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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이 밝혀낸 5천년전 알프스 '얼음인간' 수수께끼

약 3년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접경인 티롤 지방에서 냉동된 미라 한구가 발견됐다. 이 미라를 둘러싼 각종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대과학이 벗기는 5천년전 미라의 신비.

아직까지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가 죽었던 5천 3백년 전 어느날 티롤(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접경 지역) 알프스의 고산지대에서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베일 속에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그의 소지품들과 함께 만년설 속에 묻고 마치 막 죽은 것처럼 생생하게 보존한 자연의 섭리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5천년 전 일상의 생생한 증거들

1991년 9월, 해발 1만5백30피트 높이의 녹아가는 얼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미라가 된 '얼음 인간(Iceman)'이 발견되었다.

얼마 전 그 미라에 대해 실시된 유전학적 분석의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연구팀은 그가 유럽에서 나고 자랐으며 현 북부유럽과 알프스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가까운 친척이라고 결론지었다.
 

1991년 9월에 얼음속에서 발견된 미라 '얼음인간'


'얼음 인간'이 살던 시대 사람들은 멀리 여행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이 발견이 속임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필트다운에서 발견된 원인(猿人)의 화석이 석기 시대 말기와 청동기 시대에 살던 인류 조상의 화석이라고 생각되다가 정교하게 꾸민 사기극임이 밝혀진 바 있다. 신중한 과학자들은 이 경우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다.

이 발견은 일반인 사이에서도 많은 억측을 자아냈다. 이 '얼음 인간'이 알프스로 옮겨놓은 이집트 미라는 아닐까? 아니면 최근 페루나 칠레의 사막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신대륙 발견 이전에 만들어진 미국 대륙의 미라는 아닐까?

그러나 국제적인 연구팀은 유전학적인 분석을 통해, 이 발견이 사기극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했다.

거짓말같은 '얼음 인간'의 존재가 점점 신빙성있게 되어감에 따라 과학자들은 그 발견 자체가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던 도구나 무기, 입고 있던 옷 등을 해석하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고고학자들이 오래 전에 살던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할 때 주의를 집중하는 것으로 보통 무덤 부장품들을 가지고 그런 작업들을 해 왔다.

그런데 무덤 부장품들은 특별히 선택된 것들이기 때문에 아마도 일상 생활 용품과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얼음 인간'이 가지고 있던 도구들과 입고 있던 옷들은 어느 한 인간이 일상 생활을 꾸려가면서 사용하던 장비와 의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연구팀이 이루어낸 최근 성과중 하나는 먼 옛날, 알프스 지방 의복과 도구에 대한 목록을 작성해낸 것이다. 과학자들로서도 그가 왜 산꼭대기에 있었는지 설명할 도리는 없다.

그가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농부였을까? 사냥꾼이었을까? 아니면 장사꾼이나 탐광(探鑛)꾼이었을까? 마을에서 쫓겨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고 양치기였을 가능성도 있다. 비록 그의 직업은 알 수 없지만 과학자들은 속옷에서부터 앙말 대님에 이르기까지 그가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는 알고 있다.

독일 마인츠에 있는 로마-독일 중앙박물관(Roman-Germanic Central Museum)의 고고학자 마르쿠스 에그(Markus Egg) 박사는 보존돼 있던 옷 일곱 조각으로 '얼음 인간'의 복장 대부분을 재구성했다. 그 결과가 콘라드 스핀들러(Konrad Spindler)박사의 새 책 '얼음 속의 사람(The Man in the Ice)'에 자세히 소개되었고 이 책은 올해 초 영역(英譯)되어 런던의 빈덴펠드-니콜슨(Weindenfeld & Nicholson)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에 재직중인 고고학자 스핀들러 박사는 '얼음 인간'을 연구하는 1백47명으로 구성된 국제적인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알프스의 선사시대를 전공하는 영국 버밍햄 대학의 고고학자 로렌스 바필드(Lawrence Barfield)박사가 최근에 '영국 고대 학술지 (British Journal Antiquity)'에 의복을 연구한 것에 대한 요약 평가와 최근까지 발표된 연구 결과들에 대해 포괄적인 논평을 했다.

 

(그림 1) '얼음인간'의 소지품들


가죽 다루는 솜씨 뛰어난 청년

'얼음 인간'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정도의 나이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신장은 5피트 2인치였다. 그리고 현대인과 같이 직립보행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허리에 가죽 방지를 차고 있었는데 요즘 유행하는 '허리에 차는 주머니'와 비슷한 것이다.

가죽 허리띠에 달려있는 이 쌈지에는 불을 일으킬 때 사용했을 날카로운 스크레퍼나 칼, 혹은 송곳과 작은 부싯돌 조각, 그리고 아마도 부싯깃(불이 잘 붙는 물건)으로 사용되었을 유기물질이 들어 있었다.

가죽으로 된 허리띠는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옷을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역할을 했고,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각반(脚撽:정강이 받이)도 대님 역할을 하는 가죽끈으로 허리띠에 연결돼 있었다. 상의로는 재킷을 입었는데, 소매는 없었던것 같고 다른 색깔의 사슴 가죽을 번갈아 대어 만든 것이었다. 그 위에 풀이나 갈대를 엮어 만든 어깨 망토를 걸쳤다.

바필드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이 망토는 20세기 초까지도 알프스 지방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종류라고 한다. 그리고 안쪽에 털가죽을 댄 원뿔형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원래는 턱끝에 가죽끈을 매서 고정시켰다. 여러번 손을 본 흔적이 남아 있는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신발이 그의 발을 추위로부터 보호했다. 이 신발 안쪽에는 바깥의 냉기를 차단하기 위한 마른 풀이 가득 차 있었다.

의상을 세밀하게 조사해 보면 분명히 자급 자족했을 '얼음 인간'이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기술들이 드러난다. 특히 그는 동물가죽들을 다루고 그것을 무두질하는데 능숙했다. 연구자들은 옷의 재질이 염소 송아지 사슴 곰 등의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노루나 야생 염소, 영양의 가죽도 섞여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얼음 인간'이 가지고 있던 장비에 대한 많은 묘사가 발견 직후에 이루어졌지만 이제야 비로소 20종류 정도로 구성된 완성된 목록이 작성됐다. 바필드박사는 이것들이 오늘날 등산할 때 사용되는 생존 도구들에 해당하며 어떤 측면에서는 그것들을 능가한다고 쓰고 있다.

'얼음 인간'은 주목(朱木)으로 만든 미완성의 활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가 이런 험한 여행에 쓸모있는 활을 가지지 않고 임했는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중 하나이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화살통에는 가막살나무와 말채나무로 만들어진 부러졌거나 쓸모없는 14개의 화살이 담겨 있었다. 두개는 단단한 촉(觸)을 가지고 있었고 몇개는 깃털로 된 살깃을 달고 있었다.

그밖에도 화살통에는 아마도 활 시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동물의 아킬레스 건(腱) 같은 힘줄 두개, 나무의 섬유질로 만들어진 끈, 끝이 가죽끈으로 싸인 뼈 묶음, 그리고 바늘로 사용되었을 굽은 사슴뿔의 끝부분 등이 담겨 있었다.

다른 소지품으로 개암나무 골격에 가죽을 씌워 만든 배낭과 다음 야영지에서 불을 피우는데 사용할 깜부기불을 옮기는데 사용했을 안쪽이 시커멓고 단풍나무잎이 들어있는 자작나무 껍질을 기워 만든 통 두개가 있다. 또한 부시도구와 칼들, 새를 잡는데 사용되었을 끈과 가죽끈에 꿰어있던 곰팡이 슨 자작나무 두 조각도 발견되었다. 바필드 박사는 이 곰팡이들을 선사시대의 페니실린이라 할 만한 민간 항생물질로 보고 있다.
 

(그림 2) 당시의 복장(패션)


그림해설: 알프스에서 발견된 5천3백년 된 미라가 입고 있던 옷과 장신구는 요즘으로 치면 방한복에 해당한다. 그 복장은 야외에서 생활하는데 알맞게 고안되었다. 여러 겹으로 겹쳐입어 발과 머리, 그리고 몸을 따뜻하게 보온했고 등산용 만능칼 대신 골돠 구리로 만든 도구들, 부시도구 등을 가지고 있었다.

석기 시대로부터 온 보따리

'얼음 인간'은 구리로 된 도끼도 가지고 있었는데 주목으로 된 자루는 가죽끈으로 묶여 있었다. 처음에는 이 도끼가 청동으로 되어 있다고 잘못 생각했고 따라서 그가 살았던 시대를 청동기 시대인 약 4천년 전이라고 늦추어 잡았었다.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으로 남아있는 식물들과 다른 재료들에 대해 측정한 결과 '얼음 인간'이 살았던 시대는 5천1백년에서 5천3백년 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때는 이미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수메르의 고대 도시들이 생겨났고 바퀴 달린 탈것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포도주를 익혀 먹기도 했다. 문명이 형태를 갖추어가던 때였다.

하지만 유럽 문명은 본질적으로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었고 금속은 겨우 사용되기 시작한 정도였다.

비록 좀더 원시적인 문명에 속해 있었지만 '얼음 인간'과 그의 보따리에 담긴 문화는 고고학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고 때로 놀라게도 했다.

바필드 박사는 "뿌리깊은 진보에 대한 관념 때문에 과거의 기술과 문화의 정교함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사실 현재를 사는 우리들 중에서 과거 4천년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술들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라고 쓰고 있다.

스핀들러 박사는 그의 책에서 '얼음 인간'의 몸을 조사한 뒤 내린 몇가지 잠정적인 해석들을 제시했다. X선 검사 결과 그의 갈비뼈 몇대가 부러져 있음을 알아냈는데 아마도 그가 산 아래 마을에서 싸움을 했고 그 와중에 상처를 입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급하게 산꼭대기로 도망친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필드 박사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고 좀 더 경제적인 요인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얼음 인간'이 양떼를 몰고 산에 올라왔다가 사고를 당해서 눈이 내릴 때까지 마을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은 얼어붙은 시체를 발견해서 산으로부터 운반해 내려올 때 거칠게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검사를 해보면 '얼음 인간'의 이빨이 많이 닮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스핀들러 박사의 견해로는 그 이유가 그가 마른고기를 씹어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은 가죽을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이빨이 닳았을 수도 있다.

그의 몸에서 문신(文身)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러한 행위의 기원이 오랜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스핀들러 박사가 지적했듯이 문신의 문양이 단순하고 그 위치가 눈에 띄는 곳이 아닌 등이나 다리에 집중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모양을 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침술(針術)과 유사한 의학적 처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얼음 인간'은 거세되어 있었다고 널리 보도되었고 이것이 선정적인 억측들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스핀들러 박사는 그러한 보도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멸균된 고무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조사해본 결과 음낭(陰囊)으로 부터 그곳에 말라붙어 있는 음경(陰莖)을 조금씩 떼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얼음인간'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증거

'얼음 인간'의 신체에 대한 새로운 유전학적 연구가 진행되기 전에도 이미 고고학자들은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 중 하나가 이 발견이 조작이라는 견해를 뒤집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그만 사슴뿔의 끝부분이 라임나무 손잡이에 끼워져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이것은 부시 도구들을 손질할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사기를 치려했던 사람이라도 이러한 특별한 도구를 '얼음 인간'의 도구 주머니에 넣어두려는 생각까지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얼음 인간'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종류의 도구였고 바필드 박사에 따르면 그 이후에야 같은 시기와 지역의 몇몇 다른 장소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독일 뮌헨 대학과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연구자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독일의 취리히 대학과 인스부르크 대학에 있는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미라의 근육과 뼈, 그리고 연결 조직의 시료에서 뽑아낸 DNA를 분석 했다. 그 결과는 뮌헨의 올리바 한트(Oliva Handt)박사와 스반테 파보(Svante Paabo)박사가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Science)'에 기고했다.

연구자들은 모계(母系)를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물질인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리해서 현대 인간의 표본으로부터 뽑아낸 미토콘드리아 DNA와 비교해 보았다. '얼음 인간'의 DNA는 사하라-아프리카인들이나 시베리아인, 혹은 미국 인디언들로부터 얻은 시료와는 달랐다. 과학자들은 그의 유전적 형태가 현대 유럽인들의 유전적 변이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미토콘드리아의 형(形)으로 보았을 때 중부 및 북부 유럽인들과 가장 가깝다고 한다.

연구에 참가했던 옥스포드 대학 유전학자 브라이언 사이크스(Bryan Sykes)박사는 "'얼음 인간'의 친척들이 북부 유럽에 수없이 많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199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존 노브 윌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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