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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상과 실제 구분 안되는 디지털 여행

컴퓨터 기술과 방대한 사료의 조화

언젠가 ‘현재’였고 지금은 과거가 돼버린 문화유산. 선조가 남긴 문화재를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 문화재가 인류사의 연속성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훼손되기 쉬운 문화 유산의 영원한 존속을 보장한다는 디지털 복원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디지털 복원’이라는 단어는 원래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 ‘디지털 복원학’이라는 학문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이와 비슷한 외국의 사례로 영국에서는 몇년 전부터 ‘버추얼 아키알러지’(Virtual Archaeology) 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3차원 고고학’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고고학의 범위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영국식의 고고학을 수용할 수 없다. 따라서 기록이 없는 고고학과 기록이 남아 있는 역사학을 포괄한, 역사 이전과 역사 이후 시대를 모두 포함할 수 있는 용어로 디지털 복원학이란 단어가 탄생했다.

디지털 복원학은 ‘고대 문화를 디지털 기술로 재현해내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 반만년이라는 엄청난 시간,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우리의 역사를 영상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소중한 유산이 되겠는가. 우리 역사의 맥과 의미를 후손들이 길이 간직할 수 있으려면 디지털 복원이 문화재 복원의 큰 흐름을 이뤄야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거나 불완전한 문화재를 과거의 사료와 고증을 거쳐 다시 탄생시킬 수도 있고, 현재의 문화재를 디지털 형태로 감상하고 간직함으로써 향후 훼손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디지털 본존불상은 레이저빔용 정밀 카메라를 이용해 불 상에 레이저빔을 발사한 후 광선이 맞고 돌아오는 시간 을 계산해 3차원 등고선으로 명암과 굴곡을 표현해 탄 생한다. 컴퓨터 그래픽스로 본존불상의 정면 2. 옆면 3. 뒷면을 작업하는 모습.



철저한 고증과 많은 자료가 필수

그렇다면 디지털 복원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문화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고증과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현장 답사와 실측을 통해 진행돼야 한다. 이것은 아날로그 복원이나 디지털 복원 양측에 모두 해당하는 철칙이다. 이를 위해 먼저 복원 제작의 출발점이 되는 기획과 환경결정 작업을 수행한다. 이 단계에서는 제작 관계자들이 모여 제작하고자 하는 문화재의 종류와 역사적 배경, 프로그램 체험시간, 사운드 효과, 배경음악의 선곡 등 작품 제작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토의하고 결정한다. 또한 문화재 복원에 3차원 스캐닝(scanning)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3차원 스캐닝은 복원하려는 대상에 레이저빔을 발사한 후 반사되는 각도의 수치 데이터를 기록해 3차원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레이저빔용 정밀 카메라를 이용해 레이저빔을 발사하면 광선이 복원 대상에 맞고 돌아오는 시간을 정밀하게 계산해 수치화하고, 이를 지도처럼 미세한 3차원 등고선으로 명암과 굴곡을 표현한다. 이런 작업을 거치면 불상의 경우 잘 잡아내지 못하는 눈꼬리, 입술, 콧망울 등 매우 미세한 특징까지 잡아내 원형처럼 생생한 느낌을 살려낼 수 있다.

기획과 환경결정 작업이 마무리되면 복원하려는 문화재에 관련된 복원 도면과 논문을 수집해야 한다. 완전하든 불완전하든 현재 존재하는 문화재를 답사해야 하고, 그밖에 도움이 되는 문화재의 미니어처를 만들거나 촬영해야 한다. 또한 기타 유사한 문화재의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는 등 문화재 관련 자료를 최대한 모아야 한다. 복원 작업에 들어갔을 때 자문해줄 수 있는 문화재 관련 권위자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는 것도 빠져서는 안될 필수적인 요소다.

이제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 작업에 들어갈 차례다. 가상현실 세계에서는 사용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움직일 수 있지만, 제작자가 의도한 시나리오가 효율적일수록 가상세계로의 여행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시나리오의 작성은 가상현실 제작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문화재에 대한 정보를 얻음과 동시에 재미도 충족시킬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요소도 겸비한 시나리오를 작성하면 더욱 금상첨화다.

스토리보드란 화면을 대상으로 장소, 상황, 동작, 타이밍, 효과음을 기록한 일종의 장면 스케치로, 영화의 경우 촬영대본과 같다. 이후의 모든 작업은 스토리보드를 기준으로 이뤄지므로 작품 제작의 설계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여러 고증된 역사 자료를 통해 문화재가 갖는 특성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예를 들어 석굴암의 경우 동이 튼 후 처음 빛이 비추는 곳이 본존불상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카메라의 앵글이 햇빛처럼 산등성을 타고 석굴암 내부에 들어가 본존불을 비추는 등 사실적 묘사와 함께 문화재를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스토리보드를 제작해야 한다.
 

디지털 복원 단계를 거친 익산 미 륵사 석탑의 모습. 레이저 카메라 로 실제 석탑의 모습을 촬영하고 수치 데이터로 재구성한 후 모델 링 작업을 거치면 미륵사 석탑의 실제 모습에 버금가는 디지털 문화재가 태어난다.



질감 표현은 콘크리트에 벽지 바르기

문헌 기록과 고증을 통해 사전 준비작업이 끝나면 복원도면을 디지털화해 3차원 모델링 작업을 한다. 모델링은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해 복원 대상을 3차원으로 묘사하고 배치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복원 대상의 정면, 측면 등 다양한 곳에서 본 모습을 스캐닝한 수치 데이터를 이용해 3차원 모델을 완성한다.

3차원 모델링 작업을 할 때 염두에 둬야 할 문제는 모델의 전체 다각형 갯수다. 여기서 다각형은 3차원 복원 대상을 구성하는 선의 숫자로 이뤄진다. 복원 영상은 수많은 선들로 구성돼 있는데, 선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밀하고 선명한 모습을 띤다. 하지만 무작정 전체 도면을 바탕으로 모델링을 하다보면 자료의 양이 방대해질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부분까지 복잡한 모델링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부문별로 중요도를 점검하고 구분하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질감 표현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모델의 다각형의 수를 줄이면 물체의 형태를 자세히 표현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이 경우 세부 이미지를 2D 제작도구를 이용해 정교하게 만든 후 물체에 입히면 문화재의 질감과 형태를 좀더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다양한 정보 수집을 통해 얻은 사진을 포토샵 등과 같은 제작도구를 사용해 사진의 선명도와 그림자 등을 수정·보완한 후 모델링에 덧씌운다. 마치 회색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벽지를 바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모델링과 질감 표현이 끝나면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디지털로 복원된 문화재를 가상현실 세계에서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탐색운행 경로, 사운드, 상호작용 등을 부과하는 과정이다.

이런 일련의 디지털 복원 과정을 거친 복원 영상물은 가상현실 공간에서 최종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상현실 공간은 서라운드 스크린과 서라운드 사운드를 갖춘 프로젝션 기반의 몰입형 시스템인데, 사방을 에워싼 좌측, 정면, 우측 벽과 바닥에 3차원 영상을 프로젝터가 비춤으로써 생생한 가상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 위치 추적장비와 3차원 입체 안경, 3차원 마우스 등이 더해져 사용자는 3차원 입체안경을 착용한 후 눈에 비쳐지는 이미지 중 좌측 이미지는 사용자의 좌측 눈에, 우측 이미지는 사용자의 우측 눈에 각기 다른 각도의 이미지를 전달받을 수 있다.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대표적인 시스템으로 ‘케이브’가 있다. 케이브는 1992년 일리노이주립대 시각화 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으로, 현재 전세계 약 1백여개의 연구소나 박물관에 설치돼 있다. 이미 일본, 오스트리아, 그리스에서 케이브 환경을 이용한 문화재 디지털 복원이 이뤄진 바 있다.


최종 목표는 타임머신 여행



최종 목표는 타임머신 여행

가상현실로 만날 수 있는 디지털 복원의 형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금 현재 존재하지 않는 문화재는 어떤 형태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디지털 복원은 복원 대상에 따라 크게 다섯가지의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회귀 복원, 원형 복원, 가상 복원, 유지 복원, 체험 복원이 그것이다. 먼저 회귀 복원은 현재 남아있는 유적이지만 본래 형태를 찾아가는 복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현재 남아있는 불국사는 통일신라 당시의 모습이 아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버린 후 조선시대 건물 양식으로 다시 복원한 것으로 진정한 복원이 되려면 신라시대 양식의 불국사를 만들어야 한다.

원형 복원은 미륵사 황룡사처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 유적에 대해 그 당시의 원형으로 복원시키는 것을 말한다.

가상복원은 말 그대로 새로운 유적을 발굴하기 전 영상을 사전에 복원하는 것으로, 진시황릉이 대표적인 사례다. 영화 ‘진용’으로 유명한 진시황릉은 아직 발굴되지 않고 그대로 놔둔 처녀분이다. 진시황릉 지하궁전은 동서 4백85m, 남북길이 5백15m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방대한 규모의 지하 궁전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지 중국 섬서사범대 마치 교수를 비롯한 중국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진시황릉이 있는 지하 깊숙한 곳은 사방이 수은으로 막혀있다. 바로 발굴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하궁전을 발굴하기 위해 개방할 경우 내부 부장품들이 산화돼 손상된다. 따라서 산화로 인한 부식기술을 제어할 수 있는 신기술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대로 덮어둬야 한다. 결국 중국 정부는 출토한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할 때까지 진시황릉뿐 아니라 중국 전역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유적지를 발굴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신기술이 나올 때까지 10년이고 1백년이고 무작정 기다릴 순 없지 않은가. 가상 복원은 이런 경우 필요하다.

가상발굴의 개념은 발굴 후의 영상 복원이 아니라 실제 발굴 작업에 착수하기 전 발굴 유물의 상태와 발굴 유적의 공간 배치 구조에 대한 사전 조사이기 때문에 가상 추정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발굴 예정지의 규모와 형태를 발굴 전 영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전에 검토해 실제 발굴할 때 유물의 손상을 피하고 효과적인 발굴을 돕는다.

유지 복원은 처음 발굴했던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무령왕릉의 복원을 꼽을 수 있으며, 맨 처음 왕릉문을 열였던 첫발굴 당시 모습을 재현해 무령왕릉의 원형을 되찾는 방식이다.

체험 복원은 최첨단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타임머신적 복원으로, 일종의 디지털 과거여행으로 이해하면 된다. 지금 디지털 복원에서 주는 현실감으로는 타임머신적 체험 복원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아직 컴퓨터 기술이 타임머신에 타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진정한 체험 복원은 가상 공간의 문화재가 가상인지 실제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사실적이어야 하는데, 체험 복원의 형태까지 이르려면 10-15년 정도 더 지나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된다면 공상과학영화에나 등장하는 타임머신을 실제로 타고 다닐 순 없더라도 동일한 정도의 과거 경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디지털 손길 기다리는 고대 유물

디지털 복원은 기존의 논문이나 종이책 문화에 고착돼 왔던 과거 역사에 대한 이해를 영상의 힘을 통해 한층 더 확장시켜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론이나 학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복원도 ‘이럴 것이다. 이럴 수도 있다. 이랬지 않겠느냐?’ 등의 추측이나 영상적 학설일 뿐 사실이 아닐 수도 또는 잘못 복원해 역사를 왜곡할 수도 있다는 한계를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 당시 환경과 현재 보유한 자료와 데이터를 통해 가장 가깝게 그 시대를 복원하느냐 또는 좀 미흡하게 했느냐 라는 차이는 있을 것이다. 또한 단순히 영상 기술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문헌사학자, 미술사학자, 고고학자들의 부단한 발굴 성과나 진일보한 고증과 논문의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인문학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컴퓨터 영상관련 디지털 엔지니어나 그래픽 아티스트에 의한 효과적인 미디어 운용이 겸비될 때 비로소 완벽한 고대 문화의 재현이 이뤄질 수 있다.

인류가 보존해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인 문화재는 훼손되기 전에 보호돼야 하고, 훼손된 문화재는 빠른 시간 안에 디지털 복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점점 더 정체성이 사라지는 현대 사회, 오늘의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이 과거로부터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보여주고 다시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는 것이 디지털 복원의 진정한 의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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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박현정
  • 박소연 교수
  • 박진호 주임
  • 만화

    박찬영
  • 진행

    장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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