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3. 전자보다 1천배고속 21세기 광자시대

질량이 없고 전자보다 속도가 1천배나 빠른 광자. 이를 이용한 광컴퓨터는 인간의 뇌와 같은 병렬식 정보처리를 가능케 할 것이다.

"광자의 시대가 오고 있다." "20세기가 전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광자의 시대가 될 것이다."

"21세기는 광의 도시 (Optical City)로 빛나게 될 것이다." 1986년 10월호 미국의 저명한 시사 주간지 타임지의 과학기사 주제 선언들이었다. 인류가 빛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 성질을 이용해 보려는 노력은 오래되었으나, 빛의 중요성이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는 앨빈 토플러 박사가 말하는 바 21세기를 향한 제 3의 물결, 즉 정보화사회를 대비함에 있어서 전자가 가지는 물리적 공학적 한계를 광자기술로 보완 또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 라는 과학적 기대와 예견 때문이다. 학문적 흐름을 볼 때도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광학(optics) 위에 광자과학 광자공학 광자기술 등의 학술용어들이 생겨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광자에 관한 지식 체계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철학자로 유명한 하버드대학의 토마스 쿤의 말처럼 과학기술의 시대적 통념, 즉 파라다임(paradigm)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광자시대의 첨병들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면 이미 전자와 함께 많은 광자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광통신을 비롯해서 광컴팩트디스크 광센서 광계측 광홀로그램 등 광자를 이용한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를 마치 대변이라도 하듯, 1993년 5월 국제경제주간지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위크지는 '놀랍고 멋진 광의 세계'(Light Fantastic)라는 제목의 표지와 함께 빛을 이용한 미래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광을 이용한 컴퓨터, 광기억장치, 광정보처리, 광논리 집적회로, 광정밀계측, 비행기 자동차 선박 등 교통수단에 장착된 광자이로스코프, 광센서, 광레이더, 광신소재, 의학용 광진단치료장치, 빌딩벽이나 교량 등에 광섬유를 묻어 안전을 점검 기록하는 장치 등 전자시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광자기술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중에는 이미 쓰이고 있는 것들도 많다.

광자시대를 알리는 서광은 전자시대의 대표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동선과 실리콘 반도체에도 비쳐지고 있다. 단위면적당 구리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구리를 캐는 광산이라기보다는 전기선과 전화선으로 얽혀 있는 도심의 지하와 빌딩들이다. 또 실리콘의 밀도가 높은 곳도 컴퓨터가 들어 찬 사무실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점차 광섬유와 광반도체, 광신소재 등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물리학적으로 발광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실리콘 반도체로부터 고효율의 가시광선을 추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실리콘이 광자소자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필자의 실험실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과학기술자들의 미래 정보화사회의 3대 기술을 마이크로전자공학(microelectronics)소프트웨어공학(software) 그리고 광자공학(photonics)으로 요약하면서, 전에 없던 광자공학을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흐름들 때문이다. 20세기 말까지 현 전자컴퓨터의 30% 이상이 광자로 대체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21세기 초반에는 광자컴퓨터의 모습이 드러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광통신과 광자컴퓨터의 투명한 결합, 그리고 상기한 각종 광자기술들이 거대한 시스템을 이루면서 '광의 도시'를 건설해 나가게 된다는 전망이다. 최근 미국에서 부르짖고 있는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라든가 한국 일본에서 2015년을 향해 설계하고 있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은 모두 광자의 능력을 기반으로 하여 미래 정보화사회에 대비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다.

무엇이 광자를 이처럼 매력적인 정보매체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광자와 전자는 어떻게 다른가?
 

가시광선 발광이 불가능한 것으로 믿어졌던 실리콘 반도체로부터 오렌지색의 빛을 얻어내는 모습. 원판 위에 놓인 두조각의 실리콘 중 왼쪽은 빛을 내는 실리콘, 오른쪽은 처리되지 않은 모통실리콘. 이 결과로 인해 전자소자로만 쓰이던 실리콘이 광자소자로도 쓰일 가능성을 열어주게 되었다.
 

질량이 없다

우선 전자와 광자의 물리학적 특수성을 살펴보자. 전자는 질량을 갖고 있으나 광자는 질량이 없어, 매질과 공간을 통과할 때 광자의 속도가 전자의 속도보다 1천배 이상 빠르다. 또한 빛은 데라비트(${10}^{12}$)에서 ${10}^{14}$에 달하는 고유 진동수를 갖고 있는데, 이 숫자는 광통신에 있어서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숫자다. 또한 전자는 반도체 금속 등 매질속을 일렬로 통과하여야 하나, 광자는 자유공간을 통과할 수 있다. 양자역학적으로도 전자는 매질과 공간 어느 위치에도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반면(페르미-디랙의 입자) 광자는 매질과 공간의 어느 위치에서도 공존, 또는 교차할 수 있는 성질이 있다(보제-아인슈타인의 입자). 또한 전자는 전자장의 간섭을 쉽게 받는 반면, 광자는 전자장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다. 따라서 전자는 직렬식 정보처리, 광자는 병렬식 정보처리에 더 잘 맞는 성질을 갖고 있다. 전자가 메모리 등 정보저장에 잘 맞는다면, 광자는 초고속 대용량의 수송과 병렬식 정보처리에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광자의 성질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용한 기술이 광통신기술이다. 1960년 초·중반에 걸쳐 발명된 갈륨비소 반도체레이저의 발명과 광섬유의 결합으로 광통신의 가능성이 확인된 이후, 오늘까지 메가비트(${10}^{6}$)시대를 지나 기가비트(${10}^{9}$)시대에 진입해 있다. 20세기 초반에는 테라비트 ${10}^{12}$ 영역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테라비트 광통신은 '테라 헤르츠'라는 빛의 높은 주파수특성과 파동성을 헤테로다인 또는 호모다인 방식으로 이용하는 코히런트 통신방식, 그리고 광섬유 증폭과 비선형 광파인솔리톤(soliton)을 이용하는 완전 광통신방식 등 새로운 개념의 통신방식을 가능케 할 것이다. 테라비트 광통신은 한가닥 광섬유를 통해 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신문 수억장 정도의 정보를 1-2초 사이에 광섬유로 빨아들이면서 다른 컴퓨터로 옮겨 놓는 마술적인 일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천만명의 동시통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지능형 컴퓨터끼리의 통신, 천연색 팩시밀리, 3차원영상 CATV, 원격의료진단도 가능해진다.

각 가정과 사무실에 전력 수도 가스에 이어 제 4의 공급선인 광섬유가 들어가면서, 무한대에 가까운 정보수송용량과 함께,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망(B-lSDN, Broadband Integrated Services Digital Network)의 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도시의 복잡한 교통, 소음, 공해, 자동차물결은 썰물처럼 밀려나고, 수많은 광자머슴들은 광자컴퓨터라는 빌딩과 광섬유로 만들어진 고속도로를 오가며 심부름을 해주게 된다. 꿈만 같은 이야기일까?
 

차세대 광통신 연구실험 장면. 장치 앞부분에 놓인 큰 바퀴는 광섬유를 감아놓은 모습. 좌측 아래 실험장면은 광자물리 측정장면(필자의 실험실).
 

광컴퓨터의 구현

21세기 '광의 도시' 건설에 있어서 광자과학에 중대한 도전이 또 하나 있다면 광자컴퓨터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식 컴퓨터의 핵심은 폰 노이만에 의한 직렬식 처리방법으로 대역폭이 수 기가비트로 제한되는데 비하여, 3차원 자유공간을 이용하며 병렬처리가 가능한 광자논리회로에서의 대역폭은 수 테라비트가 가능하다. 따라서 기존 전자컴퓨터를 보상하거나 능가하는 수학적 계산도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광컴퓨터가 실현되면 초고성능 워크스테이션을 비롯해서 인간에 가까운 컴퓨터, 대규모 탐사와 시뮬레이션, 사회전반에 걸친 대규모 네트워크, 거대 토목사업 등이 실현돼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촉진될 것으로 예측된다.

광계산방법은 아날로그방법 신경회로망방법 디지털방법 등으로 연구되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은 연속적인 함수와 데이터를 처리하는 패턴인식, 실시간 영상 정보처리 등과 함께 선형대수 미분 행렬계산 등 대수학적 광처리에 꼭 필요한 방식이다.

신경회로망은 인간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정보처리 현상과 원리를 모방하고자 하는 것인데, 그 동작원리는 병렬성에 있다. 빛의 성질 또한 병렬성에 있으므로, 광자공학 기술이 매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광연상 기억장치에는 광 홀로그램을 이용하는 방법이 연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광디지털 계산방법은 디지털 개념을 유지하면서 광자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광프로세서, 디지털 광컴퓨터를 만들어가게 된다. 최근에 와서 디지털 광컴퓨팅이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광전소자기술의 꾸준한 발전과, 반도체 다중양자우물(multiple quantum well), 표면방사 레이저 어레이(surface-emitting laser array), 또는 자기전광효과소자(SEED, self-electro-optic effect device) 등 핵심 신소자들의 발명과 함께, 이들을 집적회로화시킬 수 있는 기술들이 개발돼 왔기 때문이다. 광디스크를 이용한 디지털광저장능력, 광학을 이용한 광연결능력들도 주변 기술로서 디지털 광컴퓨팅의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광컴퓨팅을 가능케 하려면 광원 논리소자 기억소자 프로세서 등 광자들을 위한 놀이터와 놀이기구 단위소자의 창출은 물론 이들을 집적한 광집적소자 (광 IC) 등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광원으로서 단위면적당 밀도가 높은 마이크로 레이저 어레이를 미세구조로 만들어야 하는데, 최근에 AT & T 벨 연구소에서 수백만개로 집적된 마이크로 레이저(microlaser) 정렬판 제작에 성공함으로써, 한발짝 성큼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의 연구부서에서도 필적할 만한 결과를 얻고 있다(그림 1).

마이크로 레이저는 지름이 1μ(1만분의 1㎝)보다도 작고, 높이는 8μ 정도되는 원통형 또는 원판형 반도체 미세구조로서, 사방 수㎝인 칩 위에 수백만개의 미세 원통들이 가로 세로 빽빽히 정렬된 모양을 상상하면 된다. 이 레이저광을 광논리소자를 통하여 개별적으로 통과, 또는 반사시킴으로써 불리안(Boolean)논리, 2진법논리 등 터지털논리를 처리하게 되고, 따라서 광 디지털 컴퓨팅을 할 수 있는 기본틀을 갖추게 된다.

빛의 통과와 반사 등 광논리 기능을 가능케 하는 방법으로, 빛이 매질 속으로 진행할 때 광자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비선형 광학현상이 중요한 학문분야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광소자는 전기적으로 광을 제어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광학적으로 제어하려고 하는 완전 광정보 처리 (all optical information processing)에 관한 연구가 중요하게 될 것이다. 현재 많이 연구되고 있는 비선형 광학재료로는 광굴절재료 반도체 광섬유유기물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외부에서 걸어준 전장의 세기 또는 빛 그 자체의 전장의 세기에 의해 매질내에서 일어나는 분극현상으로 유도된 광굴절률의 비선형적 변화가 그 매질을 지나가는 빛의 위상변화를 일으킬 때 투과 또는 반사되는 전기광학 효과(electrooptic effect)의 원리를 이용한다.

광논리기능을 가능케 하는 소자는 광자시대라는 문을 여는 돌쩌귀와 같은 것으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1947년에 발명된 반도체 트랜지스터가 오늘날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전자시대의 문을 열어준 것과 같은 것이다.

광논리소자들은 앞서 말한 광자컴퓨터 외에도, 테라비트를 처리할 수 있는 광자식 교환기, 지능형 가전제품, 그리고 교육 문화 예술 영상 의료 해양 우주 등 곳곳에 초고속 대용량 정보처리와 특수기능을 가능케 하는 폭발적이고 회기적인 계기들을 만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21세기 광자과학과 광자기술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이 많은 연구대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광학과 광자과학, 광자기술분야는 이 글에 소개한 내용보다도 훨씬 더 깊고 넓다. 더욱이 21세기를 향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광자과학을 학문적으로 예측한다는 일은 어찌 보면 무리한 일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바라본 광자과학은 21세기 정보화사회에 발맞추어 근간을 이루어 나갈 분야들 중에서 중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몇가지 분야에 대해서만 피상적으로 전망해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덧붙인다면, 우리나라의 광자물리학 등 광자과학 기반이 미국 일본 유럽 러시아 중국 등의 국가에 비해 지극히 열세하기 때문에, 21세기 광자시대를 대비하여 이 분야의 학문이 대폭 확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광자과학의 응용이라 할 수 있는 광자공학과 광자기술 등의 분야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미개척분야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서 가며 개척할수록 선진적인 위치를 점해갈 수 있는 반면, 소극적인 경우에는 선진의 기회를 영원히 놓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림1) 광굴절 효과^광홀로그램 등을 이용하여 광신호를 처리하거나 또는 논리를 수행하는 개념도. 이러한 기능이 확보되면 광통신 광자컴퓨터 광자네트워크 등이 가능해진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일창 부장

🎓️ 진로 추천

  • 물리학
  • 컴퓨터공학
  • 광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