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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동물의 의사소통

나방 애벌레 ‘소리 질러’ 적 쫓아낸다

열대 정글에 사는 베짱이가 자신의 뿔과 다리에 난 가시를 보란 듯이 드러내고, 얌전히 먹이만 먹을 것 같은 나방 애벌레가‘소리를 지르는’이유는 무엇일까. 상식을 뛰어넘는 동물의 의사소통을 만나보자.



동물들이 과연 어떻게 서로 얘기를 하고 알아듣느냐에 관한 연구는 동물행동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이다. 물론 동물이 얘기하는 것을 100%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객관적인 방법을 통해서 찾아가는 방법은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개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두마리의 개가 서로 마주보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털과 귀가 쫙 섰고 이를 내보이면서 ‘으르렁’ 거리는 개를 본다면 ‘아유, 귀엽다’하고 쓰다듬어주기보다는 태연하게 사라지는 일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반면에 주인이 돌아왔다고 허리를 낮추고 꼬리를 감아올려 흔들면서 좋아하는 개를 보면 누구나 그 개가 기분이 좋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가지 경우 개가 굉장히 다른 행동 표현을 하고 있다. 시각적으로 보기만 해도 무슨 뜻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자기들끼리의 표현 방식이지만 개가 아닌 사람이 봐도 어느 정도 의미는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방법을 통해서 동물의 의사소통에 서서히 접근해가는 것이다.

동물들이 서로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 중에는 시각과 청각을 이용하는 것이 많다. 먼저 시각적인 방법부터 살펴보자.

기분 따라 색깔 변하는 물고기

중앙아메리카 코스타리카의 열대 정글에 서식하는 베짱이를 보면, 우리나라의 베짱이와는 굉장히 다르게 생겼다. 이 베짱이는 뿔도 나있고 다리에 무척 날카롭고 큰 가시도 있다. 그리고 가까이 가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만히 서서 ‘너, 나 먹어볼래?’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른 포식동물에게 당당히 자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베짱이를 삼킨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목구멍에 걸려서 무척 고생할 것이다. 즉 이 베짱이는 자기의 모습을 오히려 남한테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보일 때 오히려 자기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열대의 호수에 사는 민물고기 중에 시칠리드라는 물고기가 있다. 시칠리드 물고기는 정면에서 보면 마치 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시칠리드는 기분 상태에 따라 귀에 점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데 색깔도 변한다. 귀에 점이 생기면 지금 기분이 안좋다는 사실을 의미하는데 ‘너, 까불면 맞는다’ 정도의 뜻이다. 점이 없어지면 ‘알았어요. 제가 순응할 테니까 좀 봐주십시오’ 하는 뜻이다. 이런 색깔의 변화는 순간적으로 바로바로 일어난다. 시칠리드는 어떻게 색깔을 바꾸는 것일까. 생리학자들이 연구해보니 시칠리드가 몸 안에 색소 세포를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색소 세포가 확장되면 색깔이 나타나고, 축소되면 색깔이 없어지거나 연해진다. 시칠리드가 아주 간단한 메커니즘으로 자기의 심리 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세포 수준에서 밝혀낸 것이다.

얼룩말이 내는 ‘힝힝’의 차이

가시나 색깔이 제공하는 정보는 상당히 정적인 정보다. 반면 모습을 계속 변화시키며 동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뉴욕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까치와 가까운 새인 유럽산 어치라고 부르는 새는 머리에 있는 깃털을 얼마나 세우느냐에 따라서 마음 상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지위를 나타낸다고 한다. 가장 기분이 안좋을 때, 그리고 공격하려고 할 때 머리털을 쫙 세운다. 힘이 없는 놈은 항상 머리털을 낮추고 있어야 한다. 힘도 없으면서 머리털을 잘못 세웠다가는 크게 당하는 수가 있다. 즉 지위가 높은 새일수록 머리털을 높이 세우고 있는 때가 많고, 지위가 낮은 새는 아주 싹 감추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 머리털의 각도를 측정했더니 30°, 60°, 90°의 각도가 이 새 사회의 지위와 착착 맞아떨어졌다.

얼룩말은 반가운 친구를 만나거나 기분이 좋을 때 귀를 세운다. 귀를 세우고 이를 드러내면서 ‘힝힝’거린다. 공격을 하거나 남을 위협할 때는 귀를 낮추고 역시 이를 드러내며 ‘힝힝’거린다. 물론 두경우에 나타나는 ‘힝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를 드러내면서 ‘힝힝’거리는 모습을 보인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를 관찰하면 그 모습의 진의를 확인할 수 있다. 얼룩말의 시각적인 신호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시각을 이용한 의사소통에는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전달이 무척 빠르다. 정보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니까 보이면 바로 의사가 전달된다. 굳은 표정을 보면 바로 저 사람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둘째 누가 정보를 보내는지가 확실하다. 지금 베짱이를 보고 있다면 바로 그 베짱이가 ‘날 먹지 말아라’ 라고 얘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셋째 정보의 내용을 상당히 정확히 조절할 수 있다.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사실을 분명히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시각은 자신의 의도를 세밀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 물론 시각적인 의사소통에도 한계는 있다. 눈에 보이는 신호를 이용하므로 중간에 정보를 다른 동물이 가로챌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냥은 사자가 하고 먹기는 하이에나나 대머리독수리가 하는 이유는 사자가 사냥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얼룩말이 내는 '힝힝'의 차이


앵무새의 노래 만드는 유전자

이제 청각을 이용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동물들을 살펴보자. 자연계의 많은 동물에게 청각은 매우 중요하다. 소리를 질러 자기 표현을 하는 고릴라를 생각해보라. 인간과 굉장히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나 고릴라, 오랑우탄은 모두 청각을 중시하는 동물이다. 침팬지를 비롯한 많은 영장류 동물이 소리를 만들고 듣고 이해하는 것은 모두 뇌의 ‘변연계’에서 담당한다. 변연계는 뇌 안쪽에 있는 부분으로 해마, 뇌하수체 등이 모두 변연계에 속한다. 침팬지는 여기서 소리를 만들고 이해한다.

반면 인간은 생각하는 뇌인 대뇌에서 언어를 담당한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다. 침팬지와 인간은 유전자로만 보면 약 1%, 많아 봐야 1.6% 정도 차이가 난다. 즉 무척 가까운 사촌인 셈이다. 그런데 이 1.6% 차이에 언어 중추가 변연계에서 대뇌로 옮겨온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대뇌에서 담당하는 인간의 언어는 사실 자연계에서 거의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새의 소리에 대해 유전학 분야에서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벌새, 앵무새, 찌르레기는 다른 동물의 소리를 흉내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진화적으로 볼 때 별로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소리와 관련된 기관도 따로 진화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 모두 노래를 부르거나 다른 동물의 노래를 들을 때 젱크(ZENK)라는 같은 유전자가 다량 발현되고, 이 유전자가 발현되는 위치가 뇌의 7지점으로 모두 같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새의 종류는 달라도 소리를 배우거나 만드는 기본적인 구조는 같을 것이라는 의미다. 원숭이나 사람, 고래도 다른 동물의 소리를 흉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도 새처럼 같은 유전자와 같은 발현위치를 갖고 있는 것일까?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코끼리는 발로 대화한다

소리를 이용한 대표적인 의사소통의 하나는 경보음이다. 북미산 얼룩다람쥐나 여우원숭이 무리에는 보초를 서는 개체들이 따로 있다. 이들이 코요테나 독수리 같은 맹금류를 발견하면 날카로운 경보음을 낸다. 연구에 의하면 이들이 내는 소리는 포식자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이 소리를 듣고 주변에 있던 동료들은 흩어져 도망간다.

그러나 소리를 지른 보초는 포식자에게 훨씬 쉽게 노출될 것이다. 얼룩다람쥐의 이런 행동은 많은 학자들에게 동물사회에도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돕는 행동이 있다고 믿게 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얼룩다람쥐의 이런 행동은 순수한 의미의 희생정신과는 관계가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소리를 질러 이익을 보는 것은 흩어지는 동료들이 아니라 소리를 지르는 보초병 자신이라는 것이다. 보초병이 소리를 지르면 주변의 다른 동물들이 놀라 달아나면서 주변에 한바탕 혼란이 일어나는데, 정작 포식자에게 노출된 보초병은 이런 혼란을 틈타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연구에서는 보초병이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주변에 있는 이웃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식이나 자신과 피를 나눈 친족들을 위해서라고 한다.

소리로 자신을 방어하는 동물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방 애벌레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먹는 일 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캐나다의 한 연구팀은 ‘갈고리 모양 나방’ 애벌레가 자기가 머무는 나뭇잎에 다른 애벌레가 침입하면 입으로 나뭇잎을 두들겨 상대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갈고리 모양 나방’ 암컷은 자작나무나 오리나무에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애벌레는 나뭇잎에 실로 작은 텐트를 만들어 다른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그러다 다른 애벌레가 자신의 구역에 침입하면 처음에는 노처럼 생긴 뒷다리로 나뭇잎을 긁어 진동음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침입자가 더 가까이 접근하면 입으로 나뭇잎을 긁어 짧고 강한 소리를 계속 만들어낸다. 그들은 나뭇잎의 진동을 통해서 서로의 소리를 인식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주인이 이긴다. 그러나 상대가 큰 경우라면 주인이 바뀔 때도 있다. 대개 싸움은 수분 안에 끝나지만 때때로 수시간이 지속될 때도 있다.

사람은 잘 들을 수 없지만 초음파나 저주파를 이용하는 동물도 많다. 대표적인 동물이 박쥐와 고래다. 이들은 초음파를 이용해서 사물의 모습뿐 아니라 방위, 거리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저주파를 이용해 서로 통신을 하는 동물도 있다. 코끼리가 그 가운데 하나다. 코끼리는 가족단위로 생활하는데 주로 나이 많은 암컷이 한 집단을 이끈다. 암컷은 다양한 소리로 가족을 통제하고 이끈다. 최근 한 연구는 젊은 엄마(?)보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코끼리가 집단을 훨씬 더 잘 이끄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험이 많을수록 실수가 적은 것은 사람이나 코끼리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런데 코끼리는 소리로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코끼리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 육중한 무게 때문에 땅이 울리게 되는데, 이 울림의 크기와 고저가 집단 간에 중요한 정보가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울림은 멀게는 30km 넘게 전달된다. 코끼리가 위험에 처해서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가면 울림의 폭이 커질 것이고 멀리 떨어진 코끼리 집단은 이런 위험을 미리 감지한다. 그뿐 아니라 이 울림에 의해 ‘아 남쪽에서 비가 올라오는구나’하는 정보도 안다고 한다.
 

영장류인 원숭이‘비비’가 소리를 질러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모습.


원치 않던 의사 전달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 동물의 경우에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상당히 장거리에서도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또 장애물도 돌아간다. 시각을 이용하는 경우와는 달리 바위 뒤에서 소리를 내도 다 들을 수 있다. 어두운 곳에서도 가능하다. 많은 풀벌레가 밤에 연주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여러가지 복합적인 정보도 그 안에 담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쁜 점도 많다. 우선 말을 하루종일 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사람도 말을 많이 하면 목이 아프지만, 그렇게 큰 소리를 온힘을 다해서 내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 또 소리는 주위 환경에 많이 흡수된다. 가다가 보면 다른 소리와 부딪쳐서 잘 안들리는 것이다. 또 남한테 많이 이용당한다. 쥐는 올빼미에게 자기 의사를 전혀 전달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의해 올빼미에게 들킨다. 전혀 의사소통의 소리가 아닌데 잘못 전달되는 것이다. 쥐는 어쩌다 그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내는 소리가 이용당하는 경우도 많다.

동물들은 시각과 청각을 통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얘기하고 서로 알아듣는다. 물론 어느 동물이나 한가지만 갖고 의사소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에는 좀더 우선적으로 선택되는 것이 있다.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이 우선되기도 하고, 아니면 거의 모든 상황에서 청각이나 시각 중에 하나가 우선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거의 모든 동물이 시각, 청각, 그리고 후각 등의 여러
감각기관을 모두 이용한다.
 

돌고래는 초음파로 의사소통을 한다. 또 초음파 를 이용해 사물의 모습뿐만 아 니라 방위, 거리 등을 알 수 있다.
 

200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순 박사
  • 양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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