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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은 한번에 세상을 뒤바꿀만한 업적을 남기곤 했다. 그러나 남들보다 앞서갔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진보를 외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혁신적 이론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거나 신념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보수적으로 변하곤 했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은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진리를 인정받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때로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리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다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감수했다.

피는 심장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근대해부학의 아버지인 베살리우스와 함께 갈레노스 의학을 뛰어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17세기 영국의사 하비였다. 그는 혈액은 심장에서 계속 생성된다는 갈레노스의 주장에 맞서 혈액은 온몸을 순환한다고 주장했다. 혈액이 인체에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이미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맥박 등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피의 흐름은 심장에서 끊임없이 생성돼 혈관을 통해 피가 흐르기 때문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갈레노스 학설이 계속해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하비는 심장 밖으로 출력되는 혈액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기에는 음식을 비롯해 인체에 흡수되는 영양소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가졌다. 즉 혈액이 충분히 만들어질 만큼 인체에 공급되는 것이 없으니 항상 새로 만들어지는 것보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비는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여러가지 동물과 사람의 시신을 해부해 심장과 혈관 구조를 살폈다. 특히 뱀의 대동맥을 묶으면 심장에 피가 모이게 되지만 대정맥을 묶으면 심장이 비어 버리는 현상을 관찰했다.

뱀의 실험에서 혈액이 인체를 순환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하비는 자신의 팔을 실험에 이용했다. 손목에 있는 혈관을 묶으면 동맥피를 공급받지 못한 피부가 파랗게 변하는 현상을 관찰한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혈액은 동맥을 통해 조직으로 간 다음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비의 실험은 이론적으로 혈액이 순환할 것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하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증거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연구 결과는 반대 이론을 내세우기에 너무나 과학적이고 완벽한 것이어서 다른 의견을 가진 학자들도 그의 이론을 무시할 수 없었고, 점차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하비는 그 후 ‘근대생리학의 창시자’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이후 1661년 이탈리아 생리학자 말피기에 의해 동맥과 정맥을 잇는 모세혈관의 존재가 확인됨으로써 하비의 혈액순환 이론은 완전히 증명돼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혈액순환 먼저 주장한 세르베투스는 화형

그러나 ‘근대생리학의 아버지’보다 먼저 혈액순환 이론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으니, 에스파냐의 세르베투스가 그 주인공이다. 의사이자 신학자였던 세르베투스는 해부가 허용되던 이탈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에스파냐에 태어난 것이 불운의 시작이었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부를 하고자 했으나 에스파냐에서는 해부가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모르게 연구를 해야만 했다.

그는 직접 해부를 함으로써 갈레노스의 해부학적 기술에 잘못이 있음을 확인했고, 자신이 확인한 해부학적 구조물들을 통해 혈액이 순환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의학 외에 법학, 철학, 천문학, 수학 등에 모두 뛰어났던 그는 신학자이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많은 라이벌을 갖고 있었다.

그의 라이벌 중 대표적 인물은 종교개혁가로 유명한 캘빈이었다. 세르베투스는 혈액이 순환할 것이라는 자신의 주장이 담긴 책을 1553년에 발간하려 했다. 그러나 배포 직전 그 책의 내용을 알게 된 캘빈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격으로 취급되던 갈레노스의 의술과 다른 이론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그를 이단이라 공격했다.

그 해 10월 27일, 종교재판에 의해 세르베투스는 배포되지 못한 자신의 책과 함께 화형에 처해지는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경로를 통해 그의 책 중 두권이 후세에 전해져 아주 희귀하고 가치 있는 책 중의 하나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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