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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50년, 과학기술 실종 반세기

미래를 치장하는 선전 도구로 전락


광복50년, 과학기술 실종 반세기


'광복 50년, 통일로 미래로'의 행사가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성대하게 치러졌다. 50년 동안 이룩한 눈부신 경제성장, 비록 더디긴 하지만 꾸준히 발전해 온 사회 문화 정치의 변화된 모습을 파노라마로 보고 있노라면 국민 누구나 자긍심을 느낄만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철저히 소외된 계층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과학기술계다. 이들이 해방 이후 50년 동안 뒷짐만 지고 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논하는 자리에서 전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느 기념식장에서도 과학 기술계 인사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50년의 역경과 영광을 담은 다큐멘터리에서도 '과학기술'은 엑스트라 신세였다. 위대한 정치지도자의 의지는 부각되었을지언정 그것을 일구어낸 과학기술자들의 땀과 노력은 일방적으로 무시됐다. 많은 매스컴에서 수많은 돈과 인력을 투자해 발굴해온 어떤 소재에서도 과학기술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문화계 예술계, 심지어는 스포츠나 연예계조차 50년의 역사를 돌아 보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강조했건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과학기술계 50년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하다 못해 과학 기술계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 언어라도 순화해야 한다는 논리조차 펴지 못했다. 세계를 빛낸 한국인들의 초청 대상에도 과학계 인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노벨상을 받은 한국인이 없어서일까. 장영주나 정트리오와 같은 정말 자랑스런 한국인이 과학계에는 없기 때문일까.

일부에서는 무궁화호가 '개기지만' 않았다면 이벤트나 기념식장에서 과학기술이 그렇게 푸대접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묘한 책임론'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통신위성인 무궁화위성의 성공적인 발사에 초점이 맞춰진 여러가지 이벤트가 취소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8월3일 예정된 무궁화위성 발사가 천재지변(허리케인)으로 연기됐을 때 이를 축하하러 들른 많은 정치인들이 "왜 빨리 발사하지 않느냐"는 득달이 있었다고 한다. '과학'이기 때문에 하나의 오차도 허용되어서는 안되며 실패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극한 상황이 지배하는 우주 환경에서 1백%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정치인들의 '말의 성찬'에서 과학은 항상 0순위이다. 본격적으로 '과학기술입국'이 주장된 것은 3공화국 시절부터이며, 그 이후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과학기술은 미래를 치장하는 도구로 사용돼 왔다. 얼마전에 있었던 대통령의 미국방문에도 우주개발과 핵융합이 등장,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렇지만 "과학 기술 경쟁시대에 나라의 지도자는 과학기술사령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김대통령도 청와대 내에 수석비서관은 커녕 과학 전담 비서관도 두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수단일뿐, 아니 일시적인 선전용 치장 도구일뿐 일관된 논리도 그 자체의 철학도 없는 대상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과학자는 "이번 광복 50년 행사에서 과학기술은 치장의 도구로서의 가치도 잃었다"고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 놓았다. 얼마 전 한 공과대학에서 엑스포95 행사를 기획하면서 해방 이후 50년의 과학기술사를 요약해 전시하려 했으나 자료부족으로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기업의 50년사 자료는 많아도 과학기술 50년사 자료는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할지 막막하더라는 것이다.

혹자는 과학기술이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에, 과거를 되돌아보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를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으면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광복 50년, 통일로 미래로'의 미래는 무엇인가. 과학기술계에서도 이제 지나온 발자취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잘했으면 잘한대로 못했으면 못한대로 과거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질 때 미래의 비전이 올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199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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