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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 잡는 탐지견의 세계

희미한 냄새로 플라스틱 폭탄 찾는다

미국 9.11 테러 사건 이후 전세계적으로 폭탄 테러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숨겨진 폭탄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TV에 등장한 것은 특수 카메라와 같은 최첨단 장비가 아닌 바로 개였다. 폭탄을 찾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탐지견에 대해 알아보자.

 

미 테러사건 이후 삼엄해진 공 항 경비. 그러나 X선 검색대는 첨단 폭탄을 찾는데 한계를 보 인다.



2002년 6월 어느날. 월드컵 경기를 보러온 수많은 관광객 때문에 공항은 시장바닥처럼 북적대고 있었다. 코난은 항상 그래왔듯이 입국수속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서있는 긴 줄 사이를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그 순간 코난은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코난은 신경을 한층 곤두세우고 위험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어느 순간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코난은 조심스럽게 정장차림의 한 외국인에게 다가갔다.

입국수속 줄에 서있는 R씨는 서울의 관광안내도를 읽고 있었다. 한국을 처음 찾은 그가 서울의 지리를 알아야 할 필요도 있지만, 무엇보다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틀전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받을 때를 생각하니 식은땀이 다시 흐른다. 눈에 불을 켜고 있던 공항의 수많은 경찰과 X선 검색대를 통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R씨는 자신의 구두 밑창 속에 숨겨놓은 플라스틱 폭탄을 누구도 눈치재치 못할 것이란 자신이 생겼다. 앗! 그런데 갑자기 경찰들이 자신을 둘러싸는 것이 아닌가. R씨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자신을 지목한 코난을 발견했다.

완벽하게 폭탄을 숨겨 공항을 통과하려는 범인을 찾아낸다. 마치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가상의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영화에서만 가능한 허무맹랑한 일이 아니다. 미국 9.11 테러 사건은 희생자들에게는 큰 슬픔을 남겼지만, 동시에 불특정 다수에 대해 폭탄 테러가 일어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만반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었다. 더욱이 월드컵이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에 수많은 외국인들이 찾을 것이며, 이 때문에 테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안전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됐다.

숨기는 자와 찾는 자가 벌이는 치열한 두뇌게임에서 폭탄을 단번에 찾아낸 코난. 무슨 점쟁이라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코난은 희미한 냄새를 추적해 폭탄을 찾는 바로 폭발물 탐지견이다.


인간보다 1만배 뛰어난 후각

인류의 오랜 친구인 개가 후각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시각이 별로 좋지 않은 개는 후각이 매우 발달해 시각의 역할까지 겸한다. 그런데 정말 개가 냄새로 폭탄을 찾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더욱이 몇겹으로 싸서 깊숙히 숨겨놓은 폭탄을 말이다.

사실 ‘후각’하면 인간도 다른 감각기관에 비해 상당히 뛰어나기 때문에 잘난체 할 수 있다. 공기 중에 퍼진 미세한 화학물질에 의한 미묘한 변화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의 후각은 이런 인간보다 최소한 1만배에서 1백만배까지 뛰어나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개발된 냄새를 인지하는 어떤 최첨단 장비도 개의 후각 능력에 비해서는 1/10에 불과할 정도라고 말한다.

개가 지닌 놀라운 후각의 비밀은 냄새를 맡는데 사용되는 후각세포가 분포하는 주름에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경우 후각세포가 분포하는 상피의 면적은 3-4cm2인데 비해 개의 경우는 1백50cm2에 이른다고 한다(물론 품종과 크기에 따라 이보다 적거나 많을 수 있다).

인간의 경우 이런 상피영역에 존재하는 후각세포가 약 5백만개 정도인데 비해, 훨씬 넓은 면적을 지닌 개는 약 2억개의 후각세포를 갖고 있다. 개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후각능력을 선보이는 바탕이다. 더욱이 개의 코 내부는 냄새를 맡는데 적당한 온도와 수분 조건이 항상 유지되고 있다.

놀라운 후각능력 덕분에 개는 인간으로부터 특수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산악지역에서 사람이 실종됐을 때 가장 믿음직스런 수색자는 개다. 산사태나 지진이 났을 경우 매몰된 사람을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바로 인명구조견이다. 이 외에도 전쟁터에서 적의 존재여부를 조사하는 수색견, 범인을 추적하는 임무의 경찰견, 중요한 지점을 지키는 경비견 모두 뛰어난 후각능력을 바탕으로 맹활약하는 개들이다. 그런데 가장 뛰어난 후각을 바탕으로 가장 최근에 등장한 전문견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폭발물과 같은 물건을 찾아내는 탐지견이다.

개의 후각이 엄청나게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우리집에서 키우는 애완견도 폭발물을 찾는 탐지견이 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떠오를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개가 탐지견이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다. 모든 개가 뛰어난 후각능력을 갖고 있지만, 폭발물을 찾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경기장에서 탐지견을 이용해 모의 훈련하는 장면. 수만명이 모이는 경 기장은 테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셰퍼드가 적격, 진돗개는 안돼

지난해 12월 미국 아메리칸항공 소속 보잉 여객기에서 벌어진 폭발물 위협 사건을 예로 생각해보자. 범인은 콤포지션4(C4)라는 폭탄을 신발 뒤축에 숨기고 있었다. C4는 손으로 외형을 조작해 폭발력과 방향을 조절할 수 있고, 충격과 마찰, 불에 둔감하기 때문에 휴대하기 간편해 테러에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 폭탄 의 한 종류다. 예맨에서 56명의 사상자를 낸 미 해군 ‘콜’호에 대한 폭탄테러에 사용된 것도 바로 이 C4 폭탄이다.

C4와 같은 신세대 폭탄은 공항의 검색장치를 무안하게 만든다. 우선 예전의 폭탄처럼 일정한 모양과 부피가 있는 금속성 물체가 아니다. X선 검색대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소용없다는 얘기다. 사전에 폭탄이 있다는 정보를 안다 해도, 또 모든 승객을 일일이 검사한다고 해도 C4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미국 폭발물 위협 사건의 범인은 폭탄을 숨긴채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의 수많은 경찰을 뚫고 유유히 탑승하는데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플라스틱 폭탄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폭탄이 가진 미세한 냄새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인간이나 보통 개들은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이다. 범인을 통과시켜 비난을 받은 프랑스 공항 경찰은 잘 훈련된 폭발물 탐지견만이 C4와 같은 폭발물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어떤 개들이 폭발물 탐지견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일까. 폭발물 탐지견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선천적으로 뛰어난 후각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여기에 까다로운 탐지견 교육을 소화할 수 있는 학습 능력도 지녀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을 가장 만족시키는 종류는 바로 독일의 셰퍼드다.

다 자란 셰퍼드의 경우 후각세포가 분포하는 상피면적이 보통 개보다 많은 1백70cm2 정도다. 일단 후각능력은 아주 우수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셰퍼드는 복잡한 훈련을 잘 소화하는 영리한 개에 속한다.

그런데 셰퍼드라고 해서 탐지견으로서 장점만 지닌 것은 아니다. 경찰과 군의 관점에서 셰퍼드는 만점에 해당하지만, 많은 사람이 다니는 공항에서는 문제를 갖고 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위협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셰퍼드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아담한 크기의 골든리트리버, 래브라도리트리버, 비글, 코커스패니얼 등 애완견 종류가 탐지견으로 훈련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종개인 진돗개나 삽살개는 탐지견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진돗개와 삽살개는 능력보다는 ‘적성’이 전혀 맞지 않기 때문에 탐지견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진돗개와 삽살개는 짐승의 냄새를 맡고 이를 쫓는 사냥 능력은 뛰어나다. 그런데 야성의 품성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탐지견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는 못한다는 설명이다.


43마리 중 1마리만 성공

탐지견이 탄생하는 훈련 과정을 살펴보자. 탐지견 훈련을 받을 개는 대략 1살 무렵의 어린 개를 대상으로 선발한다. 탐지견이 될 기본 자질을 갖춘 개를 대상으로 탐지업무의 바탕이 되는 제식훈련, 복종훈련, 담력배양훈련, 체력훈련을 실시하면서 후보를 뽑는 것이다.

1차 관문을 통해 후보로 선택된 개들은 16주 동안 탐지견 전문 훈련을 받는다. 탐지견 훈련은 우선 다양한 폭발물의 냄새를 구별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를 완전히 익히고 나서야 숨겨놓은 폭발물을 찾는 탐지훈련에 들어간다. 그런데 폭발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또 냄새가 워낙 희미하기 때문에 만족할 만큼 탐지견 훈련을 소화하는 개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미국 중앙정보부(CIA)에서 운영하는 탐지견 훈련센터의 경우 무작위로 셰퍼드를 선택해 탐지견 훈련을 시킬 때 제대로 능력을 보유한 탐지견이 되는 것은 43마리 중 1마리에 불과하다고 한다. 골든리트리버와 코커스패니얼과 같은 애완견 종류의 개는 성공 확률이 더욱 떨어진다. 따라서 폭탄 테러 가능성이 높아 공공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들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셰퍼드 종류의 탐지견을 집중 양성하고 있다.

탐지견은 훈련받을 때 폭발물을 발견하면 조용히 옆에 가서 앉도록 교육받는다. 폭발물에 의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절대 물거나 범인을 향해 짖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탐지견 훈련의 기본은 개와 핸들러(탐지견 지도수) 사이의 철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서 훈련은 무엇보다 철저하게 보상 위주로 이뤄진다.

벌 대신 상을 주는 교육은 모든 개를 훈련시킬 때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사실이다. 개를 야단쳐서 어떤 행동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그 효과는 크지 않다. 오히려 바람직한 행동을 했을 때 상을 주면서 교육을 해야 개는 교육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뛰어난 명견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상을 주는 방법으로 먹이를 주어도 되고, 좋아하는 물건을 주어 같이 놀게 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먹이보다 같이 놀면서 친밀감을 쌓는 것이 더 효과적인 보상이라고 말한다.

탐지견은 탐지활동에 성공하면 반드시 큰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익혀 나간다. 이런 훈련 과정은 파블로프의 실험과 비슷한 면이 있다. 옛소련의 생리학자 파블로프는 개에게 먹이를 주면서 종을 울렸다. 나중에는 종소리만 울려도 개는 침을 분비하며 음식 먹을 준비를 했다. 바로 뇌의 통제를 받는 조건반사다. 탐지견의 경우에도 계속적인 훈련을 통해 탐지활동에 성공할 때마다 보상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머리에 완전히 새겨진다. 그래야 개는 무의식적으로도 끊임없이 폭발물을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탐지견이 부상당하자 안타까워 하는 경찰. 테러가 빈번히 일 어나는 전세계 곳곳에서 땀흘 리는 탐지견은 인간의 진정한 벗이 아닐까.



많이 먹지 못하는 고단한 생활

까다로운 탐지견 훈련에 모두 합격하면 7-8년 동안 탐지견으로 활약한다. 탐지견의 생활은 항상 후각이 최상의 상태로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이만저만 고단한 것이 아니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탐지의욕이 저하된다고 해서 식사도 하루에 한번 밖에 먹을 수 없다. 또한 끊임없는 재교육이 이뤄진다. 연습에서는 실전처럼 폭발물을 찾으면 상을 받고, 실전에서는 연습처럼 주의깊게 폭발물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제대로 교육받은 유능한 탐지견의 값어치는 어느 정도 될까. 사실 탐지견은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액수로 환산하기 어렵다. 다만 탐지견 후보가 될만한 어린 개의 가격이 5백만원 정도인데다가, 탐지견이 되기까지 순수한 훈련비용만 마리당 수천만원이 든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혹시라도 공항에 갈 기회가 생기면 우연히 탐지견을 만날 수도 있다. 인간을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탐지견을 위해 마음 속으로 박수를 쳐주자(물론 가까이 다가간다거나 괴롭혀서는 안된다). 수많은 인간의 목숨이 어쩌면 오늘도 킁킁대는 탐지견의 코 하나에 달려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전공 뽐내는 탐지견들

폭발물 탐지견 외에도 자신만의 전공분야를 뽐내는 다양한 탐지견들이 있다. 우선 폭발물 탐지견과 쌍벽을 이루는 종류로 마약 탐지견이 있다. 마약은 폭발물보다 공항을 통해 숨겨들여올 가능성이 더욱 높은 물품이다. 더욱이 기상천외의 방법으로 숨겨 들여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폭발물처럼 마약의 경우도 가장 중요한 단서가 냄새이기 때문에 마약 탐지견이 마약을 찾아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마약 탐지견 역시 폭발물 탐지견과 비슷한 까다로운 훈련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비닐로 밀봉한 마약을 숨겨놓고 이를 찾으면 상을 주면서 마약탐지 방법을 배운다. 우리나라의 경우 마약 탐지견에 관한 업무는 관세청에서 전담하고 있는데, 특송화물로 도착한 비디오테이프 속에 숨겨져 있던 필로폰을 검출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육류를 찾아내는 탐지견도 선보였다. 광우병과 같은 병이 육류를 통해 전파될 수 있다는 위험이 높아지자 외국에서 육류를 갖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일이 필요해진 것이다. 육류 탐지견은 관광객들이 외국에 나가 햄과 같은 육류제품을 무심코 들여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탐지견이 활약할 수 있는 분야는 상당히 다양하다. 뛰어난 후각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이와 관련된 전문 훈련을 시켜서 전문 탐지견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가스가 새는지 검사하는데 탐지견을 사용하고 있다. 옛소련에서는 광맥을 찾는 일에 탐지견을 이용하기도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웅담, 호골, 사향 등의 밀수를 적발하는 멸종위기동물 탐지견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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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홍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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