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 3, 2, 1, 0, 리프트 오프(lift off)!”
8월 12일 현지시각 오전 3시 31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23층 건물만 한 높이 약 72m의 ‘델타 IV 헤비’ 로켓이 굉음과 함께 뭉게구름처럼 거대한 연기를 내뿜으며 발사됐다. 로켓은 길쭉한 불꽃을 남기며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쳤다.
이 로켓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세계 최초 태양탐사선 ‘파커 솔라 프로브(Parker Solar Probe·이하 파커)’가 실려 있다. 태양 가까이 접근하는, 사실상 인류 첫 태양탐사선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이름은 ‘태양을 만져라(Touch the Sun)’. 그만큼 파커에게는 태양을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파커는 발사 약 두 달 뒤인 10월 첫 주 금성을 지나, 11월 중순에는 태양에 가장 가까운 지점(근일점)인 약 2485만km에 접근할 예정이다. 이후 7년간 태양 주변을 돌면서 지금까지 인류가 밝혀내지 못했던 태양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파커가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관문 1. 금성에서 점프해 태양 궤도에서 ‘밀당’
파커가 태양궤도에 도달하려면 지구에서 발사된 뒤 금성이나 수성 등 다른 행성이 도는 궤도를 지나가야 한다. 파커가 태양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금성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파커는 발사 이후 최소 두 달 이내, 즉 10월 첫 주 무렵에는 금성을 지날 것으로 예상된다. NASA와 공동으로 파커를 개발한 누르 라우아피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실 박사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파커는 금성 주변을 최소 6차례 도는데, 한 바퀴 돌 때마다 금성의 중력을 이용해 급격히 가속된다”며 “이 힘을 이용해 태양 궤도를 타고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근일점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주선이 행성 주변을 돌면서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가속하는 방식을 ‘플라이바이(flyby)’라고 한다. 파커는 ‘금성 플라이바이’를 하는 셈이다. 파커는 플라이바이 약 두 달 뒤에 이에 관한 데이터를 지구로 전송할 예정이다.
이후 파커는 태양궤도에 안착한다. 하지만 한 번에 태양궤도에 진입할 수는 없다. 태양의 중력 탓에 파커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끌어당겨져 태양으로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NASA 연구팀은 파커가 태양과 금성 사이를 왔다갔다 반복하면서 태양과의 거리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태양 중력의 영향으로 예상 궤도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라우아피 박사는 “파커가 태양의 궤도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수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파커의 속도는 위치에 따라 다르다. 지구에서는 초속 10km 정도로 출발하지만, 태양 가까이에서는 태양 중력을 받아 초속 180km를 넘긴다. 1시간 만에 64만8000km 이상을 날아갈 만큼 빠른 속도다. 태양에서 가까울수록 빨리 날고,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천천히 나는 것이다.
파커는 이렇게 태양으로부터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밀당’을 반복하면서 태양궤도를 빙글빙글 돈다. 이런 식으로 파커는 태양을 24번 두드릴 계획이다. 마지막 24번째 바퀴를 도는 2025년에는 인류 역사상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인 약 610만km 이내까지 다가갈 예정이다. 파커는 이 고도에서 태양 표면을 관찰한 뒤 장렬한 최후를 맞게 된다.
라우아피 박사는 “이때쯤이면 탐사선이 자세를 제어할 때 필요한 하이드라진 연료가 거의 고갈돼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열과 입자를 파커가 고스란히 받게 된다”며 “결국 파커는 산산조각이 나 태양풍과 함께 다시 우주 공간으로 되돌려 보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문 2. 두께 11.5cm짜리 ‘탄소 양산’으로 불지옥 견뎌
인류가 태양을 관찰하기 위해 태양 표면 가까이에 탐사선을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라우아피 박사는 “과학자들은 이미 1958년 태양 가까이 탐사선을 보내 태양을 관찰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1977년과 1979년 각각 발사한 보이저 1호와 2호가 이미 태양계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을 만큼 우주 기술은 발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양의 불지옥 같은 열기를 견뎌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는 장장 60년이 걸렸다. 태양은 표면 온도가 약 6000도이며, 태양의 대기인 코로나는 100만~150만 도에 이른다.
라우아피 박사는 “파커는 태양 앞에 다가가면 커다란 ‘탄소 양산’을 펼쳐 뜨거운 열을 막고, 이 양산을 빗겨간 열기는 몸체에 닿지 않도록 스스로 자세를 제어한다”고 설명했다. ‘탄소 양산’은 라우아피 박사가 소속된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실 연구팀이 개발한 열 차폐판(thermal protection system)을 말한다.
열 차폐판은 지름이 약 2.4m, 두께가 약 11.5cm인 탄소 합판이다. 얇은 탄소 강판 사이에 스펀지 모양의 탄소판이 들어 있고, 탄소 강판 표면이 흰색 세라믹으로 코팅돼 있어 태양열을 반사시킬 수 있다.
두께가 불과 10여cm 밖에 되지 않는 얇은 합판만으로 어떻게 수백만 도나 되는 코로나를 버티는 것일까. 라우아피 박사는 “코로나는 다행히 입자가 비교적 적어 밀도가 낮은 편”이라며 “밀도가 낮을수록 고온을 견디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100도로 끓는 물과, 동일한 온도로 달궈놓은 오븐에 손을 넣는다고 가정할 때 오븐 속 공기보다는 끓는 물이 훨씬 뜨겁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는 “파커가 수백만 도의 코로나를 지나갈 때 열 차폐판이 받는 온도는 약 1400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는 지구에서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하는 용암의 온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는 또 “파커가 열 차폐판을 폈을 때 기체의 온도는 약 30도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파커는 기체가 기울어져 있을 때 열 차폐판을 빗겨온 열이 닿지 않도록 스스로 기울기를 제어하고, 기체 내부까지 냉매가 순환하는 펌프가 들어 있어 열기를 식힐 수 있다.
라우아피 박사는 “태양 근처에서 뜨거운 열기를 견디는 것도 숙제이지만, 태양에서 벗어날 때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는 상황도 견뎌야 한다”며 “파커는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듯한 극한 환경을 견뎌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파커는 코로나 구간에 진입했을 때 플라스마 입자 분석 장비를 작동하기 위한 에너지를 태양광으로부터 얻도록 설계됐다. 또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태양전지판 날개를 양옆으로 펴고 에너지를 생산하지만, 태양 가까이에서는 태양전지판을 접는다. 태양의 열기가 너무 강해 태양전지판이 과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관문 3. 태양풍 비밀 밝혀야
파커는 7년 동안 태양궤도를 돌면서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한다. 먼저 태양 표면보다 태양 대기인 코로나가 훨씬 뜨거운 이유를 분석할 예정이다. 이번에 살아 있는 사람으로는 최초로 본인의 이름을 태양탐사선에 붙인 유진 파커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코로나가 태양 표면보다 뜨거운 이유에 대해 “태양 표면에서 초당 수백 차례 이상 미세한 폭발(나노 플레어)이 일어나면서 대기를 뜨겁게 데운다”고 주장해왔다.
라우아피 박사는 “파커는 태양 표면으로부터 600만km 고도, 즉 뜨거운 코로나 안을 통과하면서 실제로 태양 표면에서 나노 플레어가 발생하는지, 또 태양의 대기를 표면보다 20배나 더 뜨겁게 달굴 만한 에너지가 있는지 분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임무는 태양이 내뿜는 강력한 충격파인 태양풍을 분석하는 것이다. 태양풍은 초속 수백km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인데 양성자와 전자 같은 미립자로 가득하다.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지구 극지방에서는 화려한 커튼처럼 빛나는 오로라가 나타난다. 인공위성 등에는 전파 교란을 일으켜 비행기 운항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고 심하면 정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라우아피 박사는 “태양풍 역시 약 60년 전 파커 교수가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한 개념”이라며 “당시 과학자들은 우주가 아무 것도 없이 텅 빈 공간이라고 생각해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커 교수가 태양풍을 주장한 4년 뒤인 1962년 금성 탐사선 ‘마리너 2호’가 태양풍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태양풍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는 존재다. 태양풍이 왜 발생하는지, 지구에 도달하는 속도가 왜 제각각인지 아직 이유를 모른다. 태양풍은 초속 약 200km의 느린 속도로 오다가도 초속 약 750km의 매우 빠른 속도로 지구에 도달하기도 한다.
현재 과학자들은 두 번째 태양 탐사도 계획하고 있다. 2020년에는 유럽우주국(ESA)이 태양궤도선인 ‘솔로(SolO·Solar Orbiter)’를 발사할 예정이다. 라우아피 박사는 “솔로는 태양의 황도보다 30도 이상 기울어진 궤도를 돌기 때문에 실제로는 파커가 태양 표면에 훨씬 가까이 접근한다”면서도 “솔로가 태양의 극지방을 관측하는 등 임무를 수행하면 태양에 대해 더 많은 비밀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