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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종이 위에 다양한 색지를 입히거나 아름답고 화려한 무늬로 디자인하기도 한다. 색이나 무늬에 따라서 때로는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춥고 썰렁한 공간을 따뜻한 느낌이 나게 만든다. 최근에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실크 벽지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실크 벽지가 늘어나면서 벽지는 새집 증후군을 유발한다는 멍에를 썼다. 이에 따라 수년 전부터 등장한 것이 바로 친환경 벽지다. 그렇다면 친환경 벽지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친환경 벽지는 ‘정말’ 효과가 있다. 아토피 피부염이나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다. 새집 증후군을 유발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과 포름알데히드를 벽지 제작 시 제거했기 때문이다.

임상 실험에서도 효과는 나타났다. 국내 대표적인 실험이 지난 2010년 7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이영규 실내환경분석센터 박사팀이 아토피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공동 연구다. 3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연구팀은 우선 환자의 집 벽지와 바닥재를 모두 친환경 제품으로 교체했다. 친환경 제품 시공 전과 시공 4주 후, 8주 후, 12주 후 등 총 4차례에 걸쳐 임상 중증도 평가(EASI)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임상 중증도 평가는 아토피 질환 증상 정도를 피부 면적당 염증 분포 면적으로 수치를 매긴 점수다.

실험 결과 평균 EASI 점수가 시공 전 9.9점에서 시공 4주 후 6.46점, 8주 후 4.07점, 12주 후 3.48점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친환경 벽지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정근수 LG하우시스 연구원은 “여러가지 환경 규제때문에 독성이 있는 물질을 줄여나가고 있지만 친환경 벽지를 시공한 것만으로 새집 증후군이 100% 사라진다고 할 수는 없다”며 “시멘트나 내장마감재에서도 유해 물질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거 공간의 실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벽지는 처음부터 새집 증후군을 일으켰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화려한 실크 벽지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새집 증후군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크 벽지를 제조할 때 사용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이나 석유화학제품 계열인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포름알데히드(HCHO)가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다.

이들 물질이 유발하는 새집 증후군 증상은 두통이나 눈·코·목 등 호흡기 질환, 마른 기침, 피부 건조와 가려움 등이다. 포름알데히드는 자극성이 있어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암도 유발할 수 있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은 톨루엔이 대표적으로 사용된다. 톨루엔은 피부나 눈, 목 등을 자극하거나 두통, 현기증, 피로 증상을 유발한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호르몬 분비 불균형, 생식기능 저하, 성장저해 및 면역기능 저하, 피부기관지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해성 논란에 휩싸인 휘발성유기화합물이나 포름알데히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를 실크 벽지에 쓴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휘발성유기화합물은 화려한 문양을 넣는 데 필요한 잉크가 잘 붙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톨루엔에 잉크를 넣고 코팅을 하면 톨루엔의 휘발 작용에 의해 금방 붙어 실크 벽지를 효율적으로 제조할 수 있다. 포름알데히드는 방부제로 주로 쓰이는 포르말린이 기체화된 유독 가스로 벽지 재료를 혼합하거나 가구를 만들 때도 쓰인다. 가구를 만들 때 포름알데히드는 목분가루와 접착제를 섞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마치 밀가루 반죽을 만들 때 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휘발성유기화합물이 인체에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휘발성유기화합물 중 톨루엔(벤젠의 수소원자 1개를 메틸기로 치환한 화합물. 메틸벤젠이라고도 하며 화학식 C7H8)처럼 탄소 원자가 6개에서 16개 사이에 해당하는 화합물이 인체에 위협적이다. 6개 이하인 화합물은 분자 크기가 작아서 체내에 흡수가 되더라도 바로 배출되고 16개 이상인 화합물은 체내로 잘 흡수되지 않는다.

정근수 연구원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실크 벽지가 대중화되고 아토피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아토피를 유발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고 이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벽지를 만들자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밝혔다.
 



 

우선 기존 제품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최대한 줄이는게 친환경 벽지를 만드는 기본이다. 실크 벽지의 경우 탄소 원자가 6~16개 사이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휘발성이 있는 물질을 써서 잉크 착색의 효율을 돕는다.

기존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대신 사용되는 디옥틸프탈레이트(DOTP)도 친환경 벽지에 쓰인다. 실크 벽지를 만들 때 가소제는 벽지에 유연성을 주는 코팅제로 쓰였다. 실크 벽지를 코팅할 때 딱딱해지는 현상을 없애고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원래 벽지를 코팅할 때 폴리염화비닐(PVC) 계통이 주로 쓰였는데, PVC는 딱딱해 벽지를 유연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사용된 게 바로 가소제다. 주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쓰였지만 프탈레이트계 가소제의 유해성이 보고되면서 DOTP로 점차 대체하게 됐다.

이처럼 기존 실크 벽지를 만들 때 주로 사용했던 물질을 인체에 무해한 물질이나 친환경 물질로 대체하는 연구가 이뤄지면서 친환경 벽지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또 다른 친환경 벽지 연구 방향은 실내 공기질을 쾌적하게 만드는 방향이다. 유해 물질 이용을 최대한 줄이는 게 소극적이라면 실내 공기질까지 정화할 수 있는 친환경 벽지에 대한 연구는 보다 적극적인 개념이다.

일례로 건축자재 및 인테리어 기업 LG하우시스의 친환경 벽지가 대표적이다. 수년 전부터 친환경 벽지를 연구해 온 LG하우시스는 옥수수에서 추출한 식물성 원료인 폴리락틱애시드(PLA)를 산업적으로 이용해 벽지에 이른바 ‘에코 코팅층’을 입혀서 만든다. 독자 연구를 통해 개발한 PLA는 옥수수에서 추출한 녹말을 발효시킬 때 나오는 젖산을 중합반응시켜 만든다. 이 원료로 만든 에코코팅층이 생활 속 유해물질이나 악취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광촉매를 이용하는 벽지의 에코 코팅층은 가시광선을 받으면 공기 중의 수분과 반응해 수산화물과 산소이온을 생성시켜 인체에 유해한 유기물질을 분해한다. 실험 결과 실제로 휘발성유기화합물을 20%, 포름알데히드를 15% 줄여줬다. 음식물에서 나오는 암모니아와 생선을 구울 때 나오는 트리메틸아민과도 반응해 분해할 수도 있다. 특히 PLA가 가장 잘 반응하는 빛 영역이 자외선이었는데 실내 벽지는 자외선을 쬐기 여러워 가시광선에서도 촉매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친환경 벽지와 친환경 가구가 유해물질을 줄이는 데 만능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유해물질 전부를 제거하지는 못해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 특히 친환경 건축자재는 일반 제품보다 최대 두 배 이상 비싼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선뜻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다.

환경부는 친환경 건축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어려울 때는 유해물질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태워 없애기, 즉 ‘베이크아웃(bake-out)’을 권고하고 있다. 실내공기의 온도를 의도적으로 높여 건축자재 등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을 일시적으로 늘린 뒤 환기를 시켜주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베이크아웃 방법은 이렇다. 새집에 시공하거나 들여온 가구 문을 모두 열어둔 뒤 외부와 통하는 문을 모두 닫는다. 난방기를 5~6시간 최대한 가동해 실내 온도 30~40℃를 유지한 후 외부와 통하는 문을 모두 활짝 열어 유해 물질을 방출하는 것이다.

정근수 연구원은 “친환경 제품이라고 해서 모든 유해물질을 없애주는 만능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연구 결과 어느 정도 줄여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며 “벽지 뿐만 아니라 실내에 들어오는 모든 물질에 대해 천연소재와 인체에 자극을 주지 않는 원재료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연구개발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봄철 이사를 앞두고 도배를 할 예정이라면 친환경 벽지를 한번쯤 고려해 봄 직하다. 물론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201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글 | 김민수기자, 도움 | 정근수 LG하우시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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