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난이도 | 조광래의 '비하인드 로켓' 14
2010년 6월 10일 나로호 2차 발사는 의문의 폭발로 갑자기 끝났다. 발사 후 137초경, 아직 나로호 1단의 엔진이 연소하고 있는 구간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폭발을 감지한 1단의 제어시스템은 1단의 엔진을 강제로 종료했다. 추력을 잃은 나로호는 정상 궤도를 벗어나 자유낙하했다. 이후 나로호의 구조물로 추정되는 잔해물이 제주도 남단 공해상에서 발견됐다.
사고의 책임은 당연히 러시아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폭발 이전까지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고, 이륙 후 228초까지는 1단의 엔진이 작동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228.67초에 1단 엔진에 정지 명령이 내려지고, 231.67초에 1단과 2단이 분리되며 그 후, 2단 점화시점(395초)까지는 탄도비행을 하게 돼있었다. 우리측 연구자들은 러시아측 장치가 문제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러시아측의 생각은 달랐다. 사고가 난 바로 다음 날부터 우리나라가 개발한 2단 엔진(킥모터)의 비행종단시스템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비행종단시스템은 2단 엔진이 오작동할 때 더 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엔진을 폭파시키는 시스템이다. 비행종단시스템이 작동하면 발사체엔 큰 폭발이 일어난다.
사고 원인을 둘러싼 양측의 논쟁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한국과 러시아 모두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완벽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에, 서로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상황만 지속됐다. 결국 양측은 사고를 검증할 수 있는 지상재현시험을 수행하기로 했다. 나로호 1단을 개발한 러시아 흐루니체프사 및 협력업체 관계자 13명과 2단을 제작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문가 13명이 한·러 공동조사위원회(FRB)를 꾸렸다.
또한 좀 더 객관적인 원인 규명을 위해 나로호 개발에 참여하지 않은 국내 산학연 전문가 17인으로 별도 조사위원회도 구성됐다. 조사위원회는 한·러 공동조사위원회가 제기한 가설을 심층분석하는 역할을 맡았다.
비행종단시스템 일부러 작동시켜보니
한·러 공동조사위원회는 다양한 지상재현시험을 실시했다. 대표적으로 2단에 실렸던 비행종단시스템의 기폭장치를 의도적으로 작동시켜 2단 엔진을 폭파하는 시험을 진행했다. 만약 2차 발사에서 비행종단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켰다면 실제 비행에서 2단 엔진이 연소된 결과와 지상시험에서 2단 엔진이 연소된 양상이 똑같이 나타날 것이었다.
재현시험은 2010년 11월 24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이뤄졌다. 조사위원회 연구팀은 실제 비행에 사용된 것과 같은 비행종단시스템과 2단 엔진, 2단 엔진 추진제를 준비했다. 그리고 비행종단시스템 내 기폭장치를 작동시켰다. ‘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수 ms(밀리세컨드·1ms는 1000분의 1초)만에 2단 엔진 추진제에 불이 옮겨 붙었다. 화염은 2단 엔진 내부 공간으로 전파됐고, 0.4~0.6초만에 2단 엔진 노즐부의 온도는 센서의 계측 한계까지 급상승했다.
이는 실제 비행 중에 측정된 데이터와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실제 비행에서는 비행종단시스템에 기체 이상이 감지된 후 1초 동안 2단 엔진의 노즐부 온도 변화가 없었다. 비행종단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켜 2단 엔진이 점화된 게 아니라는 뜻이다.
폭발이 일어난 부위의 열유속(heat flux) 값을 측정한 결과도 지상시험이 실제 비행 때보다 약 6배나 큰 것으로 나타났다. 비행 중에 발생한 폭발의 규모가 지상재현시험 때보다 훨씬 작았다는 의미다. 실제 비행에서 나로호 내부 카메라에 촬영된 빛을 분석한 결과도 지상재현시험의 그것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러시아측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계속해서 2차 발사의 실패 원인이 비행종단시스템 오작동이라고 주장했다. 수차례 회의에서도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자 양측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급기야 흐루니체프사의 부사장이자 러시아측 나로호 발사 책임자인 유리 바흐발로프 박사는 회의 도중 “안녕히 가시라”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내리친 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국제 협력 관계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무례와 횡포였다. ‘기술이 깡패’라는 말을 떠올리며 씁쓸히 회의장을 나와야만 했다.
결국 각국 정부가 중재에 나섰다. 러시아 연방 우주국에서 정부 차원의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의가 왔고 한국 정부도 동의해 정부 인사와 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한·러 공동조사단(FIG)이 구성됐다.
한·러 공동조사단은 2011년 7월과 10월 두 차례 회의를 열고 총 5가지 나로호 2차 발사 실패 시나리오를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5가지 시나리오는 ‘1단 제어시스템 오작동’ ‘1단 추진기관 시스템 오작동’ ‘과하중에 의한 구조적 파괴 단분리장치 오작동’ ‘산화제 순환 시스템 오작동’ ‘2단 비행종단시스템 오작동’ 등이다.
결론적으로 한·러 공동조사단도 실패 원인에 대한 이견을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한·러 공동조사단은 양측 정부가 주장한 원인들을 보완해 3차 발사를 준비하기로 합의했다. 발사 실패 원인을 명확히 가리기가 힘들고 3차 발사를 성공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한·러 공동조사단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비행종단시스템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고, 러시아 흐루니체프에는 1단 추진기관 시스템과 1단과 2단을 분리하는 단분리장치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할 것을 권고했다. 또 1단과 2단의 상호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양측 정부는 이 같은 권고 조치를 시행한 뒤, 2012년 10월에 3차 발사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2차 발사에 실패한 지 무려 2년 4개월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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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재개된 3차 발사 준비
2012년 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팀은 다시 한 번 나로우주센터에 모여 3차 발사 준비에 돌입했다. 2차 발사 실패 후 1년 넘게 실패 원인을 조사하며 연구원들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러시아와의 공방도 힘들었지만 내부를 이해시키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았다. 한·러 공동조사단이 2차 발사 실패 원인을 한 가지로 도출하지 못한 것을 두고, ‘발사 실패에 대한 원인규명도 없이 3차 발사를 강행한다’ ‘러시아와의 불평등 계약으로 실패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 못했다’는 내용의 비난 기사가 쏟아졌다.
우주발사체는 발사 실패 시 잔해를 수거하거나 사고 현장을 확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발사체가 비행하면서 지상으로 전송한 원격측정데이터에 상당 부분 의존해 사고 원인을 규명한다. 때문에 직접적인 실패 원인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열심히 설명해야 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이 아닌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별도 조사위원회와의 마찰도 있었다. 별도 조사위원회는 폭발의 원인을 규명한다는 이유로 각종 원격측정신호에 대한 분석과 지상검증시험을 요구했다. 그중에는 무리한 요구도 있었다.
가령 조사위원회는 나로호에 탑재된 진동센서 측정값으로 폭발 충격의 크기를 역으로 계산할 것을 요구했다. 진동센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접근이다. 하지만 나로호에 탑재된 진동센서는 이륙과 비행 중에 발생하는 진동 현상을 계측하는 센서로, 이번 폭발은 진동센서의 계측범위를 크게 초과하는 충격이라 정상적인 계측을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조사위원회는 진동센서에 계측된 값으로 폭발 충격의 입·출력 관계를 유추해내길 원했다.
조사위원회에 자료로 제출했던 나로호 관련 기밀 서류가 외부로 유출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조사위원회는 조사를 명목으로 다량의 나로호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2차 발사 이후 조사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는 500여 건 9000여 쪽에 달했다.
그런데 조사위원회의 활동이 끝난 2012년 1월, 우리나라 수사기관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조사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를 국방자료 유출건으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기술 자료를 발견했는데 나로호 설계자료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해당 기관을 방문해 확인하니 정말로 조사위원회에 제출한 나로호 자료였다.
허탈할 뿐이었다. 그동안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보안이 필요한 기술 자료를 연구소 내에서 열람하길 원했고, 조사위원회는 공간적 제약이 조사활동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기술 자료를 연구소 밖으로 가져나가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가운데 울며 겨자먹기로 내어준 기술 자료가 결국 외부로 유출된 것이다.
이 모든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3차 발사에 성공하는 것뿐이었다. 우리 연구팀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3차 발사에 필요한 2단 엔진 점검부터 들어갔다. 2단 엔진에 들어가는 고체추진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특성이 변한다. 때문에 처음 제작했을 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 노화(aging) 효과라고 말한다.
3차 발사에 사용된 2단 엔진은 2008년 초반에 제작한, 3차 발사일 기준으로 제작한지 5년이 지난 엔진이었다. 상태에 이상이 없는지 2단 엔진을 전문기관으로 이송해 내부를 X선으로 분석했다. 한 달간 분석을 진행한 결과, 2단 엔진의 고체추진제를 3차 발사에서도 무리 없이 쓸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게 더디지만 한 걸음씩 3차 발사를 향해 나아갔다.
조광래
1988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서 과학로켓 개발을 시작해 이후 30년 넘게 발사체 개발에 몸담았다. 1993년 1단형 과학로켓 KSR-Ⅰ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90년대 후반 KSR-III 사업부터 2002~2013년 나로호 사업까지 총책임자를 맡았다. 2014~2017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을 맡아 2021년 발사 예정인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 개발을 이끌었다. gwcho@ka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