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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황금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야생화

크기는 물론 개화시기도 마음대로 조절

외국에서 개발돼 다시 들어오는데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우리 토종식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최근 토종식물을 엄청난 부가가치를 약속하는화훼식물로 개량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우리 야생화가 세계적인 명품꽃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직접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식물은 4천3백여종에 이른다. 종(種)의 다양성 측면에서 따진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식물들이 좁은 땅에서 자라고 있는 셈이다. 식물분포지리학적으로 보더라도 제주도 서귀포 해안가의 담팔수나 파초일엽과 같은 아열대성 식물에서 한라산 정상의 암매, 백두산의 만병초나 담자리꽃처럼 고산성 한대식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기후대의 식물들이 함께 자라고 있다.

현재 이들 자생식물 중에서 조경용이나 분재 또는 화훼식물(관상용으로 재배되는 식물)로 이용되고 있는 종류는 대략 6백여가지다. 숫자상으로 볼 때 꽤 많은 종류가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자생식물이 팬지나 피튜니아처럼 세계적으로 대중화된 예는 한가지도 없다.

미국산으로 팔리는 토종식물

우리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있는 풀꽃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면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들에게는 특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팬지나 피튜니아, 샐비어처럼 화려함이나 탐스러움을 찾을 수는 없다. 사실 우리 손으로 제대로 개량한 꽃다운 꽃은 없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널리 심겨지고 있는 팬지나 데이지는 알고 보면 19세기 초 영국의 산야에서 자라던 야생화 품종을 개량한 것이다. 피튜니아와 샐비어도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자라는 들꽃을 영국인들이 가져다가 개량한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꽃들이 됐으며, 우리는 종자를 수입해 키워야 하는 입장이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미국의 중부지방에 자생하는 리시언더스를 꽃꽂이용으로 개량하고 화단에 널리 이용되는 꽃도라지를 개발해냈다. 중국도 많은 자생꽃들을 원예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내놓기는 커녕 우리의 아름다운 야생화도 외국인에게 고스란히 넘겨준 꼴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이 외국인에 의해 탐색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1900년대 초부터는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의해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한라산과 지리산 정상부근에서 자라고 있는 한국특산식물인 구상나무는 유럽으로 건너갔고, 정원식물로 개량돼 오늘날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공인된 미선나무 역시 현재 미국시장에서 흰개나리(white forthysia)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또한 북한산 정상부근의 암벽사이에서 자라던 털개회나무 종자는 미국 뉴햄프셔대 연구팀에 의해 개량돼 미스킴 라이락(Miss Kim Dwarf Lilac)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고 있다. 미국화된 이들 식물에 로얄티까지 주고 우리나라에 되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생존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우리의 식물자원들이 선진국으로 반출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외국의 식물특허를 달고 되돌아온 예가 허다하다. 현재 북부지방에 자생하는 날개하늘나리, 울릉도의 섬말나리, 전북 고창 선운사 일대에서 자라는 석산, 홍도와 흑산도의 비비추, 한라산의 좀비비추, 지리산의 애기원추리, 그리고 전국에 자생하고 있는 산딸나무, 때죽나무 등이 선진국에서 연구되고 있어 줄줄이 새로운 품종으로 변신해 돌아올 날이 머지 않았다.

1997년 모 TV 방송에서 방영됐던 ‘종이 유출되고 있다’와 이듬해 방영됐던 ‘꽃의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런 문제점을 뼈아프게 지적했다. 우리 식물자원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운 계기였는데, 식물자원 유출의 실상을 알면 몹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야생화 개발 연구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화훼산업 하면 떠오르는 나라 네덜란드. 식물에서 경제적, 정서적, 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빨리 싹트고 잘 자라게

비록 늦었지만 우리의 소중한 식물자원을 우리의 손으로 개발해 세계로 진출하는 일이 시작되고 있다. 과학기술부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에서는 야생화 개발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유망자생화훼와 관상수목을 개발해 상업화시키는 체계적인 노력이 시작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필자가 연구의 총괄책임을 맡았다. 2000년 6월부터 서울여대, 서울대, 성균관대, 충남대, 충북대, 원광대, 안동대와 원예연구소 등 8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연구인력만도 1백명이 넘는다. 우리의 자생식물이 어떻게 탈바꿈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자생식물을 화훼식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후보부터 선별해야 한다. 상품성 있는 식물을 선발해 품종을 개량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현재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돼 있는 유망 화훼자원을 수집해놓은 일종의 자원은행이 서울과 경기도 양평, 그리고 전북 김제에 조성돼 연구자들에게 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특히 좀비비추를 비롯해 일월비비추, 흑산도비비추 등 국내외의 비비추류 1백여 종류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비비추류는 잎이 연한 색에서 어두운 색까지 다양한 색을 띠기 때문에 정원식물로 개발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분홍색 꽃이 피는 때죽나무나 키가 3cm도 안되는 구절초, 잎에 얼룩무늬가 들어있는 각종 나무류와 초본류 등 유망한 자생화훼식물 3백여 종류가 수집돼 포장과 온실에서 증식되고 있다.

야생화를 화훼작물로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내에 잘 키우는 방법이 필요하다. 휴면중인 종자를 빨리 싹트게 하고 잘 자라게 해야 상품화했을 때 경쟁력이 높다. 개발된 품종의 빠른 증식과 재배법의 정립은 자생식물에서 다음 세대를 얻는 시간을 줄이기 때문에 야생화 개량 연구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시간도 단축시켜 도움을 준다.

이를 위해 생장점을 비롯해 잎이나 줄기조직의 일부를 떼어내 영양분이 들어 있는 유리병 속에서 대량으로 급속증식시키는 방법이 개발됐다. 건조하고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랄 뿐만 아니라 항암식물로도 알려진 바위솔 종류들과 고란초를 비롯한 각종 희귀 고사리류, 작은 날벌레들을 포식하는 우리나라 자생 벌레잡이식물인 끈끈이주걱 등의 조직배양법도 개발돼 대량 증식하는 길이 열렸다.

야생화의 품종은 어떻게 개량하는 것일까. 우선 자연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화훼식물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야생화가 있다. 예를 들어 원래 흰꽃이 피는 것이 정상인 산딸나무 중에는 붉은꽃이 피는 경우가 있으며, 열매가 2배 정도 큰 종류도 있다. 이를 선발해 양질의 표현형이 계속 나타나도록 번식시키면 훌륭한 화훼식물이 된다.
 

변해버린 꽃색을 되돌린다



변해버린 꽃색을 되돌린다

또한 서로 다른 종에서 교배를 통해 우수한 형질들이 나타나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량형질 A유전자를 가지는 AAbb인 생물과 우량형질 B유전자를 가지는 aaBB인 생물을 교잡해 AABB인 생물을 만들면, 그 자손은 자가수정에 의해 항상 AABB의 생물이 된다. 그러므로 2개의 우량형질을 모두 갖는 우량종으로 고정된다. 이와 같은 교배연구는 자생 비비추류를 대상으로 진행돼 현재 잡종이 여럿 육성된 상황이다.

인공적으로 변이를 일으켜 우수한 종류를 선발할 수도 있다. 방사선과 돌연변이 유발물질을 처리해 자생식물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신품종을 만드는 육종연구다. 이 분야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개량을 마치고 상업화를 기다리고 있는 자생식물은 여러가지가 있다. 잎에 아름다운 무늬가 들어있는 산호수를 비롯해 옥잠화, 흑산도비비추, 좀비비추, 해국, 등골나무, 감국, 섬기린초, 노루오줌, 보리수나무, 사스레피나무, 지리대사초 등 1백여종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들이 화훼식물로 상품화하는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생식물을 가공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화훼작물이 생산되는 곳과 실제 소비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수송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꽃이나 잎을 건조시킬 때 황산동을 처리해 탈색되지 않고 늘 초록색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됐다. 이미 탈색이 돼 변해버린 꽃색을 다시 원래의 색깔로 환원시킬 수 있는 발색제도 선보였다. 한편 꽃꽂이용으로 개발하기 위해 선발된 야생화를 대상으로, 질산은과 벤질아데닌, 그리고 지베렐린을 이용해 꽃의 수명을 2-3배까지 연장시킬 수까지 있게 됐다.
 

댕강나무에 열린 아름다운 꽃(오른쪽). 우리 자생식물을 상품화하는 연구가 활 발히 진행돼 세계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꽃 만든다

야생화는 꽃이 특정 시기에만 피고, 또 오래 피어있지 않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꽃피는 시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연중 꽃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정기간 저온처리해 아무 때나 꽃을 피게 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야생화는 추위를 넘긴 후에 꽃을 피운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저온처리를 하려면 냉동고가 필요하고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작업이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최근 저온처리 작업을 지베렐린으로 대체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지베렐린은 벼의 키다리병균에 의해 생산되는 식물생장조절물질로, 단 몇시간 동안 처리해 야생화의 꽃을 피우게 하는 방법을 실용화한 것이다. 또한 식물은 밤과 낮의 길이를 조절함으로써 꽃을 일찍 피게 하거나 늦게 피게 할 수 있다. 한 예로 국화가 가을에 꽃을 피우는 이유는 햇빛 받는 시간이 짧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본적인 이론을 우리나라 자생식물에 적용해 성공적으로 개화기를 조절하는데까지 성공했다.

한편 자생식물의 크기가 문제인 경우가 있다. 식물에 따라 크게 만들거나, 작고 탐스럽게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크기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지베렐린이나 유니코나졸, pp-333과 같은 생장조절물질을 이용한다. 이들 물질은 현재 원래 키가 큰 붓꽃이나 제비동자꽃, 나리를 보기좋게 작게 만드는데도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거나 건축을 하기 위해서 터를 다듬을 때에 으레 산을 깎아 내린다. 이 때문에 절개지가 생기고 이를 빠른 시일 내에 푸르게 녹화시켜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경사지를 녹화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식물이 톨훼스큐나 페레니얼그래스와 같은 외국산 종자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종자를 수입해 오는데만 매년 수백억원이 필요했고, 생태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소지도 있다.

이런 재료를 우리나라 자생식물로 대치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생 개미취나 벌개미취, 갯쑥부쟁이, 구절초 등의 뿌리 절편체를 접착제, 영양분이 함유된 흙 등과 혼합해 강력한 압력으로 경사면에 뿜어 붙이는 것이다. 경사면을 녹화시킴과 더불어 아름다운 꽃도 감상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연구다.

이외에도 자생식물을 상품화해 세계시장으로 진출 하기 위해서 상당히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야생화의 개발은 원래 20-30년이 소요되는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오늘날의 팬지나 피튜니아도 2백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됐고, 야생 털개회나무로부터 미스킴 라일락이 만들어지기까지 반세기의 세월이 필요했다. 세계적인 명품 우리꽃이 탄생하기까지 조금만 시간을 두고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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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종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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