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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명의 유전자 혼합된 아기

불임 해결의 열쇠인가 새로운 위험인가

‘세계 최초의 유전자변형 아기 탄생’. 지난 5월 4일 영국의 BBC 방송이 전한 충격적인 소식이다. 아기가 태어난 곳은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세인트 바나바스 메디컬센터의 생식의학연구소. 자크 코헨 박사팀이 “불임치료 과정에서 부모 이외에 다른 여성의 유전자까지 갖고 있는 아기가 태어났다”고 영국의 의학전문지 ‘휴먼 리프러덕션’에 발표했는데 이것이 화제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유전자변형 아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5월 10일에는 우리나라의 마리아병원(원장 임진호)에서도 몇년 전에 같은 방식으로 아기가 임신됐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유전자변형 아기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부모 이외의 여성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아기가 어떻게, 그리고 왜 탄생했는지 살펴보자.

‘변형’보다 ‘혼합’이 정확한 표현

사실 이번 사건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가장 큰 이유는 ‘유전자변형’이란 말 때문이다. 콩과 같은 식물에 처음 선보인 유전자변형기술은 병충해에 끄떡없고 생산력이 월등한 놀라운 농작물들을 만들어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류의 심각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갈채를 보내면서도 과학자가 원하는대로 유전자를 바꿔 식물을 개량하는 기술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유전자변형이란 말이 붙은 인간이 등장한 것이다. 사회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미국에서 아기를 탄생시킨 코헨 박사는 “일부 언론들이 유전자변형 아기의 탄생이라고 보도했지만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변형하거나 염기쌍의 배열을 바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일반적으로 유전자변형은 새로운 개체의 능력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외래 유전자를 넣어주거나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없애는 기술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번에 태어난 아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부모의 불임을 치료할 목적으로 다른 여성의 세포질을 넣는 세포질이식법을 사용했는데, 뒤늦게 다른 여성의 유전자가 아기에서 발견된 경우다.

그렇다면 유전자변형 아기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기를 임신시키는데 사용한 방법을 따지면 ‘세포질이식 아기’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결과를 고려한다면 ‘유전자혼합 아기’라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다.
 

(그림1) 유전자혼합 아기의 탄생과정


세포질을 넣어준 이유

문제의 유전자혼합 아기가 탄생한 과정을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아기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다음 10개월이란 임신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 10개월은 수정란이 분열을 통해 세포수가 늘어나고 인체가 될 각 기관을 만드는, 즉 ‘발생’과정에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불임부부의 경우에는 이 과정 중 어디가 잘못돼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다. 정자와 난자 자체가 비정상이거나 수정란의 발생 단계에 문제가 있는 등 다양한 이유 때문이다.

이성구 원장은 “특히 고령 여성의 경우 세포질 때문에 불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난자는 일반 세포와 같이 핵과 세포질로 나뉜다. 핵은 유전자가 들어있는 세포의 핵심이고, 세포질은 핵을 둘러싼 부분으로 다양한 세포소기관이 떠다닌다. 그런데 세포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수정란이 자라고 임신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이다. 이 원장은 “세포질의 미토콘드리아는 집으로 얘기한다면 보일러인 셈”이라며, “여성이 나이가 들면 미토콘드리아에 문제가 생겨 세포분열을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충분히 생산되지 않아 불임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한다.

1998년 코헨 박사는 이런 불임부부를 위한 해결책으로 ‘세포질이식법’을 통해 건강한 여성의 세포질을 넣어주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을 본 이 원장은 서울마리아병원의 임진호 원장과 함께 난자 핵은 이상이 없지만 세포질이 비정상이기 때문에 임신할 수 없는 여성에게 이 방법을 썼던 것이다.

1999년 이 원장과 임 원장은 “세포질이식법으로 37세와 34세 두 여성의 임신에 성공했다”고 대한산부인과 학회지에 발표했다. 당시에는 유전자에 대한 어떤 우려도 없이 불임여성의 고민을 더는 새로운 시술법으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서야 문제가 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의 유전자는 난자의 핵에 있지만, 미토콘드리아에도 일부 유전자가 들어 있다. 그런데 금년 봄 코헨 박사가 세포질이식법을 통해 태어난 아기를 검사해본 결과 이식했던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가 건재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아기는 정자와 난자를 통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는 물론 세포질을 제공한 여성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도 갖고 있는 셈이다.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유전자혼합 아기의 정체다.

불임부부를 위한 선택

불임 부부를 위한 해결책으로‘세포질이 식법’을 통해 건강한 여성의 세포 질을 넣어주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 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유전자혼합 아기를 옹호하는 입장은 불임부부를 위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실제 여성이 나이가 많은 경우 임신이 잘 안되고, 된다고 하더라도 유산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이런 여성은 다른 여성의 난자를 남편의 정자와 수정시킨 후 자기 자궁에 이식하는 ‘난자공여 시술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여성의 난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을 닮은 아기를 낳고 싶은 여성의 욕구를 채워주기는 어려웠다. 이에 비해 세포질이식법은 불임여성의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난자 핵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과 닮은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된다.

닮은 아기를 낳고 싶은 욕구가 전부는 아니다. 나이든 여성의 경우 불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유전자의 돌연변이 발생 빈도가 증가해 기형아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한 예로 성인이 되면서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레버스병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나타난다.

선천적으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잘못돼 질병을 갖고 있는 여성도 세포질이식법을 선택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질병을 아기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을 때 해결책이 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태어난 다음에는 이와 같은 질병을 치료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사실 난자 수준에서 치료가 더 간편하고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이 원장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들은 대부분 미토콘드리아 자체의 기능을 위한 것”이라며 “세포질을 제공한 여성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아기의 성장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사의 관점에서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1%의 문제 때문에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절실한 환자를 고려한다면 이런 선택이 좀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전 결함으로 조기 유산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코헨 박사는 “1997년 이후 세포질 이식을 통해 15명이 태어났는데 모두 건강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5월 20일 영국의 옵서버지는 “15명의 아기 이외에 2명의 태아가 유전적 결함으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코헨 박사가 밝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사실 불임부부를 치료하면서 유산되는 경우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코헨 박사가 연구결과를 모두 밝히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 지적해야 할 문제다.

이 때문에 세포질이식법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입장이 있다. 을지의대 산부인과 권혁찬 교수는 “동물실험을 통해 충분히 검증하고 난 다음 그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해야 하는데, 세포질이식법의 경우 그런 과정이 전혀 없이 인간에게 바로 적용됐다”면서 그 안전성에 대해 심각히 우려했다.

권 교수는 “실제 미국의 경우 불임치료 방법으로 세포질이식법은 빠져있다”면서 “불임부부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본적인 자료도 미흡한 상태”라고 밝혔다. 의사의 입장에서 불확실한 방법을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는 생각이다. 권 교수는 “마리아병원에서 이 방법으로 임신한 아이들은 모두 12주 안에 유산됐다”면서 “이 시기에 유산된 아기는 대부분 기형”이라고 말했다.
왜 아기들이 유산된 것일까. 한가지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다. 사실 유전자혼합 아기가 갖고 있는, 부모가 아닌 다른 여성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할지, 핵 속의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당연히 동물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해야 하지만, 세포질이식법의 경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 과정을 생략한 것이 사실이다.

정확한 메커니즘 안밝혀져

권 교수는 “미토콘드리아는 생명 연장이나 인간의 중요한 질병과 관련돼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기능이 아직 확실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생명현상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연구가 성숙되지 않은 단계에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섞인 아기는 생각보다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다른 문제도 있다. 세포질이식법에 사용할 난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윤리적인 문제도 파생된다는 점이다. 차병원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의 정형민 소장은 “여성에게서 난자를 얻기 위해서는 1백회에 이르는 주사나 초음파 검사 등을 한 다음 수술을 통해 꺼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어떤 병원은 난자 제공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보상비로 5천달러를 지급한다. 그만큼 난자 채취가 고통스럽고 쉽지 않다는 얘기다. 만약 세포질이식법이 보편화된다면 난자가 모자랄 수밖에 없고, 심지어 좋은 난자를 사고 파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처럼 세포질이식법을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데는 좀더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정형민 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고귀한 생명체가 탄생한다는 점”이라며 “검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안전하다는 확인이 된 후에야 임상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코헨 박사가 인간에게 처음 사용한 세포질이식법은 1981년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메클러던 해리스의 논문을 응용한 것이다. 해리스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후 세포분열이 중단되는 불임 쥐를 연구했다. 이때 정상적인 다른 쥐의 세포질을 보충해 수정시켰더니 세포분열이 중단되지 않고 정상적인 임신이 이뤄졌다.

그러나 정 소장은 “현재까지 왜 세포질을 보충해주면 임신률이 높아지는지 정확한 메커니즘이 밝혀져 있지 않다”면서 “미토콘드리아 이외에 다른 성분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미토콘드리아를 포함해 다른 성분이 섞여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생명윤리자문의원회가 제안한 생명윤리기본법안에 따르면 생식세포, 수정란, 배아, 태아에 대한 유전자치료는 모두 금지했다. 세포질이식법을 포함해서 말이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용역을 줘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마련한 생명과학보건안전윤리법안에서도 생식세포에 대한 세포치료와 유전자치료 시술을 모두 금지했다. 법안을 마련한 관계자는 “생식세포에 대한 변형은 그 영향을 확인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그 안전성을 확신할 수 없고, 유전자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미래 세대의 형질에 대한 결정권을 현 세대가 침해한다는 윤리적인 문제와 자칫 우생학적 목적에 똑똑한 아기나 잘생긴 아이를 낳기 위한 목적 등으로 남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 밝혔다.

앞으로도 불임부부의 고통을 덜기 위한 목적으로 생식세포 단계에 적용되는 새로운 기술이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기술들이 불임부부에 대한 축복인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재앙인지는 아직 불명확한 상태다. 당분간 유전자혼합 아기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200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홍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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