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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모 컴퓨터로 첨단합금 설계하는 사이버 연금술사

첨단재료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금속재료들은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기업간 합병과 같은 합금의 방법을 선택한다. 그런데 기존 합금의 경우 시행착오적으로 여러 물질을 섞은 후 그 기능이 무엇인지가 파악됐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기능을 갖는 합금을 먼저 이론적으로 디자인한 후 제작한다. 신소재가 전산재료과학에 의해 탄생한다는 의미다.
 

이혁모 교수


“우리나라 인기가요 50위권 내의 곡은 기본이죠. 얼마 전에 큰딸과 함께 브라운 아이즈와 NRG의 CD를 샀는데 모두 괜찮았어요. 참, 브라운 아이즈는 SM소속인데 그 중 한명이 전에 Anthem 활동했어요. 최근에는 고려대에 다니는 성시경, 6집을 낸 장혜진, 신인 그룹인 주얼리를 좋아하고,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브리트니 스피어즈도 좋아해요. 영화로는 올해 아카데미 감독, 편집, 각색,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트래픽’이 좋았고, ‘미이라2’는 가족과 보기에 괜찮았어요. ‘친구’는 신입생들과 봤는데 학생들은 감동먹고 울던데 저는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더라구요.

전에는 이영애가 가장 좋았는데 지금은 김남주, 김민, 이미연, 한고은도 좋아해요.”

이렇듯 영화, 가요, 팝송, 배우, 가수 등 연예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쉼없이 쏟아내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KAIST 재료공학과 교수인 이혁모 박사(41)다. 큰딸과 대화하기 위해 연예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웃는 이교수. 대학교수가 노력만으로 연예 정보를 그렇게 다양하고 깊게 파악하고 있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더니 이교수 자신도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 중 하나라고 고백한다.

이렇듯 대중문화 옹호론을 펴는 그는 사실 재료공학 분야에서 새로운 합금설계 방법을 제안했고 이로부터 납이 포함되지 않은 땜납 대용합금(무연솔더합금)을 만들어낸 공학자다.

재료들의 몸값 올리기

최근 생명공학(BT), 정보과학(IT), 나노과학(NT)이 21세기의 과학혁명을 주도할 것이라고 주목받고 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소리없는 혁명을 준비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재료공학(MT)이다. 실제로 재료의 발달은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인류와 흥망성쇠의 역사를 함께 해온 것이 사실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1950년대 반도체 시대를 거쳐 1990년대 이후에는 새로운 재료 시대로 진입했다. 일명 신소재로 불리는 새로운 재료는 우주선을 만드는데 쓰이는 첨단재료에서부터 질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생체재료에까지 인류의 생활 전반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기존의 재료보다 우수한 성질을 보이는 새로운 재료의 출현을 손꼽아 기다린다. 원자로, 용광로, 바닷속, 남극, 우주 등 다양한 환경에서 인류의 활동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재료 중 일상생활과 산업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가 금속재료다. 알려져 있듯이 철, 구리, 아연, 니켈, 마그네슘 등 자연에는 다양한 금속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금속들은 단단하지만 무겁거나, 가볍지만 무른 것과 같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물론 사람들은 금속의 장점만을 취하길 원한다.

금속이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합금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강하고 단단하면서 가볍고 녹는점이 높아 어떤 환경에서도 잘 견디는 금속을 위해서 말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철에 탄소를 섞어 강도를 증가시킨 강철을 비롯해, 알루미늄 합금, 티탄 합금, 마그네슘 합금, 니켈 합금, 텅스텐 합금은 물에 뜰 정도로 가벼운 금속에서부터 지구궤도를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우주왕복선의 표면을 이루는 것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

땜납 대체하는 청정 합금

그런데 10여년 전만 해도 합금은 주로 경험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합금을 만든 후에 그 기능을 파악했다는 말이다. 새로 개발된 합금의 기능은 크게 합금을 이루는 조성과 미세조직에 의해 결정된다. 이 중에서 특히 미세조직은 새로운 물질을 탄생시키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금속재료에 아주 작은 입자를 분포시켜 금속을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을 비롯해 미세조직을 제어함으로써 원하는 성질을 갖도록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세조직은 열역학적 평형상태와 반응속도에 영향을 받는다. 즉 새로 만들어지는 합금이 얼마나 안정적인지와 시간에 따른 상태의 변화가 결국은 미세조직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기존에는 합금을 만든 후에 해석됐다.

하지만 이교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합금설계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에 알려진 자료를 바탕으로 합금 원소의 열역학적 특성을 알아내고 수치화해 실험적으로 알아내기 어렵거나 측정하기 어려운 물리적인 특성을 계산해낸다. 그리고 새로운 합금이 대기 중이나 다른 환경에서 어떤 거동을 보이는지 해석한다. 그런 다음 만들어지는 합금 미세조직의 특성을 해석하면서 기능을 파악한다. 이러한 과정이 컴퓨터에서 이뤄진 후에 새로운 합금 시험 조각을 직접 제작한다. 이 방법은 합금 원소의 양을 달리 하면서 많은 종류의 샘플을 제작해 특성을 파악하려는 시행착오적인 방법에 비해 시간과 물질적인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바로 물질의 미세조직을 이해함으로써 재료의 다양한 특성을 파악하는 ‘전산재료과학’(computational materials science)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이교수는 다양한 합금을 설계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환경친화적인 무연솔더합금이다. 모든 전자 부품의 접합에 사용되는 땜납은 기원전 3천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현재까지 열에 민감한 재료의 접합을 위한 대표적인 물질이다. 하지만 땜납에는 주석과 함께 납이 포함돼 있어 인체와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새로운 접합재료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제품의 소자가 점차 소형화되면서 접합재료도 그에 걸맞는 기능을 갖춘 새로운 것이 요구됐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이교수의 무연솔더합금이다. 납이 들어있지 않아 환경친화적이고 전자제품과 접합되는 부위가 전자제품을 제대로 지탱해주고 전기 신호를 전달해주며 부품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거하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땜납에 비해 가격이 비싸 아직까지 상업화되지 못했다. 그래도 이교수는 싱글벙글이다. 여기까지 한 것도 잘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매사에 긍정적이라는 이교수의 성격이 드러난다.

딸을 통한 깨달음

인생의 좌우명이 ‘주제파악하며 겸손하게 살자’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이혁모 교수. 군인이었던 아버지에게 지적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지적을 당하면 늘 꾸지람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던 그. 초등학교 친구인 오세창 교수(아주대 환경도시공학부)는 “상당히 학구적이었던 친구예요. 공부하는 면에서 늘 앞서가던 친구죠. 아마 성적표에 1 이외의 숫자는 찾아보기 힘들걸요”라고 말하고, 대학 친구인 이재호 교수(홍익대 금속재료공학과)도 “장기, 단기 목표가 늘 명확했던 것 같아요. 자신이 계획한 일에 대해 추진하는 능력이 탁월한 친구예요”라고 평할 만큼 만사를 철저하게 계획하고 이뤄낸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꼼꼼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지도하는 대학원생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의 연구실을 봐도 곧 확인할 수 있다. 초등학교때 상으로 받은 민중서관 영한사전이 30년이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깔끔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어느 곳에 흐트러진 종이 하나를 발견할 수 없으니 말이다. 소문에 따르면 대학교때는 지갑에 1천원, 5천원, 1만원짜리가 순서대로 그림의 모양까지 맞춰 있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숨가쁘게 지나온 그의 삶은 사랑스러운 딸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큰딸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대학을 왜 가야하죠?”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차츰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바로 ‘백댄서’.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딸과는 이야기도 점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화 창구를 찾은 방법이 딸의 관심사를 자신의 관심사로 만든 것이다. “딸아이가 그렇게 바뀌면서 저도 많이 힘들었죠. 이제는 한번 사는 인생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딸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공부만 잘하면 인생의 길이 정해진 때가 자신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딸에게도 원하면 백댄서가 돼도 좋다고 했다. 단 백댄서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므로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딸의 진정한 후원자가 돼 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후원자의 길은 그리 쉽지 않은 듯하다. 딸과 이야기하려면 노래와 춤에 관해 꿰뚫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가끔씩 물어보는 수학문제를 가르쳐줄 때는 눈치도 보고 비위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전에 수학문제 가르쳐주다 화를 내서 부녀지간이 소원해진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귀띔했다.

아기돼지 삼형제로 재료공학 강의 시작

그리고 2000년에 젊은과학자상을 받으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어느날 돌아다보니까 제 주변에 반은 교회사람, 반은 전공과 관련한 사람뿐이었어요. 제가 다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친구들이 그리워졌어요.”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이 비성경적이라고 표현하는 술도 못하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서울에 있지만 이제는 일부러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에 온다. 자신의 모습과 추억을 되찾아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일도 잘하고 친구들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하는 이재호 교수가 부러웠다고 말하는 이혁모 교수에 대해 이재호 교수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예요. 어렵지만 친구를 위해서는 쓴 얘기도 하는 좋은 친구죠”라며 웃는다. 오세창 교수도 사회생활하면서 알게 된 이혁모 교수는 정말 인간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들과의 만남은 그의 삶의 큰 축을 바꿔놓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중장기 계획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계획이 없다라기 보다는 늘 철저하게 계획하고 체크하던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으로 비쳤다.

이혁모 교수는 친구들이나 학생들에게 모두 유머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그는 재료과학에 대한 강의를 시작할 때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아기돼지 삼형제’. 재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라며 재료에는 금속, 세라믹, 반도체, 고분자, 복합재료가 있다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발렌타인데이의 선물을 이야기를 하며 흑연과 다이아몬드의 열역학적 평형상태를 설명한다. 이렇게 늘 재미있는 강의 레퍼토리를 준비하기 때문에 강의를 들으며 이곳 저곳에서 키득거리는 학생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실 학생들은 이교수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더구나 특별히 뭔가를 시키지 않고 스스로 연구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토로한다. 이에 대해 미국의 뉴욕 IBM에서 근무하고 있는 제자 최원경 박사는 “교수님은 철저히 자율적인 연구를 강조하세요. 그냥 시키는 것이 익숙한 학생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 될지 몰라도 다르게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요”라며 이교수의 전략이 연구자로서의 능력을 키우는데는 큰 도움이 된다고 지지했다. 그러면서 논문을 제출하거나 세미나 시간에 지적할 때는 날카롭기까지 하다며 혼낼 때는 확실하게 혼내는 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꾸짖을 때는 상대방을 직접 보지 못해 혼나던 학생이 마음 약한 이교수를 보며 더 무안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인생 설계도 새롭게

언뜻 보면 이교수는 유머있고 덜렁거리는 것 같지만 천만이다. 자신의 연구에 있어서는 무엇 하나 소홀한 부분이 없다. 연구 계획서의 아이디어에서 논문 작성까지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는 논문의 오자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살다보면 실망하는 것도 있고, 기쁨도 있고, 섭섭한 것도 있고, 보람도 있잖아요. 그런 것이 다 어우러지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여운을 남긴다. “소위 공부 잘하는 그룹에 있다보니 눈치가 늘어난 것 같아요. 공부를 잘 하고 연구를 잘 하려면 논리적이고 꼼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지내온 것 같아요. 쉽게 말해 쫀쫀해진거죠. 그러다 보니 인생이 피곤해졌어요. 나를 스스로 속박하고 있는 내 자신을 깨달았어요”라면서 이제는 보다 자유스럽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인생을 설계할 것이라면서 겸연쩍어 한다. 새로운 개념의 합금설계 방법을 제안한 그가 남아있는 인생의 설계도 새롭게 한 것일까.

재료의 세계에 진정한 승자는 없다. 독특한 기능을 가진 재료들이 늘 새로운 승자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도 승자란 의미가 없다. 땀을 흘리며 곡식을 일구는 농부처럼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가꾸는 사람은 모두 가치롭다. 새로운 성능을 갖는 재료를 디자인해서 합성하고 제조해내는 신개념의 합금설계를 연구하는 이교수. 그의 연구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까닭은 아마도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연구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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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 사진

    장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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