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학생에게 자기집을 그려보라면 아마 절반 이상은 아파트를 그릴 것이다. 전체적으로 네모난 모양이지만 각 집에 나있는 문과 창문도 사각형이고 각 방의 바닥도 사각형이다. 건축은 자연을 모방한 것이고 자연에는 수많은 형태가 있는데 왜 하필이면 사각형을 사용했을까.
주변 건축물의 바닥은 거의 모두가 사각형이다. 혹 사각형이 아닌 바닥도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서울의 남산타워가 원형의 평면을 가졌고, 장충체육관도 원형, 에스키모의 이글루도 원형,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 원시인들이 살던 움집이 원형 바닥이다. 그러니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건축물의 바닥은 사각형 아니면 원형, 이 두가지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내부 면적 극대화하는 원형 구조
원형과 사각형은 건축물 말고도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임에는 틀림없다. 예를 들어 술병이나 컵, LPG통처럼 액체나 기체를 담는 용기, CD, 시계, 자동차 바퀴, 항아리 등이 모두 원형이다. 원형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제일 경제적인 형태라는 점이다. 위에서 열거한 항목은 대부분 대개 무엇인가 내용물을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이고, 그 내용물은 액체나 기체와 같이 용기의 모양에 맞춰 자유롭게 형태가 바뀌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기의 형태는 같은 양의 내용물을 넣는데 최소의 비용이나 노력 즉, 제일 짧은 외곽길이를 가진 것이 선택된다. 원형이 사각형이나 삼각형에 비해 외곽길이에 대한 내부 면적 효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은 간단한 수학 공식으로 쉽게 증명할 수 있다. 때문에 집을 짓는 일이 매우 힘들고 기술과 자재가 부족했던 원시인들은 원형의 평면을 최초로 사용했던 것이다. 중세의 성곽이 원형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최소의 병사로 성곽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곽을 둥글게 하지 않으면 안됐다.
하지만 장충체육관이 원형인 점은 조금 다른 이유도 있다. 원형은 중심에서 모든 방향으로 같은 거리를 가진다는 특성을 갖는다. 때문에 구경거리가 생겨 사람들이 모여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빙 둘러서게 된다. 또 원형은 인간이 사용한 가장 원시적인 형태, 그리고 자연에 두루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서의 상징성도 갖는다. 석굴암이 둥근 것은 그것이 우주를 상징하려 했기 때문이고, 우리의 국기에 있는 태극의 둥근 모양도 우주의 삼라만상이 생산되는 최초의 기원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사각 평면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의 결과물로서 건축의 역사에서 보면 고대문명의 시작과 때를 같이해 크게 융성한 평면이다. 원형에 비해 사각형이 우수한 점은 그것을 여러개 쌓거나 이어놓을 때, 그리고 그 내부를 여러개로 분할할 때 특히 유리하다는 점이다. 원형의 사용예로 술병을 들었지만, 병을 만드는 비용 정도는 무시할 만큼 비싼 술병 중에는 원형이 아닌 것이 많고, 냉장고용으로 만들어진 패트물병은 사각형이며 심지어 CD도 그 케이스는 사각형이다.
또한 물건을 담는 상자들 역시 사각형이다. 이처럼 사각형은 쌓거나 나누는 것에 관계있다. 사각형은 계속 쌓아나가도 사각형이 되고, 계속 나눠나가도 변함없이 사각형으로 남는다.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결과는 사각형이다. 이것은 다른 도형이 갖지 못하는 매우 큰 장점이다.
인간예지 돋보이는 예리한 사각모서리
조선시대 건축법에는 원기둥을 일반 주택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집들은 모두 사각형의 기둥을 사용했고, 조금 더 멋을 내고 싶으면 모를 죽여 팔각형으로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정부에서 원기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이유는 재료의 낭비를 막기 위해서였다. 재목이 얼마나 큰지에 관계없이 하나의 재목으로 원기둥은 단 한개 밖에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사각형의 기둥은 재목만 크다면 여러개를 만들 수 있다.
한편 원시인의 움집이 원형에서 사각형으로 바뀐 것은 내부공간을 구분하기 위해서다. 부계 씨족사회로 바뀌면서 가족수가 늘어났고 집이 커지면서 더이상 원형의 한공간에서는 복잡한 가족관계를 수용하기 어렵게 됐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사각형의 2실형 움집으로 바뀐 것이다.
사각형도 처음에는 기능이나 효율상의 이유로 사용됐지만 점차 상징성을 갖게 됐다. 원형에 비하면 사각형은 매우 불평등하다. 이쪽이 있고 저쪽이 있어 편을 가르고, 모서리와 변이 있어 차이를 가지며 앞과 뒤, 좌와 우의 네방향을 갖는다. 원형이 중심과 주변 두가지로만 구분되는 것과는 다르다. 때문에 다자간의 평등 관계를 강조하는 회담은 원탁에서 하고, 대립하는 한쌍이거나 상하의 차이가 있는 경우는 네모난 책상을 마주하고 앉는다. 또 사각형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발명품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 자연에는 직각이 존재하지 않으며 정확히 측량해 만들어낸 사각의 예리한 모서리는 인간적 예지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다.
자연과 이성이라는 두가지 대립축으로 성장해온 원형과 사각형이 과연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주변의 사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곳에 사용된 기본형태를 분별해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일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