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의 전자파는 인체에 유해할까. 안타깝지만 아직은 그 답을 정확히 모른다.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세계는 지금 휴대폰 전자파에 대해 방어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휴대폰 제조업체들, 집단소송 걸려(4월 22일)
담배업계를 상대로 집단소송에서 승리해 유명해진 피터 안젤로스 변호사는 휴대전화의 건강 손상 가능성을 주장하며 모토로라, 노키아 등의 회사를 법원에 제소했다.
휴대전화 전자파, 어지럼 메스꺼움 신체이상과 관련성(5월 25일)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안윤옥 교수팀은 “무작위로 선정한 휴대전화 사용자 2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휴대전화를 오래 사용할수록 건강을 위협하는 각종 증세가 많이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휴대전화 전자파, 제조사는 알고 있었다(6월 12일)'
‘겉다르고 속다른 휴대전화 업체들’. 휴대전화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부정해 왔던 노키아, 에릭슨, 모토롤라 등 세계 3대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뇌종양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장치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올해 신문지면을 장식한 휴대폰 전자파 관련 기사 중 일부다. 현재 국내 휴대폰 이용자는 전체 국민의 5명 중 3명 꼴. 휴대폰은 다른 전기전자 기기와 달리 머리 부위에 밀착시켜 사용하기 때문에 휴대폰의 전자파에 대한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등장하는 전자파 관련 보도로 사람들에게 전자파가 인체에 해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보도처럼 휴대폰 전자파는 인체에 유해한 것일까.
답은 아직 정확히 모른다는 것. 물론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CDMA방식의 휴대폰에서 복사하는 최대전력 3백mW(밀리와트)에 비해 수만-수십만배 이상의 세기에서는 과학적으로 인체유해성에 대한 상관관계가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휴대폰 전자파 세기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휴대폰 전자파는 주파수가 8백50MHz대역(011, 017), 1천8백MHz대역(016, 018, 019)(1MHz=1메가헤르츠=106Hz, 1Hz는 1초에 1번 진동하는 경우를 말한다)으로, 여러 전자파의 범위 중 극히 일부에 속한다.
전자파는 주파수가 큰 감마선에서 X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그리고 주파수가 작은 전파로 분류된다. 라디오, TV와 같은 생활 주변의 각종 전기전자 기기가 사용하는 주파수는 전파 영역이다. 휴대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전파는 다시 극저주파, 저주파, 고주파, 초고주파로 주파수가 커지는 순으로 다시 분류된다. 휴대폰은 이 중에서 초고주파의 일부만을 이용하고 있다.
초고주파가 인체에 전달 또는 흡수될 때 발생하는 현상은 체내 온도 상승이다(열작용). 이는 휴대폰을 오래 사용해 휴대폰 자체가 뜨거워져서 발생하는 것과는 별개다.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데우는 것과 같은 원리로 휴대폰 전자파는 인체에 열작용을 일으킨다. 휴대폰에서 나온 전자파가 인체 내에 흡수되면 열에너지로 전환돼 인체조직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것이다.
2005년에야 유해 유무 결론날 듯
그러나 아직 휴대폰처럼 미약한 전자파로 인한 온도상승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EMF 프로젝트를 통해 1996년부터 휴대폰 전자파를 포함한 각종 전기전자 기기의 전자파가 인체에 해를 끼치는지 여부에 대한 연구를 2005년까지 결론을 내기 위해 자료를 수집중이다. 그때까지는 아마도 전자파 유해 문제가 세상을 들끓게 할 듯하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불안한 상태로 가만히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전자파에 대한 인체보호기준이 마련되고 있다. 초고주파의 생체효과에 대한 학회는 미국 메릴랜드에서 1953년 4월 처음 개최된 이래 이 분야에 대해 많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축적된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미국과 옛 소련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국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전자파에 대한 인체보호기준을 독자적으로 마련했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국은 자국의 현실을 고려한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을 발표했거나 발표를 서두르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1999년 한국전자파학회는 ‘전자기장 노출에 대한 인체보호기준’을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정보통신부는 2000년 말 인체보호기준을 법제화해 국내기준을 발표했다. 인체보호기준은 발표한 기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우리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인 국제비전리복사방호위원회(ICNIRP)의 내용과 많이 일치한다.
미국의 경우 전자파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여러 주와 민간기구에서 나름의 근거로 기준을 발표했었다. 이 중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와 미국 국가표준협회(ANSI)에서 공동발표한 것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받아들여 일부 항목에 대해서는 1997년부터 강제규제화해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 제조업체들이 전기전자 기기의 수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냥 방치할 수 없다’
아직 전자파 유해유무에 대해 뚜렷한 결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자파의 인체보호기준을 마련한데 대해 FCC는 기준안 서론에 ‘아직 명확한 근거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방치할 수만도 없기 때문에 기준을 마련한다’면서 ‘현명한 회피’(prudent avoidance)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즉 전자파로 인한 인체영향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국민건강보호를 위해 관련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유사하게 국내의 연구기관도 전자파 인체노출 누적량 증가, 전자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팽배, 관련산업의 위축 가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외국과도 원활한 공동연구와 협조를 위해 한국, 일본, EU와 공동연구 워크숍 등을 통해 전자파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결과와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또 WHO의 EMF 프로젝트에 연구비를 투자해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전자파 인체영향과 관련한 WHO 회의를 유치해 올해 10월 전세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객관적인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국민들의 전자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대해 다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체보호기준 항목 중 휴대폰 전자파에 대한 기준은 SAR(Specific Absorption Rate). 이는 인체전자파흡수율로, 단위시간동안 인체의 단위질량 조직에 흡수되는 전자파에너지를 말한다. FCC의 경우 휴대폰의 전자파 허용치는 1g 당 평균 1.6mW이고, 유럽전기기술규격위원회의 경우 1g 당 평균 2.0mW이다. 우리나라는 FCC의 기준과 같다.
이 값은 휴대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의 총량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직접 흡수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내년 1월부터 휴대폰에 이 기준을 적용하기로 돼 있다. 아직 소비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휴대폰이 과연 SAR 기준에 맞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SAR 자료가 공개되면 소비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휴대폰의 전자파가 어느 정도 인체에 흡수되는지를 알 수 있다. 휴대폰의 새로운 선택 기준이 되는 셈이다.
인체흡수율 알아내는 두가지 방법
그렇다면 SAR은 어떻게 정의할까. SAR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SAR = σㅣEㅣ2/ρ [mW/g]이다. 여기서 σ(시그마)는 인체 각 조직의 전기전도도, ρ(로)는 각 조직의 밀도, 그리고 E는 인체 내부에 형성되는 전기장 강도를 의미한다. 인체 각 조직의 전기전도도와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인체 내의 각 조직에 형성되는 전기장의 강도를 측정함으로써 SAR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체의 SAR 값을 정의하기는 그리 만만치 않다. 직접적인 임상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험을 목적으로 전자파를 사람에게 직접 노출시킬 수 없고, 인체 각 부위의 SAR 값도 직접 측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SAR 값을 알아내고 있다. 방법은 크게 두가지. 모의 인체를 이용한 측정방법, 그리고 인체의 자기공명영상(MRI) 데이터를 이용한 계산방법이다.
측정은 현재 FCC에서 권고한 방법에 따라 시행한다. 핸드폰의 사용자세에 따라 SAR에 상당한 변화를 준다는 점을 고려한 방식이다.
우선 인체두부 모양을 한 모의인체에 뇌조직과 비슷한 전기적 특성을 갖는 액체를 채워넣는다. 그런 후 휴대폰을 귀와 입에 연결될 수 있도록 휴대폰을 35° 기울인 다음 10° 정도 비틀어 입쪽으로 가까이 갖다 댄다. 이 자세가 일반적인 휴대폰 사용 상황으로, 전자파 노출이 가장 심한 경우를 고려한 것이다. 그런 다음 휴대폰이 최대출력으로 전자파를 복사하는 상황에서 모의인체 내부 전기장의 강도를 측정하는 프로브를 이용해 휴대폰의 SAR을 측정한다.
또 다른 방법은 컴퓨터에서 실제로 인체에 노출된 상태에 가깝도록 재연해내는 것이다. 자기공명영상 데이터를 이용한 해부학적 모델을 통해 인체 각 부위의 전자기장을 계산하여 시뮬레이션을 하는 방식이다. 인체의 각 부위를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통해 인체 각 조직의 전기전도도와 밀도를 알아낸 후 이에 맞춰 인체를 격자구조로 나눈다. 인체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진 경우 실제와 가깝게 모델링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전자파 줄이는 휴대폰 사용법
휴대폰에서 복사되는 전자파를 줄이면 통화가 잘 되지 않으므로 복사되는 전자파는 줄이기 어렵다. 하지만 인체에 흡수되는 전자파 에너지는 사용자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줄일 수 있다.
첫째, 휴대폰 안테나 위치에 따라 통화 위치를 정한다.
자신의 휴대폰 안테나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확인해보자. 대부분의 휴대폰 안테나는 본체의 우측이나 좌측 상단에 위치해 있다. 만약 우측에 안테나가 있는 휴대폰이라면 가능한 오른손으로 사용하고, 반대로 좌측인 경우는 왼손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인체두부는 구조상 뒤통수 부분이 얼굴 부분보다 더 함몰돼 있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휴대폰의 안테나가 우측 상단에 있을 경우, 오른손으로 사용할 때가 왼손으로 사용할 때보다 머리와 안테나와의 거리가 더 멀다. 안테나가 좌측상단에 있을 경우는 그 반대가 된다. 따라서 동일한 휴대폰이라도 어느 손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SAR 수치가 15% 이상 차이가 난다.
둘째, 핸즈프리나 이어폰을 이용한다.
작년 초에 영국에서는 휴대폰 통화시 이어폰을 사용하면 훨씬 더 큰 전자파가 인체에 흡수된다는 내용이 보도돼 한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보도였다. 이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전자파 인체 영향 관련 국제회의에서 영국관계자의 발표가 오보였음을 확인해줬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휴대폰에서 전자파가 나오는 주된 부분은 안테나 부근이다. 따라서 이어폰을 사용하면 휴대폰 안테나와 인체두부와의 거리가 크게 멀어지므로 계산이나 측정에서 모두 SAR 자체를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체에 흡수되는 전자파 에너지는 급격히 감소한다.
셋째, 폴더형 휴대폰을 이용한다.
바형이나 플립형 휴대폰보다는 상대적으로 고가이긴 하지만 폴더형 휴대폰의 SAR이 낮다. 현재 휴대폰 구조상 폴더형의 SAR이 다른 여타 디자인의 휴대폰보다 약 30% 정도 낮다. 이는 폴더형의 경우 하단부에 안테나가 위치하기 때문이다. 폴더형을 사용하려면 상단부를 열어야 하는데, 바형이나 플립형보다 인체두부와 휴대폰 안테나와의 거리가 멀어진다.
보통 휴대폰 안테나를 뽑아서 사용하면 넣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SAR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 필자도 연구초기에는 이같은 생각을 했으나, 계속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었다.
한편 휴대폰 관련기관과 제조업체는 비록 현재 유통중인 휴대폰이 내년에 시행될 SAR 기준에 부합하더라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휴대폰의 통화품질 향상과 SAR 저감을 위해 계속 연구중이다. 연구 방향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통화품질이냐 방출량 저감이냐
하나는 휴대폰의 미려한 디자인이 유지되면서도 통화상황에서 인체두부와 안테나와의 거리가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휴대폰 안테나가 바깥방향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거나, 모니터 주변을 약간 두껍게 돋운 형태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소비자가 휴대폰을 구입할 때 무엇보다 작고 얇은 휴대폰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비록 SAR이 낮은 휴대폰이라 하더라도 시장에서 외면을 당한다면 의미가 없다.
나머지는 전자파가 머리 방향으로는 덜 방출되도록 안테나를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 휴대폰 안테나는 통화시 전자파가 인체방향을 포함해 모든 방향으로 방출된다. 이 연구는 현재까지 연구실 수준에서 초기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 전자파가 덜 방출되는 안테나가 휴대폰에 적용됐을 때 SAR은 다소 저감되더라도 통화품질이 나빠지기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기술개발이 더 필요하다. 휴대폰의 생명은 통화품질이지 않은가.
전자파 문제는 국민의 건강과 산업보호를 동시에 고려하기 때문에 한번에 두마리 토끼를 잡는 것과 같다. 극단적으로 전기전자제품 자체를 사용하지 않으면 전자파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유·무해를 판단할 수 있는 좀더 정확한 인체보호기준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일반국민들이 안전하게 전자파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