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 미국 정부는 초심리학 연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국방부는 초능력자들을 스파이로 훈련시켜 첩보전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초심리학 연구에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일명 ‘스타게이트’(Star Gate)라 불린 이 프로젝트는 20여년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더이상 연구비를 지원할 의미가 없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판단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초심리학자들은 지원이 중단된 것이 ‘과학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판단의 결과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초심리학 연구에 대해 강한 회의가 제기된 것은 1987년.미국 국가과학아카데미 소속 국가조사위원회(NRC)는 12월3일 ‘인간능력 강화’라는 보고서를 통해 “초심리학적 현상의 존재에 대한 연구로부터 아무런 과학적 정당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8년 후 연구의 지원을 중단시킨 결정적인 보고서가 배포됐다. 1995년 9월 29일 초심리학 연구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최종 보고서가 작성됐고, 의회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지원 중단’ 결정을 내렸다.
1973년부터 1994년까지 재정 지원은 국방부 산하 국방정부국(DIA)에 의해 수행됐고, 1995년부터는 중앙정보국으로 업무가 이관됐다. 지원 액수는 총 2천만달러. 초심리학 연구를 수행한 기관은 스탠포드 국제연구소(SRI, 1973년-1989년)와 국제과학응용법인(SAIC, 1990-1995)이었으며, 연구내용은 주로 원격 투시(reomte viewing)를 중심으로 한 초심리현상 전반이었다.
미국연구협회(AIR)는 의회와 중앙정보국으로부터 초심리학이 정부로부터 계속 지원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평가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협회는 두명의 전문가를 초청해 찬반의 입장을 들었다. 찬성자는 우츠 박사(캘리포니아대 통계학), 반대자는 하이만 박사(오레곤대 심리학)였다.
1995년 9월 1일 우츠 박사는 각종 통계 수치를 이용한 긴 논문을 통해 초심리학 연구가 성공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스탠포드 국제연구소의 경우 총 1백54회 실험이 행해졌고 2만6천명의 사람들이 실험 대상으로 동원됐다. 실험은 주로 자유롭게 보이는 대로 기술하는 ‘원격투시’(1천명)와 몇가지 대답을 미리 주고 자신이 본 것을 고르게 하는 ‘제한된 선택’에 관한 것이었다.
우츠 박사는 통계적으로 볼 때 실험 결과가 압도적으로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우연하게 이런 결과가 나올 확률은 1020에 한 번 있을 정도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우츠 박사는 ‘원격투시’가 ‘제한된 선택’보다 훨씬 성공적이었으며, 자원자 중 1% 정도가 원격투시 능력을 선천적으로 갖췄다고 말했다.
국제과학응용법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6년간 수행된 10가지 실험 중 6가지는 원격투시를 재현하는 실험이었는데,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효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츠 박사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원격투시 실험을 하던 중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타깃의 크기가 적당할 때 움직이는 타깃일수록 예측이 쉽다는 것. 예를 들어 초능력자 5명을 집에 머물게 하고 멀리 떨어진 연구소에서 어떤 타깃이 있는지 맞추는 실험이 진행됐다. 그런데 그림보다 비디오물을 타깃으로 삼았을 때 더 정확하게 맞춰냈다.
우츠 박사는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 능력의 원리를 설명하려 했다. 우리의 눈이나 귀는 정지물보다 움직이는 대상에 대해 감지를 잘한다. ‘영적 감각’ 역시 변화하는 대상을 잘 감지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래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를 미리 알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낀다”는 속설도 맞는 것 같았다. 타깃을 사람으로 선정하고 초능력자로 하여금 원격 투시를 지시하면, 투시당하는 사람의 피부에 놀랄 때 나타나는 전기 반응이 생겼다. 30초씩 16회 동안 실험한 결과였다.
우츠 박사의 논문이 제출된지 10일 후 하이만 박사의 비판이 시작됐다. 그러나 하이만 박사의 글은 주로 국제과학응용법인의 활동에 맞춰져 있었다.
하이만 박사는 일단 초심리학 연구가 시간이 지날수록 통계적, 방법적 능력을 향상시켜 왔고 실험적 오류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실험이 ‘비밀리에’ 진행된 탓에 공정성이 상실됐다고 비판했다. 즉 초심리학이 아닌 다른 과학분야의 실험실에서 다른 과학자들이 반복적으로 실험하고 결론을 내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은 자료로부터 너무 많은 결론을 도출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국제과학응용법인의 경우 10회 정도의 실험에서 어떻게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우츠 박사가 제시한 ‘가설’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통계적으로 유효하다는 점이 곧 영적 능력의 존재가 증명됐음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논쟁은 하이만 박사의 승리로 끝났다. 중앙정보국은 의회에서 하이만 박사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전달했다. 지원이 계속될 이유가 사라졌다. 하지만 초심리학자들의 반박이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우선 검토된 자료가 지극히 한정됐다는 점이 문제였다. 하이만 박사의 평가는 20여년의 마지막 몇 년에 해당하는 연구에 한정됐다. 더욱이 실험 수가 적어 연구자들 스스로도 썩 만족해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또 평가단은 24년 간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요한 인사들을 만나지 않고 보고서에만 의존했다. 예를 들어 1985년 이후 정부는 현역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과학자들로 구성된 ‘과학감독위원회’를 만들어 초심리학 연구를 감시하게 했다. 이들은 총 17명이었는데, 평가단이 만난 사람은 1명뿐이었다.
평가단의 구성도 공정치 않았다. 중앙정보국 내 과학고문단은 이런 평가에서 공정하다고 소문난 곳이다. 그런데 왜 중앙정보국은 자신의 조직을 활용하지 않고 외부 기관에 평가를 의뢰했을까. 사전에 결론을 내리고 평가에 임한 것은 아닐까. 평가단 대표가 1987년 초심리학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국가조사위원회 행정관료의 한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의심은 더욱 증폭됐다.
초심리학자들은 1995년 국방정보국의 지원 업무가 중앙정보국으로 이관되자,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정부나 민간인으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던 중앙정보국으로서는 별달리 생색낼 것도 없는 이 ‘골치아픈’ 일을 맡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과학적 평가보다 정치적인 의도가 작용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