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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과 반달의 봄맞이 랑데부

30분 간 펼쳐지는 숨바꼭질 즐기자

3월 20일 흔치 않은 우주쇼가 펼쳐진다. 토성과 반달이 봄맞이 랑데부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30여분 간 반달 뒤로 숨는 토성의 장관은 맨눈으로 봐도 신기하지만, 쌍안경이나 망원경으로 즐긴다면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지난 1월 25일에 펼쳐진 토성식 과정. 천체망원경으로 토성식을 관측하면 토성이 달에 가려져 절 반쯤 잘려진 진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봄이 다가오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밤하늘. 서쪽 하늘에 떠있는 반달에 밝은 별 하나가 다가선다. 이 별은 사실 태양계에서 두번째로 큰 행성인 토성. 시간이 흐르면, 점차 반짝이는 점은 달에 다가서더니 어느 순간 사라진다. 밤하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비, 토성식이 펼쳐진 것이다.

토성이 달 뒷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을 토성식이라 한다. 달이 태양을 가리면 일식, 별을 가리면 성식이라고 하듯, 달이 토성을 가리면 토성식이라 부른다. 토성식이 일어나는 이유는 지구와 달, 그리고 토성이 우주공간에서 일직선으로 늘어설 때 지구에서는 달에 가려 토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관측조건이 좋은 토성식은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그래도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토성식이 꽤 자주 일어나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관측이 가능했던 토성식의 시기는 지난 1997년 가을, 2001년 10월, 2002년 1월, 그리고 이번에 맞이하는 3월 20일이다. 이번까지 하면 1997년 이후 4번이나 일어나는 셈이다. 하지만 지난 1997년 이전에는 약 23년 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토성식은 없었다.


토성식 관측적기 20일 저녁

지난 1월의 토성식은 25일 새벽에 일어났다. 당일 우리나라의 날씨는 비교적 맑았으며 관측조건도 좋은 편이었다. 추운 날씨와 늦은 시간이 다소 방해되기는 했지만 부지런한 관측가라면 토성식을 흥미롭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3월 20일의 토성식도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다만 봄철이라 날씨가 비교적 따뜻하고, 식이 일어나는 시간대가 초저녁이라서 관측하기 더욱 쉽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토성의 모습이 지난 1월에 비해 다소 어두워 관측조건이 나빠진 단점도 있긴 하다.

식이 일어나는 시각에 토성의 밝기는 0.1등급이고, 겉보기 크기는 테를 포함해서 약 40″다. 이때의 토성은 지구와 토성이 가장 가까워지는 충의 위치를 약 4개월 지난 상태이므로 최상의 모습은 아니다. 달은 상현달에 가까운 모습으로 월령이 6일이다. 달이 어두울수록 관측하기 좋기 때문에 달이 이지러져 어두운 이번 조건이 한편으로는 장점이기도 하다.

이번 토성식은 해가 진 후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다. 서울을 기준으로 토성이 달에 가려지는 시각은 저녁 7시 16분이다. 달 뒤에 숨었던 토성이 다시 나타나는 시각은 7시 48분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토성이 달에 가려져 있는 시간은 32분 간이다. 정확한 시간과 토성이 잠입하는 달의 위치는 관측 지역에 따라 많이 다르다. 대개 북쪽지방으로 갈수록 식이 일어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남쪽지방으로 갈수록 시간이 짧아진다.

이날 토성은 달의 아래쪽, 즉 남쪽 부분으로 사라진다. 토성은 달의 동쪽에서 점차 가까워지다가 달의 어두운 부분으로 들어가며, 나올 때는 달의 밝은 부분에서 나타나 달의 서쪽으로 멀어져간다. 왜냐하면 달이 별에 대해 동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맨눈으로 사라지는 순간 포착

먼저 아무런 장비가 없는 경우라도 일단 20일 초저녁에 밖으로 나가 달을 쳐다보자. 달의 동쪽 하늘에서 달 가까이 있는 밝은 별 하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별이 바로 토성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토성이 달에 접근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달 바로 옆에 이처럼 밝은 별이 다가서는 광경을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 모습은 의외로 깜찍하고 예쁘다.

달의 밝기가 보름달에 비하면 상당히 어둡긴 하지만, 그래도 밝은 편이기 때문에 토성이 달의 밝은 부분 바로 옆에 있을 때는 토성을 맨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소형 쌍안경을 동원한다면 좀더 확실하게 이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쌍안경으로 보더라도 배율이 낮아서 토성이 다른 별과 구분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쌍안경의 한 시야에서 토성과 달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 토성이 달 가장자리에 붙고 어느 순간 한줄기 빛을 남기고 달 뒤편으로 사라진다. 토성식이 시작되는 때는 토성이 달의 어두운 부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관측하는데 주의해야 한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면 밝은 별이 갑자기 사라지는 장면을 맨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쌍안경에서는 이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냥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겠지만, 토성이 달에 가려 사라지는 시각을 재는 일도 흥미롭다. 또 토성이 나오는 순간에도 그 시각을 잰다. 이 두 시각의 차이는 달이 토성에 대해 그만큼 움직이는데 걸린 시간을 의미한다.

달은 밤하늘의 별을 기준으로 29.5일(약 4만2천4백80분) 동안 하늘을 한바퀴(360°)씩 돈다. 달의 겉보기 지름은 0.5°다. 따라서 달이 0.5° 움직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42480×0.5/360으로 약 60분이다.

반면 별에 대한 토성의 위치는 이 시간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다. 토성이 달 뒤로 숨는 토성식에서 실제 움직이는 천체는 토성이 아니라 달이다. 토성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와 반대 방향으로 달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만약 토성이 달의 중앙 부근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타난다면, 달이 0.5°움직이는 시간, 즉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이번 토성식은 약 30분 정도 진행된다. 토성이 달의 중앙에서 아래쪽 중간부분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번 토성식을 여러 지역에서 관측한 자료를 이용하면, 토성이 들어가고 다시 나타나는 영역이 식의 지속시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볼 수도 있다. 물론 토성이 들어가고 나오는 달의 위치를 유심히 관찰해 기록하는 일을 함께 해야 한다.


1백배율 망원경으로 보는 맛

천체망원경이 있다면, 좀더 명확히 토성식을 관측할 수 있다. 보통 구경 60mm 굴절망원경 같은 소형망원경이어도 토성은 아주 잘 보이므로 이 정도의 장비면 충분하다. 망원경에서는 저배율이어도 테를 두른 토성의 모습을 확인하는데 그리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토성식을 관측하는데는 다소 높은 배율이 관측의 정확성과 보는 맛을 위해서도 좋다. 달의 전체 면을 볼 수 있는 50배 가량의 저배율보다는 달의 일부만 보이는 1백배 정도가 토성식을 관측하기에 유리하다. 망원경의 배율을 1백배 정도로 맞추고서 달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차 토성과 달이 가까워지다가 어느 순간 달과 토성이 만나 토성이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천체망원경으로 관측할 때는 토성식이 일어나는 시각을 좀더 자세히 기록할 필요가 있다. 토성이 달에 들어갈 때는 먼저 토성의 테가 달에 닿은 다음, 점차 토성이 가려지고 마침내 토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때 테가 달에 닿는 순간을 제1접촉시기, 토성이 달에 가려져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을 제2접촉시기라 한다. 반대로 토성이 다시 나타날 때에도 토성의 테가 먼저 일부 보이기 시작하다가 결국 전체가 나타난다. 테가 다시 나타나는 순간을 제3접촉시기, 토성이 완전히 보이는 순간을 제4접촉시기라 한다.

네 접촉시기에 각각 시각을 재보자. 제1접촉시기와 제2접촉시기 사이의 시간은 1분 가량 된다. 마찬가지로 제3접촉시기와 제4접촉시기 사이의 시간도 1분 가량이다. 가장 시각을 재기 어려운 때는 제3접촉시기다. 어느 순간 갑자기 밝은 달 한쪽 끝에서 토성의 모습이 나타나므로 자칫하면 제3접촉시기의 시각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네 시각에 토성이 달과 만나는 위치를 기록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달 지도를 준비해 여기에 토성이 들어간 위치와 나온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다.


아슬아슬 진행되는 접식

이번 토성식의 경우 우리나라의 남쪽, 위도 36° 부근에서는 토성이 달의 남쪽 부분을 스치고 지나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를 ‘접식’이라고 한다. 접식은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없고, 특정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대략 김천 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른 지역에 한정된다. 이 지역이 바로 이번 토성식의 남쪽 한계선이다. 좀더 남쪽인 제주도로 가면 토성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토성식의 접식은 해당 지역에서 평생 한번 보기 힘들 만큼 매우 진귀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나타나는 토성식에서 제일 어렵고 의미있는 것은 접식을 관측하는 일일 것이다. 토성식이 일어날듯 말듯 진행되므로, 접식은 토성이 달의 맨끝에 순간적으로 붙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형태로 보인다. 만일 달의 산이나 크레이터가 있는 부분에 토성이 접촉한다면, 달의 지형에 따라 토성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습이 반복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접식은 대규모 인원이 관측한다. 엄밀히 접식이 관측되는 지역은 폭이 불과 5km 미만이다. 체계적으로 접식 관측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여러명의 관측자들이 접식이 예상되는 지역에서 남북으로 1km 간격을 두고 약 10여km 길게 늘어서서 토성식을 관측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어떤 관측자는 토성식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고, 어떤 관측자에게는 토성식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접식 관측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식이 일어난 시간과, 토성과 달이 떨어진 간격을 정확히 기록한다.

이렇게 관측된 데이터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들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우주공간에서 달의 위치를 정확히 계산하는데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접식을 관측하기 위해서 많은 아마추어들이 총동원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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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조상호 천체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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