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은 함께 산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저 공간을 함께 점유한다고 해서 공존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한 자리에 나란히 놓여 있는 바위 두 개를 가리켜 공존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생명체여야, 보다 현실적으로는 둘 다 생명체여야, 공존의 참의의가 생긴다.
공존이 능동적인 행위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명체가 자신 안에 상대를 용인하고 포용할 때 공존이 성립한다. 특집으로 다룬 미토콘드리아는 생명이 공존 지향성을 지녔음을 증명하는 놀라운 사례다. 세포와 미토콘드리아는 서로 공존하며 길고 긴 진화 역사를 함께 했고, 이 공존 덕분에 인류를 포함해 크고 복잡한 새 생명체가 지구에 등장할 수 있었다.
연재 중인 ‘전중환의 협력의 공식’에서도 공존을 만날 수 있다. 사회적 행동의 진화를 다뤘는데, 이는 곧 공존을 가능하게 한 이타성의 기원이다.
정기독자에게 제공하는 인포그래픽 브로마이드 ‘5분 사이언스’에도 공존의 사례가 있다. 이번 달 주제는 인류의 진화다. 우리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데니소바인이 서로 피를 섞으며 공존했다는 사실은 최근 5년 사이에 상식이 됐다.
200만 년 전 초기 호모 속이 태어났을 당시에도 여러 친척 종들이 공존했음도 드러났다. ‘호빗’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병에 걸린 현생인류가 아니라, 정말 몸도 뇌도 작은 친척 인류였음을 입증하는 새 화석도 최근 발표됐다. 우리는 이들과도 함께 살았다. 인류는 천상 공존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공존은 과거나 현재만의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 연구에 속도가 붙으면서, 학자들은 이제 인류가 새로운 인류인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수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온 신(新)인류 호모 사피엔스를 만난 네안데르탈인은 낯선 이방인의 존재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인류 역시 터줏대감들과 만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싸우지 않고 공존했고, 공통의 자손을 남겼다(좀 낭만적인 해석이긴 하다). 이들에게 공존의 유전자가 있었음을 새삼 감사하게 생각하며 또다른 공존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