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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극저온 상태를 얻으려 할까

로켓에서 냉동인간, 초전도 자기부상열차까지

냉동인간, 대륙간 탄도 미사일, 초전도 자기부상 열차에 공통적으로 쓰이는 물질이 있다. 바로 냉동액체다. 극저온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냉동액체는 필수적이다.냉동액체가 열어준 극저온 세계를 체험해보자.


만물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과학자들은 우주가 갖는 한계를 뛰어넘는 환경을 실험실에서 구현하려고 애쓴다. 예를 들어 우주의 극고진공, 핵융합이 일어나는 별의 극고온의 상태를 말이다.

그런데 다양한 우주의 한계치 중 이미 과학자들이 뛰어넘은 영역이 한가지 있다. 바로 극저온의 세계다. 우주의 최저온도는 2.7K(K=절대온도, 0K=-2백73℃). 과학자들은 이보다 낮은 온도를 이미 실험실에서 실현시켰다. 절대영도, 즉 -2백73℃에 매우 가깝게 근접했다.


영원한 기체의 존재유무에서 시작

그렇다면 왜 과학자들은 극저온 상태를 얻으려고 했던 것일까. 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과학자들의 목적은 저온상태 자체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영원히 기체상태로 존재하는 기체가 존재하느냐’는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물질은 일정한 압력에서 온도가 낮아질수록 기체에서 액체, 그리고 고체로 상태가 바뀐다. 따라서 산소처럼 실온환경에서 항상 기체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이라도 온도를 낮춘다면 모두 액체로 바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확인하고자 과학자들은 저온세계로 내려간 것이다. 즉 과학자들의 목적은 기체의 액체화였다.

하지만 기체의 액체화는 이와는 다른 계기에서 최초로 성공했다. 1840년대 미국의 의사 고리는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를 위해 방의 온도를 낮추고자 소량의 공기를 액체화시켰다. 이때 그는 높은 압력에 갇혀있는 기체를 갑자기 팽창시키면 온도가 낮아지면서 액화되는 원리를 이용했다. 고리가 개발한 방법은 오늘날 에어컨의 작동원리와 같다. 그리고 1853년 줄-톰슨은 많은 양의 공기를 한꺼번에 액체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에 따라 기체의 액체화 기술도 빠르게 발전한다.

이후 순수 원소에 대한 액체화가 이어졌다. 1877년 프랑스의 광산 기술자인 카일레텟은 3백기압의 산소를 갑자기 팽창시킴으로써 산소방울을 얻었는데, 이것이 순수 원소에 대한 액체화의 시작이다. 이후 폴란드의 브로블브스키와 올스제브스키가 질소와 수소를 액체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수소기체는 20K (-2백53℃)에서 액체로 바뀐다. 인간이 영하 2백53℃까지 정복한 셈이다. 이처럼 극저온의 세계는 기체를 액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인 것이다. 극저온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액체를 ‘냉동액체’라고 한다.

냉동액체를 다루는 실질적인 어려움은 보관에 있다. 순간적으로 높은 압력에서 팽창시킴으로써 어렵게 얻어낸 냉동액체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없다면 냉동액체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1892년 영국의 드와는 냉동액체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단열이 잘 되는 용기를 개발했다. 이 용기는 내벽과 외벽 사이를 진공으로 만들고 벽면들을 은으로 칠해 단열이 잘 되도록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보온병과 같은 원리다. 이 용기는 액체의 보관시간을 이전보다 30배 이상 증가시켰다.

한편 이때까지 액체화되지 못한 기체가 있었다. 바로 헬륨이다. 헬륨은 20세기 들어서야 액체화됐다. 1908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오네스는 헬륨을 액체화함으로써 냉동액체 중 끊는점이 가장 낮은 온도인 4K까지 극저온의 영역을 넓혔다. 이로써 ‘모든 기체는 온도를 내리면 결국 액체가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또한 오네스는 4K에서 수은의 전기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다. 그는 극저온의 세계와 초전도성의 발견으로 191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우주여행을 위한 생명체 냉동

이처럼 극저온은 냉동액체 없이는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냉동액체의 발전이 곧 극저온의 영역 확대를 낳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냉동액체는 어디에 쓰일까.

냉동액체는 일찍이 군사적인 용도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1926년 미국의 로켓과학자 고다드는 액체산소와 가솔린을 혼합한 액체 추진제를 이용해 로켓발사에 성공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과 이후 냉전시대의 대륙간 탄도탄, 그리고 우주시대의 여러 로켓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56년 액체수소 추진제를 사용한 아틀라스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개발됐고, 1961년 처음으로 액체수소-액체산소 추진제를 사용한 Saturn-V 로켓 개발이 이뤄졌다. 로켓이 대기권을 빠져나가려면 연료를 빨리 연소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소가 다량으로 공급돼야 한다. 그런데 기체상태로 산소를 로켓에 싣는다면 상당한 부피를 차지할 것이다. 따라서 액체상태로 로켓에 연소제를 보관할 수 있다면 로켓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인간은 Saturn-V를 이용해 달에 착륙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맛보았다. 이후 냉동액체를 이용해서 군사용과 우주산업용 로켓이 개발돼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냉동액체가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영역은 의학분야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냉동액체의 대표적인 쓰임새는 냉동인간에서다. 암, 에이즈와 같은 현대 불치병이 극복되는 미래에 다시 태어나고자 영하 1백96℃의 액체질소가 채워진 방에 스스로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바로 냉동인간이다. 현재 미국에는 냉동인간을 보관하는 사업체가 여럿 있으며 1백여명 정도의 냉동인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단지 인간의 수명연장을 위해서 생물체의 냉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물체의 냉동에 대한 연구는 태양계 외부로의 우주여행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 수십-수백년이 걸리는 우주여행은 인간의 수명보다 길게 진행된다. 따라서 냉동으로 생명활동을 멈췄다가 목적지에 도달한 후 다시 살아남으로써 기나긴 우주여행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현재 동물을 이용한 생명체에 대한 냉동실험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냉동된 생명체를 살리는 문제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이 외에도 의료분야에서 냉동액체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 현재 인공수정을 위한 수정란의 보관 및 냉동수술에 냉동액체가 쓰인다. 예를 들어 사마귀와 같은 피부에 난 종양을 없앨 때 냉동수술법을 쓴다면 피가 나지 않는다. 액체 질소로 사마귀를 급속 냉동시켜 떼어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식 장기를 냉동시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는 등 의료분야에서 냉동액체의 쓰임새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한편 냉동액체는 채소를 급속 냉동시켜 신선도를 유지시키는 냉동보관에도 이용된다. 액체질소의 증기로 채소를 급속 냉동시켰을 때 채소는 영양소의 파괴 없이 오랫동안 저장된다. 또한 냉동액체는 폐타이어의 재생에도 이용된다. 폐타이어를 액체질소로 급속 냉동시킨 후 상온으로 갑자기 끄집어내면 쉽게 부스러져 고무 부분과 철로 된 심을 쉽게 분리시킬 수 있다.

당연히 극저온에서만 현상을 나타내는 초전도체가 사용되는 장치에는 냉동액체가 필수적이다. 미래의 교통수단인 초전도체 자기부상열차나 수술 없이 체내를 세세하게 보여주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에는 초전도체가 쓰인다. 따라서 이들 장치에는 냉동액체가 반드시 포함돼 있다. 이 외에도 냉동액체를 사용하는 분야가 많고 앞으로 활용분야도 급속히 증가하리라 예상된다.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는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기 위해 액체수소-액체산소 추진제를 사 용한 Saturn-V 로켓이 필요했다.



절대영도 도달하려면 영원한 시간 필요

그렇다면 오늘날 과학자들은 온도를 어디까지 내릴 수 있을까. 온도 하향의 한계는 절대영도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영도를 달성할 수 없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절대영도에서 물체를 이루는 입자(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들의 에너지는 확정된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입자의 에너지 E와 그 에너지가 측정되는 상태의 계속시간이 Δt일 때, 불확정성 원리(ΔtΔE≥h/2π)에 따르면, 상태의 에너지(ΔE)를 정확히 측정할수록 긴 시간동안(Δt) 그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 즉 에너지가 확정되는(ΔE=0) 절대영도에 도달하려면 무한대의 시간(Δt=∞)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절대영도 가까이 온도를 내릴 수는 있지만 진정한 절대영도에는 이를 수 없다. 현재 기술로는 원자핵의 온도만을 내릴 경우 0.28nK(${10}^{-9}$K)까지 기록을 세웠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이같은 극저온을 얻는 것일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물체를 냉동액체에 담그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최저온도는 4K. 가장 낮은 냉동액체인 액체헬륨의 끊는점이 4K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4K보다 낮은 온도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할까.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액체헬륨을 강제로 증발시키는 것이다. 이는 액체가 증발해 기체가 될 때 주위로부터 열을 빼앗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더운 여름철 부채로 부치면 피부에 있는 땀이 증발하면서 시원함을 느끼는 것도 증발에 의한 온도 감소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온도가 계속 내려가면 액체 위에 떠있는 기체의 양들이 적어지기 때문에 강제 증발도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보통의 헬륨을 이용할 경우 증발에 의해 대략 1K 정도까지 내릴 수 있다. 그런데 헬륨의 동위원소 중 헬륨4(원자량이 4인 헬륨)보다 가벼워 휘발성이 좋은 헬륨3(원자량이 3인 헬륨)을 이용할 경우 1K보다 낮은 0.3K까지 낮출 수 있다.

헬륨은 공기 중에 0.00013% 정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 중에서 헬륨3은 고작 (${10}^{-5}$)%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헬륨3은 가격도 매우 비싸, 공기 중으로 달아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액체헬륨을 강제로 증발시켜 극저온을 얻는 방법을 증발냉동이라고 한다.

한편 헬륨3과 헬륨4를 혼합해 강제 증발시킬 경우 더욱 낮은 온도인 mK(${10}^{-3}$K)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이 방법을 이용한 냉동기를 희석냉동기라 부른다.

증발냉동의 한계인 mK보다 낮은 온도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냉동이 이용된다. 증발냉동으로 낮출 수 있는 온도까지 내린 후 외부에서 강한 자기장을 걸어준다. 이를 통해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자기적 성질을 한방향으로 정렬된다. 그런 후 단열상태에서 외부 자기장을 없애주면 mK 이하로 온도가 내려간다. 이와 같은 자기 냉동방법으로 μK(${10}^{-6}$K) 이하의 온도도 얻을 수 있다.

한편 레이저를 이용해서 온도를 낮추는 방법도 있다. 이는 고체나 액체처럼 거시적인 물체의 온도를 내리는 냉동법과는 구별된다. 즉 레이저 냉동은 냉동시키는 대상이 기체이고 또한 수천-수만개의 원자들이다. 따라서 냉동 대상의 크기도 일반적인 냉동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그림) 1기압에서 냉동액체의 끓는점



원자를 냉동시키는 방법

그런데 어떻게 레이저로 원자들을 냉동시킬 수 있을까. 2개의 레이저를 양방향에서 기체 원자를 향해 쏜다. 그러면 원자들이 두 레이저 빛과의 계속되는 충돌로 인해 속도가 줄어든다. 그 결과 원자들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다. 이를 세개의 축에서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는 세쌍의 레이저를 이용하면 공간적으로 완벽히 한 지점에 원자들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이같은 레이저 냉각법으로 원자들을 nK(${10}^{-9}$K)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이 정도의 온도에서 원자는 1초에 2cm 움직인다. 상온에서 기체는 빛 속도의 1천분의 1 정도로 아주 빠른 속도인 것과 대조된다.

1997년 레이저 냉각법을 개발한 공로로 벨연구소의 스티븐 추, 미국 표준연구소의 윌리엄 필립스, 그리고 프랑스 파리대학의 클로드 코엔-타누지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레이저 냉동은 지금의 원자시계를 1백배 이상 향상시킬 수 있고, 중력장도 더욱 세밀히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레이저 냉동의 개선이 현재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오늘날 극저온 상태에서 과학자들은 무엇을 연구하는 것일까. 현재 극저온 기술은 많은 물리학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물질의 근본적인 특성을 연구하는 응집물리 분야에서 보편적인 기술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분야에 따라 극저온에서 관찰되는 물리현상들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모두 언급하기란 불가능하다. 때문에 여기서는 대표적인 극저온 연구 몇가지에 대해서만 설명한다.

극저온의 대표적인 연구분야는 헬륨이다. 모든 기체는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기체 → 액체 → 고체의 과정을 거친다. 즉 온도를 계속 내리면 언젠가는 고체가 된다.

그런데 헬륨은 절대영도에서도 액체상태를 유지한다. 이같은 특이한 성질은 헬륨의 독특한 두 성질에서 기인한다. 헬륨은 불활성 기체로, 원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매우 적어 서로 독립적이다. 또한 작은 질량 때문에 양자역학적인 불확정성이 커 절대영도 가까이에서도 운동이 아주 활발하다. 따라서 헬륨 원자들을 주어진 위치에 묶어두기(고체로 만듦)는 아주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에서 아주 센 압력(25기압)을 가해야만 한다.

헬륨이 보이는 또다른 놀라운 현상은 2.7K 이하에서 초유체가 된다는 점이다. 초유체는 점성이 없는 액체를 말한다. 초유체는 점성이 없으므로 관속을 영원히 흐를 수 있다. 이러한 초유체의 성질은, 초전도체 도선에는 전기저항이 없어서 전류가 영원히 흐르는 성질과 일맥상통한다.

또다른 극저온 연구 대상은 비자성 도체의 초전도현상이다. 초전도현상은 발견 당시부터 자성을 갖지 않으면서 도체인 비자성(非磁性) 도체가 극저온 상태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가하는 의견이 제기돼 왔다. 아직까지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μK으로 온도를 낮출 수 있게 됨에 따라 기존에 초전도성이 발견되지 않았던 비자성 도체가 초전도성을 띠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비자성 도체에 속하는 물질 중에서 초전도성이 발견되지 않는 물질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귀금속의 대표인 금이다. 앞으로 더 온도를 낮춘다면 금에서도 초전도성이 발견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극저온 연구는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국내 일부 대학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게다가 유지비가 만만치 않아서 장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실정이다. 다만 대전에 위치한 기초과학지원연구소가 다양한 극저온 장비들을 갖춰 국내 대학의 여러 교수들이 공동으로 연구팀을 만들어 연구에 매진할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두대의 장비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야 하므로 그순서를 기다리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돼 오늘날과 같은 빠른 과학발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극저온 연구분야는 헬륨에 관해서다. 헬륨은 2.7K 이 하에서 점성이 사라지는 초유체가 된다. 그 때문에 용기 안의 헬 륨이 아래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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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일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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