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냉장고, 전자레인지, 비디오, 오디오, 컴퓨터, 프린터 등 각종 전자제품들이 진열돼 있는 전자제품 판매점을 들러보자. 그곳에는 같은 종류의 전자제품이 회사나 가격, 모델에 따라 길게 줄지어 늘어서 있다.
만약 청소기를 사려고 한다면 어떤 기준에서 어느 회사의 모델을 선택해야 할까. 아마도 디자인은 물론 얼마나 먼지를 잘 빨아들이는지, 얼마나 사용하기 편리하고 안전한지, 그리고 고장은 잘 나는지와 같은 제품의 품질을 함께 고려할 것이다.
따라서 각 전자회사는 소비자가 자사의 제품에 만족할 수 있도록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전자회사는 다양한 시험을 거친 후 제품을 소비자 앞에 선보인다. 소비자가 실제로 제품을 사용할 때 느끼지 못하는 다양하고 혹독한 시험들을 말이다.
소비자는 각 제품마다 원하는 기능이 다르다. 청소기는 잘 빨아들여야 하고 에어컨은 냉방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따라서 각 제품마다 특별히 중요시되는 테스트가 있다. 몇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더운 여름 재현해 평가받는 에어컨
에어컨은 뭐니뭐니해도 ‘빨리’ ‘골고루’ 주변을 시원하게 해야 좋은 것이다. 이같은 에어컨의 성능을 시험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바로 더운 여름철 환경이 구현돼야 한다.
온난실험실이 바로 에어컨 전용 성능시험소. 이곳에는 한칸짜리 집이 있다. 집은 한쪽벽은 온통 유리창으로 돼 있는데, 그 안으로 한쪽 구석에 에어컨이 서있고, 내부는 온통 온도센서와 습도센터로 채워져 있다. 이를 통해 방안의 3차원 온도와 습도정도를 알아낸다. 여름철 고온다습한 우리나라에서는 냉방기능뿐 아니라 제습기능도 중요하기 때문에 습도가 온도 못지 않게 중요하게 측정된다.
페르시안 고양이 털 잘 빨려야
에어컨의 성능실험은 마치 실제 환경과 비슷하다. 집 바깥 온도를 35℃로 높인 후 에어컨을 켜고 얼마나 빨리 시원해지는지, 골고루 시원해지는지를 조사한다. 또 우리나라의 기후에서 ‘마의 한계’라 할 수 있는 45℃와 같은 고온에서도 제대로 작동되는지를 확인하는 실험도 이뤄진다.
청소기의 경우는 어떨까. 구석구석 먼지를 잘 빨아들여야 하는 청소기의 성능을 시험할 때 관건은 먼지 만들기다.
왜 그럴까. 실험의 재현성이 보존돼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매번 다른 먼지로 청소기 성능 테스트를 실시한다면 그 테스트는 믿을 수 없다. 즉 청소기의 성능을 규격화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청소기 성능 테스트를 위해 일정 기준에 따른 먼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국제 기준으로 정해져 있다. 청소기가 빨아들여야 하는 큰 알갱이, 작은 알갱이, 머리카락, 솜털과 같은 재료를 일정 비율에 따라 섞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영국으로 수출하는 청소기는 색다른 먼지를 포함해서 성능을 시험한다. 바로 페르시안 고양이의 털이다. 영국의 소비자는 페르시안 고양이의 털이 잘 빨리는 청소기를 선호한다고 한다.
흔들거리는 철사망 바닥
냉장고, 청소기, 에어컨은 물론 각종 오디오·비디오 기기의 전자제품은 동작할 때 소음이 발생한다. 소음은 생활에 거슬리는 요소이기 때문에 제품 선택시 고려대상이 된다. 때문에 소비자에게 호소력있는 전자제품의 광고테마로 적은 소음이 채택되기도 한다.
그런데 제품의 소음을 제대로 측정하려면 전자파 측정보다 더 복잡한 시설을 요구한다. 전자파처럼 외부의 영향을 차단해야 할 뿐 아니라 공기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소리의 특성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소음을 차단하는 실험실 내부로 들어가보자. 우선 들어가는 순간 놀라운 것은 바닥이 흔들거리는 철사망이라는 것이다. 즉 소음차단실은 바닥이 공중에 떠있다. 신발의 뒷굽이 철사망 사이로 들어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내부벽은 전볼록하게 튀어나온 특이한 모양의 구조를 띤다. 철사망 아래로 보이는 진정한 바닥도 마찬가지다. 이 특이한 모양의 벽이 소음을 흡수하고 내부로 반사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기 위해 두꺼운 이중상자 구조로 지어졌다.
뿐만 아니라 외부의 진동으로 인해 내부에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구조물이 바깥 구조물과 방진고무라고 불리는 진동을 막는 고무로 연결돼 있어서 마치 가운데에 붕 떠있는 것과 같다. 이 외에도 소음차단실 내부에서 제품 외에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이 보인다. 전등으로 소음이 가장 적은 할로겐램프가 설치돼 있다.
한편 공기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소리의 속도가 달라진다. 때문에 일반적인 전자제품의 사용환경인 온도 20℃, 습도 50%를 항상 유지시키기 위해 공기 순환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어느 위치에 있으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조건에 맞지 않는 예외적인 제품이 있다. 바로 에어컨이다. 이 환경에서는 에어컨을 사용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에어컨의 경우 환경조건을 더운 여름철 환경으로 맞춰 소음을 측정한다.
나라별·나이별로 특성 고려
나라마다 같은 백색에 대해서도 느끼는 바가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붉은 기가 도는 백색, 일본인은 녹색빛을 띤 백색, 그리고 우리나라는 청색빛 도는 백색을 선호한다고 한다. 때문에 영상기기의 경우 어디로 수출하느냐에 따라 화면의 색보정을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영상기기 전문가가 직접 보고 시험한다.
또 오디오 기기의 경우 락과 같은 고음의 음악을 즐기는 젊은층을 겨냥할 것인지, 아니면 클래식음악과 같은 비교적 저음의 깊고 풍성한 음악을 즐기는 장년층을 겨냥할 것인지에 따라 스피커의 특성이 달라진다. 이처럼 제품이 제대로 파악된 소비자의 특성에 따라 개발됐는지를 시험하는 것도 품질 향상의 고려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