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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생전 얼굴 복원

갸름한 윤곽의 서구형 모습

1846년 9월16일 조선의 새남터에서 25살의 한 사내가 효수형을 당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천주교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다. 그러나 1백55년이 지난 지금 김대건 신부가 되살아났다. 바로 얼굴 복원술을 통해서다. 죽은 이의 두개골만으로 생전의 얼굴을 복원하는 신비의 의술. 예술과 의학이 절묘히 결합된 얼굴복원술을 통해 김대건 신부의 생전 모습을 확인해보자. ​

얼굴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신체구조다. 우리는 손이나 발보다는 얼굴을 보고 사람을 구별한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얼굴은 의사소통을 위한 입을 갖고 있다. 또한 표정을 통해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의사 소통의 중요한 신체구조이기도 하다. 한편 인류학적 관점에서 얼굴은 주위 환경에 가장 영향을 적게 받는 몸의 일부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정보가 형태적으로 가장 잘 표현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조각상을 주위에서 간혹 접할 수 있다. 그 중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상은 특히 보는 이에게 인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의학이 철학이나 예술과 분리되지 않았던 그 당시는 대부분의 조각가가 해부학 지식에 능통했다. 따라서 이들 작품은 의학적 관점에서 인체의 비율을 정확히 표현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조각상을 볼 때 예술적 가치를 넘어 크게 감탄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머리뼈 차이

이러한 예술작품과는 달리 의학에 순수한 목적을 둔 기술이 얼굴복원술이다. 얼굴복원술이란 간단히 말해 머리뼈만으로 생전 모습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얼굴복원은 빅토리아 시대부터 비롯됐는데, 바흐 등의 머리뼈로 생전의 얼굴을 재구성한 적이 있다. 현재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범죄 피해자의 모습이나 사고 희생자를 확인하기 위해 법의학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고고학자도 화석의 생전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이용한다. 사람의 얼굴은 개인마다 달라 지문과 함께 개인식별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얼굴을 과학적으로 복원하려면 어떤 지식이 필요할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사람의 얼굴 구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얼굴은 머리뼈와 이에 붙는 얼굴근육, 그리고 이를 감싸주는 피부로 이뤄졌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 중 머리뼈는 22개의 각기 다른 뼈가 모여 이뤄졌다. 여기에 표정을 관리하는 근육과 음식물을 씹는데 관계하는 근육이 붙어 얼굴 모양을 이루게 된다.

자 이제 머리뼈가 준비됐다면 얼굴을 복원해보자.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항은 머리뼈가 어느 인종에 속하는가이다. 얼굴 모양은 인종에 따라서 그 특징이 다르다. 즉 동양인, 서양인, 흑인은 피부의 색깔뿐 아니라 머리뼈의 모양도 달라 서로 구분할 수 있다(그림1).

(그림1) 인종에 따른 머리뼈의 특징


동양인은 백인에 비해 뼈콧구멍이 둥근 편이며 머리뼈가 솟은형에 속한다. 서양인은 날카로운 코뼈문턱을 가졌다. 또한 흑인은 사각형 모양의 입천장을 가졌으며 이틀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이들을 가장 쉽게 구분해주는 머리뼈 특징은 눈확(眼窩, orbit)이다. 눈확은 머리뼈에서 눈동자가 위치하는 부분이다. 동양인은 둥글고 흑인은 네모나며 길고 갸름한 눈확은 서양인의 특징이다.

다음으로 확인할 사항은 머리뼈의 성별이다. 사람의 머리뼈는 생김새에 따라 남녀로 구분할 수 있다(그림2).

(그림2) 머리뼈의 남녀차이


남자의 머리뼈는 경사진 앞머리에 눈확위 융기가 큰 반면, 여자 머리뼈는 곧추선 앞머리에 작은 눈확위 융기가 특징이다.

또한 머리뼈는 주인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증거도 갖고 있다. 머리뼈에 있는 봉합선(suture line)이 바로 그것이다. 머리뼈 10곳에 자리잡은 봉합선은 어렸을 적에 벌어져 있다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닫히게 된다. 머리뼈가 서로 만나 생기는 봉합선은 나이가 들면 부분적으로 닫혀져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봉합선의 닫힌 정도를 보면 대강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그림3).
 

(그림3) 머리뼈의 봉합선


이렇게 인종, 성별, 나이가 추정되면 이를 기준으로 얼굴복원의 기본 틀이 마련된다.

컴퓨터 활용한 디지털 방법

그러나 이런 사항을 알았다고 얼굴을 바로 복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머리뼈에 살을 붙이기 위해선 또 다른 자료가 필요하다. 얼굴 각 부위마다 다른 얼굴두께의 평균치가 필요한 것이다. 얼굴 각 부위의 두께 또한 인종, 성별, 나이에 따라 다르며 개개인의 영양상태에 따라서도 다르다. 때문에 반드시 대상이 되는 인구집단의 자료가 필요하다. 만약 다른 인구집단의 자료를 토대로 얼굴을 복원하면 오차의 폭이 커진다.

위의 자료에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필요한 정보는 머리뼈 모양과 얼굴생김새 간의 상관관계다. 예를 들어 눈확의 모양과 눈썹모양, 눈확에서 눈동자가 위치하는 높이, 코뼈구멍과 코너비, 치아와 입술의 위치 같은 정보가 필요하다.

이런 자료가 모이게 되면 얼굴복원이 바로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얼굴을 복원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머리뼈에 진흙을 붙여 만드는 수동 방법과 컴퓨터를 이용해 3차원 복원상을 보여주는 디지털 방법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선 법의학을 전공한 사람과 해부학 지식이 풍부한 조각가, 컴퓨터 공학자가 필요하다.

실제로 얼굴복원을 위해서는 이 두가지 방법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한국인 표준은 앞뒤로 납작하며 높은 머리

김대건 신부의 얼굴을 최대한 실제모습과 비슷하게 복원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얼굴자료가 필요하다. 다른 인구집단의 얼굴자료를 근거해 복원하면 그 만큼 오차가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얼굴복원을 위한 자료는 해부학을 전공한 교수를 중심으로 1990년대 초부터 한국인 머리뼈의 특징을 조사하는 작업으로 시작됐다. 개괄적으로 본 한국인 머리뼈는 앞뒤로 납작한 모양이며 높은 머리와 함께 아래턱이 발달된 점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20대 성인 남자의 얼굴 각 부위의 두께와 얼굴생김새에 대한 자료가 모아졌다. 얼굴 각 부위의 두께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얼굴 표면에 구분이 가능한 표지점 20-30군데를 정해 두께를 측정한다. 방법으로는 다음의 세가지가 있다. 시신의 얼굴에 눈금이 달린 바늘을 직접 삽입해 검침하는 방법, 초음파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계측하는 방법, 자기공명장치(MRI)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 중 한국인 얼굴자료는 직접계측과 초음파를 이용한 방법을 이용했다.

조사 과정은 우선 대상 집단을 영양상태에 따라 살찐 사람, 보통 사람, 마른 사람 세 그룹으로 나눴다. 그 뒤 각 그룹의 측정결과를 평균해 한국인의 표준 얼굴두께 자료를 얻었다. 조사 결과 모든 그룹에서 콧등의 부위가 가장 얇고 광대뼈 아래 볼부위가 가장 두꺼웠다. 살찐 사람과 마른 사람과의 차이점은 이마와 코로 이어지는 얼굴 중심부보다는 광대뼈와 아래턱뼈 부위에서 그 차이가 현저했다.

다음은 머리뼈 형태와 얼굴생김새 간의 차이를 알아보자. 이를 위해서는 두장의 사진이 필요하다. 각 그룹의 일반 얼굴 정면사진과 머리뼈의 방사선 사진을 각각 준비해 이를 컴퓨터상에서 중첩시켜 비교한다(그림4).
 

(그림4) 머리뼈와 얼굴생김새 간의 상관관계


이 결과, 눈썹의 경우 안쪽 2/3는 눈확의 위모서리에 위치하고 가쪽 1/3은 위모서리보다 위쪽에 위치하는 형이 가장 많았다(그림5).
 

(그림5) 한국인의 눈썹 모양


눈동자의 위치는 눈확 전체 높이의 44%에 위치하며(그림6)

 

(그림6) 한국인의 눈동자 위치


안쪽 눈꼬리는 눈확의 아래모서리에서 약 11mm에, 가쪽 눈꼬리가 약 13mm 위에 위치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따라서 눈의 전체적 모습이 약간 올라간 형태로 보인다(그림 7).

 

(그림7) 한국인의 눈 모양


코뼈구멍과 코너비 사이에는 일정한 비례관계가 있었다(그림8).
 

(그림8) 한국인의 코뼈구멍과  코너비 사이의 관계


다만 쌍꺼풀이나 귓불처럼 세밀한 얼굴구조와 머리뼈 형태와의 연관성은 지금까지 자료로는 찾기 힘들었다. 이를 위해 많은 학자들이 열심히 조사하는 중이다.

작업기간 15개월 소요

얼굴복원은 원래 신원을 알 수 없는 머리뼈의 신원확인을 위한 법의학적 방법이다. 그러나 간혹 신원을 알고 있으나 생전의 얼굴을 모를 때 이를 추정하기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1999년에 명동성당에서 가톨릭의대에 의뢰한 김대건 신부의 얼굴복원은 위의 한국인 자료를 토대로 약 15개월 간에 걸쳐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에 태어나 1846년 25세의 나이에 군문 효수형으로 순교한 분이다. 당시는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시절이라 김 신부의 최초 초상화는 순교한지 55년이 지난 1920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몇차례의 초상화가 제작됐지만 그때마다 그 모습이 달라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데 아쉬움이 많았다. 1971년 가톨릭의대에서 처음으로 김대건 신부의 머리뼈를 계측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후 1994년에는 영구보존을 위해 납으로 밀봉한 뒤 지금까지 가톨릭대 신학대에 보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김 신부의 머리뼈를 직접 볼 수 없다. 따라서 김 신부의 얼굴을 복원하기 위해 몇가지 추가 과정이 필요했다. 즉 기록으로 남은 머리뼈 계측치와 머리뼈 사진을 이용해 의대에 보관중인 머리뼈 중에서 가장 비슷한 머리뼈를 찾았다. 그리고 이를 수정해 복제본을 만들었다. 이후 머리뼈 사진과 복제본 사진을 중첩해 오차를 보정한 뒤 김 신부의 실제 머리뼈와 최대한 비슷한 복제 머리뼈를 만들었다.

김 신부의 활동을 적은 기록에 의하면 키가 당시 사람들 보다 컸으며 병약한 마른 체형이었다고 한다. 이를 참조해 한국인 남자 21-26세의 얼굴 자료 중 마른형의 자료를 토대로 복원작업을 했다(그림9).

 

(그림9) 김대건 신부 얼굴복원 과정



과학으로 복원한 최선의 결과

먼저 복제본에 얼굴 각 부위의 두께를 나타내는 보조틀을 세운다. 그리고 유토(진흙을 기름으로 반죽)를 이용해 얼굴 근육을 보조틀 높이까지 붙여 얼굴두께를 만들었다. 눈, 코, 입의 모양은 한국인 자료를 참고로 제작했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머리뼈 사진과 비교했다. 보정작업이 끝난 얼굴상은 최종적으로 청동으로 작업해 흉상으로 제작했다.

복원된 김 신부의 얼굴은 이마가 직각에 가깝게 서있고 아래턱의 발달로 전체적으로 갸름한 얼굴이었으며 광대뼈가 옆으로 발달됐지만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아 전체적으로 볼 때 서구적 모습이었다. 복원상에는 당시의 복식양식을 참조해 상투를 틀었지만 머리뼈 사진으로 유추해 볼 때 뒤통수가 납작하지 않고 동그란 머리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귓불과 기타 얼굴의 세밀한 부분 묘사는 흉상을 만든 구본주 조각가의 의견을 따랐다.

이번 작업으로 복원된 김 신부의 얼굴이 실제 모습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복원상이 한국인 자료를 토대로 제작된 최초의 얼굴복원이며 현재까지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지금 조사중인 한국인 자료가 더욱 보강되고 직접 김 신부의 머리뼈를 이용한다면 좀더 충실한 모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얼굴복원술은 해부학에 바탕을 둔 의학적 전문지식과 미술 및 컴퓨터 분야의 기술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복합적인 연구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있는 만큼 앞으로 관심있는 과학자와 전문가의 합동연구가 절실하다. 특히 한국인 자료는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자료인 만큼 이는 우리나라 과학자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200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한승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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