명했다.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은 자외선 때문에 마이크로미터 크기에서 나노미터 크기로 쪼개지고, 최종적으로 가장 기본물질인 단량체로 분해됩니다. 여기에 미생물이 붙어 얇은 생물막이 형성되고, 유기체도 달라붙어 물 밑으로 가라앉게 만듭니다.” 갈가니 원장은 “일부 플라스틱은 이런 과정이 없어도 가라앉는다”면서 “폴리염화비닐(파이프의 소재)이나 폴리카보네이트(창문이나 렌즈에 들어가는 합성수지)처럼 무거운 물질이 섞여있으면 쉽게 가라앉는다”고 덧붙였다.


바다 밑에는 정말 플라스틱이 잠들어 있을까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됐다. 적도부터 남극까지 지구 곳곳의 바다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되지 않는 곳이 없다. 갈가니 원장은 “우리는 심해의 해류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심해저에 쌓인 플라스틱이 어떻게 될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세계 바다를 구석구석 누빈 에릭슨도 다음 모험장소로 심해를 꼽았다. 과연 바다 밑에는 ‘사라진 플라스틱’이 잠들어 있을까.


 INTERVIEW 

프랑수아 갈가니(프랑스 국립해양개발연구소 소장)


‘플라스틱+미생물’ 덩어리 어디로 갈지 예측조차 안 돼
심해저에 가라앉은 플라스틱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표층에 떠 있는 플라스틱의 영향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플라스틱 해양쓰레기를 30년간 연구한 최고 전문가 프랑수아 갈가니 원장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거북이가 비닐을 물고 있는 사진이나 갈매기 뱃속에서 플라스틱이 잔뜩 나온 모습이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곤 하죠. 하지만 플라스틱이 뱃속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작은 유기체들이 마이크로플라스틱을 먹을 경우 내장에 그리 오래 남아있지 않습니다. 요각류에서는 수 시간 뒤면 배설되고, 홍합에서도 며칠 머무르다가 나옵니다.

그럼 진짜 문제는 뭔가요?
독성입니다. 플라스틱 제품에 코팅된 화학첨가물이 물에 녹아나오는 것도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비스페놀이나 프탈레이트처럼 플라스틱 그 자체가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바다 표면에서 미생물이나 골재, 조류 등에 붙어 농도가 높아진 덩어리를 생물이 먹을 경우 치명적입니다.

그밖의 다른 문제도 있나요?
제가 볼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플라스틱과 미생물이 섞인 덩어리가 언제 어디로 이동할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미생물이 나무나 코코넛을 타고 간간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었는데, 이제 훨씬 강력한 뗏목을 타게 된 셈입니다. 표층뿐 아니라 심층까지도요.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예측조차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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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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